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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4일 오후 6시경, 중앙응급의료센터 윤한덕 센터장이 집무실 의자에 앉은 채 숨진 상태로 발견됐
다. 고액 연봉이 보장되는 임상의사 자리를 마다하고 걸어온 17년 외길을 그처럼 쓸쓸하게 마감한 것
이다. 그의 아내는 설날을 맞아 함께 귀향하기로 한 남편이 주말 내내 연락도 없이 귀가하지 않자 병
원으로 찾아와 경비원과 함께 집무실로 찾아갔다가, 싸늘하게 식은 남편의 시신을 보게 되었던 것이
다. 동료들이 윤 센터장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2월 1일 오후 8시경, 함께 저녁식사를 마치고 헤어질
때였다. 이후 그는 설 연휴를 맞아 전국 재난응급의료상황실을 점검하기 위해 남아 있다가 과로로 인
한 급성 심장마비로 숨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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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덕 센터장은 아주대병원의 이국종 박사와 함께 우리나라에 응급의료 시스템을 정착시킨 양대 기
둥이다. 특히 그는 모든 의사들이 꺼리는 중앙응급의료센터를 맡아 국내 응급의료 인력과 설비를 총
괄해왔다. 지난 6년 동안 국내 응급의료 분야를 총괄 지휘하면서 닥터헬기를 도입한 것도 윤한덕의
업적 중 하나다. 중앙응급의료센터는 전국 각 병원의 응급실 532곳과 권역외상센터 13곳을 총괄 지
휘하는데, 윤 센터장은 이날도 명절에 대비하여 환자들을 골고루 분산시키고 돌발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시스템을 마지막으로 점검하기 위해 남아 있다가 불의의 변을 당했던 것이다. 전국 대형병원의
이해타산에 가로막혀 상굿도 권역외상센터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은 시점에서, 선장을 잃은 국내 응
급의료 분야의 장래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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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의 「골든아워」는 3월에 사기 위해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책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다가 윤
한덕 센터장이 급서했을 때 누구보다 이를 안타까워하는 이국종의 인터뷰 장면을 보고 급하게 날짜
를 앞당겨 책을 샀고, 이미 내용을 축약해놓은 다른 책들을 제치고 먼저 소개하게 되었다. 이국종은
「골든아워」의 한 단락을 윤한덕의 공적으로 채워놓았다. 뒤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응급처치 때 사
용하는 골든타임은 잘못된 용어로 골든아워가 맞다. 타임은 시각을 뜻하는 말로 12시 정각 등을 가리
킬 때 사용하는 용어고, 아워는 5분 이내처럼 일정하게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골든타임이란 몇 시에
심장이 멎었든 12시 정각까지 살려내야 한다는 뜻이니, 왜 잘못된 용어인지 분간이 될 것이다. 반면
에 ‘제사는 새벽닭이 울기 전에 마쳐야 한다’고 할 때, ‘새벽닭이 우는 시각’이 바로 골든타임이다.
내가 이국종이란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덴만의 여명작전 때였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아덴만
의 여명작전이란 2011년 1월 대한민국 해군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삼호 주얼리호와
선원 21명을 구출한 긴박한 작전이다. 구출 과정에서 해군 장병이나 선원들의 희생은 없었지만, 선원
들을 진두지휘하여 해군의 작전을 도운 주얼리호 선장 석해균이 복부에 총상을 입고 생명이 위독한
상태에 있었다. 급보를 받은 이국종은 현지로 날아가 석해균에 대한 응급조치를 마친 뒤, 본인 책임
하에 에어 앰뷸런스를 빌려 아주대병원으로 후송함으로써 가까스로 석해균의 생명을 구해냈다. 이때
기자들이 이국종을 영웅이라며 추켜세우자, 그는 ‘영웅은 내가 아니라 석해균 선장’이라며 의사로서
겸양의 미덕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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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은 중증외상 환자 치료 전문의다. 그가 이끄는 아주대병원 중증외상 의료팀은 국내 최고 수준
의 사명감과 실력을 지닌 아주 특별한 의료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국가로부터 권역외상센터 허가를
받은 다른 대형병원들이 돈에 눈이 멀어 눈속임으로 외상의료팀을 운영하거나 응급환자의 치료를 거
부하는 마당에, 이국종 팀은 홀로 외롭게 세속의 명리에 맞서 싸우고 있다. 이 나라 정치인과 공직자
들은 국민의 이목이 쏠릴 때만 잠시 관심을 보이는 척하다가, 여론이 잠잠해지면 언제 그런 일이 있
었냐는 듯 중증외상 환자 치료를 외면한다. 잘못되면 책임만 돌아오고 생기는 건 없는 귀찮은 분야이
기 때문이다. 중증외상 환자 대부분이 말단 노동자들이어서 정부와 기업은 물론 민주노총 같은 권력
형 사회단체들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아주대 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이국종이 중증외상 환자 치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
003년 미국 UC 샌디에이고 의과대학병원 외상센터와 2007년 영국 로열런던병원 외상센터에서 연수
를 받은 이후부터였다. 이국종은 이들 두 의료선진국의 체계적인 중증외상 환자 치료 시스템과 의료
인들의 사명감을 체험하면서 깊은 감명을 받아 이 제도를 국내에 도입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그는 미
국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뒤 2005년 논문 <중증외상센터 설립방안>을 발표하여 시스템 도입에
적극 힘을 쏟기 시작했다. 이 논문은 국회에서 중증외상센터 관련 법안을 만들고 정부에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기초자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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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현장으로 출동하기 위해 헬기장으로 향하는 이국종
다행히 아주대학교병원이 이국종의 취지를 받아들여 2009년 중증외상특성화센터를 설립하고 팀을
구성했다. 2011년 아덴만의 여명작전으로 중증외상 환자 치료의 특수성과 중요성이 세상에 알려지자
정치권과 정부는 그제야 큰 관심을 보이며 2012년 전국 거점지역에 중증외상센터를 설립하고 국가가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한다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등 부산을 떨었다. 그러나 전국 대
부분의 중증외상센터들은 대의명분과 정부 예산지원을 받기 위해 형식적으로 참여했을 뿐 치료에 적
극성은 보이지 않고 있다.
「골든아워」는 제1권 440페이지 59항목, 제2권 394페이지 43항목의 의료칼럼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격 때문에 400페이지가 넘는 책은 되도록 사지 않으려 했는데, 이 책은 이국종의 양해 덕분인지 각
권 1만 5800원으로 다른 책에 비해 값이 싸다. 제1, 2권 102항목 가운데 제1권 17번째 항목인 <윤한덕
>부터 먼저 소개한다. 윤한덕은 지난 설 연휴기간 마지막까지 국민을 위해 헌신하다 서거한 국립중
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었다. 연봉 많고 편한 자리인 임상의사 자리를 마다하고 험한 일을
자발적으로 떠맡은 윤한덕‧이국종 같은 분들 덕분에 OECD 국가 중 부패지수 1위인 대한민국이 그나
마 망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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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이미 중증외상 환자 치료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는 아주대병원이 정부의 중증외상센터
지정에서 탈락했다. 이국종과 팀원들은 실의에 빠져 진로를 고심하고 있었다. 이때 동아일보의 한 여
기자가 이국종을 찾아와 외상외과 의사로서 겪어온 일들을 책으로 써보라고 권했다. 이국종이 생색
을 내고싶지 않다며 거절하자, 그 기자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긴다면 그 헌신이 잊히지
않도록 기록으로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며 책을 내야할 필요성을 일깨워주었다. 이 책은 이국종이 그
조언을 받아들여 3년 동안 시간 날 때마다 기록해둔 의료보고서다. 무능한 관료들의 복지부동, 동료
의사들의 질시와 모함 등에 맞서 홀로 외로이 싸우면서 오직 환자들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아끼지 않
는 이국종의 존경스러운 자취를 함께 따라가 보자.
2019. 2. 11. 17:17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갈등과 분열의 사회상 속 참으로 돋보이는 의료봉사에 소개된 기사는 빼놓지 않고 신문을 읽고 있습니다. 이런 참된 사명감을 바탕으로 한 사람들 의 여정은 늘 죽음이란 큰 희생이 되어야 알려지는게 안타까울 뿐 입니다. 이국종의 전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