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12월의 어느 날, 이국종은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선배 의사인 중앙응급의료센터 윤한덕 센터
장을 찾아갔다. 이국종이 중증외상 시스템에 관해 자문하러 왔다고 용건을 꺼내자 윤한덕은 잠깐 이
국종을 쳐다본 뒤 보고 있던 서류로 눈길을 돌리며 차갑게 내뱉었다.
“지금 이국종 선생이 이렇게 밖에 나와 있는 동안 아주대병원에 중증외상 환자가 각중에 들이닥치면
수술은 누가 합니까?”
시작은 퉁명스러웠지만 윤한덕은 이어지는 질문에는 내치지 않고 설명을 해주었다. 이후 두 사람은
기회 있을 때마다 만나 중증외상 시스템 구축에 관해 심도 있게 협의했다.
윤한덕은 전남대 의대를 졸업한 뒤 2002년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 응급의료기획팀 개설과 함
께 팀장으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이국종보다 먼저 중중외상 환자 치료를 전담하기 시작한 응급의료
분야의 선구자였던 것이다. 그는 수많은 중증외상 환자가 수술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죽어나가는 모
습을 지켜봤다. 윤한덕은 중증외상 환자가 피범벅이 된 채 죽어나가는 현장을 지옥이라고 표현한 사
람이다. 그가 모두들 꺼리는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센터장의 중책을 떠맡은 것도 맥없이
죽어나가는 환자를 단 한 명이라도 더 살려보고자 하는 사명감에서였다. 그런 윤한덕에게 이국종은
공명심에 사로잡혀 자신을 찾아온 일개 민원인으로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중증외상 환자에 대한 적절한 치료는 응급의료시스템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다. 중증외상 환자
는 응급실로 실려오는 전체 환자에 비하면 소수에 불과하지만, 사망률로 따지자면 어떤 상병(傷病)
환자보다 높다. 우리나라의 경우 40대 이하 남자 사망자의 사망원인 가운데는 중증외상이 가장 높다.
이들은 즉각적인 대수술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외과의사들조차 중증외상 환자를 수술해본 경험과
실력이 부족하다. 따라서 거의 모든 외과의사들이 중증외상 환자 수술을 기피하여 근처에도 오지 않
으려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증외상 환자의 죽음도 의료진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분
노조절장애에 빠져 있다.
이국종 역시 중증외상 환자 치료에 신명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뛰어든 ‘미친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사 개개인의 실력은 세계 초고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의료시스템은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방헬기를 타고 환자를 이송하러 나갈 때, 의료인들은 사고로 다치거나 죽어도 국가에 어떠한
보상도 요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써야 한다. 이런 나라이니 ‘미친놈’이 아니고서는 중증외상 환자
치료에 나서려는 의사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이국종은 굴하지 않고 윤한덕에게 현장에
서 중앙응급의료센터에 대해 느끼는 불만사항을 얘기했지만 윤한덕은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
러나 이국종은 그에게서 진정성을 느꼈고, 그가 거부감을 보이거나 말거나 이후에도 시간을 내어 그
를 찾아가 논의를 거듭했다.

이국종이 윤한덕을 몇 번 찾아간 뒤인 2009년 가을, 우리나라에도 중증외상특성화센터 사업이 진행
되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 두 사람은 전남대 의대에서 열린 외상센터 관련 심포지엄에서 다시 조우했
다. 윤한덕은 주제 발표를 마치자마자 서둘러 강당을 빠져나갔다. 그는 전남대 의대 건물로 향했다.
이국종이 뒤를 따르며 어디 가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돌아보고 미소만 지을 뿐 말없이 한 강의실로
들어갔다.
“내가 바로 이 강의실에서 공부를 했어. 여기서 강의를 들을 때만 해도 공부만 마치면 의사로서 무엇
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밖에 나와 보니 그렇지 않네.”
윤한덕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요즘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수업을 들으려나?”
중앙응급의료센터에서 이국종을 몰아세우던 윤한덕은 거기 없었다.
한동안 수강생 의자에 앉아 있던 윤한덕은 자리에서 일어나 교단으로 올라가더니 돌아서서 천천히
강의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이국종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휑하니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그의 걸음걸이는 어느새 중앙응급의료센터 센터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두 사람은 곧장 기차역으로
가서 예약해둔 기차를 타고 귀경했다. 기차 안에서 윤한덕은 비로소 중앙외상센터 사업에 대한 자신
의 계획과 문제점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이국종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윤한덕의 뇌리에는
온통 대한민국 응급의료체계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난 2월 10일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엄수된 윤한덕 영결식에서 이국종은 추도사를 통해 ‘고 윤한덕 선
생님은 바로 아틀라스 같은 존재’였다고 애도했다. 아주대병원에서 도입할 닥터헬기에 윤한덕의 이
름을 새길 것이라는 결심도 밝혔다.
“선생님은 번잡스러운 육상 근무를 마치셨지만, 새로운 임지를 한반도의 하늘로 정하신 것을 다행스
럽게 생각합니다. 저희들이 곧 비행해 올라가면 많이 바빠지실 것입니다. 창공에서 뵙겠습니다.”
이국종이 울먹이며 추도사를 낭독해나가는 동안, 유족석을 비롯하여 여기저기서 조문객들의 흐느끼
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국종으로서는 가장 든든한 선배이자 후원자를 잃은 비통한 순간이었
다. 추도식장에는 정‧관계 고위 인사들이 보낸 조화가 가득히 진열되어 있는 가운데 조문이 줄을 이
었다. 윤한덕이 살아 있을 때 관심을 가지고 지금처럼 적극 후원해주었더라면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을
죽인 자들의 변명의 발길이었다.
전남대 의대 동문회에서는 윤한덕 추모위원회를 꾸려 생계에 어려움을 겪을 가족들을 후원하고 기념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한편 정치권 일각에서는 보훈처장에게 우리 사회를 위해 특
별한 헌신과 노력을 기울여온 윤한덕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해달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보훈처에서는
향후 국가사회 발전 특별공로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가능한 적용기준을 마련한 뒤 윤한덕에 대한 국
가유공자 지정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바로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으로 권역별 외상센터 시스
템이 상굿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과 같은 이유다. 이 나라 공복들은 북한이 남침을 해와도 구체적
인 대응방안을 수립하여 국민여론을 수렴한 뒤에 싸울 것인지 항복한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라며 세
월을 허송할 인간들이다.

※ 2월 26일, 이국종이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과 판문점을 통해 귀순하다 총상을 입은 오청성을
무사히 살려내어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준 공로로 국민훈장 가운데 최고 등급인 <무궁화장>을
수여받았다. 이국종은 수상 소감에서 ‘윤한덕 선생님도 떠났고 외상센터는 상굿도 정착되지 않았는
데 과분한 포상을 받아 민망하고 죄책감까지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들의 청원으로 후보에 올랐
다는 통보를 받고 여러 번 고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적으로는 민망하겠지만, 외상센터 시스템
이 정부와 국민들로부터 관심을 모아 선진국처럼 정착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3한4미, 3일은 춥고 4일은 미세먼지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주변 시야가 청명스럽지 못합니다. 어제 이태원에서의 점심약속을 다녀왔는데 매캐한 도심의 공기가 가득하여 마스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였습니다. 손녀집도 공기 청정기를 설치 했다고 하니 봄철의 피할수 없는 재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