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6월 안보리 의장국·한국, 유엔 외교 기회다 / 5/28(화) / 중앙일보 일본어판
대한민국이 1996년, 2013년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에 선출돼 올해 1월 활동을 시작한 지 5개월이 지났다. 6월에는 안보리 의장국 역할을 한 달간 수행한다. 이 귀중한 기회에 막중한 역할을 담당하는 만큼 그 의미를 깊이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다. 최근 유엔의 권능과 작동에 회의적인 의견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안보리 이사국이 돼 의장국으로 활동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냉소하거나 의문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엔 무용론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더 자주 불거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심화되면서 국제사회의 분열과 진영 대립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유엔 안보리가 국제안보 문제에 공동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이 현저히 약화됐기 때문이다.
유엔 헌장에 따라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등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은 집단 안전보장체제 관리 책임이 있다.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당사자로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서방과 맞서면서 강대국 합의를 전제로 작동해온 유엔 안보리의 안보 대응이 근본적인 한계에 직면했다.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이 임기 연장에 실패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몇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유엔은 여전히 유용한 기구다. 개별 국가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국제정치의 속성 때문에 국가 주권의 범위를 넘어서는 기후변화 등 인류 공동의 과제에 대한 대응은 어려울 수 있다. 세계국가(World State) 같은 조직이 출현하면 초국가적 과제에 더 쉽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겠지만 가까운 장래에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유엔 같은 국제기구를 통해 국가 간 협력을 도모하고 기업과 비정부기구(NGO) 등 다양한 행위자의 참여를 촉진하는 것이 차선책이다. 그동안 유엔은 평화유지활동(PKO)을 창설해 운영하는 등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점차 활동의 적정성을 높여왔다. 앞으로도 그런 창의적 적응을 더욱 촉진해야 한다.
한국은 안보리 이사국이자 의장국으로서 유엔의 역할 활성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동시에 우리의 국익을 증진하는 데 유엔 외교를 지혜롭게 활용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국력은 세계 10위권으로 비약적으로 높아졌고, 정부는 강해진 국력을 기반으로 글로벌 중추국가 외교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국력의 수준이 글로벌 외교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에 반영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당장 북한의 위협 때문에 우리 외교는 한반도 문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한미동맹을 제외하면 한국은 여타 국가그룹에 속하지 않는다는 한계도 작용한다. 유엔 안보리에서 일정한 지위를 확보하면 이런 한계를 넘어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사활적 중요성을 지닌 한반도 안보 문제에 대처하는 데도 한국이 주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크게 확대할 것이다.
지금의 세계 정세는 지역별, 사안별로 상호 연결성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즉 군사·경제 및 과학기술 등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안보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최근 블링켄 미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해 중국의 대러시아 경제 지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 장면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유럽 정세가 인도태평양 지역 정세와 긴밀히 연결돼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를 향한 서방과 반서방 진영의 경쟁이 가열되면서 자유주의와 권위주의의 가치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를 놓고 지정학적 군사 경쟁은 물론 시장 및 자원 확보와 관련한 경제 안보 차원의 경쟁도 치열하다.
이처럼 복잡성이 높아지는 세계 질서 속에서 유엔 외교는 한국 외교의 시야를 넓히고 종합적인 글로벌 외교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인류 보편의 문제 해결에 힘쓰는 것은 물론 한국 외교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국익 증진을 도모한다는 차원에서 유엔 안보리에서의 활동이 성공하기를 기대한다. 국민도 관심을 갖고 응원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