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전차 노선 중 서면-온천장 구간인 동래선의 끝 정차장 '차고앞'은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한국전력 부산본부가 자리잡고 있었다. 정차장 주변의 변화의 흐름 속에서 내가 어떻게 적응해왔는지를 돌아볼 수 있었다.
1960년대 서면일대
부산상업고등학교 정문
학교 담벼락에 걸쳐 세운 천막 아래 따뜻한
오뎅과 달콤한 호떡을 팔던 아가씨들은
모두 어디에 갔을까
가야대로
오뎅과 호떡을 파는 포장마차가 있던 거리는 아스팔트로 포장되었으며 사람들은 손에 커피를 들고 빠르게 걸어 다닌다
이층에는 사람들로 가득 찬 당구장 건물이
있었고 근처에 시원한 병 냉막걸리를 파는
가게도 있었다.
툭 터져 있던 학교 교문은 이제 롯데백화점
주차장으로 변해 있다.
내가 부산 본부로 전입 와서 그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기억 속에는 분명 표지석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마저도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린이 놀이 기구들은 이제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대신 시비가 세워져 있다. 주변의 주택들은 유흥업소로 변해 버린지 오래니, 어린이가 있을 리가 없다.
명륜초등학교, 동래중학교 주변이 고급 아파트로 변한 모습을 보고
부산상고가 그 자리에 여전히 있었다면 학생들이 학교를 오가며 만들어낸 활기와 젊음이 주번 거리의 풍경을 어떻게 바꾸었을지 궁금해진다.
경남공고는 옛 모습 그대로다
한전부산사업본부
3층 옥상 휴게실에서 담배 무지하게 피웠다.
서면교차로에서 옛 태화백화점을 지나 중앙로변에 정차장이 있었다 . "차고 앞" 이라는 이름은 한국전력공사 부산본부 자리에 차고지가 있었기 때문에 붙혔진 것이다 이 차고지는
전차의 고장 수리 및 전차의 정비를 위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62년 차고로 진입할 수 있는 단선 선로가 신설되기도 하였다
부산진구 당감동 선암사 계곡에서 발원해
도심지역인 서면을 관통하여 흐르다가 동구 범일동 북항으로 이어지는 총 길이 8.77km, 유역 면적 31.08㎢의 하천이다. 상류부 쪽으로는 아파트 단지 등 주거지가 밀집되어 있고, 중상류에는 서면시가지가 있어 이곳을 지나는 2.8㎞가 복개되어 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미 복개구간 2.6km와 복개구간 7.3km로
나누어진 동천은 부전천, 전포천, 당감천, 가야천, 호계천, 문현천 등의 지천들이 모여들고 있다. 대부분 중상류에서 동천과 만나고 중하류에서 호계천을 만나 하류까지 흘러간다.
즉 당감천, 가야천, 전포천, 부전천 등 지류들을 각각 부산진구 당감동과 부암동, ‘서면센트럴스타’ 앞에서 받아들여 바다로 빠져나간다.
부전도서관
정밀안전점검 결과 e등급으로 휴관
중학교 3학년 때 공부했던 도서관 모습
그대로다.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기도했다
대학 입시에 대비하기 위해 부전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던 나는 어느 날 열람실에 들어서니, 예쁜 모습으로 공부하는 여학생이 눈에
띄었다. 그녀의 얼굴이 가물가물하게 떠올랐다. 같은 동네에 살았던 여학생이었다.
그녀는 고등학교 1학년일 텐데, 일찍이 대입 준비를 하고 있구나 싶었다.
가볍게 인사하며 스치자, 그녀도 미소를 지었다. "고등학교 재수하고 있어요"라고 말했을 때, 나는 애달픈 마음이 들었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공부하는 시간들은
마음이 설레고 떨려 학업에 집중할 수 없을 만큼이었다. 나는 용돈을 아껴 선물을 준비하고, 독서실에서 복개된 부전천을 따라 부전도서관까지 함께 걸어 어두운 저녁에 독서실로 돌아온 것이 그때의 전부였다.
언젠가 아내와의 관계가 엉망이었을 때,
그 아픔을 견뎌내기 위해 과거를 되짚어 첫사랑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일하는 곳에 전화를 했다. 전화번호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실 두려워서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 여학생의 행적을 계속 추적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자신할 수 있는 것은,
만났던 나이는 둘 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나이였기에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더라도,
나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저 김욱곤인데, 기억하겠습니까?"라고 하니, 그녀는 명쾌한 목소리로 "기억합니다. 비번 때 전화해 주세요"라고 분명한 어조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 속에는 애틋한 감정이 느껴지 않았다. 내가 한 사랑은 첫사랑이 아니라 짝사랑이라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했다.
아무리 순수한 첫사랑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고자 하는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꿈꾸는지를 탐구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하지만 서로의 사랑이 커질수록, 책임이라는 현실적 부담이 이별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첫사랑은 원망보다는 그리움이 더 큰 경우가 많다.
나는 매일 아침 해야 할 일을 펜과 종이로 정리하듯이, 효율적이지는 않았지만 푸념 없이
첫사랑을 끝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도 40여 년간 희로애락을 함께한 아내를 하늘나라에 보낸 후에도, 간혹 떠오르는
그 기억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