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에서 순수-참여 논쟁이 치열했던 것은 1960년대였다.
반세기 동안 잠들어 있던 망령이 무덤에서 되살아난 격이다.”
원로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이렇게 개탄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보급하는 ‘세종도서’(우수도서) 문학 분야 선정 기준에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순수문학 작품”
이라는 조항이 들어간 데 대한 반응이었다.
사어(死語)가 된 지 오래인 줄 알았던 ‘순수문학’이라는 말이 다시금 주인공이 되어 활개 치는 퇴행적 현실 앞에 문학인들은 할 말을 잊었다.
염 교수에 따르면 ‘순수문학’이라는 말이 처음 나타난 것은 1930년대 후반 유진오와 김동리의 세대 논쟁에서였다. 기성세대 편에 선 유진오가 신진 세대의 대표 격인 김동리와 벌인 논쟁에서 ‘젊은 문학인들이 순수하지 못하다’는 식의 비판을 제기한 것.
그러나 당시 비순수로 몰렸던 김동리가 해방 이후 ‘순수문학’ 진영의 태두가 되어 역사의식과 사회 현실을 중시하는 문인들을 공격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1960년대 순수-참여 논쟁을 대표하는 것은 시인 김수영과 소장 평론가 이어령 사이의 논쟁이었다.
<조선일보> 1967년 12월28일치 이어령의 글 ‘‘에비’가 지배하는 문화’가 발단이었다.
이 글에서 이어령은 문화계가 있지도 않은 ‘정치 에비’ ‘상업주의 에비’ ‘대중의 에비’를 설정해 놓고 그것에 겁먹고 주눅 들었노라며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수영은 <사상계> 1968년 1월호에 실린 ‘지식인의 사회참여’라는 글로써 비판을 가했는데, 그 비판은 사실 이어령만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이어령에 앞서 ‘우리 문화의 방향’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조선일보> 사설이 김수영의 주요 공격 대상이었다.
이 사설이 1967년 한국 사회를 뒤흔든 동백림(동베를린)사건을 언급하면서 “상당수 문화인이 그 사건에 관련되었다는 자체는, 간첩 행위 이상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며
“그 행위의 밑에 만의 일이라도 인터내셔널한 생각이 깔린 소치였다면 이는 관련자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일반 문화인의 성향과 관련시켜 심각히 생각해 볼 일”
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김수영은 특히 분개했다.
작곡가 윤이상과 화가 이응로는 물론 ‘천상 시인’ 천상병 같은 무고한 피해자를 낳은 동백림사건이 당시 박정희 정권이 부정선거 시비를 무지르고자 조작한 사건임은 역사가 밝혀 주었다.
그 일을 두고
“일반 문화인의 성향”
운운하며 협박을 한 <조선일보> 사설은 신은미씨의 책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에 대한 수구 언론의 ‘종북’ 여론 몰이와 그에 따른 세종도서 선정 기준 왜곡의 기원을 짐작하게 한다.
“문화와 예술의 자유 원칙을 인정한다면 학문이나 작품의 독립성은 여하한 권력의 심판에도 굴할 수 없고, 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내가 생각하기에는 오늘날의 ‘문화의 침묵’은 문화인의 소심증과 무능에서보다도 유상무상의 정치권력의 탄압에 더 큰 원인이 있다.”
김수영의 이 글에 대해 이어령은 <조선일보> 2월20일치에 기고한 ‘누가 그 조종을 울리는가’에서
“언론의 자유가 무한대였다는 해방 직후와 4·19 직후의 두 시기에선 아이로니컬하게도 몇개의 격문과 몇장의 삐라 같은 어휘밖에는 추려낼 것이 없을 것 같다”
며 맞섰고, 다시 김수영과 이어령의 반론이 몇차례 이어졌다.
“모든 전위문학은 불온하다.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다”
라는 김수영의 유명한 명제가 이 논쟁 과정에서 제출되었다.
문학인들은 이번 사태가 박근혜 정부의 문화관을 반영한 것이라며 세종도서 선정 사업에 대한 불참과 저항 의지를 밝히고 있다.
그들의 배후에, 김수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