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101장면 - 한국 최초 자동차 광고 대통령상 수상 후 시판된 국산 자동차, 시발
인기멤버
hanjy9713
2024.05.19. 13:10조회 1
댓글 0URL 복사
한국 최초 101장면
한국 최초 자동차 광고
대통령상 수상 후 시판된 국산 자동차, 시발
요약 판매를 목적으로 처음 광고한 시발 자동차. 사장은 최무성, 소재지는 종로구 관수동.
1955년 10월, 창경원에서 있었던 산업박람회에 출품해 대통령상을 받음.
완성 후 국가로부터 공인을 받은 점을 광고에 게재함.
판매 즉시 호응이 좋아 1년에 1백 대 이상씩 생산.
시발 자동차의 이 광고는 판매 직후 <경향신문>에 난 것으로, 한국 자동차 광고의 효시이다. 차 이름은 처음엔 '건설' '재건' 등이 물망에 올랐다고 한다. 지금 이 차는 단 한대도 남아 있지 않다.
한국에서 생산된 자동차 중 판매를 목적으로 맨 처음 광고를 한 자동차는 '시발'이었다. 이 차는 지프 형 4기통 6인승으로, 광고에는 제작처가 국제차량주식회사로 되어 있고, 소재지는 종로구 관수동으로 되어 있다.
사장은 최무성씨, 그는 1955년 국산 엔진 제작에 성공, 차명을 '시발'이라고 정하고, 그해 10월 창경원에서 있었던 산업박람회에 출품하여 대통령상을 받았다.
광고는 그 직후 시판과 함께 서울의 각 일간지에 게재되었다. 중앙에 여성 모델과 함께 '시발'의 모습이 실려 있는 광고 지면은 여지껏 볼 수 없었던 이색적인 것이었다. 자동차 광고라면 일제 때에도 숱하게 있었다. 자동차뿐이 아니라 요즘처럼 각종 부품이나 용품을 선전하는 광고도 매일 실렸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미제 차, 독일 차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한국인이 자동차를 만들어 선전하는 광고가 등장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반신반의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러나 그 차는 엄연히 한국차로 생산된 것이었다.
광고에는 글귀가 많이 들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국 초유의 국산 자동차 시발, 발매 개시'로 되어 있는 타이틀에 자동차 이름은 로고를 그대로 사용했다. 로고는 한글로 '시'자와 '바'자를 쓰고 '바'자 옆에는 'ㄹ'만을 따로 연결했다. 차체에 있는 차 이름도 그렇게 되어 있다.
광고문에는 타이틀에서 강조한 그대로 한국 초유라는 사실에 대해 이렇게 씌어 있다.
"넓은 아세아에 있어서 자동차를 제작하는 나라는 우리 나라를 넣어서 2개국뿐이오니, 이 차를 사용함으로써 반만년 문화민의 자부심을 가집시다."
당시 국내에 있던 승용차는 모두 외제차였다. 포드와 벤츠, 폴크스바겐 등의 차들이 특히 많이 눈에 띄었다. 그런 차들은 대개가 부유층이 소유하고 있었고, 길거리에서 시선을 끌기도 했다. 광고에는 그런 사실을 의식한 글귀도 있다.
"외래 고급차를 보면 세 가지 의아심이 나는데, 첫째로 탄 사람이 면괴(面怪)스럽고, 둘째는 지내 보내는 사람이 불쾌하고, 셋째로 그 유지비가 걱정스러울 지경입니다. 지금부터는 이러한 심정을 일소하게 될 시-발 자동차를 애용합시다."
'시발'은 또한 완성 후에 국가로부터 공인을 받았다는 점을 이 광고를 통해 강조하기도 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이렇게 되어 있다.
"내무부·교통부·상공부 합동 시승회시에 시속 90km 평균 장거리 시승을 마치고, '그만하면 훌륭합니다. 많이 보급시킬 방도를 차립시다'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훌륭하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자동차로서의 주행 능력은 인정을 받은 듯하다. 내무부·교통부·상공부가 합동 시승한 것은 일단 어떤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광고는 구매의욕을 자극하는 다음과 같은 조건도 제시했다.
"지금 이 차를 보급하기 위하여 엔진대가는 사용해보시고 1년 후에 주셔도 무방하다는 주문기간이오니 꼭 시용(試用)하십시오."
그러면서 차의 장점을 다시 이렇게 소개했다.
"자가용은 물론이옵고 영업용 택시로 최적의(最適宜)하옵고, 연료비·유지비가 최소하고, 우리 나라 실정에 꼭 맞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할 말은 다 했을 법한데 맨 마지막에 시선을 끄는 글귀가 또 붙어 있다. 그리고 이 글귀는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해서 인상적이다.
"여러분! 우리 나라를 외국인에게 자랑할 거리를 찾아야 합니다. 우선 이 시-발 차를 타고 여의도 공항장에 나가십시오. 얼마나 외교 의전(外交儀典)에 도움이 될까요!"
당시 국제공항은 여의도에 있었다.
시발 자동차는 미군들에게서 고철을 불하받아 만든 차였다. 그러나 판매 즉시 호응이 좋아 1년에 1백 대 이상씩을 생산해냈다. 생산 이듬해엔 프리미엄이 붙어, 이 차를 사기 위해 계를 들었다가 깨지는 바람에 가정 파탄을 일으킨 여인이 한둘이 아니었다.
연관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