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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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름은 김정환입니다.
지금 전 압구정동 한 커피숍안에 들어와있습니다.
편안한 분위기에요.
이 공간을 메우는 편안한 뉴에이지 배경음악과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제갈길을 가는 사람들.
내 앞에 놓여있는 김이 올라오는 짙은 고동색의 따뜻한 블랙커피.
그리고 지금 저와 마주보고 앉아있는 이 예쁘고 순수한 얼굴을 가진 여자.
이름은 이 인경이라고 하네요.
그렇습니다.
전 지금 소개팅자리에 나와있습니다.
이여자 저와 마음이 잘 통하는것 같아요.
내숭없이 성격도 털털하고 솔직하고 얼굴도 청순한 미가 흐르는 게 제가 언제나 꿈꿔왔던 여성상이죠.
흥미있는 주제들도 비슷해요 . 그래서 이제 겨우 30분 조금 못되게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매우 즐거워요.
마치 처음 봄나들이를 나선 기분이랄까요.
눈 웃음이 서글서글해서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여자입니다.
만난지 얼마 안되었지만
뭔가 오랜 친구를 만난듯 편한느낌이에요 .
저 이여자와
잘될것 같은 느낌입니다.
" …………. "
대화가 잠깐 끊긴 상태라, 커피만 내려다보고 있어요.
까맣지만 , 속이 약간 보이는 투명한 빛의 블랙커피 .
적막감만이 흐르던 우리 둘 사이에 어색함을 느껴버린 저는
그 컵 옆에 놓여있던 티스푼을 들어 가만히 커피를 저어봅니다.
" ...... 저기요 , 정환씨."
제 손짓에 따라 생기던 작은 커피잔 속 소용돌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중에
제 이름을 부르는 인경씨의 목소리가 제 귀에 와 닿습니다.
인경씨의 부드럽고 나근나근한 목소리에 살짝 고개를 들어 인경씨의 눈을 쳐다봅니다.
편한 눈웃음을 지으며, 인경씨는 이런질문을 던졌습니다.
" 실례가 안된다면 정환씨의 예쁜 첫사랑얘기 듣고 싶은데 … 해주실수 있으세요? "
첫사랑이라 ….
진부하지만 아름다운 , 아련한 그리고 어쩌면 슬플지도 모르는 모두가 가지고 있는 추억거리.
갑작스레 튀어나온 '첫사랑'이라는 단어에 살짝 당황했었던 저는
인경씨의 귀여운 거절할 수 없는 부탁에 절로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습니다.
" 그러니까 …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얘기에요."
목청을 큼큼 가다듬곤 , 입을 열어 저는 그렇게
제 머리 한 구석에 박혀있는 낡은, 하지만 또렷한 추억거리 하나를 끄집어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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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릴 때, 몸이 좀 약했어요.
아아 , 심각한 병은 아니었습니다 .
흔한 폐렴에다가 맹장이고 뭐고 겹치는 바람에 한 이주일 입원했었습니다 .
그 때는 참 하느님이 미웠죠. 설상가상이란 말이 그 때 딱 어울렸죠.
아무리 별 거 아닌 병치레라도 한꺼번에 여러개가 불쑥 찾아오니 거 참 힘들더라구요.
제 첫사랑은 , 아마도 그 때 병원에서 만난 그아이였던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하느님이 그 아이를 만나게 해주려고
병균들을 조금 더 일찍 앞당겨서 내게 보내지 않았나 한다니깐요.
옆호실에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재활치료를 받던 그 아이.
옆호실에서 날위해 성하지도 않던 다리로 매번 내 병실로 와주던 그아이 .
그아이는 하얀피부에 , 빨간 입술 , 까만 머리가 인상적인 아이였어요.
눈까지 내려온 긴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눈웃음도 좋았어요.
무엇보다도
아파서 밖에 나가 놀지도 못하는 마음에 괜한 투정을 그 아이에게 부릴 때면 ,
제게 성질이나 화를 내기는 커녕
실없이 웃음을 짓곤 그 다리로 절뚝거리며 절위해 솜사탕을 사주던 그 다정함이 좋았어요.
제가 병원의냄새와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서 , 소극적이던 때에 절 놀아주었던 유일한 아이에요 .
절 위해 빨간색 , 파란색 풍선을 불어주었고 ,
병원밥이 싫다고 투정부릴때면, 몰래 나가 빵을 사다주었죠.
물론 그다리로말입니다.
"정환이 위해 나 다시 달릴수있게 열심히해야겠다! " 라고 하며
웃는 그아이가 좋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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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쑥스러운 마음에 얘기를 하는 동안 인경씨의 두 눈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얘기를 끝마치고 앞을 다시금 바라보니
인경씨가 살짝 눈에 눈물을 머금은채 웃네요 .
… 되게 여린여자군요 . 예뻐요 .
곧 인경씨가 그 예쁜 눈꼬리에 맺혀 반짝이는 눈물방울들을 손등으로 훔쳐내곤 다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엽니다.
" 그 분과 헤어진게 참 안타깝네요. "
............
" 누가헤어졌대요?! "
..........
아차.
순간적으로 말을 내뱉고 나서 제 마음속에는 '후회'라는 감정이 떠올랐습니다.
발끈해진 감정에 여린 여자라는 걸 알면서도 소리를 질러버렸군요.
" .. 미안해요 , 인경씨 . 나도모르게 . 헤어진게 아니라 그냥 다시 못만난다라고 말하고싶었나봐요. "
제 큰 목소리 덕에 우리 쪽으로 쏠린 커피숍 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알아차린 저는
볼을 긁적이며 인경씨에게 사과의 말을 건냈습니다.
인경씨의 순간 당황하고 굳었던 얼굴이 다시 풀려선 살짝 미소를 지었습니다.
다행입니다, 다행이에요.
저런 여자에게 상처를 줄뻔했습니다.
사실,
헤어지지 않았어요.
지금도 만나고 있습니다.
" 요! 정환! "
부엌쪽에서 검은 캡모자를 쓰고 곤색 앞치마를 두른채로 나오는 이 남자.
제 친구녀석입니다. 오래도록 알아온 사이죠. 이름은 민우에요 .
제 옆자리에 앉으며 앞에 앉아있는 인경씨와 너스레를 떱니다.
사교성이 좋은아이에요 .
" 제수씨 안녕하세요! 정환이 상대하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 남민우 너무앞서간다. 너 , 나랑 인경씨 부러워서 그러는거지. "
" 그래 부럽다 아주! 알콩달콩한거 부엌에서 보고 샘나서 방해하려고 나왔지! 껴도 괜찮죠 , 인경씨? "
민우의 너스레에 인경씨는 수줍은 미소로 대답합니다.
" 야 ,제수씨가 나 맘에드신댄다 , 어쩌냐? "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팔꿈치로 내 옆을 쿡쿡 찌르며 날 향해 장난을 거는 민우 .
저는 약간의 비웃음끼 서린 웃음으로 받아칩니다.
그렇습니다.
제 첫사랑은 이녀석입니다.
지금도 좋아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고 있는 사실도 서로 알고 있습니다.
민우와 인경씨가 대화를 나누는동안 ,
저는 묵묵히 대화를 들으며 또 조용히 커피를 젓습니다.
다시금 작은 소용돌이가 커피잔 안에서 생기는걸 가만히 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제 마음도 지금 이런 상태일 것 같아서 ,
웃기게도 커피 소용돌이라는 무생물따위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마는 저입니다.
민우라는 인간을 만난 이유로 제 마음의 바다는 잔잔할 날이 없습니다.
설렘, 불안함, 기쁨, 슬픔, 안타까움 .
이 녀석을 사랑하는 날들 동안 , 여러 요소가 제 바다를 괴롭힙니다.
가만 놔두질 않아요.
그치만 웃기게도 그럴 수록 민우가 밉지 않아요.
오히려 사랑스러워 보인달까요.
무심코 고개를 들어 민우를 보니, 민우가 미소를 제게 지어보이고 있습니다.
그 때 테이블 아래 있던 제 손에서 따뜻한 손느낌이 납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의 손 느낌이 납니다.
곧 제 손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던 그 따뜻한 타인, 그러나 잘 아는 사람의 손이
제 차가운 손을 꽈악 힘을 주어 잡아줍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시간이 ,
시간이 딱 멈춰버렸으면 좋겠습니다.
- 손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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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소설이네요. ^^
신화팬픽으로 썼었던 건데 이름 수정해서 올려봅니다.
한국이란 사회에서 이둘은 이루어질수 없습니다.
언젠간 둘다 한여자와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게 되겠죠 .
그때는 지금을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
그렇지만 이들에게 그 후회는 미래의 일입니다. 결코 두렵지 않습니다.
손을 꼭 잡아주는것. 그것 하나로 , 세상을 속이며 , 몰래 사랑하며 , 버틸수 있을테니까요 .
감사드리구요.
코멘트는 힘이 됩니다.
첫댓글 동성이라고 이루워지지 않는게 너무.. 안타깝네..
● 꺅고마어여온니얌 ㅠ^ㅠ 흑 동성도 사랑인데. 그렇지? 우리나라도 얼른 Gay Marriage가 허락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유교사상이 아직도 바탕에 깔려있어서 그런지 유난히 우리나라가 동성애에 대한 시각이 좋지 못한것 같아
너무아름답다 동성인데......
● 우리이쁘니투유 너무고맙다! 동성도사랑이니깐여 ㅠ^ㅠ
지금 학교멀티실에서 보고있는중인데..ㅜㅜ소설이너무이뻐. 그냥 다때려치우고 둘이잘됐으면좋겟어.. 아근데 앞에앉은 여자도 쫌불쌍하다....느허.재밌었어!!!!!!!!!!! 읽은내내 왠지 따뜻햇던..
● 와우오ㅏ우고마어고마어 ㅠ^ㅠ ㅋㅋㅋ 따뜻했다니 엄청맘에드는말! 꺅 고마어!!!
와오! 동성제가젤좋아하는 장르^^ 특히 BL이란... < ...
● 와우 저다 BL좋아해여 ㅠ^ㅠ 우히히 감사합니당!
오호 BL동지들..~?
● 꺅 ㅋㅋ 그런가바염
도.. 동...... 크윽.. BL.. 인거였습니까.. 솔직히 뒤에는 반전이였지만.. 어쨌던 좋아용!!
● 감사드립니다 ㅠㅠ 행복하세여! BL이긴 합니다만 사랑의 한 종류로 바라봐주세여 우히히
푸핫, 저는 그 여자가 어렸을때 애였는줄 알았는데요 ㅋㅋ 완전 반전 ㅋㅋㅋ 좋아요 ㅋㅋㅋ 재밌게 잘읽었습니다. 앞으로 더 재밋는거 많이 올려주세요
● 반전이라고 생각하면서 쓴게아닌데 반전이라고 생각해주시니 감사할따름입니다! 행복하세요 ^^
동성이구나..ㅋㅋ 언니 그래도 맘에 들었어잉
● 우리이쁜제아고마어여!!!!
역시뭔가. 내가 잘못읽은건가 했는데, 히히- 동성이였군요~~ 한도로시님, 어디선가. ㅎㅎ 혹시 가상방에 계시던분<-뭔가 말이이상한.ㅜㅜ 아니신가요?
● 네 동성이엿어여 *^^* 우히히히히 동성애도 사랑이니깐요! 가상이요????? 아 가상표지방에 마니 올려여 우히히히 연재중인 소설이있어서여 ^^;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