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이 어디 있지? [2]
아빠는 엄마를 위로한답시고 이건 지극히 정상적인 성장단계라고, 10대들 대부분이 겪고 지나가는 일이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결같이 학교생활을 잘해온 내가 왜 하필 딱 대학에 진학할 시기에 이렇게 됐으니 말이다. 여태껏 부모님에게 넘치도록 받기만 하던 내가 이제 자기연민이라는 늪에 푹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엄마는 더 세게 나갔다. 이제 무슨 오벨리스크처럼 우뚝 서서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죄다 감시하고 참견했다.
내 몸무게가 어떻고, 아이라이너 두께가 어떻고,내가 궤도에서 벗어난 것 같다는 둥, 엄마가 날 위해 QVC에서 주문한 토너와 필링크림을 왜 꾸준히 안바르느냐는 둥 온갖 잔소리를 하며 내 신경을 긁어댔다. 내가 입는 건 죄다 언쟁거리였다. 방문을 닫고 있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방과후 친구들은 같이 놀다 자고 오려고 서로의 집으로 향할 때, 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 각종 과외 수업을 받으러 갔다가 꼼짝없이 외딴 숲속에 갇혔다. 그리고 방문을 열어놓은 내 방에서 혼자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친구 니콜의 아파트에서 자고 올수 있었다. 그곳은 엄마의 고압적인 통제에서 벗어나 유일하게 한숨 돌릴 수 있는 곳이었다. 니콜은 엄마와의 관계가 나와는 정반대였다. 니콜의 엄마 콜레트 아주머니는 니콜에게 무엇이든 스스로 결정할 자유를 주었고, 두 사람은 같이 시간 보내기를 진심으로 즐기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의 침실 두 개 짜리 아파트는 밝고 선명한 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중고 가게에서 산 멋진 빈티지 가구와 옷이 가득 했다. 현관문 옆에는 콜레트 아주머니가 10대 때 캘리포니아에서 탔던 서프보드가, 창가에는 아주머니가 1년간 칠레에서 영어를 가르쳤을 때 사 모은 기념품이 수두룩이 쌓여 있었다. 거실에는 그네 의자가 달려 있었고, 쇠사슬로 된 그넷줄을 따라 플라스틱 조화가 엮여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이 모녀지간이라기보다 친구처럼 보이는 것에 탄복했고, 수시로 포트랜드로 알뜰 여행을 다니는 것도 몹시 부러웠다. 모녀가 함께 과자 굽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면 그렇게 이상적으로 보일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콜레트 아주머니의 이탈리아인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묵직한 쇠틀로, 직접 만든 반죽을 꾹 찍어 눌러 피젤 과자를 만들었다.
언젠가 열고 싶어하는 카페를 꿈꾸면서 모녀는 수십 가지 복잡한 문양을 섬세하게 살려, 먹을 수도 있는 도일리 [복잡한무늬가 들어간, 접시나 컵 받침용 레이스] 로 바꾸어 놓았다. 아주머니의 꿈이 실현 된다면 두 사람은 틀림없이 자기들집처럼 독특하고 멋지게 꾸민 가게에서 과자와 빵을 팔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콜레트 아주머니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니 엄마의 꿈이 궁금해졌다. 아무 목적도 없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엄마가 갈수록 이상해 보이고 미심쩍고 심지어 반페미니스트로까지 보였다.
그때 나는 엄마 인생의 주축이던, 나를 돌보는 일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했으면서 그저 엄마를 매도하기에 바빴다. 그 보이지 않는 고된 노동을, 자신만의 열정에 헌신하지도 않고 실용적인 기술 개발도 소홀히 한 전업주부가 남 뒷바라지나 하는 것이라고 폄하했다. 가정을 이룬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내가 그 속에서 받은 보살핌을 그동안 얼마나 당연하게 여겼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한 때는 집을 떠나 대학에 가고 몇 년이 자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