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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6일(금)
* 시작 기도
(마 6:32-33)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주님...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데 어찌하여 나는 그러한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 목을 매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나의 실존임을 고백합니다.
진짜 하나님의 자녀라면 영원한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할 것인데 그 나라와 그 의는 먼 별나라 이야기로만 취급하고 있으니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사 은혜를 더하여 주소서.
오늘 하루도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이 하루도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 주님께로 나아가오니 날 받아주소서.
어제부터 일본 이세사키교회에서 복음생명세미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역과 통역으로 수고하는 이들과 복음을 듣는 일본 성도들이 영으로 생명을 알고 누릴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우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나훔 1:9-15
제목 : 그들(앗수르, 사망)이 비록 강하고 많을지라도 반드시 멸절을 당하리니 그가 없어지리라.
9 너희는 여호와께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그가 온전히 멸하시리니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10 가시덤불 같이 엉크러졌고 술을 마신 것 같이 취한 그들은 마른 지푸라기 같이 모두 탈 것이거늘
11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너희 중에서 나와서 사악한 것을 권하는도다.
1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비록 강하고 많을지라도 반드시 멸절을 당하리니 그가 없어지리라. 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혔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히지 아니할 것이라.
13 이제 네게 지운 그의 멍에를 내가 깨뜨리고 네 결박을 끊으리라.
14 나 여호와가 네게 대하여 명령하였나니 네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않을 것이라. 내가 네 신들의 집에서 새긴 우상과 부은 우상을 멸절하며 네 무덤을 준비하리니 이는 네가 쓸모 없게 되었음이라.
15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하시니라.
* 나의 묵상
하나님께서 한 번 노를 발하시면 누가 능히 그 노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는데 누가 그 쏟아지는 불을 피할 수 있을까?
그 불로 인하여 바위가 깨지고 땅이 갈라지는데 누가 과연 그 재앙을 피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런 환난 중에도 주의 품으로 피하는 자가 복 있는 자이다.
주님은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에 주의 품을 연모하며 그곳을 피난처로 삼고 피하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주를 아는 자가 주의 품,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는 자이며 또한 주께서도 그를 아신다.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한 자들을 위하여 그의 원수들을 홍수로 진멸하시고 그의 대적들을 흑암속으로 쫓아내신다.
앗수르야 너희가 주를 향하여 무슨 꼼수를 쓰고 있느냐?
니느웨야 너희가 주를 대적하여 무슨 일을 벌이려고 꾀를 부리느냐?
그런 헛된 일은 아무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주께서 그 모든 일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실 것인즉 너희가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얼기설기 엮어져서 어지러운 가시덤불 같고, 술 취하여 비틀거리는 자처럼 살짝만 밀어도 넘어지는 자들과 같을 것이며 그러다가 불에 타 없어지는 초개와 같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주의 뜻을 거스르고 대적하는 자가 니느웨에서 나와서 악한 계획을 꾸민다 할지라도 그들은 반드시 진멸 당할 것이다.
내가 유다를 심판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너에게 지운 멍에를 내가 꺾을 것이며 그 결박을 끊을 것이다.
주께서 앗수르를 향하여 명하시기를 이제 다시는 천하에 네 이름이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그들이 신전에서 새긴 우상을 주께서 심판하여 그 무덤으로 만들 것인즉 이제 더 이상 그 우상이 쓸모없게 될 것이다.
유다 백성들아 잘 보아라.
복음을 전하고 평화를 전하는 자가 산 위에 서 있다.
그러니까 이제 너는 절기를 잘 지키고 네가 한 서원을 잘 갚아라.
너의 대적이 다 진멸되었으므로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이 너희 가운데로 지나지도 못하며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선지자 요나가 니느웨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는 그들의 심판이 아니라 회개를 촉구하는 복음이었다.
그들은 요나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왕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신하와 심지어 짐승들까지 조복을 입고 금식하며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교만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졌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지도 못하며 그들이 만든 우상을 섬기면서 주변의 크고 작은 나라들을 다 집어삼키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요나 선지자 때 행했던 그 회개는 온 데 간 데 없어져 버리고 오직 교만과 악만 남았을 뿐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나훔 선지자를 통하여 그들을 심판하실 것에 대해서 최후통첩을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최후 심판은 더 이상 긍휼이 없는 완전한 심판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앗수르는 영적으로 어둠의 세력 곧 사탄을 상징한다.
앗수르가 심판 받아 진멸 당하는 것은 곧 마지막 때 이루어질 종말적 심판을 예표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때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라고 주님은 천명하신다.
(고전 15: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종말적 심판을 예표하는 앗수르에 대한 심판은 가차 없이 진행되는 심판이요 긍휼이 없는 심판이며 그것은 곧 완전한 진멸이다.
(6)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
(8)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10) 가시덤불 같이 엉크러졌고 술을 마신 것 같이 취한 그들은 마른 지푸라기 같이 모두 탈 것이거늘
나는 시골 출신이라서 봄에 보리를 추수하여 그것을 탈곡하는 장면을 많이 보았다.
보리를 추수하면 알곡은 자루에 담고 보릿대는 한쪽에 모아두었다가 불에 태워서 논에 거름으로 사용한다.
그런데 불에 보릿대가 타는 모습은 가히 지옥을 연상케 한다.
보릿대가 불에 타는 소리가 얼마나 요란한지 타닥 타닥 하는 소리가 지옥을 방불케 하는 것이다.
게다가 보릿대 검불이 날아가다가 불에 닿으면 순간적으로 소리도 없이 솨악~ 하고 사라져버린다.
그것을 보면서 지옥이 바로 이런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였다.
더 이상 아무런 기대도 소망도 없는 그 곳이 바로 종말에 임할 심판의 자리요 또한 지옥이다.
그 자리에서 후회한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땅에서는 호화롭고 럭셔리하게 연락을 즐기며 살던 부자가 지옥에 갔을 때 그는 물 한 모금 마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그의 품에 안겨 있는 나사로를 시켜서 그의 손가락에 물을 조금 찍어가지고 자기의 혀에 좀 떨어뜨려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저곳으로 갈 수도 없는 곳이 바로 천국과 지옥이다.
후회도 이미 늦었고 더 이상 회개도 할 수 없는 자리가 종말의 심판이다.
그렇다면 아직 내 목숨이 붙어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회개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내일 내일 하다가 그 기회를 놓칠 수 있다.
긍휼 없는 심판이 오기 전에 주의 인자와 긍휼하심을 덧입어야 할 것이다.
주의 인자와 긍휼은 오직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그렇게 주의 보혈로 정결케 된 자는 이제 주님과 깊은 교제 속으로 들어가 주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 자는 긍휼이 없는 최후의 심판 때에 주께서 그를 아시기에 결단코 그 심판에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심판이 그를 하나님의 자녀됨을 구별해주는 확실한 계기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그렇기에 진노를 오래 참으신다.
그러나 마지막 최후의 심판은 반드시 온다.
앗수르를 완전히 심판하신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께서 참아주시는 그 때를 우리는 선용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할 것은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아무리 하늘에서 비가 내려도 장독 뚜껑을 닫아놓으면 비 한 방울 받을 수 없다.
이처럼 성령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은혜의 단비를 부어주셔도 내 마음의 문을 닫으면 그 은혜는 내 것이 될 수가 없다.
성령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에 강압적으로 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신다.
내가 그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이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문을 열고 주님의 품속에 들어가서 나는 주님을 먹고 주님은 나를 먹는다.
주님이 나의 양식이며 내가 바로 주님의 양식이다.
이것이 교제요 사귐이다.
이런 교제와 사귐을 통하여 서로를 아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영생이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일 5:11-12)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복음을 통해서다.
(딤후 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오직 복음을 통해서만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 곧 영원한 생명이요 아들의 생명인 영생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복음 그 자체이신 주님께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발이 되어 산 위에 서 계신다.
(15)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여인의 후손으로 오신 존재로써의 복음이요, 또한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시며 새 생명으로 부활하신 주님의 구속 사건이 곧 메시야적 행위로써의 복음이다.
주님께서는 이 복음을 전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다.
그런데 나는 주님의 이런 뜻을 오해하는 자였다.
주님이 오신 것은 오직 영생을 주시기 위함인데 나는 예수를 믿음으로 이 땅에서 잘 되게 해주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이 땅은 만물 안에 속하여 항상성이 없다.
이 땅은 언제나 쇠락의 법칙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 나라요 영생을 잘 몰랐기 때문에 영생은 죽어서 가는 천국으로만 생각했을 뿐 이 땅에서 누리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이 땅에서 예수 믿고 잘 되는 것, 사업에 성공하는 것 풍요와 안락 그리고 윤택하게 사는 것 곧 3A가 인생의 목표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목표를 가지고 아무리 노력을 하고 또한 부르짖으면서 기도를 할지라도, 그 목표가 이루어질 때도 있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훨씬 많았다.
그러다가 기도해도 안 되는구나 하면서 겉으로는 기도를 하지만 이것도 안 되겠지 뭐! 하는 식으로 안 될 것을 믿는 그런 이상한 기도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이것이 당연한 것은 이 땅은 항상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생에 있기 때문에 그 영생을 알고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땅의 것을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이다.
때로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므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보여주시고 그것으로 믿음이 더욱 자라나도록 하신다.
그러나 신앙은 우리의 공식대로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고난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고 그 결과 고난이라는 심판을 통해서 진짜 주님의 뜻인 영생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나는 결국 이 심판을 통해서 주님의 뜻을 알게 되었고 복음을 듣고 날마다 생명의 삶을 사는 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어떠한 환난 속에서도 내가 거할 곳은 오직 주의 품속이다.
그곳만이 가장 안전하다.
오늘도 주님의 품속,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거하여 쉐키나의 영광을 본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영생을 누리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정말 쉽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이는 내가 죄인 중에 괴수요 죽기에만 합당한 자라는 것을 아는 것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나를 주께서 대신 십자가에 죽기까지 인자와 긍휼로 구원해주셨다는 이 복음이 주의 품속으로 나를 이끌기 때문입니다.
앗수르와 같은 하늘을 찌르는 교만과 죄악, 나는 아무 것도 아닌데 그것을 모르고 주님을 대적하고 거스르며 살았던 지난 나의 모든 죄악을 주님께 토설하며 십자가 앞에 내려놓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인자와 긍휼을 구하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아직 내 목숨이 붙어 있다는 것이 은혜인 것은 아직 회개의 기회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 그 기회를 자꾸만 내일로 미루지 않고 죄를 깨달을 때마다 주께 토설하여 주의 보혈로 씻게 하소서.
무엇보다 보혈자판기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죄의 세력을 무력화하여 넉넉히 죄를 이기는 자로 서게 하소서.
오늘도 내가 거할 처소는 오직 아버지 품이오니 복음을 통하여 그곳으로 나아가는 나를 받아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