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의 시대 외 2편
장주희
열차 안에서 남자는 긴 우산을 들고 있지
닿을락 말락
흔들릴 때 마다 긴 우산은 접은 내 무릎을 콕콕 찌르지
두 눈을 감고 팔짱을 낀 채 그는 근엄한 자세로 있지
아무리 다리를 오므려도 긴 우산은 툭툭 나를 건드리지
여보세요. 내 말 들리나요
우산 좀 치워주세요 라고 말을 하고 싶은데
나도 모르게 두 눈을 감고 잠들었었지
그는 알 턱이 없고
왜 그랬을까
어느 날 나는 짧은 우산을 샀지
가장 간단한 방식으로 무늬를 접고
아무 걱정 없는 얼굴을 잊었다고 착각하면서
다시 우산을 펼칠 때 공중에선 바람이 불었었지
이것은 튼튼한가요
그리고 나는 우산을 바꿀 용기가 없어 그럴듯하게 벽에 걸어두었지
누군가 초록의 잎이 그려진 우산을 사지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닌데 들을 때마다 귀 속에서 물이 출렁이고
노란 우산이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비가 내렸지
우산을 펼치는 날은 깨어나기 위해 있는 거야
구름을 안고 걸어가는 사람들
걸을때 마다 거리에서 도망가는 고양이를 보고 있지
마음은 모서리가 깎여가는 모양을 가지고 있다고 했고
그것은 사람의 얼굴이었다가 해변의 파라솔이었다가 가벼운 웃음소리였다가
너무 많은 마음들이 창가에 앉아있다
아직은 잎이 되지 못한 빗방울의 이야기
구름은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하지
내가 모르는 나의 짧은 우산은 접힌 자국 사이로 햇살을 끌어안고 있지
도시의 모든 빌딩에선
일제히 우산을 펼쳐 말렸지
토르소
빛은 가운데서 흩어진다
남자의 노래를 들었지
그의 목소리는 점점 올라가고
고양의 순간은 그가 있는 순간
날아갈 듯 무대 위를 왔다 갔다 하지
우리는 객석의 어두운 조명아래에서
따분한 사람들처럼 입을 찟어질 듯 벌리고 있고
팔짱을 낀 채 조용한 말들을 하느라 아름다운 음을 놓쳤지
그는 재미있는 노래를 하나라도 더 가까이 부르기 위해
무대 아래로 내려와 관객에게 손을 내밀며
무릎을 꿇었지
점점 무대는 멀어지고
무대 위에서는 누구나 멋있어 보였는데
악기는 어두운 영역을 연주할 때 저음으로 전진하지
낮게 깔린 음을 표현하기 위해 손은 심장보다 위에 올라가고
누군가 무대 위에서 울기시작 하지
우리의 심장은 멋진 노래를 동경하지만
몸을 표현하느라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노래를 부르지
무대 위 가난한 사람들의 노래가 둥둥 떠오르는 걸
우리는 영원한 노래를 부르며 알게 되지
데칼코마니
잠이 들면 모른다
자신의 잠버릇을
잠과 밤의 거리는
두 팔을 벌렸을 때 손과 손의 거리
반복은 의식하는 순간에도 있다
얼굴을 어루만지는 시간
당신은 매일 밤 잠든 순간에도 바라게 된다
낮에 봤던 얼굴과
밤에 봤던 얼굴을 나누고
꿈속에서 어디를 간 것 같았는데
침대 위에 있다
낮 의자를 옮기고
문을 열고 신발을 거꾸로 놓고 있다
꿈밖에서 무엇을 본 것 같았는데
다리가 저려 잠에서 깬
잠에서 일어나는 시간
그것이 몸이라면
밤에는 그네를 타야지
몇 번 계속되어야 할 질문
톨스토이가 쓴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을 이곳에 적는다.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그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2021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나는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고 다짐한다. 그것은 고요해야 들리는 소리다.
2020년 우리 사회는 코로나로 대 혼란을 겪으면서 변화했다. 내부에서 시작된 변화라기보다는 외부에서 시작된 변화였다. 개개인의 삶에는 많은 제한이 따라왔고 사람과 사람간의 거리 두기에도 늘 신경 써야 했다. 이런 변화에 적응하는 동안 어쩔 수 없이 개인은 상황 속에 놓이게 되었다. 불안은 삶의 밑바닥에서 늘 그림자처럼 드리워졌다. 나에게 불안이란 “이제 조금 멈추라”고 초월적인 존재가 말하는 듯했다. 자책 stop 비교 stop 후회 stop 하라고 일러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나도 모르게 시작해서 어디로 가서 죽기도 했다. 매우 끈질긴 소리가 따라 왔다. “여기에 있어 봐, 바로 여기에 너는 없는 거잖아” “없는 나는 그럼 어디 있어” 그는 내 소리가 크다고 했다. 작다고 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없으니까)
시를 쓰면서 순간순간 정말 모르는 일들에 대해서 썼는지 아는 일들에 대해서 썼는지 뚜렷하지 않다. 시를 쓰다 보면 저절로 터득해지는 것이 있고 알고 있었던 것이 오히려 잘못 알았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도 있다. 그때, 나에게 찾아온 것은 ‘사건’이나 ‘일’이 아니었다. 그 ‘사건’을 통해서 나는 어떻게 느끼는가 이다. 억울한 것인지 두려운 것인지 슬픈 것인지 아픈 것인지. 이러한 나를 이해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이해하려고 애쓰는 동안 저항하는 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지루한 고백이 어느 날 햇살을 받아 반짝 비추기를 바랐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재미없는 일상을 견디는 유일한 자동기술법은 “나”라는 단어만 꾹꾹 눌러 쓰고 있다. 껍데기는 가라.*
이제 우리, 이제 나와 너, 이제 여기와 저기, 이렇게 섞이고, 건너뛰고, 흐르고, 가야 할 곳을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한다. 첫 번째 시는 웃는다. 두 번째 시는 고민한다. 세 번째 시는 망친다. 네 번째 시는 걷는다. 다섯 번째 시는 죽는다. 여섯 번째 시는 태어난다. 이 말에서 시는 나와 함께 태어나고 죽고 걷고 말하고 먹는다. 한 해가 저물면서 한 개가 죽고 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세 개가 태어나고 있다.
*신동엽의 시 껍데기는 가라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