우리의 자애로운 맏형이신 주님
로마서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찬송가 92장(위에 계신 나의 친구)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예정하신 자들을 자기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내적 형상을 본받게 하셨다고 하시면서,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택함을 입은 성도들의 맏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 구주 예수님은 택함밷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맏형, 맏오빠가 되신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가장 자애롭고 든든한 큰 형님이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열두 제자들 곧 모든 성도들의 대표이기도 하고 모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매우 자기 중심적이고 서로 잘났다고 다투기 일쑤였고 믿음도 없고 성질이 괴팍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늘 데리고 다니시며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에 대하여 자상하게 가르쳐주셨고 그들을 오래 참아 주셨고 못 알아들을 때도 많지만 또 다시 가르쳐주셨으며 친히 본을 보여주시곤 하셨습니다. 그리고 위험한 새 길을 열어 가야 할 때에는 자기 제자들 앞서 홀로 가시면서 그 길을 열어가시곤 했습니다. 잡히실 때에도 체포하려는 포악한 자들에게 자기 제자들이 혹시라도 다칠까봐 자기를 밝히시면서 제자들은 가게 하라고 제자들 앞을 가로막고 제자들이 도망치게 하셨습니다. 그는 홀로 사망의 길을 앞서 들어가셨고 사망 중에 다시 영광스럽게 영원히 살아나는 부활의 첫 열매도 되셨습니다. 그는 부활의 영광의 몸을 입은 채로는 맨 처음으로 천성 문을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자기 동생들의 첫 모델이 되시어 그렇게 죽은 자 가운데서 영원한 부활의 새 생명의 몸을 입고 천국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첫 길도 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완전한 사랑으로 동생들의 맏형, 맏오빠로서의 삶을 사셨고 지금도 자기의 동생들인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늘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맏형이 계시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성경을 보면 형제간에 우애를 나누기가 쉽지 않고 형이 동생들을 돕는 예는 많지 않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두 동생 가인과 아벨을 보면,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질투하여 들에서 돌로 쳐 죽이고 시치미를 떼는 악을 저질렀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평생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삭의 쌍둥이 아들 중에 형 에서도 동생 야곱을 그렇게 돌봐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서 열한째 아들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니 형들이 다 질투하여 그를 향하여 언사가 불량하였습니다. 또한 요셉이 영적인 꿈을 두 번이나 꾸고 철부지처럼 형들에게 꿈 자랑을 하니 형들은 그 꿈을 인하여 동생 요셉을 죽이고자 했다가 은 이십 량에 외국에 노예로 팔아 넘기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여호사밧 왕의 큰 아들 여호람은 아버지를 이어 유다의 왕위에 오르자 그 동안 사이 좋게 지내던 척하던 자기 동생들을 다 죽여버렸고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 배에 벌레가 생겨 이년 동안 고통을 겪다가 창자가 빠져나와 죽고 말았습니다. 다윗도 일곱 명의 형들이 있었으나 그렇게 보호를 받지 못하였고 큰 형 엘리압 역시 막내 동생 다윗을 살갑게 대하기보다는 위압적으로 대하고 까닭없이 꾸짖곤 했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기록을 보면 형제간은 늘 경쟁 관계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동생을 잘 챙기는 맏형 노릇을 한 형들도 성경에 나옵니다. 예를 들면, 야곱의 여러 아들 중에서 넷째 유다는 양식을 구하려고 애굽으로 가야 할 때에 둘째 시므온을 구출하고 양식도 가져오고 막내 베냐민을 반드시 아버지 야곱에게 데려오려고 아버지 야곱 앞에서 자기의 생명을 내놓고 담보하였습니다. 실제로 애굽에 갔을 때에 국무 총리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는 자기 형들의 마음을 떠보려고 베냐민을 놓고 평안히 돌아가라고 시험하였을 때에도 유다는 자기가 대신 종이 되겠으니 베냐민을 보내달라고 요셉에게 간절히 호소합니다. 유다는 이미 인질로 잡힌 시므온도 건져내고 베냐민도 지켜내고 연로하여 염려가 가득한 아버지 야곱의 생명의 불꽃을 지키려고 자기 몸을 기꺼이 담보로 내놓았던 것입니다. 그는 그 집안의 맏형의 역할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훗날 야곱이 죽기 전에 축복할 때에 유다의 후손 지파를 크게 축복하고 그 후손 중에서 메시야 실로가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했고 그 예언대로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유다 지파에서 태어나셨더 것입니다.
다윗의 경우에도 자기 육신의 형들 중에는 진실한 형들이 없었지만 대신에 사울 왕의 큰 아들 요나단이 인간의 일반적인 정서를 뛰어넘어 다윗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그의 자상하고 든든한 큰 형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 사울의 칼과 창으로부터 다윗을 지키고 다윗이 아버지 사울을 이어 왕위에 오르기를 바라고 맹세함으로써 다윗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요나단이 아버지 사울과 함께 블레셋 군대와 싸우다가 전사했을 때에 그 소식을 듣고 다윗은 슬퍼 울며 노래를 지어서 조문하였으니 그것이 이른바 활노래입니다. 그 내용 중 한 구절을 보면,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사무엘하 1:26)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러한 유다의 희생적 사랑과 요나단의 다윗 사랑은 곧 우리 구주 예수님의 제자 사랑, 동생 사랑의 예표들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저주 아래 살다가 사망에 떨어지고 영원한 불못에 던져질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살리려고 자기 몸을 불살라 십자가에 던져 희생하신 사랑을 친히 행하셨으니, 그의 희생적 사랑은 동생들을 살리고자 자기를 내던진 맏형, 맏오빠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살아가면서 우리가 때로 형제간의 사랑이 부족하고 서로 상처를 받아 고독하게 느낄 지 모르나 우리에게는 가장 자상하고 친절하고 동생들인 우리를 위하여 자기 생명까지 내어주기까지 우리의 큰 형님, 맏오빠가 계셔서 항상 우리를 지금도 아끼고 위하여 모든 위험을 맞서 막아주시는 분이 계심을 기억하고 힘을 냅시다. 용기를 냅시다. 무슨 일이 있을 때에 우리의 맏오빠, 맏형이 되신 주님께 아뢰고 도와주시기를 청합시다. 잠언에 이르기를, “형제는 위급할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고 말씀하였으니, 이 말씀대로 위급할 때 주님은 우리를 결코 그냥 모른 체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그에게 사정을 아뢰고 도움을 구하십시오. 반드시 주님은 그 능력의 손길로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를 도와 우리를 건져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