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
양 수남
고즈넉한 뒷산의 품에 안겨 있는 청주 박물관 건물이 보면 볼수록 우아하다. 화초와 정원수 잘 다듬어진 축대까지도 그 어울림이 섬세하여 천혜의 자연과 인공미가 한 폭의 멋진 그림을 이루었다. 아침나절 한줄기 뿌리고 지나간 소나기에 텁텁한 먼지를 씻어 낸 산야에 연초록 물감을 들인 나무들이 정갈하면서도 윤기가 흘러싱그럽다.
열린 계절, 아늑한 공간에서 한 화가가 그림 전시회를 열고 있다. 주로 가까운 우리 고장의 자연을 그렸기에 그림에는 문외한이면서도 친숙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맑은 하늘에는 흰 구름이 한가롭게 피어 있고 시원스런 여름 들판 논둑에 미루나무 두 그루가 다정히 서 있는 ‘조봉산 의 여름’이란 그림이다. 저 황토빛 흙길이 한없이 정겹고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낯익은 사람들을 반갑게 만날 것만 같다. 옆으로 퍼지며 크는 것을 모르는 미루나무는 하늘 높이 치솟아 있다. 미루나무 잎은 조그만 소슬바람에도 그 잎새의 흔들림이 소리를 내던 나무였다. 바람이 불어오면 옆구리 운동을 하는 양 미루나무는 그렇게 제 윗몸을 옆으로 숙여 가며 바람을 맞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림 속에는 바람이 낮잠이라도 자고 있는 듯 마냥 조용해 보인다.
그림을 보며 지난 일들이 되살아난다. 그림에선 이미 끊어진 그 길을 돌아가면 사래 긴 밭에서 어머니가 포기마다 북을 돋우어 매 놓으신 콩 밭은 눈망울 총명한 아기를 보는 듯 그렇게 사랑스러웠다. 가을의 열매를 구슬땀으로 약속 받으며 어머니는 여름을 그렇게 사르고 있었으니, 붉은 황토 빛 속살의 신선한 흙 은 콩 순을 살찌우고 있었다. 온통 초록빛 들녘에 백로가 쌍으로 날아올라 하얀 날개를 펼치던 그 곳은 그지없이 평화롭고 아늑한 내 고향의 여름 풍경이었다.
제목이 ‘강의 발원’인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깊은 산림 속에서 그 근원이 시작되었을 물방울들이 물줄기를 이루어 흘러와 그득히 고여 있다. 저 계곡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맑은 물은 또 다시 넘쳐서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며 힘있게 흩어진다. 쏴아... 쏟아지는 물소리가 들리는 듯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저렇게 힘차게 흘러 냇물이 되고 여러 냇물들이 모여 강을 이루리라.
밤도 낮도 없이 흘러가는 물은 멈추지 않는 우리 인생의 흐름을 반영해 주고 있는 듯하다. 맑고 깨끗한 골짜기 물이 희망 넘치는 인생의 유년이라면, 경사를 만나고 바위를 타며 힘차게 흐르는 냇물은 전진하는 젊음 같고, 깊은 강에 이르러 소리 없이 흐르는 강물은 삶의 수많은 굴곡을 겪고 온 노년의 깊음 같은 것일까?......
유별나다 할 만큼 강을 사랑하던 나에겐 강이란 단어만 들어도 가슴속 깊이 묻어 둔 강에 대한 애착이 꿈틀거리며 강가의 아름다운 정경들이 스쳐 지나간다. 어디에나 부는 바람이지만 강바람의 시원함은 청량했었고, 조용히 흐르는 강 물살의 부드러움을 넉을 놓고 바라보았었다. 달 밝은 밤이면 강 건너 깊은 산에서 울던 산짐승들의 울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물새가 노래하던 하얀 모래밭에서 함께 재잘대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강물이 흘러가듯 삶을 좇아간 동무들, 지금은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들로 살고 있는지, 그리움이 밀려온다.
그림을 보면 볼수록 정겨운 내 고향의 옛 이야기가 실타래가 풀리듯 쉼 없이 들려올 듯 하여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우연히 들려 보게 된 그림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한 아름 안았다. 하나의 물체에 지나지 않는 미술작품을 통해 그림의 이미지가 확대되고 심화되어 생동하는 풍성한 영상을 그리게 되었으니 시공을 초월하여 고향의 품에 안기게 되는 행운을 내게 안겨 주었다.
첫댓글 양수남작가님의 고향은 어디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