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야기-60년, 그 우정의 세월, 오월의 노래
‘푸른 꿈이 솟아오르는 아름다운 계절, 하늘에는 뭉게구름 떠있고, 희망의 노래를 부른다.’
강국아!
시인 공한수의 시에 작곡가 이안삼이 곡을 붙인 우리가곡 ‘오월의 노래’ 그 노랫말의 한 대목이다.
내 문득 그 노래가 떠올랐다.
어제 네 모습에서 내 딱 느낀 분위기가 그랬다.
“좀 보고 싶다.”
내 그 말에 100리길 김포 딸네집에서 서울 사당동까지 득달같이 달려와 준 그 발걸음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리고 환한 웃음에 싱싱한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네 모습을 보면서, 나는 초록빛 오월의 그 싱그러움을 느꼈다.
나만 고마워한 것이 아니다.
아내도 고마워했고, 아내와 늘 함께 하는 김옥련 여사도 고마워했고, 강국이 네게는 초등학교 후배가 되는 신영희 박종팔 그 둘도 고마워했다.
그렇게 강국이 너는 우리 모두를 기쁘게 했다.
덕분에 정말 행복한 우리들 만남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국아!
또 하는 고마운 것이 있다.
“창현이도 좀 부르지 그랬어.”
그렇게 한 친구를 특별히 지목해서 찾아준 것이 그랬다.
그 따뜻한 우정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러잖아도 내 창현이 그 친구를 생각했었다.
그러나 저녁나절이 되어 갑작스레 번개팅 모임을 하게 된 것으로 부천에 사는 그 친구를 초대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너무나 촉박했었다.
강국이 너의 경우에도, 네가 그 저녁시간에 지금 사는 상도동 집에 있는 줄 알고 전화를 해본 것이지, 그렇게 김포 그 멀리에 있는 줄 알았으면 아예 초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먼 거리를 생각해서,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강국이 너는 부득부득 우겨서 달려온 것이었다.
강국아!
그 우김은 내게 있어서는 뿌듯한 감동이었다.
다들 한 목소리같이 이렇게 나를 부추겼기 때문이다.
“참 좋은 친구 두셨어요. 갑작스레 연락을 하는데도 달려와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세상을 잘 살았다는 증거지요.”
강국아!
내 솔직히 고백해서, 비록 중학교 동기동창이기는 하지만, 내 너와는 친구로 오래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너는 알지 못하는 일이지만, 나로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하나 있다.
내 나이 열아홉으로 군입대하기 직전의 추억이다.
그때 나는 쫄딱 망한 집안 사정으로 그렇게도 꿈꾸던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하고 우리 고향땅인 문경 점촌에서 트럭 조수로 연명하고 있을 때였다.
강국이 너를 비롯해서 동기동창 대다수가 대학교 진학을 해서 청운의 푸른 꿈을 꾸고 있을 때, 나는 그렇게 막장 인생을 살고 있었으니, 남 보기가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우리 트럭이 내가 다닌 점촌국민학교 앞길의 언덕 위에서 내리막길을 달려 읍내로 들어가고 있는데, 그 앞길에 반짝거리는 풍경이 언뜻 눈에 비춰들었다.
단박에 그 풍경의 실체를 알아차렸다.
콤비 양복을 입은 어느 남성의 뒷모습이었다.
밤색 바지에 남색의 실크 저고리로, 우리 차 헤드라이트 불빛에 비춰서 유난히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 뒷모습만 보고도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양복을 입어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콤비 양복은 생전 처음으로 느껴지는 멋스러움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차가 앞서 가면서 그 양복을 입은 주인공이 누군가 살폈다.
놀라운 얼굴이 내 시선에 잡혀 들었다.
바로 강국이 너였다.
‘야! 강국아!’
사실 그렇게 불러봐야 했었다.
서울로 대학진학을 했다는 소식만 풍문으로 들었을 뿐, 중학교 졸업 이후에는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너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부르지를 못했다.
아니, 아예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내 신세가 너무나 초라해 보여서 그랬다.
바로 그 순간, 내 이제 살아생전에는 너와 더 이상 만날 일 없고, 친구 될 일 없겠다 싶었다.
내 인생 좌절의 순간이었다.
강국아!
물론 너는 내 그 당시의 그와 같은 처지를 알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네 탓할 일은 없다.
오로지 내 마음가짐일 뿐이다.
그런데 그때의 그 스쳐 지나가버린 그 만남은, 나로 하여금 오기를 품게 했고, 악을 쓰게 했고, 오뚝이처럼 발딱발딱 일어나는 인생을 살게 했다.
그렇게 살아, 늘 행복하다 하는 삶을 사는 오늘의 내 인생이다.
그게 그 이후 반세기 세월의 결과다.
강국아!
그 세월에, 강국이 너는 변함이 없었다.
우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나로서는 너와 친구 하기는 어렵겠다했는데, 강국이 너는 그러지를 않았다.
어쩌다 만나면, 나를 참으로 살갑게 대해줬고, 격의 없이 툭 튼 대화로 나를 편하게 해줬다.
혹 오해할 일이 있어도, 오해를 하지 않았고, 그냥 덮어주거나 도리어 나를 위로해주고는 했었다.
모질게 따져들지 않았다.
그 넉넉한 마음씀씀이가 너무나 고맙다.
강국아!
내 이젠 오늘 이 편지의 본론을 말한다.
부탁할 일이 하나 있다.
어쩌면 내 살아생전 마지막 부탁일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이 자체가 일흔 중반을 넘어서서 오늘 내일의 삶을 쉽게 장담하지 못하는데다가, 최근 들어 우리 친구들 몇몇이 예고도 없이 저 세상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가버렸기 때문이다.
다름이 아니라, 오는 2023년 5월 27일 토요일에, 우리 같이 다닌 문경중학교 13회가 한 갑자 세월을 맞는 그 기념으로 모교 교정에서 만남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 자리에 강국이 네가 와줬으면 하는 것이다.
이번 행사는 내가 낸 의견이 아니다.
서울에서 치과를 하는 김명래 친구가 지난번 한식 때 고향땅을 방문해서 고향 친구들 두루 점심을 같이 한 적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 그 친구가 그 의견을 냈고, 함께 자리를 한 우리 모두가 동의를 해서 결정된 것이다.
졸업 60년을 기념하는 행사인데, 고향땅 지킴이 같은 친구들만 그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냔 말이다.
온나.
와서 같이 놀자.
깨복쟁이 친구들 놀던 그 어린 시절처럼 말이다.
그렇게 모여, 우리 ‘오월의 노래’ 한 번 외쳐 부르자.
어떻노?
좋제?
강국아!
첫댓글 순정영화 한 장면이 후딱 지나간 느낌이네.
불러줬어도 못 갔을 같은데.
내가 여기에 나오네
감사히게 생각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