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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를 허비하지 말라 (마25:14-30절)
영국의 사상가인 칼라일이 어느 날 한 귀부인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내용은 인간 세상에 대한 끝없는 번민과 공허감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대하여 칼라일은 다음과 같은 회신을 보냈습니다. “당신의 바느질 통을 살펴보십시오. 실이 엉클어져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옷장을 열어 보십시오. 정리가 잘 안 되어 있을 것입니다. 바느질 통과 옷장의 정리를 깨끗하게 챙기시기 바랍니다.” 또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쓴 단편소설 가운데 ‘세 가지 의문’ 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 책 속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이며,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은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여 선을 베푸는 일이다.” 영원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은 동시에 순간 속에도 계십니다. 성스러운 지성소에 계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도 함께 하시며 언제나 곁에 계십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이 짜증스럽고 싫증이 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소한 일은 그냥 지나쳐 버리게 되고 이로 인해 종종 큰 실수를 범하기도 합니다.
중국의 명대(明代) 유학자요 정치가인 왕양명은 지혜로운 말을 남겼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세상을 살아보니 어려운 일이 네 가지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첫째로 어려운 일은 육신의 고생이라고 합니다.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을 때 고생스럽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기본적인 것입니다. 가난은 누구나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배고픈 것, 헐벗는 것, 춥고 편히 누울 곳이 없는 정처 없는 신세는 정말 고역입니다.
두 번째로 어려운 일은 남에게 냉대를 받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사람은 남에게 환영을 받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반대로 집에서든지, 밖에서든지, 직장에서든지, 친구에게서든지 멸시와 냉대를 받을 때는 정말 견디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금전적으로 가난할 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세 번째로 어려운 일은 고민스러운 일이 있을 때라 하였습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실존적인 고민이 있어서 어느 누구와 의논할 수도 없고 홀로 몸부림치고 있을 때, 어찌할 방도가 없는 고민에 휩싸여 밤잠 못 이루고 탄식하고 있을 때가 어려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보다 가장 어려운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한가로운 것” 이라 하였습니다. 할 일이 없어서, 하고픈 일이 없어서, 한가로운 사람은 정말 괴로운 사람입니다. 쓸모도 없고, 보람도 없고, 삶의 의미도 없고, 기대와 희망도 없이 그저 한가로운 사람, 할 일이 없는 사람, 이 사람은 살았으나 죽은 사람이요, 편한 사람 같아 보이나 실상은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이요, 가장 못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대단한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이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은 각자 할 일이 있습니다.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모두가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잠11:3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
그러나 할 일이 없어질 때도 있습니다. 할 일이 없어지는 것 자체가 심판이라고 본문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하나님과의 계약 조건하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과 어떤 계약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까요.
1. 첫째로 모든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공평한 기회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마25:14-15 또 어떤 사람이 타국으로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누구든지 각자의 능력대로, 하나님이 생각하시고 계획하시는 경륜대로 우리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기회는 선용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다윗은 밧세바 간음 사건 후에 하나님께 회개함으로 허물의 사함을 얻고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32:6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미국의 실업가 카네기는 말하기를 ‘좋은 기회를 만나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그것을 잡지 못했을 뿐이다.’ 라고 하였고, 독일의 시인 괴테는 말하기를 ‘하늘은 필요할 때마다 은혜를 베푼다. 신속히 이것을 포착하는 사람은 운명을 개척한다.’ 라고 하였습니다. 기회는 한 번 놓치면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기회가 두 번 당신의 방문을 노크한다고 생각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항구가 있기 전에는 배를 정박 시킬 때마다 밀물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상황을 라틴어로 “압 풀투 (ob portu)” 라고 하는데 이것은 배가 항구로 들어가려고 조수가 바뀌는 순간을 기다리며 준비하며 서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영어의 기회 (Opportunity) ‘오프터니티’ 라는 단어도 바로 여기서 파생된 말입니다. 선장과 선원들은 한 순간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립니다. 그들은 그 한 순간을 실패하면 다음 밀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대 문호 세익스피어는 이 “기회” 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습니다.
인간사에는 조수가 있다네./ 우리를 미래로 인도하는 조수가./ 그 때를 놓치면./ 인생의 항해는/ 암울과 불행만 있다네./ 만수 때에 우리 나아가세./ 밀물이 올 때 우린 조류를 타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기회를 잃고 만다네./
2. 둘째로 모든 인생은 제한적인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마25: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시간적으로도 제한이 있고, 능력도, 건강도, 재산도, 지혜도 다 제한이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 쳐보아도 자신의 한계 내에서 자유가 있고 생명이 있고 부유함이 있습니다. 헨델은 40여 년간 영국과 유럽에서 오페라 음악의 작곡가로 널리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얻은 명성이 덧없이 느껴질 정도로 커다란 시련에 봉착되었습니다. 1741년 8월 무더운 날에, 나이 들고 빈털터리가 된 헨델은 영국의 거리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뇌출혈로 몸의 한 쪽은 마비가 되어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의사들은 그에게 희망을 줄 수 없었으며 그의 음악은 그에게 연민과 쓰라림만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찰스 기본이라는 부유한 시인이 헨델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헨델에게 성경 본문을 가지고 작사한 시를 건네주면서 작곡을 부탁하였습니다. 헨델은 아무 감정도 없이 시를 읽어 내려갔으나 점점 그의 마음은 뜨거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이사야서에서 따낸 내용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 말씀이 헨델의 개인적 상처들을 모두 감싸주며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헨델은 계속하여 읽어 내려갔습니다. “나의 구원자가 살아 계시니 기뻐하라. 할렐루야” 그는 곧 바로 펜을 잡았고 21일을 쉬지 않고 “메시야”를 작곡하였습니다. 그는 작곡하는 중에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눈물이 그의 시야를 가려 앞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메시야” 작곡을 완성한 후에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내 앞에 있는 천국과, 위대하신 하나님을 뵌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후에 그는 장님이 되었지만 마지막 생애 6년 동안 그의 믿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3. 셋째로 사람의 모든 생은 모험이라는 것입니다.
*마25: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머리로 살면 희극이고, 가슴으로 살면 비극이라고... 그래서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라고 말입니다. 사람이 하는 활동의 99%는 자동적이며 반사적이라고 합니다. 습관이야말로 틀에 박힌, 창조적이지 못한 대표적인 것입니다. 새로운 시도, 새로운 경험은 처음 신은 구두같이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실패가 두려워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길을 걸어간다면 얼마나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입니까. 인생은 장사와 같습니다. 농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일이 모험입니다. 독일의 소설가 린저는 말하기를 ‘자기를 넘은 곳으로 자기를 내던지려는 숭고한 시도가 없는 삶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야키족 인디언 돈 후앙은 말하기를 ‘ 평범한 사람과 전사의 차이는 전사는 자기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의 도전으로 받아들이지마는 평범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행복이나 비극의 관점에서 받아들인다. 라고 하였습니다. 밀림의 성자 슈바이처 박사는 아프리카로 가서 그곳 원주민들을 보살피는 의사로 한 평생을 헌신한 분입니다. 고귀한 인생을 산 사람의 귀감입니다. 그는 구십 오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모든 병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약은 그가 할 일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내가 할 일을 가졌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의 병은 고칠 약이 없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소망을 버린 자에게 백약이 소용없습니다.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야 약도 효력을 내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요,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위탁 행위입니다. 위탁하는 의지요 결단이며 행동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의 삶을 인간적으로 볼 때에는 철저한 모험입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갈 바를 모르는 체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떠나가는 아브라함,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도 모르면서 나그네 길을 가는 것은 커다란 모험입니다. 모세도 그러했습니다. 자신 없는 그에게 하나님은 백성을 구원하라 하십니다. 육십만 군대를 이끌고 광야로 나옵니다. 사십 년을 광야에서 헤매고 다니면서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그 여정은 누가 보아도 바보스러울 정도로 모험입니다. 신앙은 이런 차원에서 엄청난 모험입니다. 이 모험에서 승리하고 받는 축복의 내용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3:21-24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이 네 눈앞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네 목에 장식이 되리니 네가 네 길을 평안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4. 마지막으로 인생은 결산을 요구합니다.
*마25: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눅16: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저희와 결산할새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얼마 동안의 기간을 주었다가 얼마를 남겼는지 결산을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의 일생의 산 것을 결산해야 할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뿐 아니라 결산의 결과를 보니 충성한 자에게는 또 다른 기회를 복으로 주시고, 불충성한 자에게는 지금까지의 기회까지도 박탈하시는 것입니다. 똑같은 기회를 주셨는데 왜 불충성하였을까요. 그것은 그가 게으른 자이기 때문입니다.
*잠6:6-11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게으른 자는 꼭 변명을 합니다. 꼭 안 될 일만 생각합니다. 모든 일을 잘 되는 방향으로 생각하지 않고 잘 못 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변명합니다. 만사를, 주어진 능력을, 기회를, 지혜를 다 부정하고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일을 주셨습니다. 능력 밖의 일은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각각 다른 달란트를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 우리는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으른 자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잠21:25 게으른 자의 욕망이 자기를 죽이나니 이는 자기의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
어떤 상인이 있었는데 먼 길을 떠나며 가지고 있던 밀 두 자루를 두 친구에게 맡겼습니다. 그 후 몇 달 뒤에 그 상인은 장사가 잘 되어 좀 늦게 돌아올 것이라는 연락을 보내왔습니다. 그러자 한 친구는 생각하기를 ‘장사가 잘 되었다니 이까짓 밀 한 자루야 뭐 그리 중요하겠어. 창고에 그냥 넣어두면 되겠지.’ 다른 한 친구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일이 잘 되었다니 기쁘긴 한데..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아..밀을 그냥 두면 못 쓸 테고. 아! 이 밀을 밭에 심는 게 좋겠군..’ 그 후 몇 달이 지나서 상인이 돌아왔습니다. 한 친구는 묵은 냄새가 풀풀 나는 밀 자루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친구는 그 상인을 들판으로 데리고 나가 곧 추수를 기다리는 밀밭을 보여주었습니다. 상인은 너무나 기뻐서 말하기를 “자네는 정말 나의 신실한 벗일세. 밀을 그냥 묵혀도 상관없었네만 이렇게 경작을 하다니! 정말 고맙군.” “자네가 이 밀을 수확하거든 밀 두 자루만 돌려주고 나머지는 자네가 갖게나.” 히브리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명사보다 부사를 더 좋아하신다.” 이 말은 일의 결과 보다는 일을 해 나가는 동안 얼마나 열심히 했는가를 본다는 의미입니다. 맥 듀프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결과가 아니다. 동기이다. 최후의 상을 규정하는 것은 성공이 아니라 충성이다.’ 라고 하였으며, 무디 목사는 말하기를 ‘많은 사람들은 혀끝으로 사랑한다. 그러나 경건한 사람은 손끝으로 사랑한다.’ 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악함의 반대는 착함이요, 게으름의 반대는 충성입니다. 신실입니다. 자신의 나약함은 믿음으로 극복하고, 어려운 환경은 착함으로 극복하고, 불가능한 일들은 충성으로 극복하며, 몇 달란트를 맡기셨든지 은혜로 감당하면 하나님께서 큰 역사로 함께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라고 하시면서 축복해 주십니다. 착하고 충성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더 큰 기회, 더 큰 은혜를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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