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다
피어 있다
꽃이 뒤집힌 가슴
어디쯤
피 한 방울
떨어진다
어둠을 적셔가며
내 뒤쪽 가까운 곳에서
피어나는 붉은 빛
피고
지고 또 피고
붉은 그늘에 뜬 눈
네 흐린 얼굴
달빛에 비추이는
이곳과
저곳의 거리
더 멀어져 가는 봄
이주민들
사소한 기척에도
대문은 귀 기울이고
떠나려 준비 중인 바람과 구름 그림자
우리는 서로의 반대편을
오랫동안 살았다
꿈들도 이곳에 이르면
그저 이주민일 뿐
서로 막다른 길을 바꾸지 못한다
나무들 제자리에 선 채
이주민이 되었다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키가 큰 나무 몇이
강물 속에 머리를 적신다
강줄기 흔들리고
쏟아지는 투명한 생각들
수심이
가장 깊은 곳에
질문들을 던져본다
강물은 왜 이다지
맥박이 빠른가
강변의 벤치에는 왜
지친 발들만 내려앉는가
누군가
첨벙거리며
가을을 건너간다
猫,한 울음
고양이를 이해하려면 고양이를 통과해야지
그 너머 야생의 기억으로 들어가야지 밤마다 골목이
찢어지는 울음 울어봐야지 고양이는 고양이 속에 있다
고양이는 고양이들의 안개 속에 있다 그 자체가 울음인
고양이들 울음 위에 덧입혀진 울음인 고양이들
길에서 울음을 빼면 그 무엇도 남지 않는
- 시집 『투명한 바리케이드』 여우난골 ,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