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를 갖고 다닐 때니 한 20년쯤 되었는 갑다, 가끔 드나 들던 노래방 여사장한테서 삐삐가 들어 왔는데
긴히 물어 볼 것이 있다며 저녁에 김해서는 유명한 민물 장어 집에서 좀 보잔다. 뭔 대단한게 있는가 싶어
그리하나 싶어 나갔더니 수줍은 표정으로 물었는데,
"가로 세로가 뭐예요?"
순간적으로 아하, 가방끈이 아주 짧구나 싶어 조심스레 왜 그러냐 했더니
"노래방 간판을 바꿀라고 간판집에 전활했더니 가로 세로가 얼마냐 그러대요."
무슨 공고 나왔다는 남편한테 물어 봤다간 그것도 모르냐고 핀잔을 줄거고, 분명히 어려운건 아닌 것 같은데
어디 함부로 물어 봤다가는 무식이 탄로 날거 같에서 고민 고민하다가 점잖은 나한테 물어 본단다.
국민학교 다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관두었다길래 뭘 물어 볼거 있으면 다음에도 주저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얘기하라고 했더니 국민학교 문턱도 아예 안디뎠다는 주방 아줌마랑 같이 이거저거 자주 물어 보곤 했는데
어느날에는,
"저기요, 반영구적이란게 뭐예요?"
영구적이란건 알겠는데 반만 영구적이란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단다. 그러고 보니 거의 영구적이라고 하지 않고
반영구적이란 말 자체가 헷갈릴만 한 잘못된 표현이란 생각도 들었는데, 이런 사람들이 영어가 난무하는 세상을
살아 가는게 기특(?)해서 영어 스펠도 모르고 차 이름이야 유명 메이커 옷이야 화장품을 어찌 아느냐 했더니,
"모양으로 영어도 그림으로 보고 압니다."
그래도 IMF로 신용 불량자가 된 남편을 대신해 두남매 대학 졸업시켜 결혼시키고 2층 전세에서 35평 아파트도
샀다니 그 또순이 생활력은 그 어느 유식자보다 차라리 존경스럽다.
그러다 다섯살 손자를 키우다 보니 이 녀석이 아디다스도 나이키도 알고 아반테도 알고 그랜져도 구분하는
걸 보고 아하 구지 글과 문자를 몰라도 어쩌면 이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 갈 수 있는 방법도 있겠구나 싶다,
돌아가신 어머님은 한글도 숫자도 못 읽었지만 삼태성(오리온) 자리로 계절을 읽으셨고 북두칠성 자루 보고
시간을 아셨지, 그 많던 제삿날 기억했고, 6남매 생일을 메모도 없이 챙기셨지, 그리고 거제서 배 타고 버스
갈아 타며 부산 광안리야 괴정이랑 아들집 찾아 댕기신 걸 보면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하다.
커다란 달력 보며 숫자라도 가르칠라 하면
"그런거 몰라도 상관 없다."
언젠가 내가 가게되면 만나뵐 수만 있어도 얼마나 좋을까..
흔히들 삶의 질이 어쩌고 하지만 어쩌면 그런 삶이 더 편안할 수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불교 선종 1대 종사 달마대사의 법통을 이어받은 6대 혜능선사가 글을 모르는데도 성불했다는 말이 그때는
이해가 안되었지만 이제사 不立文子의 의미를 어느정도 알 수 있다는 생각이고, 선승 성철스님께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일 뿐인데..."
산이 어쩌고 물이 어쩌고 떠들어대는, 경전의 글귀를 두고 씨름하듯 하는 교종을 나무라던 뜻도 알 듯하다.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르키니 달은 안보고 손가락만 쳐다 보더라."
아직도 불교방송에 녹화되어 있는 스님의 법문을 가끔 보는데 하도 경상도 사투리가 심해서 경상도 토백이 인
나도 자막아 없으면 알아듣기가 힘든데.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랑 나로서도 초문인 현대 물리학으로 반야심경을
해석하는데는 과연 저 법문을 누가 얼마나 알아들을지 의문이 간다, 산중 백련암에서 마지막 가는 날까지
싸이언스 과학 잡지 구독을 멈추지 않으셨다니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누구도 한번 친견할려면 먼저 법당에서 삼천배부터 올려야 했다는데 태용이가 대학시절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에 걸쳐 삼천배를 하고 받은 다라니가
"옴 아 빌라 훔 캄 스바하"
의미도 뜻도 몰랐지만 미국 박사 과정 공부할 때 어렵던 고비 고비마다 외우며 힘을 얻었단다, 신라 의상대사의
화엄종에서 숭상하는 비로자냐불께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아빌라 다라니경이다.
끝끝내 한벌 누더기 승복을 기워 입으셨던 그 뜻을 아는 중이 오늘날 과연 몇명이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