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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플로베르(1821 – 1880)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대표 소설가로서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심리적인 분석, 리얼리즘에 대한 고찰, 개인과 사회의 행동에 대한 명석한 주시를 통하여, 그리고 《보바리 부인》(1857), 《살람보》 (Salammbô)(1862), 《감정 교육》(1869)과 단편 모음 《세 가지 이야기》(Trois contes)(1877) 같은 주요 소설에서 보인 문체의 힘을 통하여 보편 문학을 표방한다.
*생애
플로베르는 1821년, 루앙에서 개신교를 믿는 소부르주아지 집안 출생이다. 아버지는 시립 루앙 병원의 외과과장이다.
어릴 때부터 문학에 취미가 있어 학교에 다닐 때부터 글쓰기에 빠져 있었다. 부모와 피레네 산맥과 코르시카를 여행하여, 나중에 그의 글에 나온다.1 1856년 처음으로 발표한 소설 《보바리 부인》은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으며, 프랑스 최고의 작가라는 칭찬을 받게 하였다.
부모는 변호사 되기를 바랐으나. 문학으로 방향을 정한다. 빅톨 위고도 만나서 사귄다. 1841년, 첫 간질 증상이 나타난다. 6월에 루앙 근교의 별장에 칩거하여 글쓰기에 매진한다.
1857년에 보봐리 부인을 출간한다. 조르주 상드를 만나 편지를 주고, 받는다. 보봐리 부인은 당시에 미풍양속을 해친다 하여 법정어 섰다.
1870-71, 보불전쟁으로 루앙이 점령당하지 거처를 옮긴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거쳐 자신의 농장까지도 팔았다.
1856년 말, <보바리 부인>은 <라 르뷔 드 파리>에 실리고, 편집자 미셸 레비와의 만남을 가진 뒤 1857년 4월 소설 <보바리 부인>은 서점에 납품되나,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당대 세간에 큰 반향을 불러올 법정에 서게 된다.
*플로베르 작품의 특성
플로베르는 19세기 문학의 전환점 역할을 한다. 당대에는 도덕적 이유로 인정받지 못하기도 하고, 그 문학적인 영향력으로 찬사를 받기도 한다. 오늘날 특히 보바리즘이라는 용어를 남길만큼 유명한 소설 《보바리 부인》과 그 뒤에 남긴 소설 《감정 교육》으로 유명 작가 반열에 오른다. 플로베르는 스탕달의 심리 소설과 에밀 졸라・기 드 모파상의 자연주의 사조 사이에 위치한다. 사실주의 계보의 작가이다. 유미주의적 성향도 볼 수 있다.(그는 단어 하나까지도 꼼꼼하게 살핀다. 가끔씩은 몇 시간에 걸쳐 자기가 쓴 글을 큰 소리로 읽는 "괼루아"라는 그 유명한 실험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시험했다. 그의 美論을 보면, ‘진실은 다져서 만든 것이어야 한다. 상상력이 만들어 낸 가상과 소설적으로 꾸민 거짓은 신뢰 받을 수 없다.’
‘낭만주의 소설의 인물은 마네킹 같다.’
‘과학적 관찰을 할 때는 관찰자는 무감동이다.“
’소설에서 작가가 참여를 삼갈수록 신뢰가 높아진다.‘
신문 연재 소설의 미학과 대조되는 "느림의 소설"을 쓴 플로베르의 의향 역시 강조되기도 한다.
위대한 도덕주의자이다. 사회적인 통념들에 관한 그의 박식함은 자신에게 천재적인 통찰력을 부여했다.
<보봐리 부인>
〈시골의 관습 Mœrs de province〉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보봐리 부인은 결국 1856년 10월 1일부터 같은 해 12월 15일까지 〈르뷔 드 파리〉에 연재되었다. 그후 프랑스 정부는 이 소설이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작가를 기소했고, 1857년 1~2월 계속된 재판에서 플로베르는 겨우 유죄판결을 면할 수 있었다. 이 법정은 그로부터 6개월 뒤에 똑같은 혐의로 기소된 시인 샤를 보들레르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대비평가 생트뵈브는 이것을 과학적 인간분석의 우수한 선구적 작품으로 보았고, 텐느는 발자크 이래 가장 뛰어난 소설이라 하였다.
간단한 줄거리는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는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장편 소설이다. 실제로 있었던 개업의(開業醫) 드라마르의 아내인 델피느의 자살사건에서 취재하여 5년간에 걸쳐 완성하였다. 사실소설의 전형적 걸작이다. 주인공 엠마는 북프랑스 루앙 부근의 부유한 농가의 외동딸이며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 꿈을 품은 미모(美貌)의 정열적인 여성이다. 의사 샤를 보바리와 결혼을 하지만 곧 환멸을 느낀다. 그것을 안 바람둥이 미남 청년 루돌프는 그녀에게 접근하여 간단하게 정복해 버린다. 그러나 그녀가 열중하자 루돌프는 그녀와의 관계를 끊는다. 엠마는 절망하였으나 이어 젊은 서기 레옹을 사랑하여 밀회를 거듭한다. 레옹도 떠나자 그간 그녀는 가사를 돌보지 않고 남편 몰래 낭비한 빚 때문에 결국 자살해 버린다.
플로베르는 간통을 주제로 하여 자신이 속해 있는 계층인 시골의 프리 부르주아지 사회를 심리적인 구도로 그려냈다. 작가는 엠마 보봐리를 조롱하지 않았다. 감상적이고 도덕적인 잣대로 재단하지도 않았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는 식의 영웅적인 묘사도 하지 않았다. 화자는 담담하게 객관적인 관점에서 소름이 끼칠 만큼 정확하게 표현하였다. 엠마 보봐리를 꼼꼼하게 상세하게 표현함으로 글쓰기를 훨씬 윤택하게 하였다는 평을 들었다.
(*내가 임진수 교수에게 ’라캉 심리학‘을 공부할 때, 보봐리 부인은 욕망의 상징이며, 욕망을 결코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라고 했다.)
**살람보(1862)
1862년)는 프랑스 사실주의의 대표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역사소설이다. 제1차 포에니 전쟁 후, 용병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반란군 대장 마토와 진압군 대장의 딸 살람보가 그 중심에 서 있다. 지금은 사라진 고대 카르타고를 배경으로 낭만적인 사랑과 전쟁이 시작된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한 고대 문명 카르타고에 대한 소설이다. 플로베르는 5년 동안 전력을 다했던 ≪마담 보바리≫를 끝냈을 때 ‘고대의 도시국가를 소설 배경으로 선택했다. 과거는 무엇보다도 현실에서 불가능한 꿈과 희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이상향처럼 등장했고, (이국정취는 낭만주의의 한 정서이기도 했다.) 거칠지만 신비로운 고대의 이국은 동시대의 속악한 부르주아 사회와는 전적으로 다른 세계였기에 낭만주의자들이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했을 때 가장 이상적인 도피처가 되었던 것이다.
***감정교육(1869)
이 소설은 2월혁명 전후 역사의 진전 가운데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였는가를 쓴 것이다. 발자크적인 대중소설이며 자서전적인 성질이 농후하다.
주인공 프레드리크는 아르느 부인을 성실하게 사랑한다. 그녀도 그것을 알고 남몰래 그를 사랑하지만 동란(動亂) 속에서 영락해 가는 남편이나 자식에 이끌려 그의 사랑에 아무런 보답없이 어디론지 사라진다. 실의에 찬 그는 대의원이 되려고 한다든지, 창부와 여행도 하고 또 귀부인의 정부도 되면서 점점 환멸의 길을 걷는다. 결국 이 작품은 2월혁명 전후 사람들의 혼미(混迷)를 비웃는 조소로 묘사한 것이며 당시의 비평은 나빴지만 사실주의의 전형적 걸작이다.
4. 공쿠르 형제
공쿠르 형제는 유명한 작가는 아니지만 프랑스 문학사에서는 기억해둘만한 작가이다.
에드몽 드 공쿠르(1822 -
쥘 드 공쿠르(1830 -
귀족 가문 출신이라서 ’드 공쿠르‘라는 이름을 얻었으나, 아버지가 일찍 죽었다. 그러나 유산을 남겨주어서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게 살았다.
나폴레옹 3세 집권시인 제 2 제정시대에 집필하면서 활동했다. 플로베르와 친분을 맺고, 계속하여 글을 썼다. 그러나 동생은 40세에 죽었다. 형 에드몽은 모파상, 에밀 졸라와 친분을 쌓으면서 글을 썼으므로 형이 더 유명하다.
그의 글쓰기는 철저한 고증을 거친 후 시실적인 묘사를 하여 표현하였다. 그의 문장은 사실적 묘사와 화려한 문체가 특징이다.
그의 작품 ’제르미니 라세르퇴(1865)의 서문을 ‘자연주의 문학의 시발점’으로 본다. 공쿠르 형제는 기존의 문학에서 하층민을 소외시킨다고 보았다. 하층민을 묘사해내는데, 과학적이고, 사회적인 조사를 한 결과물이 담겨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대중을 독자로 하는 소설 등에는 하층민을 사실 그대로가 아니고, 영웅시하여 표현하였다.)
그들은 유언으로 자신들의 재산을 희사하여 ‘공쿠르 상’을 만들었다. 푸르스트, 앙드레 말로, 시몬 드 보부아르 등의 유명한 문인이 상을 받으므로 프랑스에서 아주 권위있는 문학상이 되었다.
문학 비평가 ‘텐느’는
”역사는 글로 쓰여진 문헌으로 만들어지듯이 오늘날의 소설은 이야기로 듣거나, 직접 현실에서 채취한 문헌으로 만들어 낸다. 소설가는 현재를 말하는 이야기군이다.“
(참고로 텐느는 사실주의 비평가이다.)
*제르미니 라세르퇴는 처음으로 시민(노동자)을 등장시킨 소설이라고 말한다. 시민계층의 풍속을 그려냈다. 지어낸 이야기에서 문화적 성격이
강화되었다고 한다.
5. 모파상(1850 – 1893)
사실주의의 대표적 작가의 한 사람인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은 노르망디의 몰락한 귀족 가문 출생이다. 부모는 이혼했다. 1868년 루앙에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자주 플로베르의 집을 방문하면서 그의 지도를 받는다. 플로베르는 모파상을 졸라, 위스망스, 도데 , 공쿠르 등 당대의 위대한 문인들에게 소개한다.
.1875년 처음으로 지역신문에 단편 〈박제된 손〉을 발표한다. 300편의 단편을 발표하여 에드가 엘런 포오, 마크 퉤인과 더불어 3대 단편작가로 불린다. 또 대표적인 사실주의 작가이다.
1883년에는 장편소설 《여자의 일생 Une vie》을 발표하였는데, 이 소설은 선량한 한 여자가 걸어가는 환멸의 일생을 염세주의적 필치로 그려 낸 작품으로서 그의 명성을 높였을 뿐 아니라,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과 함께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이 낳은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모파상은 이미 27세경부터 신경질환을 자각하고 있었으나, 이러한 증세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불과 10년간의 문단생활에서 단편소설 약 300편, 기행문 3권, 시집 1권, 희곡 몇 편과 장편 소설을 썼다. 다작의 작가이다.
그는 복잡하고 기이한 인생을 살았는데, 27세에 이미 신경질환을 자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파리 교외의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가 정신 발작을 일으켜 이듬해 7월 6일 4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대표작으로, 벨아비, 목걸이, 여자의 일생이 있다. 모파상의 작품들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무감동적인 문체의 사용, 이상 성격자나 염세주의적 인물의 등장 등이다. 모파상의 삶과 관계가 있다.
**작품
1) 목걸이(1884년 작품)
마틸드는 매우 사치스럽고 허영심이 많은 여자이다. 다 마틸드는 언제나 항상 상류층의 삶을 동경했다. 루아젤은 기뻐할 아내를 생각하며 파티 초대장을 들고 나타난다.
. 결국 그들은 포래스터 부인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려 파티에 가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왔을 때 목걸이가 사라진 것을 알고 놀란다. 결국 빚을 져 가장 비슷한 목걸이를 3만6천 프랑을 주고 산 뒤 포래스터 부인에게 돌려주었다. 그녀는 빚을 갚기 위해서 닥치는 대로 거친 일을 하고 결국 10년 뒤에서야 모두 빚을 갚았다. 빚을 갚은 뒤에 만난 포래스터 부인은 그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가짜였고 겨우 500프랑밖에 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알려준다.
2) 여자의 일생(1883)
모파상의 장편 중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한 귀족 여성의 평범하고도 고난에 찬 일생을 그 부제가 가리키는 것처럼 <조그마한 진실>로써 사랑과 미움의 근본문제와 대결시킨다.
순진하고 착하게 성장한 여주인공 잔느는 라마르 자작과 결혼하였으나 품행이 난잡한 남편에게 버림을 받아 어두운 인생길을 걷는다. 남편은 식모 로자리에게 임신하게 하고 끝내는 그런 정사(情事) 때문에 죽음을 당한다. 양친과 식객인 숙모와도 사별(死別)한 그녀는 외아들 폴에게조차 버림을 받고 늙은 로자리에게 구원되나 자택도 남에게 넘어가 고독한 일생을 영위한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지친 그녀의 품에는 그녀도 모르는 여자가 낳은 폴의 딸만 남는다.
퇴색한 인생에서 한결 두드러진 것은 욕망과 잔학(殘虐)이다. 그 희생자인 잔느의 모습을 가혹할 정도로 묘사하면서 그 배후에 숨겨진 작가의 따스한 동정은 주목할 만하다.
이 소설의 부제는 ‘보잘 것 없는 진실’이다. 주변의 모든 사람(남편, 아들 등)은 주인공에게 불행만을 남겨주고 떠난다. 마지막 남은 하녀 로잘린이 하는 말이다.
“인생이란 그렇게 행복한 것도, 행복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 말에 모파상은 또 자기의 해설문을 단다.
“우리의 삶이 늘 아룸다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살만한 가치는 있다.”
3) 벨아비(1885)
주인공 조르주 뒤루아는 19세기 프랑스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주인공으로, 무명 청년이었다. 간교한 사교 기술과 빼어난 외모로 사교계의 기반을 닦아 마침내 대부호의 사위가 된다. 장인이 경영하는 신문사의 실권을 장악하고 프랑스 언론에 군림한다.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난 조르주 뒤루아는 알제리 프랑스 자치령에서 군인으로 복무하다가, 유복한 생활을 꿈꾸며 파리로 온다. 처음에는 북부 철도 사무원 자리를 얻어 근근이 보낸다. 어느 날 뒤루아는 길에서 우연히 전우 포레스티를 만나고, 그 덕분에 잘나가는 잡지 《라비 프랑세즈》(프랑스인들의 삶)에 취직한다. 이것을 발판으로 사교계에 진출하여 상류사회의 귀부인을 사귀고 등등, 출세한다.
우리는 흔히 이런 사람을 성공했다고 말한다.
뒤루아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여자들에게 접근한다. 아름다운 남자, ‘벨아미’라는 별명까지 얻은 뒤루아는 자신을 신문사에 취직시켜 준 친구 포레스티에의 아내와 신문사 사장 왈테르 가족에 이르기까지, 자신에게 부와 쾌락, 명예를 안겨 줄 수 있는 여자라면 누구든지 유혹하고 버리기를 반복한다.
벨아미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이루어 나가며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생생히 보여 준 모파상은 결국 선과 악의 경계가 허물어진 인간 사회의 모습을 냉정하게 묘사함으로써 사회 밑바닥에 깔려 있는 인생의 참모습을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