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지를 둘러서
십이월 첫 주 목요일이다. 아침 출근길 창원천변을 걸어서 학교로 갔다. 이 길도 올해로 오 년째라 근무학교를 옮겨야 한다. 공립은 학교만기와 지역만기가 있어 순환 근무를 해야 한다. 나는 이제 내년 봄 한 학교만 옮겨가면 교단생활을 마감할 생각이다. 옮겨갈 그 학교가 어디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내년 이월이면 부임지가 정해져 서랍을 정리할 것이다. 요즘 마음이 좀 스산하다.
아침에 일곱 시가 지날 무렵 현관을 나서 창원천변을 지났다. 날이 밝아온 물웅덩이엔 여름부터 텃새로 머물던 흰뺨겅둥오리 외에 다른 오리도 보였다. 덩치가 작아 귀여운 고방오리가 오글거리고 있었다. 폰 카메라로 그 모습을 담았다. 학교에 닿아 출근길 창원천변에서 본 오리를 소재로 글을 한 편 남겼다. ‘고방오리 앞에서’ 마지막 구절은 금실 좋은 오리들이 부럽더라는 내용이었다.
오전 일과 빈 시간에 ‘우리 그림 보며 한국사 나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한 폭의 한국사’라는 책을 읽었다. 일간지 기자가 쓴 옛 그림을 통해 한국의 역사를 흥미롭게 살핀 내용이었다. 신석기시대 반구대 암각화부터 조선시대 겸재의 진경산수화까지의 옛 그림을 통해 흥미진진한 한국사를 술술 풀어나갔다. 유적유물은 물론 그림까지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까지 상세히 소개하였다.
점심시간이 되어 급식소로 갔더니 현미밥에 홍합탕이었다. 반찬으로 훈제오리버섯볶음이 나왔다. 더러 나오던 닭고기는 건너뛰나 오기고기는 외면 않고 잘 먹는다. 알맞은 양을 담아 점심을 잘 때웠다. 점심시간 후반부 교감이 주관하는 전보 희망자 내신서 작성 요령 연수가 있었다. 나는 학교 만기자라 어차피 옮겨갈 것이기에 그 자리는 비우고 짧은 시간 학교 바깥으로 산책을 나섰다.
어제 점심시간은 사격장 언저리로 올랐더랬다. 사림동 주택가를 지날 때까지는 어제 점심시간 동선과 겹쳤다, 사격장 입구에서 창원대학으로 건너갔다. 대학 서문을 지나니 학생생활관이었다. 생활관 앞에 ‘청운지(靑雲池)’라는 연못이 있었다. 가을까지 녹색 잎을 펼쳤든 수련은 잎맥이 시들었다. 연못 가장자리 갈대꽃은 허옇게 피어 일렁거렸다. 수양버들가지는 바람이 스치자 한들거렸다
경영대학을 지나 인문대학으로 돌아갔다. 곁은 새로 들어선 도서관이었다. 캠퍼스는 점심시간이라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삼삼오로 거닐었다. 손에는 식후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이나 커피가 든 종이컵을 든 이들도 보였다. 대학 구내 스피커에선 방송부원의 낭랑한 목소리가 실시간으로 들려왔다. 오는 토요일 광화문 광장에서 예정된 2차 민주노총 궐기대회와 조계종 화쟁위원회 소식을 전했다.
대학 정문 곁에는 여러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정년을 맞은 교수의 작품 전시회 안내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학우들을 축하는 내용도 있었다. 학교 바깥으로 나가 자유롭게 일을 본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속속 복귀하고 있었다. 나는 정문을 나와 대학과 교육연구정보원 사이에 있는 야트막한 동산을 돌았다. 그 동산 이름은 독뫼산인데 지역 주민들이 다니는 둘레길이 조성된 산이다.
독뫼산을 돌아서 주택가를 나오니 창원대학에서 사림동으로 시내버스가 다니는 도로였다. 은행나무 가로수에서 떨어지지 않은 노란 잎들이 바람에 흩날리었다. 아침부터 서울과 중부 일원엔 눈이 많이 내려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다고 했다. 우리 지역은 눈은 오지 않아도 바람은 차가웠다, 장갑을 끼고 모자를 썼다만 귓불은 좀 시렸다. 주택가 지나 저만치 내가 근무하는 학교가 보였다.
주택가 이면도로를 따라 걸으니 학교 외벽 높다랗게 박힌 전광판 시계는 한 시가 막 지났다. 어느 집 대문 바깥에 내어둔 화분의 황국은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구나! 국화도 어느새 한철을 지나고 있었다. 교문을 들어서니 날씨가 추워선지 운동장에 뛰노는 아이들이 어제보다 적었다. 그래도 정오를 지나는 겨울 햇살은 너른 운동장에 가득 펴져 있었다. 하루가 또 이렇게 지나는구나. 2015.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