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X 파산 후폭풍… 각국 가상화폐 시장규제 본격화
美연준 부의장 “소비자 보호 필요”
日銀 총재 “G7 권고대로 규제 속도”
韓 ‘예치금, 별도 예탁기관 보관’ 논의
세계 1위 거래소 바이낸스 “시장 재건”
글로벌 가상화폐 거래소 FTX의 파산 후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세계 각국이 가상화폐 시장 규제에 나서고 있다. 기존 금융시스템에 반기를 들고 ‘투명성’과 ‘분산화’를 내세우며 만들어진 가상화폐 시장이 비도덕적 거래가 판치는 투기장이 됐다며 업계 리더들도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 각국 가상화폐 ‘규제’ 한목소리
레이얼 브레이너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부의장은 14일(현지 시간)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개인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는 것은 정말 우려스러운 일”이라며 “가상화폐 기업들은 기존 금융과 다르다더니 마찬가지로 고도로 집중돼 있고, 상호 연결돼 있으며, 도미노 효과가 크다. 한 플랫폼의 실패가 다른 곳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기존 금융 체계에 대한 규제처럼 레버리지, 유동성, 소비자자산 보호 부문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FTX가 11일 미 델라웨어 법원에 낸 파산 신청서에 따르면 FTX의 부채 규모는 최대 500억 달러(약 66조 원)로 추산된다. 각국 소비자 피해의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다.
주요국 금융당국은 가상화폐 시장 규제의 글로벌 표준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기자들과 만나 “주요 7개국(G7) 권고사항에 따라 가상화폐 규제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밝혔다. 올해 5월 G7 재무장관들은 역시 가상화폐 사기로 소비자 피해가 컸던 ‘루나 사태’ 이후 각국의 일관된 규제 필요성에 대한 성명서를 낸 바 있다.
한국에서도 FTX 사태를 계기로 가상자산 거래소에 맡겨진 투자자 자산을 보호하는 문제가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14일 국회에서 열린 민·당·정 간담회에서는 가상자산 거래소가 투자자 예치금을 별도 예탁기관에 의무 보관하도록 하는 방안 등이 논의됐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간담회에서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해 투자자 자산 보호 의무를 부과하고 불공정 거래를 규제할 장치를 우선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재 국회에는 가상자산 사업자 인가 및 내부 통제, 불공정거래 금지 등에 관한 10여 개의 법안이 발의돼 있다.
또 금융감독원은 가상자산에 대한 회계감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했다. 가상자산 발행이나 매각, 보유와 관련한 회계 처리 내용과 가상자산 사업자 정보에 대한 주석 공시를 신설해 의무화할 방침이다.
○ 루비니 “가상화폐 붕괴 직전” 비판
가상화폐 거래소 경영진도 규제 및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세계 2위 가상화폐 거래소이자 미 상장 기업인 ‘코인베이스’의 브라이언 암스트롱 최고경영자(CEO)는 CNBC 기고문에서 “미국의 규제 미비로 코인 거래의 95%가 미국 밖에서 이뤄지고 있다. 미국 소비자를 보호할 길이 없다”고 우려했다. 세계 1위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의 자오창펑 창업자는 트위터를 통해 “FTX 파산이 아니었다면 유동성 위기를 겪지 않아도 될 기업을 위해 ‘산업회복 펀드’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건실한 기업을 지원해 시장 재건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가상화폐 시장 자체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경기 침체 예고로 유명한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트위터에 “자오 창업자가 FTX 창업자보다 더 수상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상화폐 거래소들은 투자금을 위험 자산과 섞고 불투명하게 운영해 전형적인 ‘뱅크런의 어머니’ 모습”이라며 “결국 모두 붕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김도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