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pheid2 (2006-07-27 09:42 작성, 2006-07-27 14:30 수정)펌
저는 개신교 지난해까지 16년이나 다녔습니다. 저두 이탈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믿는 종교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어디 저한사람뿐이겠습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왜 이탈했느냐와 각기 얼마나 이탈하느냐지요.
한국개신교는 예수님라이센스를 받은양 진짜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믿기때문에 구원된다고 합니다. 우리사회의 부정적인 종교뉴스의 8,90%는 개신교목회자나 맹신도들의 행태입니다. 아픈자식 병원안데리고 가고 안수니 뭐니 하다가 병키우거나 방치, 각종성추행목회자들, 교회세습, 교회주도권다툼, 이단다툼등으로 한교회가 두쪽되는 일,사찰무너지러고 기도하는 일, 타국에서 재난일어나도 예수님 안믿어서 벌준것이라는 등등...사랑의 실천이라고는 찾기 힘듭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며 구약은 율법이라면 신약은 사랑입니다. 누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지 거짓믿음이 어떤것인지...개신교는 가르침대로 사는것에는 관심없고 사람의 죄는 50보 백보라고 폄하해서 사회적으로 무책임한 종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분들자신이 어떻게 믿느냐는 종교의 자유입니다만 사회적으로 가장 공신력을 상실해 비종교인들로 부터 가장 비호감종교로 인식되어버렸고 신자이탈율이 가장 높은 점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모든 국민은 잘압니다.
세계적으로도 개신교는 소수종파이며 유럽개신교는 몰락했고 전세계 서로 이단이라고하는 수많은 종파를 합해도 가톨릭의 1/3도 안도고 그나마 서로 싸움질하고 있다는 걸 압니다. 주님나라확장을 하지도 못하고 이단싸움하기 바쁘며 선교가 최우선이라고는 하지만 사회윤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 교리때문에 비효율적이며 성도이탈조차 막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그리고 저는 개신교나 천주교나 사도신경을 같이 고백하는 형제들이라는 점은 인정합니다. 다만 신자들의 행태는 너무 다르다는 걸 느낍니다. 천주교는 타인을 존중합니다. 그들의 선행에 있어서도 주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있는 데 저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선행하는 것에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더욱더 착하게 살면서 예수님 사랑을 실천할려고 자극을 받습니다만 개신교인은 폄하하면서 마귀의 계략이라면서 정작 자신은 사랑의 실천에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왜냐면 믿기때문에 구원이 되어있으니까.. 그러니까 개인적으론보면 참 편리한 신앙이지만 교인확대를 통한 주님세계확장에는 지금 이시점에는 역효과만 낳고 있다고보시면 됩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많은 분들도 있고 존경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훌륭한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만 단 그렇지 않은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의 비율이 타종교에 비해 너무 높다고 16년동안의 경험으로 단언컨데 말할수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보다는 보다 객관적이며 개신교 지도자나 신학자들의 글들을 아래에 옮겨놓았으니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한국 기독교인 1300만이 아닌 862만 >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발표…기독교는 15만 줄고, 가톨릭은 300만 늘어
2005년 11월 현재 종교인은 2497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3.1%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25일 발표한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인구부문 전수집계결과'에 따르면, 이 중 기독교 인구는 전체 861만 6000명(18.3%)으로, 불교(1072만 6000명, 22.8%)에 뒤를 이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그동안 일부 보수교계가 한국 기독교 인구를 1300만 명이라고 밝힌 것과는 큰 차이가 난다. 한편 직전 조사(1995년 11월) 때의 결과(876만 명, 19.7%)보다 15만 명 가까이 떨어진 것으로 집계돼 기독교 교세가 하락세로 접어들었음을 드러냈다.
한편 가톨릭은 514만 6000명(10.9%)으로 나타났고, 뒤이어 원불교 13만 명(0.3%), 유교 10만 5000명(0.2%) 순으로 조사됐다.
성별 종교인구를 살펴보면, 여성이 56.4%로 남성(49.7%)보다 많았다. 연령별로는 여성은 60~70대, 남성은 50~60대 계층이 가장 많이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톨릭의 수직성장 "눈에 띄네"
이번 통계 결과, 눈길을 끄는 부분은 가톨릭 신자 수이다. 기독교가 하향세인 반면, 가톨릭은 지난 10년동안 놀라울 정도의 성장을 이룬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11월 1일 현재 천주교 인구는 514만 여 명. 10년 전인 1995년보다 295만여 명이 늘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전체 인구에서 천주교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도 10.9%로 조사돼, 10년전의 6.6%에 비해 4.3%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렇게 되면 기독교와는 불과 8% 격차이며, 신도수로 봤을 때에도 350여만 명 차이이다. 이에 따라 기독교 신자수가 줄어든 배경에 가톨릭의 성장이 여파를 미쳤는지 따져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06. 5. 25. 뉴스앤조이 / 김용민 기자)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
최근 정부 통계청이 발표한 종교현황을 보면 불교가 1,072만 6천 명으로 전체 인구 비중의 22.8%를 차지하고 있고 다음으로 개신교가 861만 6천 명으로 18.3%, 천주교는 514만 6천명으로 10.9%, 원불교는 13만 명으로 0.3%, 유교는 10만 5천 명으로 0.2%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개신교 인구의 비중은 줄어든 반면, 불교와 천주교 신자는 크게 증가한 것으로 밝혀져 개신교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 주고 있다. 이번 조사를 보면 개신교는 지난 1995년 11월 876만 6천 명보다 오히려 14만 4천명이 줄어든 반면 불교는 10년 전 1032만 명보다 약 40만 명 늘었고 천주교는 10년 전 295만1천 명보다 무려 219만 명이나 증가했다.
이처럼 개신교가 이단시 하고 있는 천주교의 비약적인 성장은 ‘놀람’ 그 자체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또한 불교도 적지 않은 성장세를 보인 반면 오직 개신교만이 성장보다 오히려 줄어든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위기에 대한 경고로 보여진다. 개신교는 한국 최대 종교로 자부하면서 성도 1천만 시대를 넘어 1,200만을 외치던 것이 바로 어제 일이 아니던가. 그러던 자부심이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 것은 순전히 자만에 빠진 결과이며 특히 숫자에 대한 허구를 믿고 복음전도를 등한시 하고 현재에 안주하여 편안한 신앙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또한 정확한 성도 숫자를 파악하기보다 교단마다 성도 수를 부풀려 교세를 내세우려는 교만함이 드러난 셈이다.
이 통계 자료가 보여 주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한국교회 허구성이다. 반면 성도가 무려 219만 명이나 증가한 천주교 경우, 사회봉사에 대한 많은 투자로 깨끗한 이미지를 보여 줌으로써 신앙의 순수성과 경건함을 유지하여 교회와 성직자에 대한 신뢰를 높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신교는 끊이질 않는 목회자 지도자들의 부패한 모습과 교회의 물질적인 추구, 성적타락은 물론 세속적인 삶이 교회의 불신을 불러왔고 성도들의 이중적인 삶의 모습이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 주지 않았을까. 비리와 부패 사건이 터져 나올 때마다 어느 교회 장로 혹은 집사가 연루되었을까 하는 염려가 앞서는 것도 한국교회의 부패상을 말해 준다. 잇따라 매스컴을 통해 폭로되고 있는 목회자들의 성 스캔들이나 헌금횡령,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행위는 한국교회가 이미 자정 능력을 상실한 한국교회 현실을 입증하고 있다. 결국 우리가 모르는 사이 성도는 타종교로 빠져 나간 셈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대형교회도 텅텅 비게 될 날이 곧 올지 모른다. 교회연합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연합사업에는 협조를 하지 않은 이중성도 교회를 약화시킨 원인 가운데 하나다. 개교회주의를 극복하지 못한 한국교회는 이웃교회를 형제자매의 우애로 생각하기보다 경쟁자로 여기고 비방과 모략, 그리고 중상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이단으로 몰아 도태시켜 버리는 형상이 오늘 한국교회를 위기로 몰고 간 이유일 것이다. 사실 800여만 성도 가운데 이단 교회 성도를 빼면 실질적인 정통 교회 성도는 600만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복음전도는 멈춰있고 목회자들의 잇따른 부도덕한 행위가 성도들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2006. 6. 5. 크리스찬신문 / 사설)
<종교인구 변화에 대한 개신교의 대응 가능성>
천주교는 가지고 있고 개신교는 가지고 있지 못한 것 세 가지
조성돈 교수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지난 5월 26일 ‘인구주택총조사’라고 하는 통계청에서 행한 인구 Census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조사는 매 5년마다 대한민국의 전 주택과 인구를 대상으로 행해지는 조사인지라 상당한 신빙성을 갖고 있다.
이 조사에 의하면, 개신교가 불교, 천주교를 포함한 대한민국 3대종교 중에서 지난 10년간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을 하였다. 2005년 11월 1일을 기준으로 하여 10년 전인 1995년도와 비교해볼 때 개신교는 1995년 876만 명으로 인구구성비에서 19.7%였는데 2005년도에 861만 1000명으로 절대적 인구에서 14만 4000명이 줄어들고 1.6%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이러므로 현재 개신교는 인구구성비에서 18.3%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불교는 인구구성비에서는 23.2%에서 22.8%로 0.5%로 감소하기는 했으나, 절대숫자에 있어서는 1072만 6000명으로 40만 5000명이 증가하였으며, 천주교는 놀랍게도 295만여 명에서 514만여 명으로 219만 5000명이 증가하여 74.4%라는 경이로운 성장을 기록하였다. 이로써 현재 천주교는 10년 전 인구구성비 6.6% 수준에서 10.9%로 급하게 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통계들은 우리들에게 적지 아니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물론 우리 개신교가 지난 몇 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얼마간 적응되어왔기 때문에 개신교의 마이너스 성장에 대한 통계는 그렇게 충격적인 결과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동안 같은 기독교 뿌리에 있는 천주교가 급격하게 성장을 하였다는 사실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우리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 통계수치는 전체 종교인구의 증가이다. 지난 10년간 종교인구구성비는 50.7%에서 53.1%로 절대인구수치로 237만여 명이 증가하였다. 이것은 두 가지로 우리들에게 의미를 던져준다. 첫째는 전체 종교 인구는 늘어나고 있는데 개신교인만 줄어들었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그 증가 숫자의 대부분이 천주교인이었다는 사실이다.
탈세속화이론, 교회 출석은 줄었지만 종교적 성향은 줄지 않아
지난 몇 년간 개신교인의 감소에 대해서 사람들은 몇 가지 막연한 추측을 내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세속화 이론에 근거한 ‘종교이후기’를 주장하는 측이었다. 서구사회에서 교회가 비어가는 모습 속에서 학자들은 그간 현대사회가 종교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를 하였다. 즉 사회가 세속화되었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결과들은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탈세속화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비록 교회에 사람들이 참석하는 비율은 줄어들었지만 그들의 종교적 성향이 줄어든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다. 여기에 더해서 스포츠나 연예활동과 같은 대체종교의 출현이나 명상이나 뉴에이지 같은 신흥종교의 출현은 이러한 이론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통계는 이러한 사람들의 이론이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그간 우리가 추측했던 대한민국 사회가 ‘종교이후기’로 넘어갔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이해임이 이 통계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비록 개신교인이 줄어들었지만 대한민국 사회의 절대적 종교 인구는 적지 아니하게 늘었다는 사실이다. 즉 종교를 찾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있는데, 개신교만이 그들을 받아들이지도 흡수하지도 못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그 증가인구의 대부분이 천주교로 찾아가고 있는데 우리 개신교는 그러한 유인 원인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목회사회학의 관점에서 볼 때 그간 한국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개교회주의라고 하는 한국교회 특유의 교회구조를 통하여 이 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종교적 필요들에 대해 적절히 잘 대응해온 결과라고 본다. 이러한 교회의 노력으로 인해서 개신교회는 한국사회에서 좋은 이미지들을 만들어갈 수 있었고 그러한 영향은 개신교회 특유의 열성과 결합하여 70~80년대 급격한 성장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천주교는 현재 개신교회가 주고 있지 못한 선한 이미지를 이 한국사회에 주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동시에 현대사회에서 개신교회는 그러한 장점들을 만들어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로 찾아가는 이유
물론 관점에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서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본인의 입장에서는 세 가지 정도의 원인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천주교는 종교적 색채를 가지고 있다.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그들의 엄숙한 의례는 오늘날 쉼 없이 바쁘게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멈추어 설 수 있는 존재의 공간으로서 비쳐졌을 것이다. 더구나 결혼도 안하고 엄격한 규율 속에서 살고 있는 성직자들의 모습 속에서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삶과는 다른 종교의 영역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찾고 있는 종교성은 이와 같이 영적가치를 전해줄 수 있는 구별되어진 곳이다. 천주교는 이러한 이미지를 현재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천주교가 가지고 있는 봉사적 이미지이다. 자주 언론에서 언급되어지고 있는 천주교 성직자들의 헌신적인 봉사의 소식들은 천주교가 많은 봉사를 감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소록도에서 평생을 헌신했던 오스트리아 수녀의 이야기라든가 마더 테레사의 전적 헌신의 봉사 이야기는 천주교가 이러한 이미지들을 구축하는 데 큰 목을 담당하였다고 본다.
셋째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의미의 추구이다. 조용한 장소로서의 천주교회와 그 의례는 오늘날 삶의 의미와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무언가 사색이 가능한 곳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곳에 가면 쉼이 있고 의미가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미지는 여가화 사회에 들어선 현대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삶의 성찰과 존재 의미의 추구 가능성은 그 무엇보다도 큰 선택요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위의 이 세 가지 요소들은 어쩌면 개신교회와 비교한 특징일 수 있다. 우리가 가지지 못한 그들의 장점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최근에 이르러서 적지 아니한 교회들이 이러한 반성에서부터 이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나타난 영성에 대한 관심이나 사회복지관 등을 통한 봉사체제의 구축, 그리고 다양한 성인교육 프로그램들이 그러한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교회 특유의 구조적 유연성은 이제 이러한 현대사회의 요구들에 민첩하게 반응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 것으로 보인다. 바라는 것은 한국교회가 더 늦기 전에 이러한 방향으로 선회되는 것이며, 또 이러한 일들이 사회적으로 선한 이미지를 구축해서 전도의 문을 열어가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2006. 6. 1. 뉴스앤조이)
<2006년 통계청 숫자와 하나님 나라 운동>
한국교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개선 없이 교세 확장은 없다
임희모 교수 (한일장신대학교)
통계청이 2006년 5월 25일 보도 자료를 통하여 밝힌 통계에 의하면 2005년 11월 1일 현재 한국교회 교인 수는 약 862만 명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일부 교인들에게 충격을 준 모양이다. 먼저 교인수의 감소에 따른 충격으로 보이는데, 2005년에는 한미준이 갤럽과 공동으로 조사하여 발간한 『한국교회 미래리포트』에 의하면 한국교회 교인 수는 약 1,300만 명에 달한다. 이들 통계상의 차이가 큼에 따른 허세의 논란인데, 아마도 조사방법상 통계청의 숫자가 더욱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놀람은, 일부 교인들 사이에 일어난 것으로 한국교회(개신교)의 교인 수가 불교나 천주교에 비하여 증가가 되지 못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 숫자만 보더라도 개신교는 숫자나 비율 면에서 떨어진데 반하여 불교나 가톨릭은 신도 수와 비율이 오히려 늘어났다. 이에 대하여 실망감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도 따지고 보면 그렇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2003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년에 3~4회도 아니고 불과 1~2회 정도 불교 절이나 천주교 성당이나 개신교 교회에 나가면서 신도라고 응답한 수는 총 신도수의 각각 33,1%, 7,2%, 2,8%이고, 아예 1년에 단 한 번도 참여하지 않는 불참자도 각각 22,1%, 26,1%, 11,7%이다. 다시 말하면 각 종교 신도 수에 허수가 있는데, 불교의 경우 33,1%, 가톨릭은 26,1%, 그리고 개신교는 11,7%가 명목상의 신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계청 자료에 나타난 종교별 신도 수가 늘고 안 늘고를 따지자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몇 논자들이 통계청 자료를 분석하고 대안이라고 하는 것을 내놓고 있다. 이들은 주로 종교사회학적 접근을 통한 것인데 여기에 신학적 혹은 선교신학적 접근이 덧붙여진 총체적인 접근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본인은 몇 년 전에 이것과 관련하여 예장(통합) 선교정책협의회에서 발제한 바가 있는데 교인 수 증가와 관련된 부분만 요약하여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교세 확장 보다는 대외적 이미지 개선이 시급
우선 생명살림의 하나님 나라라는 틀에서 민족복음화를 추진할 것을 강조할 수 있다. 여기에는 교인 수를 증가하는 전도운동이 포함된다. 교인 수를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그것보다 큰 명분이나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생명살림의 민족복음화 혹은 하나님 나라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교인 수 증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한국교회의 과거 경험에서 보듯이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를 위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교인 수 증가는 하나의 수단이거나 과정일 뿐이다.
하나님 나라 운동의 한 부분으로서 교인 수에 관심하는 전도운동은 하나님 나라의 다양성을 이해하되 그 중점을 교인 수 늘리기와 전도에 두는 운동이다. 교인수를 늘리는 전도는 여러 부문에서 협조를 받는 총체적 입체적 차원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생명 선교가 여러 각도에서 진행되는 것과 같다. 생명은 다원성과 총체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생명을 구원하는 하나님 나라 운동의 복음화 운동은 다원적인 선교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방법론적으로 사회봉사적 접근도 필요하고, 사회비판적 예언자적 선교도 필요하다. 시대의 징조로서 드러나는 민족 평화와 통일 선교, 지구시장화 상황에서의 선교, 생태계 보전의 선교 등이 강조되어야 한다. 구태의연한 개척교회 세우기, 특수전도, 장애인 전도만을 통하여 생명살림의 민족복음화를 실현하려는 것은 무리인 것이다.
교인 수 증가를 강조하는 전도는 잃은 양 찾기 운동과 새신자 찾기 운동으로 구분될 수 있다. 새신자 끌어들이기는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고 잃은 양 찾기 역시 대단히 중요하다. 2005년 한미준 통계에 의하면 개신교인의 12,2%가 과거 타종교를 믿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18,9%와 77.9%가 각각 가톨릭과 불교에서 왔다. 그러나 천주교인의 18,8%는 타종교에서 왔는데, 그 중에서 57,1%가 개신교에서 왔다는 것이다. 즉 가톨릭교인 (515만 명, 통계청 자료) 중 약 55만 명이 개신교에서 유입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비종교인의 33,7%가 과거 타종교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62,2%가 과거 개신교인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2005년 통계청 자료의 비종교인 2,200만 명 중 대략 460만 명 정도가 과거 개신교인이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적어도 비종교인의 460만 명은 한국교회에 대한 내부적 불만으로 인하여 교회를 등지고 아예 종교를 떠난 경우이다. 이것은 소위 잃은 양으로 전락한 경우인데 이들을 끌어오기 위한 전도 전략을 짤 것이 요청되고 한편으로 교회내부갱신이나 개혁이 절실히 필요함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준 통계와 별로 차이가 없는 1997년 갤럽조사 통계는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에 좋은 일보다는 나쁜 측면에서 영향을 더 준다는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교파분열이 많고, 사이비 종교성이 심각하고, 헌금의 강조와 재산다툼을 한다는 것이다. 개신교는 시대변화에 적응을 잘하여 세속적임을 보였고, 참 진리를 추구하기보다는 교세확장에 앞섰고, 지나치게 헌금을 강요하고, 믿지 않는 사람을 따뜻하게 대해주지도 않고, 지켜야 할 규율을 너무 엄격히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타종교에 비하여 사회적 역할은 하지 못하고, 지도자 자질이 가장 뒤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조사통계는 한국교회가 대사회적 이미지를 제고시켜야 할 것을 주문한다. 교회가 사회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가 사회로부터 그리고 사회의 비기독교인들로부터 경원시 당하고 배척당한다면, 새신자들이 교회에 오기가 어렵고 따라서 교회가 성장될 수가 없는 것이다.
교회가 사회로부터 유리된 것이 아닌 소속돼 있음 직시해야
여기에서 개신교의 교회 갱신의 과제가 심각하게 부각되는 것이다. 교회 내부적 문제로서 교회갱신은 시급한 것이다. 교회가 더 이상 많은 교인들로 하여금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국 개신교회는 교회 안의 갱신과제가 많다. 예배갱신의 문제, 설교의 질적 수준 향상의 문제, 설교의 내용의 문제, 교육과 목양(상담)의 문제, 삶과 윤리의 문제, 헌금의 문제, 목회자들의 자질과 지도력 문제 등이다.
교회의 이러한 내부적 문제들과 더불어, 교회의 구조가 선교적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교회는 사회의 일부분으로서 사회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교회는 교인들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개념적 변화와 교회구조의 변화가 없다면 한국교회의 교회성장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개신교 교회 역시 토착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토착화운동은 교회 외적 내적 갱신의 운동이다. 근본적으로 한국교회는 한국인들의 문화적 정서의 뿌리에 그 뿌리를 내려야 한다. 한국화된 한국교회가 되지 않고는 결코 한국사회에서 다수의 위치를 차지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화 되지 못하여 한국인의 정서를 담아내지 못하는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에서 다수가 된다면 한국민족의 발전을 저해할 것이다. 한국인에게 하나님 나라는 한국민족의 생명을 발현시키는 것인데, 오히려 민족의 생명 발현을 저해하거나 억압한다면 교회성장이 도대체 한국민족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자기 민족의 생명을 발현시키기보다는 생명을 억압하는 서구문화적 한국교회에 그 생명의 의지를 억지로 맞춘다면 우리민족에서 하나님 나라가 건강하게 꽃피겠는가? 한국교회는 한국 토양에서 한국민에 의한, 한국민을 위한, 한국민의 교회로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을 따져보면 한국교회는 한국에 존재하는 미국교회 혹은 유럽교회처럼 보인다. 너무나 낯설어 보이는 이러한 한국 개신교 교회를 향하여 한국인들이 제 발로 찾아들겠는가?
끝으로 가톨릭교회의 성장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분명 한국교회에 몇 가지 시사점을 줄 것이다. 천주교회는 1970년대 이후 한국에서 교회성장에 성공을 거두고 있다. 천주교회는 단일 교회이고, 대사회적 공신력이 높고, 토착화에 대한 노력이 개신교보다는 훨씬 앞서 있다. 같은 기독교이지만 개신교와 다른 모습을 지닌 천주교회라는 사실이 비신자 혹은 개신교신자들을 유인하고 있는 것이다. 교인 수는 1976년 100만, 1985년 200만, 1992년 306만, 2000년 말 4,071,560명 이었다 (2001년 6월 28일자, 평화신문). 군부 독재에 저항하여 민주화와 인권과 정의와 평화 문제를 가지고 치열하게 다투던 한국 상황에서 특히 1985년 이후 젊은이들과 지식인들이 대거 천주교인으로 개종함으로서 7년 만에 106만 명이 늘었다. 사회적 공신력 확보가 교회성장에 중요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2006년 통계청은 515만 명의 가톨릭교인 수를 공표하였다.
(2006. 6. 6. 뉴스앤조이)
<2010년이면, 천주교가 개신교를 압도할 가능성 있어>
교회성장에 가장 걸림돌은 대형교회의 비상식적인 목회자들
황규학 (교회법률상담소)
2010년에 천주교가 개신교를 압도할 가능성있다
얼마 전 뉴스에서 통계청의 인구센서스 집계현황을 보도한 바 가톨릭은 약 520만명, 개신교 약 860만명으로 이제 거의 340여만명 정도로 차이로 줄어 들었다. 개신교는 성장이 둔화되더니만 이제는 감소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1981년도 당시 카톨릭 약 130만명, 개신교 약 800만명이었고 91년도서부터는 빠른 속도로 카톨릭인구가 증가하고 개신교인구가 감소하는 현상을 볼 수가 있었는데 급기야 이런 수치까지 오게 되었다. 이미 2000년도 당시의 추세를 보면 2010년 경이면 우리나라의 가톨릭인구가 개신교 인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 되고 있다.
교회의 하나됨의 모습이 어필
이런 현상에 대해서 다각도로 접근을 해야 한다. 그 중의 하나는 카톨릭의 신학이 대중에 어필한 것이다. 카톨릭은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고 사도로 부터 이어오는 교회라는 점이 새롭게 종교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카톨릭의 하나됨과 보편성을 강조한다. 실제로 이는 개신교 교회론이기도 한다. 개신교 역시 교회의 하나됨과 보편성, 사도성, 거룩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신학적으로만 가능한 것이지 실제로 개신교는 다양한 교파로 난립되어있어 하나됨과 보편성, 사도성이 일반대중들이나 교인들에게까지 호소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천주교의 사회참여가 성장에 큰 역할
또 다른 이유는 천주교의 사회 정의와 참여이다. 천주교는 독재정권시절, 정의사제 구현단을 조직하여 독재정권에 정면에 맞선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한 것이다. 그래서 역사의식이나 국가관, 민족관이 투철한 젊은이들은 개신교보다는 천주교를 택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개신교는 독재정권의 시녀역할을 했고, 독재자들을 위해서 조찬기도회를 열기도 하여 독재정권에 편승했던 것이다.
천주교는 헌금 강요하지 않아
세 번째, 천주교는 헌금을 강조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개신교는 감사헌금, 십일조 헌금등 다양한 명목을 갖고 push를 하지만 천주교는 월정 헌금 정도만을 강조한다. 특히 부흥강사들은 너무나도 많은 헌금을 강조한다. 건축을 하는 교회는 건축헌금을 강조하여 성도들을 짜증나게 하는 것이다.
천주교는 목회윤리에 있어서 한단계 우위
네 번째, 천주교는 목회윤리에 있어서 엄격하다. 우선 세습이 없다. 일단 신부들이 결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세습을 할 수가 없고, 성공회처럼 결혼을 한다하더라도 구조적으로 세습이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세습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세습과 관련해서는 왕조시대의 유물이기 때문에 현대의 상식있는 사람들이 좋아할 리가 없는 것이다. 특히 요사이 벌어지는 성추행과 교회 재산 횡령등은 더더욱 많은 불신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천주교의 질적인 성직자 교육
다섯번 째, 무분별한 교단과 신학교의 난립이다. 은혜라는 미명하에 무자격 목회자를 마구 양산한 것이다. 카톨릭은 정상적인 대학을 마치고 신학을 3년 이상 공부를 해야한다. 그러나 개신교의 군소교단은 무인가 신학교 4년만 졸업하면 교단에서 안수를 준다. 목회자의 무분별한 양산이다.
그러다보니 질적으로 하락하게 된 것이다. 은혜로 무돈 것을 밀어부치게 된 것이다. 이는 제 2차 대각성 운동이 무디를 비롯한 미국부흥사들의 영향을 받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즉 값싼 복음이 들어온 것이다. 기독교의 문화보다는 기독교의 영성과 축복, 은사, 은혜를 강조하게 된 것이다.
개신교, 교회성장 영성 및 자본주의적 영성....부흥회식의 값싼 영성
이런 면에 있어서 값싼 은혜나 영성, 자본주의적 영성, 교회성장적 영성으로 성장한 대교회와 목회자들은 막판에 비복음주의로 전락한 것이다.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것이다. 자신들의 교회는 성장시켰지만 그 교회로 인해 전체 기독교가 가져다 주는 파장은 엄청난 손상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대교회 목회자들은 비복음주의자로 전락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교회의 교인수를 1-2만, 70만으로 만들었지만 한국기독교 전체는 수백만명이 천주교로 이동하거나 개신교를 찾지 않는 결과가 되고 만 것이다. 기독교를 변질시킨 것이다. 기독교를 세습교, 기득교, 횡령교로 변화시켰다는 말이다.
개신교는 일부 대교회 목회자들의 정년연장, 세습, 성추행, 횡령, 사치,
억대연봉이 악재
따라서 세습, 정치적 청빙, 성추행, 횡령, 호화, 사치, 억대연봉과 관련한 교회와 대교회 목회자들이 복음전도에 가장 큰 장애물로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한국강단에서 아직도 활보하고 있는 한, 한국기독교의 내일은 없는 것이다. 더 이상 대형교회가 선호되는 사회가 되지를 말아야 한다. 물질이 있는 곳에, 조직과 제도가 있는 곳에 교회가 부패해왔음은 교회사가 증명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역사성과 사회성, 정의, 평화, 헌금강조, 성직자의 자격과 질, 신학과 교회론, 사회봉사, 상식, 종교성 등에 있어서 우위론을 차지하는 천주교가 당분간 더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2006. 6. 27. 에클레시안)
<기독교인 개종자 중 57%가 가톨릭으로>
통계청 조사, 과거 기독교인 47% '현재 비종교인'
교회 떠나 비종교인으로 살아가는 ‘냉담한 기독교인’이 증가하고 있다. 이것이 종교인 숫자는 증가했지만 상대적으로 기독교인이 감소한 결정적인 이유라는 점에서, 한국교회가 선교적인 관점에서 분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5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 사람들 중 53.1%는 종교를 가지고 있다. 10년 전인 지난 1995년의 50.7%에 비해 2.4%로 증가했다. 반대로 기독교인과 불교인은 1.4%와 0.4로 각각 감소했지만 가톨릭인은 4.3%로 성장했다. 이는 과거 기독교인이었다고 응답한 57%의 기독교인이 가톨릭으로 종교를 바꿨기 때문이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최근 이런 현상은 ‘비종교인의 종교성향’에서 확인되고 있다. 비종교인이라고 응답한 46.9% 가운데 과거에 기독교에 속했던 사람이 절반 이상에 이르고, 다른 종교에 한 번도 속해본 적이 없는 순수한 비종교인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기독교에 속했던 비종교인들은 자그마치 2/3에 이른다. 이는 과거에 기독교인이었다가 비종교인이 된 사람이 현재의 기독교인 숫자에 거의 육박하고 있다는 것을 사실이다. 불교와 천주교에 비하면 엄청난 숫자다.
46.9% 비종교인 중 2/3, “한 때 기독교인이었다”
폐쇄적, 비합리적인 조직, 권위적인 태도가 ‘원인’
가장 공격적인 선교전략을 가지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교회성장을 자랑해 왔던 한국교회가 왜 감소세로 들어섰을까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기독교만큼 사회에 많은 봉사 기관을 가진 종교가 없다. 많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조건 속에 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교회는 매력을 상실했다.
이번 통계는 선교적 관점에서 볼 때 대단히 놀라운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고 신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즉, 한국교회가 누구를 대상으로 전도해야 하는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기독교인이 교회를 떠난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를 철저하게 분석하지 않으면 계속적으로 기독교는 ‘천덕꾸러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사실 비종교인이 된 이유로 한국교회의 폐쇄적이고 비합리적인 구조, 권위적인 태도, 시대에 뒤떨어진 성도들의 태도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 다른 원인은 한국교회가 매주 동일한 교리를 반복하여 가르치고 있을 뿐 삶의 수준은 다른 종교에 비해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즉, 외형적인 성장만을 강조했지 내적인 성장에 미흡한 결과라는 것이다. 예수의 삶에 비추어 오늘 우리들 삶의 문제를 중심 화제에 올리지 못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결국 교회안에서 삶의 변화를 경험하지 못한 기독교인은 사람으로부터 또는 교회행정에서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나게 됐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무교인을 전도하기 보다 이들을 전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또 한국교회가 이성과 신앙 중 하나만을 선택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에 갈 때에 교회 문 앞에서 이성의 보따리를 내려놓아야만 한다는 것. 만약 이성의 보따리를 교회로 끌고 들어가게 되면 교회로부터 배척받기가 쉽고 비신앙적 행위로 간주된다고 지적했다.
이승구교수(국제대학원대학교)는 “과거에 기독교에 속했든 속하지 않았든 오늘날의 비종교인들은 학력수준이 높아졌다.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이성적으로 비판하고, 이성적으로 수용하는 능력이 발달했다. 머리가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가슴이 신앙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제 쉬운 일이 아니다.
교회도 이제는 이러한 변화를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성과 신앙이 예수에 기초를 둔 기독교적 삶을 사는 일에 있어 조화를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기독교에서 떠난 비종교인은 자꾸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경하 감독회장도 “한국교회가 수억원의 헌금을 사용하여 전도에 열을 올렸지만 가톨릭은 조용한 자세로 사람들을 기다렸을 뿐인데 결과는 상반되게 나타났다”며 “교회만이 간직한 거룩함과 정직함을 갖고 있는지 냉철하게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6. 7. 13.. 아이굿뉴스 / 송영락 기자)
첫댓글 아하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읖는다는데 16년을 다니고도 예수님만보고믿기보단 냄새나는 사람들만 보았군요. 님이 생각하는 나쁜 기독인들보다 님은 더욱 부족한것을 전혀모르시는군요. 교회는 예수님 믿고 신앙하는곳이지 사람을 헤아리는 곳이 아니라는 것은 예수님 말씀입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이 성경어디에 있는것을 아시기나 하는지...만약 아시면서도 그렇게 교회를 비판한다면 님의 영혼이 참으로 불쌍합니다. 세상이 교회를 보는 기준은 예수님마저도 죽어마땅하다고 생각하여 예수님은 기꺼이 죽어주셨지요. 비판적으로 보는것은 지금까지 앞으로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이 알아서
교회의 잘못된 점만 그렇게 열심히 헤아리지 마시고 님자신이나 살펴보시지요. 16년전 교회를 택하신 건 참 잘하신 일이나 16년만에 교회를 떠난건 세상말로 님은 믿음이 부도난 것이지요. 다른사람 어찌든지 님만이라도 세상에 빛이되는 좋은 기독인이 되었다면 님은 인생성공이요 행복자일텐데요. 님이 중시하는 세상통계도 어느분야든 항상 좋은수치만 나오는것은 아니지요. 경제대국 미국도 적자경영인걸 아시나요. 그렇다고 미국이 금방 없어질까요. 님의 가정경제 날로 승승장구하고 있습니까? 수치는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제발 좋은글 재주로 보는 이들에게 감동 주는 그런 글 엮어 주시는 님이 되길 원합니다.
종교는 사람의 숫자가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종교가 진리냐 아니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종교 속에 집단을 이룬 사람은 다 죄인이라 문제가 있게 마련입니다. 목사님이나 신부님이나 스님이나 모두 음란과 비리와 온갖 속된 것이 있게 마련이지요. 목사가 치부를 했다든가 승려들이 신나로 불을 지르며 몽둥이로 때리고 치고 박는다든가 신부가 부인네를 호린다든가 하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다만 그 종교가 구도의 힘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지요. 목사들이 상당히 썩었어요 또 탈속을 했다는 중들이 사찰 주지 자리를 놓고 이판사판 싸우고 있지요. 신부나 목사나 중을 보지 말고 종교의 진리를 보아야지요
상기 글은 탈속하신 스님의 글이 아니라 속세를 살아가는 인간의 시기와 질투와 증오가 곁들어 있는 글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