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로 가는 길
남양로는 포구로 가는 길이다. 의왕에서 남양을 거쳐 달려가는 길의 끝에 마산포가 있는 것이다. 그 덕에 인근 사람들은 마산포나 제부도, 대부도 등의 추억을 갖고 산다. 대부분 이름도 모른 채 이 길을 오갔을 터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남양로를 가만 불러보니 다시 안겨오는 게 퍽 많다. 그 끝에서 종종 만난 포구며 갯벌, 섬들도 새삼 다가든다. 마산포로 가던 어느 여름날의 뜨거운 볕과 덜컹거리던 흙길, 쓰르라미 울음에 섬 하나가 겹치며 길이 잠시 아득해진다.
#남양 홍씨 가문의 너른 품
남양로에 들어서면 ‘고향의 봄’을 먼저 만나지 않을 수 없다. 입에 곧잘 붙던 노래가 나중에는 껄끄러워졌듯, ‘고향의 봄길’은 좀 씁쓸하다. 홍난파의 친일 논란만큼 ‘나의 살던 고향은~’의 문법에 안 맞는 ‘나의’ 같은 당시 표현들이 거슬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남양 홍씨 문인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넉넉해진다. 그 가문에는 근대 초기 문학에 가산을 쏟아부은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노작 홍사용과 이후의 홍신선, 홍일선 같은 시인이 있다. 남양 어느 마을에나 있을 법한 이장을 먼저 만나 본다.
장마 걷고 처서 지나 등줄기에 마른다 먼 우레가 마른다 둔덕에는
입술 하얗게 마른 호박꽃 널브러지고 벌초 온 아들 둘 매달려 밭머리
주저앉은 무덤 한 잎 남은 젖무덤처럼 황홀하게 쓰다듬는다. 입 큰 가
을이 그 뒤에 더 크게 입 벌려 묻는다. 어디서 어떻게 살았느냐 지냈
느냐고 대신 묻는다.
-홍신선, ‘이장 김창만씨’ 일부
‘우리 홍씨’ 연작도 그렇지만, 이웃의 삶을 풀어낸 시들이 더 구수하다. 손톱에 논흙이 낀 채 강의를 하고 시를 쓰던 시인의 눈길이 ‘우리 동네 이웃들’에 오래 머문 덕이리라. 벌초 끝에 허리를 펴면 ‘어떻게 살았느냐’고 다독여주는 가을의 큰 손이 있으면 좋겠다. 고향에 머물 무렵의 시인이 받아 건네는 그 온기가 다습다.
#시화호, 그리고 ‘오래된 미래’
시화호는 개발 후문 끝의 추문이자 화두였다. 하지만 시화호도 이제는 나름의 길을 찾아가는 것 같다. 인공담수호 문제를 조금씩 풀어가니 철새도 쉬어가는 호수가 된 것이다.
이땅에
시화호 없었다.
(중략)
대부도 형도 탄도 불도 선감도 오이도 제부도 선재도
영흥도 우음도 어섬 큰가리섬 작은가리섬
누에섬 개미섬 닭섬 개섬 쌀섬 터미섬 목섬
큰행섬 거북행섬 큰딱섬 작은딱섬 그런 작은 섬들
그리고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애기섬들 꽃섬들 옆에
아득한 갯벌
꿈길처럼 있었다.
-홍일선, ‘聖, 시화호-序話. 시화호는 없다.’ 일부
순해서 당하는 이웃처럼 갯벌을 어루만지며 시인은 시화호의 과제를 환기한다. 긴 시에 담은 문제들은 계속 고민해야 할 우리의 ‘오래된 미래’이다. 그런데 답사 때문인지, 근처의 온갖 섬을 향한 호명에 마음이 더 기운다. 처음 들어보는 정겨운 이름들도 조만간 사라지려니 싶어 애틋해지는 것이다.
#섬이 부르는 길
마산포에 서면 섬이 많이 보인다. 그 중에도 더 오래 사람을 붙드는 섬이 있다. 고향 화성에 관한 시를 많이 쓴 임병호 시인에게도 제부도는 각별했던 듯하다.
서신면 이쪽에서
매바위 바라보면
밀물에 잠기는
제부도 가는 길.
바다는 다시
속살을 감추고
홀로 뜨는 섬.
제부도는 부활이다.
제부도는 피안이다.
제부도는 幻生이다.
-임병호, ‘제부도.6’ 일부
제부도는 하루 두 번 뭍으로 길이 난다. 물이 빠지면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가 조개 잡고 놀다가 물 들어오기 전에 서둘러 나온다. 그 맛에 제부도를 찾는 사람이 많아 길도 정체가 잦은 편이다. 문득 제부도 밀물에 자신을 묻는 서하진의 소설 속 남자가 스친 듯하다.
섬으로 가는 길-. 그 길은 제 안의 섬을 버리러 가는 것도 같고, 섬을 다시 찾으러 가는 것도 같다. 노을이 아름답다는 작은 섬 어도를 찾아 나섰던 오래 전의 늦여름도 그랬을 거다.
어도는 없었다. 이번에 어도에 가서 홀연히 알았다.
십 년 전 어도, 뇌세포 온통 파스텔 원색으로 물들이
던 파란 보리밭을 앞치마처럼 두르고, 하늘에 흰구름
딱 한 점 띄웠던 섬, 동력선 하나 활기 있게 헤엄치던
섬. 보리밭 뒤로 신록이 마음 조이게 박혀 있고 그 속
에 종다리 몇 마리와 집 몇 채가 숨어 있던 섬. 영화
「안개」의 로케 장소 조그맣고 흰 교회당 앞을 지나면
꿈처럼 떠 있던 섬. 시화 방조제 쌓은 후 자동차 길이
났다.
-황동규, ‘어도(漁島)’ 일부
행간마다 그때의 정경이 아련히 실려 온다. 그런데 이제 어도는 없다. 갯벌을 길로 만드니 섬도 섬이 아니다. 굴 껍질을 하얗게 뒤집어쓴 채 저녁놀에 남실대던 ‘꿈처럼 떠 있던’ 작은 섬은 까마득 사라졌다. 이 나라 곳곳의 풍경을 새로 불러낸 황동규 시인에게도 어도는 이미 다시 찾고 싶은 섬이 아닌 것 같다. 시의 여운이 메마른 갯벌 바닥으로 쓸쓸히 흩어진다.
#흑백스냅 같은 포구를 두고
마산포에 발목을 담근 길, 남양로. 이제는 포구도 섬도 사라진 길 양편으로 포도만 살뜰히 익고 있다. 사강, 하면 모래울음에 문득 아득해지곤 하던 길에도 횟집이 즐비하다. 그 안팎 길의 역사를 개발의 굉음이 새로 쓰고 있다. 옛길을 만나기 어려워 더 늦기 전에 살피자고 기획한 답사지만, 너무 많이 변하는 길에 서면 마음이 늘 어지럽다.
만상이 깊어가는 저물녘, 짙어가는 섬 그늘을 보며 한잔 하자던 마산포를 뒤로 하고 귀로에 선다. 사라진 옛길들이 수인선 협궤열차의 꽁무니처럼 뵐 듯 말 듯 흑백의 스냅으로 어렴풋이 거듭 얹힌다.
첨언 :
윗 글은 화성시 관련 어떤 글에서 우연히 맘에 들어 제가 스크랩했던 글인데 출처를 기억하지 못하여
여기에 출처를 밝히지 못했습니다
인상적인 글귀에 나도 모르게 동화되어..여기에 소개해 봅니다
사진은 제가 느낌으로 찍은 제 사진중에서 하나 골라 본 것이구요..
윗 글의 내용과 무관하지는 않는 사진입니다..
첫댓글 저문강님 말씀대로 인상적인 글귀네요. 사진도 좋구요, 케틸 뵤른스타트 라는 음악인의 앨범사진보다 좋아요.
바야야님 오랫만입니다..잊을만 하면 잊지않고 오시는군요..ㅎㅎㅎ
케틸 뵤른스타트..라는 분의 이름은 난생 첨 들어보는 이름입니다..제가 좀 무식해서..ㅋㅋ
제가 서해바다를 좀 흠모하는 경향이 있어서 윗글을 대단히 인상깊게 느꼈답니다
글읽는 것을 귀챦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인 느낌의 이글이 마음을 당깁니다요..
서해바다 아름답지요. 저는 처가가 충남인데 바로 바닷가 앞에 있어요. 그래서 놀러가면 늘 바다구경하고 호사스럽습니다. 저문강님 서해바다 사진보니까 반갑네요.
케틸 뭐뭐뭐 라는 할아버지는 주로 물에 관한 음악을 했지요. 바다며 강이며 그런 인상을 담는 음악인인데, 앨범 재킷이 저문강님 사진보다 못해요. 좋은 사진 많이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고 바야야님 너무 심하셨습니당..
그 할아버지가 제가 좋아하는 주제로 음악을 만들었군요
기회가 되시면 그 음악도 한번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