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 - 120. ‘동방견문록’은 어떻게 탄생했나?
▶ 감옥 속에서 탄생한 ‘세계의 묘사’
베네치아로 돌아온 뒤 마르코 폴로의 행적은 불분명하다.
그러나 자신의 주장에 따르면 1298년 마르코 폴로는 제노바 감옥에 있었다.
그는 베네치아와 제노바 두 도시 간에 벌어진 해전에서 베네치아측 지휘관으로 참가했다가
포로로 잡혀 제노바 감옥에 수감돼 있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사진 = ‘세계의 묘사’ 표지]
마르코 폴로의 저서 세계의 묘사(Description of World, Divisament dou monde)는 바로 이 감옥 속에서 탄생된다.
이 글을 쓴 루스티첼로는 당시 마르코 폴로와 같이 수감돼 있었던 인물로 마르코 폴로가 구술하는 것을 받아 적은 뒤
다듬어서 책으로 만들어 냈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동방견문록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기나긴 동방여행기다.
▶ '동방견문록'은 일본서 차용한 제목
[사진 = 동방견문록 책표지]
"여러 나라의 대공과 황제, 국왕, 공작, 후작, 백작, 전하, 기사와 시민여러분,
또한 인류의 온갖 종족과 세계 각지의 다양한 사정에 대해 알고 싶은 각계각층의 분들은 이 책을 구입해서 읽어보시라!
여기에서 여러분들은 아르메니아와 페르시아, 타타르, 인도 그리고 여러 지방의 가장 경이롭고 매우 다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마치 세련되지 못한 책 광고 문구처럼 보이지만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마르코 폴로의 저서는 우리에게 동방견문록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해져 있다.
이 글을 완역해서 펴낸 서울대 김호동(金浩東)교수는 이 글 어디에도 동방견문록이라는 표현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동방견문록이라는 제목은 단지 일본에서 널리 사용되는 것을 차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제목을 바꾸는 것이 급작스러운 일인데다 어색하기도 해서 부득이 기존의 제목을 그대로 쓸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 책은 또 ‘일 밀리오네’(il Milione) , 즉 백만이라는 마르코 폴로의 별명을 붙여 ‘백만의 서(書)’라고
부르기도 하고 알기 쉽게 ‘마르코 폴로 여행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럽사회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베스트셀러인 이 책을 통해 마르코 폴로는 당시 유럽인들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함께
모험심을 갖도록 만들어줬다.
▶ 주관적 판단 자제 객관적 묘사 노력
[사진 = 책속의 마르코 폴로]
앞서 지적한대로 마르코 폴로가 이 책에서 전한 내용에는 사실과 과장 그리고 어느 정도의 오류가 뒤섞여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앞서 여러 차례 마르코 폴로의 글을 인용한데서도 볼 수 있듯이 대부분의 설명이 당시의 상황과 부합되는 것이 많다.
더욱이 마르코 폴로의 글을 자주 인용한 것은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데 그의 설명보다 더 적합한 것을 찾기가 어렵다는 얘기도 된다.
상당 부분에서 그의 글은 여행기나 견문록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보다는 ‘박물지’ 또는 ‘지리지’라는 이름이 더 적합할 정도로
묘사가 세밀하고 구체적이다.
[사진 = ‘세계의 묘사’ 내용]
특히 여행기나 견문록에는 작가 자신이 본 것에 대한 느낌과 자신이 나름대로 내린 주관적인 판단이 스며들기 마련이지만
마르코 폴로의 책에서는 개인의 느낌이나 판단을 최대한 자제하고 가급적 객관적으로 묘사하려고 한 흔적이 역력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원래의 제목을 ‘세계의 묘사’라고 정했는지도 모른다.
▶ 상당 부분 직접 경험 아닐 가능성
[사진 = ‘세계의 묘사’ 내용]
그래도 역시 적지 않은 부분에서 얼른 수긍이 가지 않는 과장이 발견된다.
현재의 눈으로 봐서 그럴 정도라면 당시 유럽 사람들의 눈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과장되게 느껴졌을 수 있다.
그들 대부분은 한 번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동방 세계에 대해 거의 어떤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랬을 것이다.
'밀리오네', 즉 백만이라는 마르코 폴로의 별명도 그가 돈 많은 백만장자라는 의미가 아니고 걸핏하면 백만이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해서 붙여진 ‘허풍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 점 때문인지 마르코 폴로와 동시대의 인물이었던 피렌체 출신의 단테(Dante)는 한 번도 이 책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마르코 폴로도 이 점을 염려한 듯 책의 곳곳에 ‘들어도 믿기 어려운’ 또는 ‘보지 않고서는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 같은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사실에 근접해 있는 데 일부분의 내용이 과장되거나 사실과 어긋난다고 해서 그의 글을 부정할 수는 없다.
마르코 폴로는 자신이 기술한 내용의 모두를 보거나 경험하지는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적지 않은 부분을 다른 사람의 경험을 인용하거나 자신이 들은 얘기를 그대로 옮겨 놓았을 가능성도 있다.
더 나아가 마르코 폴로는 아예 당시 쿠빌라이가 지배하는 대원제국을 가지 않았고 그 곳을 다녀온 사람의 얘기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것뿐이라는 주장도 있음직하다.
그 경우 이야기의 전달자는 그의 아버지와 숙부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특히 중국 측의 사료에서
마르코 폴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점이 이 같은 주장의 가능성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 미지 세계 호기심 자극 충분
[사진 = 세계의 묘사‘ 복사판]
하지만 마르코 폴로가 직접 보거나 경험한 부분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모든 것을 진실이 아닌 것이나
과장으로 몰아세울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이 쓰여 졌고 비록 원본은 아니지만 가치 있는 그 책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특정지역에 사는 민족이 가진 종교와 그 종교가 만들어낸 초자연적인 현상,
그 민족이 가진 전설과 설화 같은 것을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잣대로 재어서 판정을 내린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말하자면 '전설의 고향' 같은 곳에서 나올법한 얘기라 해서 이를 허위나 과장으로 몰아세울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선입견을 버리고 보면 그의 글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할 만큼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 당시 유럽 바깥세계 거의 언급
[사진 = 마르코 폴로 동방여행]
마르코 폴로가 구술한 것을 글로 형상화한 사람은 루스티첼로라는 작가다.
이 작가는 당시 제법 명성을 얻었던 피사(Pisa) 출신의 대중작가였다.
그렇다고 본다면 마르코 폴로의 얘기를 보다 흥미롭고 신비롭게 만든 데는 루스티첼로의 글 솜씨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마르코 폴로는 그러한 글을 쓸 능력을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
루스티첼로가 많은 부분에서 상상력을 가미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옥에 갇혀있던 사람이 그렇게 상세하고 세밀한 기억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정
확한 수치나 건물을 비롯한 여러 장면의 묘사 등은 마치 지금의 스마트 폰으로 찍은 것을 풀어 놓은 듯 경이롭고 감탄스럽다.
마르코 폴로의 책에는 북으로는 북극지방에서부터 남으로는 자바와 수마트라에 이르기까지 언급하고 있다.
또 동으로는 지팡구, 즉 일본에 대해서도 황금의 나라라고 설명하고 있고 고려의 이름도 처음으로 등장한다.
당시로서는 유럽의 바깥 세계에 대해서는 거의 모두 언급한 셈이다.
그러나 역시 중심이 된 곳은 마르코 폴로가 17년 동안이나 머물렀다는 쿠빌라이 치세의 중국 땅이 될 것이다.
그 속에는 이미 언급한 상도와 대도, 항주 외에 많은 중국의 도시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들어 있다.
대칸이 사는 궁전에 대한 얘기와 화폐에 관한 설명, 역참에 관한 설명, 경제제도와 사회 풍습에 대한 설명 등
당시 사회상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주제들이 등장한다.
각 지역의 동물과 식물 그리고 광물에 대한 묘사 등도 어떤 지리서나 역사서적도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묘사가 자세하고 구체적이다.
▶ 관심에서 행동으로 옮긴 콜럼버스
[사진 = 콜럼버스가 읽은 책]
그런 면에서 마르코 폴로의 책은 그 당시 시대상을 알려 주는 최상의 사료이자 안내서였다.
또한 동양과 서양을 연결시켜주는 고리나 마찬가지였다.
미지의 세계에 대해 무한한 상상력을 안겨다 주는 그의 책은 당시 유럽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다.
유럽 사람들은 앞 다투어 그의 책을 읽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양에 대한 얘기는 유럽 사회에서 최대의 화제였다.
특히 부(富)가 넘실대는 동양사회에 대한 관심은 관심 그 자체로만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옮겨지는 단계로 발전했다.
동양의 부를 찾아 나서는 상인들의 발길이 동쪽으로 이어지면서 유라시아 지역은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백년쯤 뒤이기는 하지만 동쪽으로 향하던 대부분의 발길과 달리 서쪽 바다 뱃길을 통해 동양으로 가려는 당시로 봐서는
무모해 보이는 시도도 있었다.
마르코 폴로 책의 충실한 독자였던 콜럼버스가 바로 그 대표적인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