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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서완이 환자복을 벗고 있었다. 물공포증이 다시 시작된 그가 까치집을 진 머리와 까칠해진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연우를 바라보았다.
“퇴원하냐?”
“그래.”
“이젠 괜찮아?”
“뭐.. 그래야지.”
연우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유진씨가 몇 번 찾아왔었어. 내가 너의 안정이 중요하다고 돌려보냈다.”
“잘 했어.”
“유진씨 몸에 다른 사람의 영혼이 들어왔다가 다시 바뀌었다느니.. 그런 건 더 이상 생각 안 해?”
서완이 피식 웃었다.
“가능하냐? 말도 안 되지.. 그 여자 연기에 내가 속은 거야. 자기도 연기하다보니 속이 터질 것 같아서 다시 돌아가려고 그런 연기를 한 거지. 아무 이상은 없었잖아.”
“그래. 아무 이상 없었어.”
“속은 내가 등신이지. 이젠 정신 차렸어. 고맙다.”
“뭘.. 그런데 유진씨랑 지금 당장은 이혼 못하겠더라..”
서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연우를 바라보았다.
****
손님이 조금 뜸한 시간이 되자 주민이 은하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 선배님. 왜 그러세요?”
“너 촌스러워서 더 이상은 못 보겠어.. 아무리 웨이브를 넣고 올려서 묶고 그래도 촌스러운 건 촌스러운 거야.”
“하지만 이 머리가 좋은데.. 지금 제가 손님 머리를 하고 있지도 않고, 샴푸만 하는 걸요.. 지금은 선배님들처럼 스타일이 좋지 않아도 괜찮아요.”
“괜찮기는.. 가만히 있어 봐. 원장님도 그렇게 하라고 하셨어.”
그녀가 인상을 찡그리며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하고 싶어? 짧게? 아니면 염색을 할까?”
“지금 이 머리가 좋다는 녀석한테 뭘 물어? 우리가 바꿔줘야지..”
혜영이 다가와 주민 옆에 서서 거울 속의 은하를 바라보았다.
“음.. 아예 짧게 잘라버릴까?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게?”
“선배님들! 지금 제 머리로 실험하시는 거에요?”
“그래~. 맞다.. 지난 8개월 동안 걱정시킨 벌이야.”
“선배님들..”
“우리들.. 사실 처음에 너 별로 안 좋아했어. 어린 나이에 원장님한테 스카웃되어 왔는데 밝고
일도 잘 하긴 하는데 뭔가 우리한테 선을 그어 놓는 것 같기도 하고.. 너 안 깨어나고
병원에 있었을 때 반성 많이 했어. 언니한테 그런 일 있었는지 우리는 몰랐거든. 미안해.”
“참.. 이거..”
혜영이 파일을 내밀었다.
“이게.. 뭐에요?”
은하가 파일을 받아 펼치고는 눈을 크게 뜨고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지난 8개월 동안 유행한 스타일 모아놓은 거야. 열심히 연습하라고..”
“고맙습니다..”
은하가 눈에 눈물이 고이자 주민이 말했다.
“그 머리로 가야겠다.”
드디어 결정한 주민이 은하의 머리에 분무기로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
병원에서 바로 집으로 온 서완이 놀란 표정으로 유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바뀌어 있었다.
“왔어요?”
유진이 다가와 그에게 인사했다.
“아주머니는?”
“바꿨어요.”
“왜?”
유진이 눈을 들어 매력적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몸이 점점 무거워 질 텐데.. 일주일에 세 번만 오시면.. 제가 한율이를 제대로 돌볼 수 없을 것 같아서요.”
그가 숨을 들이마시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말.. 임신한 거.. 맞아?”
“지금 내가 거짓말 한다는 거예요? 그럼.. 이 배는 어떻게 설명할 건데요?”
그녀가 그의 손목을 잡아 자신의 아랫배에 올려놓았다. 그의 손끝에 볼록해진 배가 만져지자 그가 흠칫 놀라며 손을 떼었다.
“내가 병원에 있는 사이에 다른 놈이랑 바람피워서 생긴 아니는 아니고?”
유진이 입을 떡하니 벌리고 그를 노려보았다.
“지금 제정신이에요? 자기가 그렇게 생각할까봐 몸이 이상하고 생각했을 때 바로 연우씨 병원으로
가서 진찰 받았다구요. 연우씨가 아무 말.. 안 해요? 만식씨 병원에서 기절하기 전에..
이미 임신 중이었다구요.”
그녀는 자신의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기억에 없는 6개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아냈다.
****
“그러니까.. 뭐야.. 내가 기절하고 교통사고 나서 깨어났었다는 말이야?”
서완이 병원에 자진해서 입원한 후 그녀의 친구들과 고급 스파에서 늦은 시간까지 마사지를 받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 하도 연락이 없어서 찾아갔더니 가구도 싹 바꾸고, 헤어, 메이크업도 다 바뀌었더라. 네 손은 불쌍해 봐 줄 수가 없었다니까?”
“하아.. 그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난 기억이 없거든..”
“너, 그 때는 사고 전에 일이 기억이 전혀 안 난다고 했었어~. 우리도 기억 못하더라니까?”
“하하하.. 야.. 너 걸레도 들고 청소했었어.”
“뭐?”
“맞다.. 너 그랬었어. 일하는 아줌마가 누가 보면 친정엄마인줄 알겠더라..”
“그래..?”
친구들의 말에 유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친구가 물었다.
“뭘 어떻게 해?”
“다 들켰다면서.. 네 뱃속의 아이만 아니면 이혼하지 않았을까? 어디 서완씨가 이혼 얘기 꺼내는 사람이니? 네가 입버릇처럼 하면 했지..”
“야.. 이혼하면 8억 준다더라.. 그 돈으로 어떻게 사니?”
“그러게 서완씨가 너한테 푹 빠져 있을 때 잘하지..”
“시끄러워..”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당분간 꼬리 내리고 있어야지 뭐.. 일단.. 아이 낳으면 그 사람 딴 소리 못하게.. 다시 유혹하는 수 밖에 없지 않겠어?”
“가능할까?”
“뭐야? 내 능력을 지금 의심하는 거야?”
“아니.. 너희 부부.. 요즘 엄청 뜨거워 보였거든..”
“요즘? 언제? 내가 구질구질했을 때?”
“응. 네 남편이 너를 그렇게 바라보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았어. 소년이 첫 사랑하는 상대를 바라볼 때의 표정이랄까?”
“그 사람 첫사랑은 나 라니까?”
“알지~. 그런데 달랐다고.. 너를 보는 눈빛이랑.. 아닌가? 그것도 너였으니까.. 어쩌면 서완씨는 그런 스타일이 좋은 건가?”
“그런 스타일?”
“너는 영화 <바람과 함게 사라지다> 에 나오는 비비안 리 같은 느낌이잖아. 화려하지만 어딘지
독해 보이는.. 지난 6개월 동안은 <로마의 휴일> 에 나오는 오드리 햅번 같은 느낌이었어.
수수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스타일말이야. 서완씨 스타일이 햅번으로
변한 게 아닐까? 어쨌든 둘 다 너 인건 맞으니까.. 이번에는 잘 해..”
“햅번..?”
유진이 인상을 찡그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다음 날, 아주머니를 해고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순순히.. 왜 그래?”
“글세요. 한율이가 걱정이 되긴 하지만.. 저도 지금의 사모님은 더 이상 모시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 다른 사람 구하세요.”
그녀는 짜증이 나서 들고 있던 잔을 집어 던졌다.
미용실에 간 유진이 의자에 앉아 원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민이 은하에게 유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CHOi 그룹 둘째 아들이고. 다른 형제들은 외국에서 모기업을 운영하며 지내니까 거의
저 여자 남편이 국내 후계자라고 할 수 있어. 아들이 한 명있어. 아주 똑똑하고 귀엽게 생겼지.
저 여자는 배우출신인데 해외에서 만나서 첫눈에 반해서 결혼까지 초스피드로 했대.”
“아.. 첫눈에 반하는 사랑도 있나봐요.”
“그럼~. 아휴.. 넌 언제쯤 사랑을 해 볼래?”
“관심 없어요..”
“좋을 때다. 관심이 없다니..”
유진이 거울을 통해 일을 하고 있는 은하를 바라보았다. 나중에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네일도 장식은 다 빼고 깔끔하고 여성스러운 스타일로 하고는 계산대에서 원장에게 물었다.
“저기 머리 올리고 있는 아가씨..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아.. 네. 아팠다가 몸이 괜찮아져서 다시 출근한지 몇 달 안 되었습니다.”
“자르면 안 되나?”
“네? 왜요?”
“그냥. 기분 나쁘게 생겼어.”
원장이 기가 막히다는 생각을 했지만 미소 지으며 “글세요.” 라고 대답했다.
“수고했어.”
“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유진이 차에 올라 투명한 유리창에 비친 은하를 바라보았다.
“왜지? 왜 기분이 나쁘지? 재수없게 생겼어..”
“네?”
“출발이나 해.”
“네. 알겠습니다.”
****
지금 유진은 서완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완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있었다.
“그러니까.. 그 때.. 생긴건가..?”
“기억나죠? 우리.. 다시 돌아갈 수 있어요. 나도 열심히 노력할 테니까.. 기회를 주면.. 안 되겠어요? 아빠 없는 아이.. 키우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한율이는요? 엄마 없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요?”
서완의 몸이 떨려왔다.
“일단 미용실부터 다녀와요.. 머리가 그게 뭐에요..”
그가 몸을 돌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아 그가 손을 들어
넥타이를 풀어버렸다. 정원을 가로질러 가는데 뭔가 이상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개집에 강아지가 없었다.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대문을 열고 차에 올랐다. 그리고 연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 확인 했냐?>
“진짜야? 그래?”
<그래. 내가 유진씨 진찰한 후배의사한테 몇 번이고 확인을 했어. 날짜로 따지면 만식이네 병원에서 쓰러지기 전에 이미 임신중이었어. 아마 그래서 그날 기절한 걸지도 몰라. 종종 임신 초기에 기운이 없으니까..>
핸들을 잡은 서완의 손이 떨려왔다.
<인마.. 어차피 이혼할 생각 없었잖아. 생각도 정리를 했고.. 그냥 예전처럼 사는 건.. 어때?>
“일단 좀 씻고..”
<그래. 너 가던 데로 갈 거냐? 내가 그리로 갈게.>
“그래.”
서완이 전화를 끊고 핸들에 이마를 댔다.
****
“자. 눈 떠봐.”
혜영의 말에 은하가 눈을 떴다.
“히익! 선배~. 이건.. 너무 해요~.”
“너무해? 귀엽구만..”
“그래. 어울린다.”
원장이 다가와 그녀의 머리를 봤다.
“귀엽네. 꼬마같긴 하지만..”
“원장님~!”
“일 해.”
“네.”
주민과 혜영이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고는 윙크를 했다. 은하는 한 숨을 내쉬며 손으로 머리를 만지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어색해서 자꾸만 머리에 손이 갔다.
“은하씨~. 샴푸 좀 부탁해요.”
“네. 이쪽으로 오세요.”
그녀는 여자 손님을 의자에 눕히고 샴푸를 시작했다.
****
차를 세운 서완이 차에서 내렸다. 주위에서 웅성거렸다. 아마도 그의 스타일이 너무 안 좋아서
그런 듯 했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은 머리도 아프고, 정신도 없었다. 얼른 머리 감고
단정해진 모습이 되어야 생각이 정리될 것 같았다. 퍼머를 하신 여성 고객님의 샴푸를 마친 은하가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미용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인사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새로운 손님이
오신 것 같아 차렷 자세로 서서 문 쪽을 바라보았다. 서완이 들어와 혜영언니의 안내로 의자에 앉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머리를 갸우뚱했다.
“어디에서 본 것 같은데..”
주민이 다가와 그녀 옆에 섰다.
“아.. 저 남자? 지난 번에 왔던 여배우.. 왜 남편이 CHOi 그룹 둘째아들이라는..”
“아.. 그 분이에요?”
“응. 넌 처음 보나? 아닐 텐데.. 너 샴푸 편하게 잘 한다고 저 분이 너 계속 찾았었어.
네가 없어서 그 동안 내가 했잖니.. 어찌나 까다롭게 구는지.. 오늘은 보아하니 한 3개월은
머리를 안 감은 것 같네.. 오늘부터 네가 해 주면.. 안 될까?”
“제가요?”
은하가 깜짝 놀라 주민선배를 바라보았다.
“싫어?”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그런데 왜 3개월씩이나 머리를 안 감으셨을까요?”
“물공포증이 있대나 뭐래나..”
“아.. 그렇군요.. 그럼 최대한 빨리 해야겠네요?”
“그렇지. 하지만 저렇게 떡진 머리를 어떻게 빨리 하니? 샴푸 시간이 조금만 길어도 그냥 일어나 버리니까.. 수고 해.”
“네..”
은하는 고개를 돌려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손을 들어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은하씨.. 샴푸 좀..”
은하가 손을 내리고 혜영을 바라보았다. 서완이 의자에서 일어나 은하를 바라보았다. 서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 이족으로 오세요.”
은하가 예의 미소를 지으며 그를 샴푸의자로 안내했다.
주민이 “수고해~.” 라고 말하고는 윙크를 하고 다른 곳으로 갔다. 그가 샴푸의자를 바라보았다.
“앉으세요.”
“네..”
그의 낮은 목소리를 듣는데 갑자기 심장이 크게 뛰었다.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쉬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가 선뜻 앉지 못했다.
‘아.. 물공포증이 있다고 했지?’
그가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다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의자에 결연한 표정으로 앉았다.
“되도록 빨리 부탁드립니다.”
“네.”
그의 짧은 대답에 다시 심장이 크게 한 번 뛰었다. 그녀는 숨을 다시 크게 들이마셨다.
그가 의자에 누웠다. 눈을 질끈 감고 있었고, 손잡이를 잡은 손은 힘을 너무 줘서 손잡이를
부셔 버릴 것 같았다. 그의 몸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물을 틀기 전에 조용히 말했다.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지는 않을게요. 눈에 물 안 들어가게 잘 감겨 드릴 테니까 눈 뜨고 뭔가 집중할 수 있는 걸 바라보세요. 속으로 양을 세셔도 괜찮아요. 그 양이 백 마리가 되기 전에 끝내드릴게요.”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뭐라고요?”
은아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이 무서우시죠?”
“...”
“최대한 빨리 끝내드릴게요. 안심하세요. 눈을 감고 계신 것 보다 뜨고 계시는 편이 더 괜찮으실거에요.”
그는 대답대신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천천히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키는 160도
안 되게 작고, 볼륨이 전혀 없는 통나무 몸매.. 짧은 머리는 골드브라운 색으로 밝게 염색되어 있었다.
하얀 얼굴, 화려한 색조화장대신 붉은색 틴트만 하고 있었다. 그녀가 안심하라는 듯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는 샤워기 물을 틀었다. 그가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끌어안고 괜찮을 거라고, 내가 있으니 안심하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미쳤나봐.. 심장은 또 왜 이래?’
그녀는 긴장하는 그를 위해 최대한 빠른 속도로 그의 머리를 감겨주었다. 수건으로 그의 머리를 감싸고
그가 일어나도록 도와주고 머리의 물기를 털어주었다.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가 일어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혹시..”
그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자 그녀는 가슴에 통증이 찾아왔다.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전에 여기에서 일하셨던 그 분.. 맞죠?”
“네..?”
“샴푸.. 편하게 잘 해 주셔서 마음에 들었는데 그 후로 안 계시더라구요. 어디.. 갖다 오셨습니까?”
은하는 점점 숨쉬기가 곤란해졌다. 오른 손으로 주먹을 만들어 가슴을 콩콩 때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괜찮아요? 안색이 창백한데..”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하다가 정신이 흐릿해지는 걸 느꼈다.
“숨 쉬기가.. 좀.. 가슴이 아파서..”
그녀가 바닥에 쪼그려 앉으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막 문을 열고 연우가 들어왔다. 서완이 은하 옆에 쪼그려 앉아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아요?”
연우가 달려와 서완과 함께 있는 여자를 살폈다.
“뭐야? 왜 이래?”
“몰라. 갑자기 숨 쉬기 힘들다면서..”
“일단 좀 눕혀야겠는데.. 여기 누울 수 있는 곳이 있습니까?”
“네. 저희 락커룸에요.”
서완이 은하를 안아들었다. 그리고 연우와 함께 주민이 안내하는 락커룸에 들어가 은하를
마루바닥에 눕혔다. 연우가 기절한 은하의 가슴에 귀를 댔다. 그리고 눈꺼풀을 벌리고 눈을 확인하고
숨쉬는 것도 확인했고, 턱 아래에 손끝을 대고 손목시계를 바라보며 맥박을 확인했다.
“왜 그래요? 병원에 가야 할까요? 구급차 불러요?”
주민이 연우에게 물었다. 연우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혹시 찬 물수건 좀 만들어 주실 수 있어요?”
“네.”
주민이 락커룸을 나갔다. 서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은하를 바라보았다. 연우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눈썹을 조금 올렸다.
“어라? 그 아가씨네?”
“응? 너 아는 아가씨냐?”
“너 기억 안 나냐? 만식이 병원에서 만났었잖아. 내 타입이라고 말하니까 변태라고 해놓고는? 기억 안나?”
서완이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하긴.. 그 때 정상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왜 기절한 거지? 지금은 정상인데..”
“몰라. 자꾸 숨을 크게 쉬더라고.. 그러더니 가슴이 아프다면서 바닥에 주저앉았어.”
“아.. 혹시 모르니까 병원에 와서 검사 좀 받아 보라고 해야겠다. 저는 가서 머리나 말려라. 어떻게 잘 감겨주던?”
서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편하게 감겨주던 직원이었는데 그 동안 안 보이더니.. 병원에 있었구나..”
주민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찬 물수건 좀 이마에 올려주시고요. 시원하게 해 주세요. 깨어나면 여기 병원으로 한 번 오라고 좀 전해주시고요. 검사 받아봐야 한다고..”
연우가 자신의 명함을 주민에게 건네주었다.
“네.”
주민이 대답을 하고 명함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머리 말려드릴게요. 이쪽으로 오세요.”
세 사람이 밖으로 나갔다.
“죄송해요. 몸이 워낙 허약한데다가 혼자 살아서 잘 못 먹는지 요즘 좀 마른다 싶었는데.. 저희 직원 때문에 놀라셨죠?”
원장이 서완에게 말했다. 서완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혼자 살아요? 지방에서 올라왔나?”
연우가 물었다.
“아니에요. 가족이 없어요.”
“아..”
연우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 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원장이 서완을 바라보며 말하고는 몸을 돌려 연우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한 게 없는 걸요. 깨어나면 병원에 한 번 꼭 오라고 전해주세요.”
“네. 그렇게 할 게요.”
“저 분이 다른 곳에 안 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편하게 잘 했습니다. 자주 올 테니까 몸 조심 하라고 전해주세요.”
“네. 그렇게 할 게요. 감사합니다.”
연우가 다시 들어가 아직 깨어나지 않은 은하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기다리고 있는 서완에게 갔다.
“가자.”
“그래.”
두 사람이 샵을 나섰다.
“어디로 갈 거냐?”
“일단은 회사로. 그 동안 비워뒀으니까.”
“그래. 무슨 일 있으면 전화 해.”
“그래. 고맙다.”
“나중에 갚아.”
두 사람은 피식 웃으며 헤어졌다. 서완이 고개를 돌려 미용실을 바라보았다. 깨어났는지 일어난
은하가 직원들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주먹 쥔 오른 손을 들어 입을 가리고
웃음을 터트리는 은하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한 남자직원이 다가가 그녀의 짧은 머리를
손가락으로 흐트러뜨렸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끼며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정신 차려.. 그 여자가 연기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고.. 이러지 말자.. 다시 병원에 입원하기 싫으면..”
그가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그의 차를 바라보자 그녀는 기분이 우울해졌다.
“밥 좀 제대로 챙겨 먹어. 성윤씨는 도대체 뭐하는 거야?”
은하가 고개를 돌려 혜영을 바라보았다. 은하가 인상을 조금 찡그렸다.
“그 사람 얘기가 왜 나와요?”
“약혼자라면서..”
“아니에요. 저를 돌보기 위해 거짓말 한 거래요.”
“멋있다~.”
여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결혼해 버려. 그런 남자가 흔하니? 완전 순정파다..”
“고맙게는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고마운 마음으로 결혼할 수는 없잖아요.”
“하여간 복을 발로 차고 있어..”
“하긴..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사랑은 사랑이고..”
“월급 받으면 조금씩이라도 갚으려구요.”
“순정파던데.. 불쌍하다..”
“참.. 이거..”
주민이 명함을 은하에게 건네었다.
“가서 검사 받아 봐. 아까 너 정말 이상했어.”
“네. 그럴게요. 죄송했습니다.”
“오늘 일이 끝나면 다 같이 저녁 먹을까? 저 녀석 좀 먹일겸?”
석주의 말에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은하가 미소를 지었다.
****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간 서완은 자신을 향해 달려와 안기는 한율이를 안아들었다.
“한율아..”
“아빠. 이젠 안 아파요?”
“응. 언제 왔어?”
“유치원 끝나고 왔어요.”
“그랬어?”
“다녀왔어요?”
한율이가 보고 있어서 그가 “응.” 이라고 간단히 대답했다.
“저녁은요?”
“먹고 왔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유진과 함께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자기 오면 나가서 먹으려고 했는데..”
그가 한율이를 바라보았다. 기대하고 있었던 한율이가 고개를 숙였다.
“준비하고 나와. 나가서 먹지.”
“정말요?”
그가 한율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야호~.”
한율이가 방에 들어가 외출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 거에요?”
유진이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지금은.. 이대로 있지. 낮의 이야기는 나중에.. 이야기 하고.”
유진의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어렸다.
“노력할 게요. 자기도.. 노력해 줘요.”
그의 턱이 단단해졌다. 그가 그녀를 바라보지 않고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용실 다녀 왔나봐요. 멋있어졌네.. 우리 자기..”
그녀가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만지려고 하자 그가 고개를 돌렸다. 유진이 손을 내리며 기분나쁜 표정을 지었다.
“외출준비해서 나올게요.”
“한율이랑 차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네.”
그는 준비를 마치고 나온 한율이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한율아.. 강아지가 없어져서 서운하지 않아?”
“네. 엄마 뱃속에 아가가 있대요. 강아지가 아가한테 안 좋대서 그러자고 했어요.”
그가 숨을 들이마셨다. 하지만 한율이에게 그녀를 나쁘게 말하면 안 되기에 참았다.
“뭐 먹으러 갈까?”
“지난 번에 엄마랑 셋이 갔던 레스토랑에 가면 안돼요?”
그가 움찔했다.
“아빠는 다른 데 갔으면 좋겠는데.. 안 될까? 거기보다는 연우삼촌이랑 예전에 갔었던 레스토랑은 어때?”
“좋아요.”
“미안해.”
한율이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는 운전석에 오르며 한 숨을 내쉬었다.
‘뭐하는 짓이냐..’
잠시 후 유진이 차에 오르자 그가 차를 출발시켰다.
****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가면 어디가 덧나? 옷에, 머리에 냄새 다 배겠네.”
혜영이 투덜거렸다. 석주가 집게에 삼겹살을 집어 혜영의 입가에 가져가자 혜영이 성질을 내며 집게를 밀어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은하가 웃었다.
“맛있냐?”
“네. 맛있어요.”
“소화가 안 될 수 있으니까 먹고 이거 먹어.”
주민이 약봉지를 건네었다.
“선배님..”
“왜.. 또 감동했냐?”
“네.”
은하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먹어. 그리고 병원 갈 때 같이 가자.”
“네? 왜요?”
“야.. 그 의사선생님.. 멋지더라... 그냥 궁금해서.”
“알았어요. 선배님들도 많이 드세요.”
지글거리는 불판위에서 삼겹살이 맛있게 익어가고 있었다.
****
서완은 맛있게 먹고 있는 한율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는 왜 안드세요?”
“별로 생각이 없어서. 먹고 왔다니까.. 한율이 많이 먹어.”
“네. 그런데 아빠. 엄마 스테이크..”
“응.. 알았어. 스테이크 썰어 줄까?”
서완이 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
서완이 유진의 접시를 가져가 스테이크를 썰었다.
‘이러지 말자. 이런 일에 다시 3개월 전으로 돌아가면 곤란해..’
그는 턱에 힘을 주고 스테이크를 다 썰고 다시 유진 앞에 내려놓았다.
“고마워요.”
“뭘..”
그가 고개를 들어 유진을 바라보았다. 유진이 그를 바라보며 “왜요?” 라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천천히 먹어.”
“네.”
그녀가 천천히 스테이크를 먹었다. 그러면서 한율이를 바라보고 있는 서완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나보지? 이혼은 나중에 말하자는 게 무슨 뜻일까? 당장 이혼할 것 같더니.. 설마.. 이 아기가 신경쓰여서..?’
그녀가 생각없이 와인잔을 들자 그가 그녀의 손에서 와인잔을 뺏었다.
“정신 차려.”
“네.”
그녀는 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래.. 이 아기 때문이구나? 아기 낳고 이야기 하자는 뜻인가? 당신 뜻대로는 안 될거야. 내가 그렇게 안 만들어..’
“한율아 천천히 먹어야지..”
그녀가 냅킨을 들어 한율이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았다. 그리고 그 냅킨을 더러운 듯 멀리 내려놓았다. 그 모습 하나 하나를 바라보던 서완은 머리가 아파왔다.
****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서완은 한율이를 씻기고 재웠다. 그리고 다시 외출을 하려고 구두를 신었다.
“어디 가요?”
“그냥.. 바람 좀 쐬고 올게. 먼저 자.”
“조심하세요.”
“응.”
그가 그녀를 바라보지 않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가 차에 올랐다.
****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은하가 선배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택시 잡아 줄게. 가자.”
“아니에요. 오랜만에 너무 많이 먹었나봐요. 좀 걸어가다가 택시 탈게요. 여기에서 얼마 안 멀어서 괜찮아요.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그래. 내일 보자.”
“네.”
선배들이 택시를 잡아타고 가는 걸 본 은하가 걸음을 옮겼다.
“기분이 우울하네.. 우울할 땐? 역시 초콜릿이지..”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
그는 차를 세우고 수진이가 하는 커피숍에 들어갔다.
“어? 오빠. 오랜만이네? 병원에 있었다면서.. 괜찮아진 거야?”
“그래. 커피 좀 마시자.”
“더치?”
“응.”
“차갑게 아니면 뜨겁게?”
“차갑게..”
“잠깐 기다려.”
그가 자리에 앉았다.
“장사는 잘 되니?”
“그렇지 뭐. 한참 초콜릿 사가더니.. 초콜릿이랑 같이 줄까?”
“안 먹어.”
“알아. 오빠는 초콜릿 안 먹는 거.. 그런데 6개월 동안 주구장창 사가서 이상하다 생각했었지. 한율이 준 거야? 아니면 오빠가 사랑하는 아내?”
“오늘 따라 말이 많다..”
“치.. 잠깐 기다려.”
주인이 직원에게 주문한 내용을 말했다.
****
고개를 든 은하가 커피향기에 걸음을 멈추었다. 간판을 보니 커피도 팔고, 초콜릿도 파는 커피숍 같았다.
“같이 먹을까? 맛있나?”
그녀는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은하가 계산대에 가서 섰다. 진열장을 바라보던 그녀가 물었다.
“이건 얼마에요?”
“이쪽은 2500원이고요. 이쪽은 2800원이에요.”
“한 개에요?”
“네.”
“비싸다.. 하지만 맛있어 보인다..”
“세트도 있어요.”
“커피랑 초콜릿이랑 세트로 먹으면 맛있어요?”
그녀의 말에 서완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미용실에서 정신을 잃었던 그 직원이었다. 수진이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네. 찾는 손님들이 많으세요. 세트로 드릴까요?”
“음.. ”
그녀가 생각하고 있는데 서완이 주문한 더치커피가 나왔다. 직원이 그녀를 지나쳐 가자 향긋한 향기가 코 안으로 들어왔다.
“저건 무슨 커피에요? 향기가 다른 커피보다 더 좋은 것 같은데..”
“더치커피에요. 찬 물에 천천히 추출하는 커피죠. 더 향긋하고 카페인도 적은 편이라 요즘 많이들 찾으세요.”
“그럼 저도 저걸로 주세요. 더치커피랑 초콜릿 세트요.”
“찬 거랑 따뜻한 거 있는데 어떤 걸로 드릴까요?”
“음.. 따뜻한 거.. 아니 찬 걸로 주세요.”
“네. 8000원입니다.”
“흡!”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는 은하를 바라보며 수진이 미소를 지었다.
“네. 더치커피가 좀 가격이 있어요.”
“그래도 마실래요. 여기요.”
그녀가 만원자리를 내밀었다. 거스름돈을 받고 몸을 돌린 그녀가 흠칫 놀랐다. 서완이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심장이 한 번 크게 두근거렸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그래요.. 반가워요. 몸은 좀 어때요?”
“네.. 괜찮아요. 놀라셨죠. 죄송했습니다.”
“아니에요.”
그의 낮은 목소리에 그녀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가 미쳤나? 가정이 있는 남자한테 가슴이 왜 두근거리지?’
그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미쳤구나.. 자꾸 이 여자에게서 유진의 흔적을 찾으면 어쩌자는 거야..’
“제가 삼겹살을 먹어서요. 냄새가 나서 저는 저쪽에 앉을 게요. 그럼..”
그녀가 더 이상 같이 있으면 다시 기절할 것 같아 빨리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려 그에게서 최대한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가슴 위에 올려놓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쉬었다.
“주문하신 세트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웃으며 직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초콜릿을 입에 넣고 미소를 지으며 발을 동동거렸다.
“음.. 맛있다..”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그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빠.. 커피도 안 마시고 벌써 가려고?”
주인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고 성큼성큼 커피를 마시고 있는 은하에게
다가갔다. 은하는 고개를 들어 다가온 사람을 보고는 흠칫 놀라 사래에 들렸다. 콜록거리며
냅킨을 찾은 은하가 냅킨으로 입을 막자 그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왜 이러세요?”
냅킨에서 입을 떼고 은하가 그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는 대답대신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는
그녀를 데리고 가게를 나왔다. 끌려가며 은하가 그를 바라보았다.
“손님. 왜 이러세요?”
가까운 공원에 도착한 그가 멈칫하고 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손목을 놓았다.
“아..”
그가 천천히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미안합니다.”
은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제가 뭘 잘못했나요?”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왜..”
“자꾸 누가 생각이 나서..”
“가정도 있으신 분이.. 이러시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는 인상을 약간 찡그리며 그에게 실망했다는 듯 말했다.
“설마 제가 첫사랑을 닮았다고 말씀하시는 거라면.. 사람 잘 못 보셨어요. 일단 그런 말에 저는
안 속아요. 그리고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셔서 그래요. 아내분이랑 아드님에게나 잘 하세요.
이번 일은 없었던 일로 해 드릴게요. 그럼..”
그녀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첫사랑 아니라 사라진 아내를 닮았다면..”
은하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사모님이 계시던데.. 그것도 엄청 미인이신.. 저희 미용실에 오셔서 네일도 받으시고,
헵번 스타일로 헤어도 하고 가셨어요. 멀쩡히 계신 분을..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첫사랑 닮았다는 말보다 더 어이가 없네요. 저는 8000원이라는 거금을 들인 거라
커피랑 초콜릿 먹으러 가야겠어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그녀는 다시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심장이 괜히 두근거렸네. 뭐 저런 남자가 다 있어? 세상에서 제일 싫어. 가정을 우습게 생각하는 저런 남자.”
그녀는 커피숍이 보이자 혹시 치웠을까봐 깡총거리며 뛰어 갔다.
공원벤치에 앉은 그가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분명히 유진인데..”
그가 얼굴을 손에 묻고 어깨를 들썩였다.
*****
가게안으로 들어가자 주인이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은하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을 착각하셨나봐요. 죄송하다고 하셔서 괜찮다고 하고 오는 길이에요.”
“아.. 죄송해요. 오빠가 안 그랬는데, 뭔가 힘들었나 병원에 스스로 입원해서 3개월 동안 있었거든요.”
“아.. 네..”
은하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를 했다.
‘정신이 조금 이상하구나.. 그럼 뭐.. 이해해야지.. 아이고.. 부인이 힘들겠다..’
그녀는 다시 커피와 초콜릿을 음미하며 먹었다.
“행복하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그가 앉았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주문한 커피는 한 모금도 안 마신 것 같았다.
“아깝게..”
주인이 그의 테이블을 정리했다. 은하가 주인에게 손을 들고 물었다.
“저기요..”
“네, 손님.”
“그거 버리실 거예요?”
“그렇죠.”
“그럼.. 제가 마셔도 될까요?”
“네?”
“처음 마셔보는데 향도 좋고.. 맛있어서요.”
“그러세요. 오빠가 입도 안 댄 거니까..”
“네. 감사합니다.”
은하는 그의 커피까지 다 마시고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 행복한 표정으로 걷다가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스스로 병원에 입원할 정도면.. 뭔가 엄청 힘들었나보다.. 다 갖은 것 같은 사람들도 고민이 있구나.. 돈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안 됐네. 멀쩡해 보이던데..”
그녀는 뒷짐을 지고 깡총거리며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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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서완이가 은하를 조금은 알아보는것 같은데... 맘이 넘 아파요 잘됐으면 좋겠는데....
이런. . 너무 아파하지는 마세요. .^^
완결 소설을 뒤늦게 읽고 있습니다만
두사람의 새로운 인연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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