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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쉬는 날이지?”
혜영의 말에 은하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기운도 없고, 피곤해 보여. 무슨 일 있어?”
주민이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은하가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저기.. 혹시 제가 병원에 있을 때.. 임유진씨가 여기 온 적 있어요?”
“응. 그건 왜 물어?”
“그냥.. 지금이랑 달랐나요?”
“많이 달랐지~. 사고 후에 그 성질도 죽이고 최사장님이랑 한율이에게 엄청 잘 한다.. 싶었었는데.. 그게 다 연기
였다던데?”
혜영이 다른 손님에게 가자 주민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가 문제인데 그래.. 너 얼굴 정말 안 좋아 보이거든.”
지난 밤에 은하는 총에 맞아 울먹이는 서완의 품에 안겨있는 꿈을 꾸었다.
“혹시.. 임유진씨.. 총에.. 맞은 적 있어요?”
“응. 제주도에서. 괴한에게 맞았다고 TV에 보도는 안 되었지만 인터넷에서는 엄청 시끄러웠었어.”
은하는 머리가 다시 아파오기 시작했다.
“좀 쉴래?”
은하가 고개를 저으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
일을 마치고 은하는 연우와 커피숍에 마주 앉아 있었다. 연우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은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이.. 이 미친 생각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떨리는 손으로 커피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게.. 생각이 났단 말이야?”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생각이 난 게 아니라.. 꿈에.. 하지만 너무 생생해서..”
연우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게.. 가능한 가요? 제가 코마 상태였을 때.. 임유진씨 영혼과..”
입으로 내뱉으니 더 말이 안 되는 일이라 은하는 헛웃음이 나왔다. 연우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그녀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과학으로 설명하기 힘든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위에서 누군가.. 너와 서완이가.. 그리고 한율이가 행복하길 바래서 만들어낸 헤프닝일 수도 있지.”
“헤프닝..”
은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너무.. 슬픈 헤프닝이네요. 서완씨와 한율이를 바라보면 뭔가 가슴에 묵직한 것이 매달린 것처럼 아프고 답답했는데.. 헤프닝의 결과 치고는 너무.. 잔인한 현실이라..”
“만나지 그래?”
은하가 연우를 바라보았다.
“그 자식이랑 완이는 달라. 이게 과연.. 바람일까? 난.. 운명인 것 같은데.”
그녀가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다들 그렇게 말해요. 바람 피우는 사람들 모두.. 이건 바람이 아니다. 사랑이고.. 운명이다. 이 사람 없으면.. 죽을 것 같다.. 하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아파요.”
“그 여자는 그런 여자가 아니야. 한율이에게도 좋은 엄마 아니었고. 서완이에게도 좋은 아내가 아니었어.”
“노력하고 있는 중이잖아요. 둘째도 임신 중이라고 들었는데..”
연우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완이가 정말 그 여자를 사랑해서 생긴 아이일까? 너를 사랑해서 생긴 아이야. 그렇기 때문에 완이도 낳을 생각을 하는 거야.”
은하가 손을 들어 눈앞을 가리자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연우가 안쓰러운 듯 그녀를 바라보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은하는 숨죽이며 아랫입술을 물고 울음을 참아 넘겼다.
****
은하는 쉬는 날에 꿈속에 등장했던 휴양림으로 향했다. 꿈속에서 본 모습보다 훨씬 아름다운 곳이었다. 부연정자로 향하는 다리를 바라보며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난간을 잡은 그녀가 고개를 떨구고 울음을 터트렸다.
****
하늘에서 팔짱을 낀 여자가 옆의 천사를 흘기듯 바라보았다.
“도대체 왜 내 동생이 저렇게 힘들어야 해요? 어쩌실 거냐고요~.”
“흠.. 뭘 어떻게 해..”
“약 먹으면 기억이 안 난다면서요. 저게 뭐예요? 다 기억 났구만. 쯧.”
“그.. 그게.. 영혼이라는 것이 원래 통제가 어려워서.”
“어떻게 좀.. 해 주세요.. 저대로라면.. 내 동생이.. 너무 불쌍하잖아요..”
그녀의 눈가가 붉어졌다.
****
은하는 서완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비서의 안내로 안에 들어간 그녀는 커다란 책상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잠깐만 앉아 있어.”
“네.”
그녀가 소파에 앉자 비서가 들어와 다과와 차를 내려놓고 나갔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가 서류에서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붉어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지?”
“연락도 없이 찾아봬서 죄송해요. 아무래도 제대로..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아서..”
그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낀 그녀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한율이는.. 괜찮아요? 많이 놀랐을 텐데..”
“혼자 놀고 싶었던 녀석이 놀라긴 뭘 놀라. 너는 괜찮아?”
“네. 저기.. 괜찮으세요?”
그녀가 걱정스런 눈을 들어 그를 살폈다. 그는 피곤해보였다. 얼굴이 그늘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녀의 마음이 너무 아팠다.
“저 때문에.. 한율이도 잃어버리고.. 물 공포증도 있으신데..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영도 못하면서 무모하게..”
“죄송해요.”
그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누가 궁금해서 온 거지? 한율이? 아니면.. 나..?”
그녀가 흠칫 놀라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물론 한율이..”
“거짓말.”
그녀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맞아요. 한율이도 걱정이 되었지만.. 사장님도 걱정했어요.”
그가 슬픔이 담긴 눈동자로 바라보자 그녀가 조그맣게 말했다.
“아.. 제대로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온 것 뿐이에요. 별 뜻은 없어요.”
그녀가 소파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몸을 돌리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죄송했습니다. 그럼..”
그녀가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가려고 하자 그가 조용히 말했다.
“만나자.”
낮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에 문고리를 잡은 그녀의 손이 멈추었다. 그녀의 턱이 가볍게 떨려왔다.
“네가 누군지.. 알아야겠어.”
“그러지 마세요.”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하고 걱정이 되어서 찾아온 것 뿐이에요. 사장님과 뭘 하고 싶어서 온 게 아니에요.”
“거짓말 정말 못해.. 하아..”
그가 고개를 숙이고 한 숨을 내쉬고 고개를 들어 눈물로 붉어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12개월 전에 아내가 교통사고가 났어. 깨어났을 때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지. 나를 걱정하고,
한율이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 아픔에 슬퍼하는 착하고 사랑스러운 여자였는데..
갑자기 병원에서 기절했고 다시 깨어났을 땐 6개월 동안 내가 사랑했던 여자를 사라지고 예전의 아내로
돌아와 있었어. 내가 두려워하던 일이 일어난 거야. 너도 12개월 전에 사고로 병원에 입원했었지.
내 아내가 기절했던 병원에 있었어. 코마상태의 환자로.. 그녀가 기절한 날 너는 깨어났어.
6개월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어쩌면 내가 사랑했던 6개월의 아내가..”
그녀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마.. 말도 안 돼요..”
“그래. 말도 안 돼. 하지만.. 그런 것 같아. 자꾸만 너에게서 그녀를 발견해. 내가.. 사랑하는 6개월 동안의 아내가..”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자 그녀는 마음이 아팠다. 그녀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곧 아이가 태어나시잖아요. 저는.. 유부남은 싫어요.”
“이혼 할 거야. 아이가 태어나면.”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니까..”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아래로 떨구었다.
“형부도.. 그랬어요. 다른 여자를 사랑하니까.. 언니에게 이혼해 달라고.. 아이는 언니가 키우게 해 주겠다고.. 그랬는데 다 빼앗아갔어요. 결국.. 언니는 행복해보지도 못한 채로 하늘나라로 갔어요.”
“그 사람이랑 나는 달라.”
그녀가 고통스런 표정으로 울먹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뭐가 달라요? 나는.. 미안해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녀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가자 서완이 고개를 떨구었다.
****
호텔을 나온 그녀가 택시에 올랐다. 행선지를 밝히고 택시가 출발하자 그녀는 조용히 숨죽여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자신의 공포도 신경쓰지 못할 정도로 그녀를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든 그를.. 자신보다 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누워있는 그녀를 바라보는 그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남자였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녀는 그러면 안 되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울음을 터트렸다.
****
유진은 사진을 바라보는 손이 떨려왔다.
“이게.. 뭐야?”
예전에 그녀와 놀았던 남자인 형우가 미소를 지었다.
“뭐겠어~. 서완에게서 돈을 더 얻어낼 수 있는 증거.”
“이혼한다고 해서 당신한테 돌아가지 않아.”
“나도 당신이랑 결혼은 안 해.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만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나?”
유진이 눈썹을 조금 올리며 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 속에서는 은하와 밝게 웃고 있는 한율.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서완의 모습이 담겨 있었고, 울먹이며 호텔을 나와 택시에 오르는 은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건 얼마든지 발뺌할 수 있어. 결정적인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요즘은 어차피 형사가 아니라 민사로 진행 될 수 밖에 없으니까.”
“왜 이래~. 네 장기를 이용해. 너 배우잖아. 연기를 해. 바람 피우는 남편, 이혼을 요구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그 속에서 아이를 지키려는 비련의 아내. 소식에 의하면 당신.. 이미 유산했다고 들었는데?
아직 남편은 모르지 않나?”
유진이 손을 들어 자신의 배를 가렸다.
“어.. 어떻게..”
그가 피식 웃었다.
“이 바닥이 얼마나 좁은데.. 남편한테 들켜서 위자료도 못 받고 쫒겨나지 말고.. 잘 생각해 봐.”
유진이 턱에 힘을 주었다.
*****
며칠 후 유진은 행동에 옮겼다. 병원에 입원을 한 상태로 눈물을 흘리며 기자들의 인터뷰를 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문이 열리자 그녀가 손수건으로 억지로 만들어 낸 눈물을 닦으려고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마른 침을 삼켰다.
“아.. 아버님..”
싸늘한 표정의 시아버지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가. 많이 준비한 것 같은데.. 네 뜻대로 되지 않을 거야. 지난 9년 동안.. 애썼다. 사랑하지 않는 내 아들과 사느라. 위자료에 대한 부분은 나와 이야기를 하자꾸나.”
그녀는 시아버님이 건넨 서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몸이 덜덜 떨려왔다.
****
며칠 후 서완과 유진은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서완의 아버지는 유진에게 **동에 있는
시가 200억 정도의 빌딩을 주는 댓가로 9년 동안의 결혼생활에 대한 모든 것에 함구령을 내렸다.
입이라도 벙긋하는 날에는 그 빌딩을 다시 회수하겠다고 부드럽게 말씀하셨지만 빈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안 유진은 서류에 사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선글라스를 쓴 유진이 서완을 바라보았다.
서완이 유진에게 아무 감정 없는 얼굴로 말했다.
“잘.. 살아.”
“그럴 거야. 아이는.. 미안해.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건 아니었어.”
서완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그럼 자기는 그 여자한테 가겠네? 도대체 그 여자가 왜 좋은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자기도 잘 살아.”
그녀가 차에 올라 출발하는 것을 바라보던 서완이 핸드폰을 꺼냈다. 연우가 받았다.
<술 필요해?>
“낮부터 좀 그런가?”
<나한테 와. 잠깐 쉬다가 같이 퇴근하자.>
“그래.”
서완이 한실장님이 차에서 내려 문을 열자 안에 탔다.
“연우 병원으로 가죠.”
“네, 사장님.”
그들의 차도 출발했다.
****
은하가 놀란 표정으로 TV에서 나오는 뉴스를 바라보았다. 혜영과 주민이 그녀의 팔을 잡아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너.. 알고 있었어?”
“아니요.. 몰랐어요..”
“이혼이라니.. 그럼 이제 괜찮은 거 아니야?”
“네? 뭐가요?”
주민과 혜영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최사장님과 너.”
“선배님..”
은하가 고개를 숙이자 두 사람이 한 숨을 내쉬었다.
“요즘 여자들이 얼마나 영악한데.. 이렇게 여려서 어떻게 하냐?”
“그래. 저 여우같은 여자가 그냥 이혼했을 것 같아? 충분한 댓가를 받았을 거야.”
“넌.. 이제부터 너의 행복만 생각하면 돼.”
“잘.. 모르겠어요..”
은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입구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기자들과 카메라가 샵 안으로 들어왔다. 한 기자가 직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극비리에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이곳에서 근무하시는 분과 최서완 사장님이 불륜 사이라는 정보가 들어와서요. 사실인지 확인 차 왔습니다.”
“웬일이니..”
주민이 은하 앞에 섰다. 은하가 고개를 숙였다. 기자들이 자신들의 촉으로 은하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원장이 나와 그들을 바라보았다.
“석주씨? 문 잠가요.”
석주가 입구 문을 잠갔다.
“여기 계신 취재하시는 분들이 어디 소속이시고, 성함은 어떻게 되시는지 적어요. 사실인지 아닌지도 확인되지 않은 정보로 사생활 침해에 영업방해로 다들 경찰서 보내 드릴테니까.”
“어디에서 나오셨습니까?”
석주가 핸드폰에 녹음을 실행하며 다가가 묻자 다들 미용실을 나갔다. 원장이 앉아 있는 손님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여기 샵을 이용하셔서 오해들을 한 모양입니다.”
“괜찮아~. 저런 쓰레기들은 기자도 아니니까.”
“맞아요. 신경쓰지 마요. 우리가 여기 한 두 해 단골인가?”
“감사합니다.”
원장이 몸을 돌려 혜영을 바라보았다.
“지금 계신 손님들 50% DC 해 드려요.”
“네, 원장님.”
원장이 은하를 바라보자 은하가 고개를 숙였다.
****
은하는 원장님 실에 들어갔다. 사직서를 내밀자 원장님이 한 숨을 내쉬었다.
“미안해.”
“아니에요. 제가.. 죄송합니다.”
그녀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원장실을 나왔다.
“네가 뭘 잘못해서 그만 둬?”
주민이 말하자 혜영이 주민을 막았다.
“집에 혼자 가지 마. 혹시 기자가 따라붙을 지도 몰라. 여기 앉아. 다른 사람으로 변장시켜 줄 테니까.”
은하를 의자에 앉히고 주민과 혜영이 그녀의 머리카락 색을 검은 색으로 바꿔주고 스타일도 바꿔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에게 가발을 씌우고 헤어스타일을 손 봐 주었다. 은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주민과 혜영이 걱정스러운 숨을 내쉬었다.
****
연우와 함께 바에 앉아 있는데 바텐더가 두 사람을 바라보며 조그맣게 말했다.
“사장님. 인터넷 기사 보셨습니까?”
“인터넷 안 봐. 당분간은.”
“**샵에 근무하는 직원과 불륜이었다면서 직접 찾아간 모양입니다.”
술잔을 들던 서완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연우가 놀란 표정으로 바텐더를 바라보았다.
“어디에서 기사 올렸는지 알아봐 줄래?”
“네.”
연우가 서완을 바라보았다.
“안 가 봐도 돼?”
서완이 슬픈 표정을 지었다.
“너는 인마.. 사랑하는 여자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나 같은 놈한테 주고 싶냐?”
연우가 그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깊은 숨을 내쉬었다.
****
집에 들어간 서완이 한율이를 품에 안았다. 한율이가 조용히 그의 허리를 감쌌다.
“미안해..”
한율이가 울먹이자 서완이 인상을 찡그리며 턱에 힘을 주었다.
****
그 후로 1년이 지난 후에 주민이 시골 미용실에서 일하고 있는 은하를 찾아왔다. 근처 다방에서 마주앉았다.
“잘 지내?”
“네. 잘.. 지내셨어요?”
“머리 많이 길었네? 어울린다.”
“제 머리에 신경 쓸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은하가 조금 길어진 머리카락을 만지며 고개를 숙이자 주민이 미소를 지었다.
“새로 오픈한 샵에 들어갔는데 실력이 있는 사람이 없어서. 너 스카웃하려고 왔어.”
“선배.. 저는..”
“뭐. 사람들이 널 기억할 것 같아? 얼마나 지났는데.. 사람들 이미 다른 사건으로 그 사건은 기억도 안 해.”
“하지만.. 폐가 될 거예요.”
“나랑 같이 일하기 싫어?”
“선배..”
“같이 가자. 응? 너 말이야. 선배말에 토 달 거야?”
은하가 난감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
한율이와 본가를 찾은 서완이 마당에서 놀고 있는 한율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다과를 들고 그의 맞은 편에 앉아 한율이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주머니가 잘 해주시나보다. 한율이가 조금 더 큰 것 같네.”
“네.”
어머니가 서완을 바라보았다.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좀 내.”
서완이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바라보며 조금 인상을 찡그렸다.
“어머니..”
“안 사람 자리가 공석인 건 보기 안 좋아.”
“전혀 상관 없습니다. 지금이 좋아요.”
“김여사가 자꾸 들이미는 걸 어쩌니? 나도 귀찮아서 그래. 아니면.. 그 아가씨를 좀 데려 오던지.”
서완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아들아..”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율이에게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한 숨을 내쉬었다.
****
한율이는 부모님 댁에서 재우고 서완은 연우를 만났다.
“선?”
“응.”
연우가 피식 웃었다.
“그래서.. 할 거야?”
서완이 고개를 저었다.
“부모님이 너의 생각을 이해하시나? 나야.. 이미 포기하신 지 오래 되었지만.”
“그녀를.. 데려오라고 하시더라고.”
연우가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녀는 겨우 23살이야.”
“나이가 문제냐?”
“아이도 있고, 이혼 경력도 있고..”
“핑계는.”
“두려워.”
연우가 술잔을 기울이다가 멈추고 서완을 바라보았다.
“시골에서 올라왔다.”
연우가 술잔을 내려놓고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연우가 명함을 바라보다가 턱에 힘을 주고 술잔을 들어 마셨다.
****
토요일 점심 즈음에 샵에 서완이 들어오자 은하는 숨을 멈추었다. 민주가 그녀를 조금 앞으로 밀었다. 은하가 그에게 다가갔다.
“오늘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샴푸와 드라이 좀 부탁합니다.”
“네. 이쪽으로 오세요.”
은하가 그와 함께 샴푸의자로 향했다. 그가 의자에 앉아 누워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시선을 돌렸다.
“무섭지.. 않으세요?”
“눈 뜨고 있을 거니까.”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얽히듯 만났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조그맣게 말했다.
“그럼 샴푸 시작하겠습니다.”
그녀가 물을 틀어 온도를 맞추고 그의 머리카락을 적시기 시작했다. 그의 노골적인 시선에 그녀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샴푸를 다 마쳤을 때에는 그녀의 이마에 땀마저 맺혀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그녀가 그보다 앞서 걸어 의자로 안내했다. 그가 자리에 앉자 그녀는 민주에게 도움 요청의 눈길을
보냈지만 민주는 그녀의 요청을 정중하게 거절하고 다른 손님에게 갔다. 은하가 소리없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 쉬었다. 헤어 드라이어기로 그의 머리를 말려주었다.
“무슨 중요한 일인지 안 궁금해?”
“전혀요.”
그녀가 시선을 내리며 말하자 그의 입가가 부드러워졌다. 그의 헤어스타일을 왁스로 고정하면서
그녀는 2대 8 머리로 해 버릴까 잠깐 생각했다. 그녀가 뒤로 물러나 거울을 통해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설레고 두근거리는 남자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시선을 내렸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어요.”
그가 의자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하자 그녀가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넓은 그의 등과 어깨를 바라보던
그녀는 자신의 손을 꼭 잡았다. 안 그러면 당장이라도 그의 등에 달려들어 안아 버릴 것 같아서였다.
그가 계산을 마치고 나가자 그녀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주민이 그녀 옆으로 와서 섰다.
“다시 만나니까 별로야?”
그녀가 시선을 돌려 주민을 흘기듯 바라보았다.
“일부러 그런 거죠? 아까 도와달라고 그렇~게 시선을 보냈는데..”
주민이 미소를 지었다.
“오늘 오후 2시. **호텔 1층.”
“네?”
“네 남자 선보는 장소와 시간. 어쩔거야? 이대로 다른 여자한테 보낼 거야?”
“어쩔 수.. 없잖아요. 저는.. 너무 다른 세계에 사는데..”
“바보.. 그 여자보다는 잘할 자신 있잖아. 안 그래?”
은하가 고개를 숙였다.
****
2시가 되기 전에 호텔에 도착한 그녀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떨리는 숨을 내쉬며 손을 씻고 있는데 전화를 하며 화장실에 들어온 여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어머, 야~. 그 아이를 내가 왜 키우니? 영국에 우리 오빠 있잖아. 거기 기숙사 학교 보낼 거야~. 그럼~. 물론 서완씨한테는 좋게 말해야겠지.”
은하가 움찔거리자 그 여자가 인상을 찡그리며 그녀를 흘기듯 바라보자 은하는 몸을 돌려 화장실을 나왔다.
‘설마..’
하지만 정말 설마가 사실로 그 여자가 서완과 마주 앉아 여우같이 청순한 듯 표정을 지으며 미소를 짓자
은하의 손이 떨렸다. 저 여자는 아니었다. 한율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주지 못할 거였다.
‘그래서 뭐..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그녀가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돌렸다. 은하가 흠칫 놀라 고개를 들자 서완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 사장님..”
“여긴 어쩐 일이야?”
“커.. 커피 마시러 왔죠.”
“거짓말은.. 너 홍차 마셨잖아.”
그녀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여자가 다가와 그들 옆에 섰다.
“서완씨.. 누구예요?”
서완이 몸을 돌려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요.”
“아.. 직원이에요? 그럼 다음에 봬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쪽은 제 첫 번째 아내와 비슷한 타입이라서요. 별로 큰 매력을 못 느끼겠거든요.”
그 여자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뭐?”
서완이 피식 웃었다.
“그게 당신 원래 모습이겠지. 연기는 첫 번째 아내보다 못하네.”
그 여자가 손을 들어 그의 뺨을 때리려고 하자 그가 가볍게 잡아 내렸다.
“못 알아듣겠어? 내가 당신말고 이 여자 신데렐라 만들어 줄 거라고.”
여자가 신경질을 내며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턱을 들어 올리고 커피숍을 나가자 서완이 은하를 바라보았다.
“우리도 나가자.”
서완이 은하의 손목을 잡아 커피숍을 나갔다.
****
그의 차를 타고 가면서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조용히 있는 그녀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는 조금 걱정되는 듯한 표정으로 운전을 했다. 휴양림에 도착하자 그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운전석에서 내려 차 앞으로 돌아와 조수석 문 앞에 서서 문을 열어주었다.
안전벨트를 푼 그녀가 차에서 내렸다. 바람이 불어오자 그녀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렸다.
“좀.. 걸을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조용히 산책로로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걸어가다가 은하가 그에게 말했다.
“한율이는.. 잘 지내요?”
“응. 가끔.. 네 이야기를 하곤 해.”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아까 그 여자는.. 한율이에게 좋은 엄마는 못 될 것 같아요.”
“응. 나도 같은 생각이야.”
“하지만..”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말했다.
“신데렐라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나 유부남 아니야. 아내 없어. 아이는.. 있지만. 나이도 너보다 12살이나 많고.. 이혼경력도 있어서 별로 네가 좋아할 만한 조건은 아니지.”
“저는.. 가족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오히려 사장님이 좋아할 만한 조건을 갖고 있지 않은 건.. 저예요.”
“알아보지, 뭐. 내가 사랑할만한 여자인지. 내가 두 번째로 결혼한 여자가 물었었거든. 하나도 안 예쁘고, 집안도 어렵고.. 그래도 사랑해 줄 거냐고..”
그녀의 눈동자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가 여러 번 꾼 꿈속에서 그와 나눈 대화였다. 그가 한걸음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턱을 부드럽게 잡고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약속했어. 그래.. 다른 별에서 다른 모습으로 당신을 만나도 나는 당신을 찾아내서 사랑할 거야.”
은하의 눈에서 눈물이 조용히 흘러 내렸다. 그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래서 알아보려고. 너만 좋다면.. 내가 두 번째로 결혼했던 여자가 맞나.. 내가 사랑했던 여자인가.. 어떻게 생각해?”
“모.. 모르겠어요..”
그가 그녀의 볼을 감싸듯 쥐고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그거 하나만.. 말해 줘. 나를.. 어떻게 생각해? 싫어?”
그녀가 턱을 바들바들 떨며 고개를 조금 저었다.
“사.. 사랑해요..”
그가 그녀를 바라보며 턱을 가볍게 떨었다. 그녀를 당겨 품에 안았다.
“하아.. 다행이다..”
“사랑해요.. 서완씨를.. 그리고. 한율이를..”
“응.. 나도.. 사랑해..”
두 사람이 서로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
부연정자에 앉아 그가 뒤에서 그녀를 품에 당겨 안았다. 꼭 잡은 그들의 손을 들어 그녀의 손등에 입술을 눌렀다.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그냥 습관이 비슷한 여자일 수도 있어요. 영혼이 바뀌었었다는 건.. 여전히 말이 안 되잖아요.”
“전혀 다른 사람인데 너를 바라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심장이 이상했어. 그리고 설령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어. 나에겐 너의 사랑이 필요해.”
그녀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걸요?”
“좋은 선생님들을 붙여줄게. 아무 걱정하지 마.”
그가 고개를 숙이자 그녀가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의 입술이 닿자 그녀는 숨을 멈추었다.
그의 입술이 조금 멀어지자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손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자 그가 낮은 웃음을 터트리며 그녀의 머리위에 턱을 올리며 더욱 그녀를 가까이 안았다.
*********
생각보다 일찍 그들은 조촐한 결혼식을 했다. 가까운 지인들만 초대한 결혼식은 축하인사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한율이 달려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은하에게 안겼다.
“누나.. 이제 누나가 내 엄마가 되는 거야?”
“음.. 친구가 되어줄 생각인데. 같이 요리해서 먹고, 같이 놀고.. 어때?”
한율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좋아.”
“나도 좋아.”
“이제 내려 와야지.”
서완이 한율을 안아 바닥에 내려놓자 연우와 예주가 다가왔다.
“이모~~.”
“예주야~.”
예주가 그녀에게 안겨왔다.
“이모 너~무 예뻐. 꼭 공주님 같아.”
“고마워. 자주 만나자.”
“응.”
예주와 한율이 놀러 가자 연우가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축하한다.”
“응. 고맙다.”
“축하해.”
“고맙습니다.”
“제발 행복하게 살아줘. 그래야 나도 결혼할 생각이 조금 들지 않겠어?”
세 사람이 미소를 지었다.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
“신혼여행이라..”
서완이 혀로 입안을 쓸며 말하자 은하가 입술을 조금 내밀었다. 연우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 저는 선배님들한테 가 볼게요.”
은하가 주민과 혜영과 석주가 있는 곳으로 가자 연우가 은하를 바라보며 서완에게 물었다.
“뭐가 문제야?”
“신혼여행이 아니라 가족여행이야. 부모님이랑 한율이 데리고 형이네랑 누나네 까지 죄다 데리고 여행가게 생겼다.”
연우의 눈썹이 올라갔다.
“왜 그렇게 된 거야?”
“처음엔 한율이를 데려가겠다는 은하 고집에 부모님 동행이 되었다가.. 쯧.. 뭐.. 그렇게 됐어.”
연우가 키득거리며 웃자 서완이 인상을 찡그렸다.
“웃겨?”
“은하가 가족들이랑 친해지려고 애쓰나보네.”
“가족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니야? 쯧..”
“네 몸에 사리있냐?”
“있다. 그것도 엄청 많이. 키스가 다야. 여자랑 이렇게 진도 안 나가기가 처음이야.”
“아직 어리잖아. 천천히 해. 네가 고생하겠지만..”
연우가 키득거리며 말하며 서완의 어깨를 잡자 서완이 인상을 찡그렸다.
민주가 서완을 바라보며 은하에게 말했다.
“네 신랑 얼굴이 왜 저러니?”
“신혼여행 때문에 싸웠거든요.”
“왜?”
“어쩌다보니 가족여행이 되었거든요.”
“뭐?”
“에? 제 정신이야?”
“뭐.. 비슷한 반응이었어요. 저는 가족이 없었잖아요. 그래서 그런가.. 북적대는 게 좋아요.”
“야. 신혼여행이야. 북적대는 건 앞으로도 평생이거든?”
“여행도 또 가면 되잖아요.”
“얘가 얘가.. 아무래도 교육이 좀 필요하겠는데?”
혜영의 말에 민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은하의 어깨를 잡았다. 은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
결혼식을 마치고 본가로 돌아가는 길에 은하가 옆에 앉아 있는 서완에게 조용히 말했다.
“내일 몇 시에 출발해요?”
“9시.”
“그럼.. 오늘은 본가에서 자는 거예요?”
“덕분에 그렇게 됐지.”
그녀가 손을 들어 아랫입술을 만지다가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그럼 저 잠깐 외출해도 돼요?”
“왜?”
“뭐 좀 살 게 있어서요.”
“그렇게 해.”
그녀가 미소를 지었지만 그는 여전히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
외출을 마치고 들어온 그녀가 서완의 부모님과 다과를 나누고 인사를 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오늘 한율이는 우리가 데리고 잘게.”
“네? 네..”
은하가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붉히자 한율이가 인상을 찡그렸다.
“나 누나랑 자면 안 돼요? 누나랑 같이 자고 싶은데.”
“오늘은 아빠랑 자라고 하고 다음에 같이 자면 좋을 것 같은데?”
시어머니의 말씀에 한율이의 어깨가 쳐지자 은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저희가 데리고 잘게요.”
시어머니가 난감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서완이는 네가 알아서 해.”
“네.”
한율이는 그녀와 함께 잔다는 이야기에 환호성을 질렀다. 한율이를 씻기고 그가 있는 방문을 열자 서완이 인상을 조금 찡그렸다.
“아빠. 오늘은 셋이 같이 자요.”
한율이가 해맑게 말하자 서완이 끄응 신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저.. 좀 씻고 올게요.”
그녀가 방을 나서자 서완은 자신의 옆으로 파고드는 한율이를 안고 이불을 끌어 덮어주고 토닥였다.
“좋아?”
서완의 물음에 한율이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다..”
서완이 한숨섞인 말투로 한율이를 토닥였다.
샤워를 마치고 그녀가 들어와 바닥에 이불을 펴자 그가 침대에서 내려와 그녀를 바라보았다.
“허리가 아파서 못자?”
“어떻게 알았어요? 그리고 저 침대에서 셋은 무리예요.”
“그럼 네가 한율이랑 자. 내가 여기에서 잘 테니까.”
“아니에요. 서완씨는 침대 생활 하셨잖아요. 저는 바닥생활해서 이게 편해요.”
“일부러 이러는 거 아니지?”
“아니에요. 한율이가 너무 서운해해서..”
서완이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내가 20대 꽃처녀랑 결혼해서 자초한 일이니 뭐.. 어쩔 수 없지.”
그녀가 아랫입술을 살짝 물며 미소를 지었다.
“한율이는 자요?”
“응. 어차피 오늘 밤은 제대로 못 잘 것 같으니까 네가 한율이랑 자. 너랑 자고 싶대서 여기에 있는 거잖아.”
“죄송해요.”
“됐어.”
그녀가 천천히 다가가 그의 품에 안겨 그의 허리를 감싸듯 안았다.
“고마워요. 앞으로.. 노력할게요.”
“하아.. 그래..”
그녀가 고개를 들어 그의 가슴에 턱을 대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한숨의 의미는 뭐예요? 설마.. 후회하는 거예요?”
“그래.”
그녀의 눈에 충격이 스치듯 지나갔다.
“이런 것 까지 닮을 필요 있나?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쯧. 무슨 뜻인지 모르지?”
“몰라요.”
그녀가 뒤꿈치를 들어올려 그의 턱에 입술을 누르자 그가 숨을 멈추었다.
“키가 작아서.. 꿈을.. 꿨는데.. 엄청.. 야했어요. 그걸.. 다시 경험하고 싶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조금.. 두려워요. 서완씨라면 조금.. 기다려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싫어요?”
그가 마른 침을 삼켰다.
“내가 얼마나 부드럽고 다정하게 당신을 대했는지도 알아?”
그녀가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미소를 지었다.
“키스 한 번. 오늘은 그걸로 참아주지.”
그녀가 고개를 들자 그가 그녀의 볼을 감싸고 그녀에게 부드럽게 입맞춤을 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가 뜨거운 키스를 해 주며 손을 들어 그녀의 가슴을 잠옷 위로 부드럽게 감싸듯 쥐고
엄지로 그녀의 가슴을 쓸었다. 그녀가 떨리는 숨을 몰아쉬자 그가 입술을 떼고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잘 자.”
“네?”
“너도 못 자야 공평하잖아.”
그가 이불 속으로 들어가자 그녀가 입술을 살짝 물며 침대에 들어가 한율이 옆에 누웠다. 그가 낮게 웃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가 이불을 들어 붉어진 얼굴을 가렸다.
****
가족여행을 가자 한율이와 다른 조카들을 데리고 즐겁게 지내는 은하를 보며 서완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불만은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마지막 날 밤까지 한율과 함께 잠을 자자 그는 이제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아침에 눈을 뜬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 앞에 누워 있는 은하를 바라보았다.
“한율이는 벌써 깼어?”
“갔어요.”
“응?”
“다들 가셨다고요.”
서완이 미간에 깊은 주름을 만들었다. 그녀가 손을 들어 그의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우리는 하루 더.. 있다가 간다고 말씀드렸어요.”
서완은 천천히 몸을 조금 일으켰다.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이불을 끌어당겨 덮으려고 하자
그가 이불을 잡아 조금 들었다. 얇은 란제리 하나만 입고 있는 그녀의 몸이 붉어져 있었다.
그제야 조금 전에 샤워를 해서 그녀의 머리카락이 조금 덜 말랐고, 그녀에게서 달콤한 향기가
나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천천히 손을 들어 그녀의 드러난 어깨를 감싸듯 쥐었다.
“지금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알고 하는 말이야?”
“모를까봐서요? 나도 싫은 게 아니라.. 겁이 나는 거라고요..”
“언제든 말해. 멈출 수.. 없겠지만 최대한 노력해 볼게.”
“믿어요..”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찾자 그녀가 눈을 감고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녀의 목에서
떨리는 낮은 신음소리가 났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가슴 위를 부드럽게 움직이자 그녀가 숨을 멈추었다.
그녀가 절정을 맞아 부드러워졌을 때 그가 천천히 그녀 안으로 들어왔다. 꿈속과 다르게 찾아온 고통에
그녀의 온몸이 경직되었다.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진한 키스를 해 주었다.
천천히 그녀의 몸에서 힘이 빠지자 그가 다시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완전히 하나가 되었을 땐 이미 두 사람의 온 몸이 땀으로 축축해져 있었다.
“괜찮아?”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아프게 해서 미안해..”
그녀가 떨리는 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그녀의 귓가에 조그맣게 속삭였다,
“너무.. 좋아..”
그의 낮게 떨리는 속삭임에 그녀의 안이 떨려왔다. 그가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그녀를 안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또 다른 감각이 몰려오자 그녀가 그의 목을 끌어안고 절정을 맞았다.
잠시 후 그도 그녀 안에서 절정을 맞았다.
그는 자신의 품에 안긴 그녀의 등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녀는 그의 가슴에 안겨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언니 결혼식때?”
“네. 손수건 주셨었죠?”
그가 미소를 지었다.
“응. 너무 울어서. 소리내지도 못하고 조끄마한 어깨를 떠는데 어떻게 될 것 같다라고. 안아서 달래주고 싶을 정도였지.”
“그랬어요?”
“순수한 마음이었으니까 오해하지는 말고.”
그녀가 쿡쿡 웃었다.
“고맙다고 인사도 못했어요. 언니 결혼식 때도, 장례식때도..”
“아.. 그 때도 안쓰러웠지. 연우가 워낙 정신을 못차려서 너한테 신경 쓸 여유는 없었지만. 비쩍 말라서는 소리내지 못하고 우는데..”
“안아서 달래주고 싶었어요?”
“응.”
“순수한 마음으로?”
“그럼~. 난 그런 사람이야.”
“웃기시네.. 최씨집안 문제아가 누구라고 했더라?”
그가 그녀를 바라보며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볼을 감쌌다.
“앞으로 네가 울면 내가 안아서 달래줄 수 있어서 좋아.”
그녀가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사랑해.”
“나도 사랑해요.”
그녀가 고개를 들자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입맞춤을 했다. 그의 몸이 다시 반응을 하자 그녀가 놀란 눈을 떴다.
“왜.. 왜.. 그래요?”
“뭘 왜 그래. 그 동안 내가 얼마나 참았는데. 이제.. 끝났어.”
“뭐가요?”
그가 그녀를 자신에게 바짝 당겨 안자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눈을 감았다.
“그 동안 나를 힘들게 한 벌이야. 당분간 잠은 다 잔 줄 알아.”
“으~~~. 오글거려요~~.”
그녀가 웃음을 터트리자 그가 웃으며 그녀의 입술에 진한 키스를 해 주었다.
****
새로운 보금자리는 넓은 정원에 단층집이었다. 한율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정원의 나무와 꽃들에게 물을 주며 은하가 미소를 지었다.
“사모님. 차 드세요.”
“네.”
그녀가 물을 끄고 안으로 들어와 주방에 들어가자 수혁의 엄마인 아주머니가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차를 마시며 그녀가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수혁이가 공부를 잘해서 좋으시겠어요.”
“사장님, 사모님 덕분이죠. 감사해요.”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주머니가 계셔서 얼마나 든든한데요. 전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잘 하고 계세요.”
은하가 미소를 지었다.
“다시 만나게 되어서 반가웠어요.”
은하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아주머니..”
“영혼과 영혼이 만난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이거든요. 저는 사모님.. 좋아했어요. 맑고 착하고 사랑스러운 영혼을 갖고 계셨거든요.”
“꿈을 꾼 것 같아요. 행복한 꿈.. 갖고 싶은.. 꿈이요.”
아주머니가 손을 들어 그녀의 손 위에 올리고 토닥였다. 은하가 눈가를 붉히며 미소를 지었다
****
선상파티에 참석한 그녀는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더 예뻐진 것 같다?”
연우가 손을 내밀며 인사를 하려고 하자 그녀가 손을 들어 연우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서완이 손을 내밀어
연우의 손을 밀어내고 그녀의 손을 자신이 잡았다. 연우가 인상을 찡그리자 서완이 혀로 입안을 쓸었다.
“그래. 뭐. 또 시작이지. 그러니까 건들이지 마. 내 여자야.”
“알았다, 인마.”
은하가 오른 손을 들어 주먹쥐고 입을 가리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서완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연우가 몸을 돌려 난간에 기대며 미소를 지었다.
“부럽네..”
은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완을 바라보았다.
“왜요? 제가 뭘 잘못했어요?”
“괜히 왔어. 남자들이 죄다 너만 바라보는 것 같아.”
“아니거든요? 오버는..”
“단 둘이 있고 싶어.”
“그건 나도.. 그래요..”
그녀가 수줍게 미소를 짓자 서완이 떨리는 숨을 내쉬며 그녀를 안았다. 그녀가 음악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춤 춰요. 피에르씨한테 춤 레슨 받느라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서완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행복해?”
“행복해요. 행복해요?”
“행복해.”
“저기요..”
“뭐가 궁금해?”
“방이 하나 더.. 필요할 것 같아요.”
그녀가 입술을 살짝 물자 그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진짜..? 정말이야?”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그녀를 품에 안아 들어올렸다. 그녀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아.. 사랑해..”
“나도.. 사랑해요. 다시 태어나도 서완씨를 사랑할 거예요. 한율이도.. 그리고.. 아이들도요.”
“아이..들..?”
“쌍둥이래요.”
서완의 얼굴에 이제껏 보지 못한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녀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고마워. 나의 아내가 되어 주어서... 내가 잘 할게. 평생.. 그러니까 다른 영혼이랑 바뀌지 마.”
그녀가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천사들의 속삭임이 들린다.
“해피엔딩인가?”
“내 덕분에.”
“뭐? 나도 한 몫 했는데?”
“하지만 저 여자는 내 담당이었다고. 내가 가루를 많이 뿌리지 않았다면 어떤 상황이 초래되었겠는가?”
“그건 실수지 의도한 게 아니잖아?”
“그게 능력인 거지.”
“뭐라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둘 다 조용히 못 해! 또 이런 짓 벌이면.. 가만 안 둔다!”
“네..”
어디에선가 천사들이 궁시렁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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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 즐겁게 보았어요 ^^
매일 올라오는 글 매일 기대합니다 ㅎㅎㅎ
쉬지않고 올릴 거예요. 낼은 19금방에서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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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 나게 잘 봤습니다. 완결이라 넘 아쉬워요.. 다행히 다음 작품을 쉬지 않고 올려주신다니 감솨~~~ 창작의 고통이 장난아닐텐데 매일 올려주시니 존경스럽습니다.
소국7님~~ 반갑습니다. ^^ 이미 완결을 한 작품들이라서요. 제가 거의 1년동안 글을 안올리고 쓰기만 했거든요. 단편이니 편하게 읽으시면 됩니다. 19금방에서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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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밋게잘봤습니다ㅎㅎ감사합니다
뿌꾸짱짱님 반갑습니다.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정말정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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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정말 재밌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진상모드님 읽어주셔서 정말 정말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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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재밌게 잘 봤어요^^ 마지막은 많이 행복해서 좋았어요~ 좋은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찾아읽어주시고. .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
쓰신 글 찾아 읽고 있는데 다 넘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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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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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다음 작품이 기대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즐거운 오후 되세요~
잘봤습니당^ㅠ^
ㅎㅎ 감사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