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날다저자박종현출판실천문학사 | 2022.10.20.페이지수124 | 사이즈 116*196mm판매가서적 9,000원 책소개 1958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199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와 199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후 『쇠똥끼리 모여 세상 따뜻하게 하는구나』와 『절정은 모두 하트 모양이다』란 두 권이 시집을 출간했던 박종현 시인의 세 번째 시집 『한글 날다』가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시집에 대해 이동순 평론가는 ‘주체의식과 애민 정신이 특별했던 세종대왕이 창제한 우리 한글의 구성 원리를 자세히 살펴보면 초성, 중성, 종성과 순경음(脣輕音)의 어울림과 우주와 대자연, 혹은 인간의 삶 그 자체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데, 박종현의 시집 『한글 날다』에는 민족 언어의 구성 원리와 그 체계에 대한 깊은 사색과 철학성이 감동으로 담겨져 있다. 시인의 길고 깊은 관찰과 응시는 성찰로 이어지고, 그 성찰은 시적 통찰로 발전되었다. 박종현의 시작품과 그 효과가 보여주는 기대감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문화적 확장의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한글의 상형 원리를 시작품으로 빚어낸 시도는 아마 박종현이 처음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시도가 지니는 의미와 가치는 크고 빛난다. 민족문화와 그 원리에 주목한 경험이 없이 우리는 그저 평범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박종현 시인은 우리가 소홀하게 지나친 부분에 대해 진작 주목하고 특별한 애착을 가지며 한글의 창제원리와 그에 깃든 상형성의 내부를 시적 이해방식으로 분석하였다. 그 경험을 성실하게 정리한 것이 시집 『한글 날다』이다. 이 시집이 지닌 아름다움과 그 비의성(秘義性)에 대해 토론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다. 모국어의 원리와 신비스러운 상형 원리에 대해 시적 통찰로 풀어낸 박종현 시인의 노고를 격려하고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며 상찬하고 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저자
박종현 저자 : 박종현 1958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199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와 199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쇠똥끼리 모여 세상 따뜻하게 하는구나』, 『절정은 모두 하트 모양이다』, 명상 힐링 산문집으로 『나를 버린 나를 찾아 떠난 여행1, 2』가 있다. 제2회 박재삼사천문학상을 수상했고, 경상국립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경남문인협회 부회장·마루문학 주간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멀구슬문학회 대표로 활동 중이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목차 제1부 한글 피다-꼭지만 남은 옛이응 11 한글 피다-사막의 꽃 12 한글 피다-한글의 관자놀이엔 관자가 산다 13 한글 피다- ㅡ자 네 개가 새겨진 새끼손가락 15 한글 피다-세발가락나무늘보 17 한글 피다-중년 사랑 19 한글 피다-콩잎장아찌 석 장 20 한글 피다-ㅍㅍㅍ으로 걷는 게걸음 22 한글 피다-나이테 23 한글 피다-입술가벼운소리(ㅸ) 발성법 24 한글 피다-집게벌레가 피운 꽃 26 한글 피다-ㄹ자 뱀춤 27 한글 피다-과 28 한글 피다-ㄲ 두꺼운 그믐밤 30 한글 피다-ㅇ자 드럼세탁기 32
제2부 한글 헐다-속이 헌 ㅇ 37 한글 헐다-나의 바람기 39 한글 헐다-바닥을 치면 바다가 된다 41 한글 헐다-꽤액꽤액 롱 패딩 42 한글 헐다-빗소리 44 한글 헐다-ㅡ자 경면 45 한글 헐다-춘분 46 한글 헐다-ㅅ자 부메랑 47 한글 헐다-까맣다 49 한글 헐다-오렌지 와인에는 오렌지향이 없다 51 한글 헐다-저승새 53 한글 헐다-ㄱ자로 휜 달구소리 55 한글 헐다-주먹밥 56 한글 헐다-괄호를 풀면 길이 된다 58 한글 헐다-방가지똥 59
제3부 한글 날다-은행잎 투사 63 한글 날다-솟대 새 64 한글 헐다-붉은 예서체 66 한글 날다-대추나무 시집보내기 68 한글 날다-ㅇ을 지우면 우주가 탄생한다 69 한글 날다-집의 원형 70 한글 날다-ㅊ자 모기 화석 71 한글 날다-감또개 입술에 새긴 유서 72 한글 날다-우리 73 한글 날다-시계를 이계라고 하는 손자 74 한글 날다-바다 76 한글 날다-귀얄 귀얄 78 한글 날다-자벌레 80 한글 날다-거룩한 모음 81 한글 날다-쇠똥구리 82
제4부 소등-이순의 첫날 85 황금빛 통증 86 그 사이 88 리모델링 89 음소거 -백수 91 아르갈 92 꽃으로 핀 지네 94 유기견 96 육탈-바지락 98 O형이래 100 경외 103 봉명을 듣다 105 가을의 소통법 106 가축의 변천사 108 파란, 절정에 이르다 110
해설 113 시인의 말 123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출판사서평
한글의 상형원리와 시적 통찰 -박종현 시집 『한글 날다』에 깃들인 시인의 뜻
이 시집의 첫 작품은 늙은 어머니가 목욕을 하실 때 등을 밀어드리며 보게 된 어머니의 유두(乳頭)를 다룬다. 시인은 그것을 「꼭지만 남은 옛이응」으로 표현한다. 그 몸에서 태어나 그 몸의 젖을 빨며 자랐다.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어머니는 이제 빈 껍질만 남았다. 혼자 일어설 수도 없는 상태로 병약하시다. 그 어머니의 목욕을 도우며 보게 된 어머니의 까맣게 시든 젖꼭지를 보며 아들의 심정은 어떠할 것인지 가슴이 멘다.
오랜만에 어머니 등을 밀어드렸다 욕조 귀퉁이 낮고 둥글게 쪼그려 앉으신 어머니 때수건한테 물려줄 한 겹 때마저 남아 있지 않는 야윈 몸 연신 개운타 개운타 외치신다 한사코 앙가슴만큼은 손수 씻겠다시는 완고한 고집 너머 슬쩍 곁눈질로 훔쳐본 어머니 가슴 세상에, 온몸 실가지들이 몰려와 까맣게 여문 열매 두 알을 떠받치고 있었다 얼마나 긴 세월 다독여 왔을까, 열여섯 해 전 떠나보낸 큰아들 내외 곪아온 기억들 퍼내고 또 퍼낸 자리 저토록 단단한 그리움을 키우고 계셨을 줄이야 욕실 문 나서는 아흔의 어머니 두 손 가득 ㅇ은 사라지고 꼭지만 남은 옛이응 그 거룩한 열매를 받들고 나오신다 -「꼭지만 남은 옛이응」 전문
시 「사막의 꽃」에서는 모래벌판을 평생 터벅터벅 걸어온 낙타의 발바닥이 마치 신발처럼 딱딱한 상태로 굳어버린 경과를 다룬다. 이 대목에서도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부모 이미지가 오버랩된다. 모음 ㅣ를 소재로 삼은 작품인 「한글의 관자놀이엔 관자가 산다」에서는 모음을 관자놀이의 관자에 비유한다. 그 관자는 평등, 연결, 안배의 심오한 원리를 지니고 있다. 모음 ㅣ가 들어가서 비로소 여러 자음들을 이어주고 나누며 힘의 균형을 고르게 유지시켜 주는 것이다. 자음 ㄱ을 다루면서 시인은 「세발가락나무늘보」라는 희귀한 야생동물의 생태를 떠올린다. 그 나무늘보가 나뭇가지를 움켜쥐고 몸을 굴리는 것이 ㄱ을 움켜쥔 채 지구를 돌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 「콩잎장아찌 석 장」도 가슴을 울리는 효과로 다가온다. 한글은 읽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욱 감동으로 다가온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이듬해 여름인데도 콩잎장아찌 반찬이 전부다 차곡차곡 포개진 노란 잎 이미 갈색으로 변해 있다 된장 속에 묻어놓은, 여럿이 함께 묻혀야만 맛이 깊어진다시던 당숙모 자모가 겹친 한글처럼 월남치마 접힌 자락 들러붙은 콩잎 하나를 떼어내어 밥 한 숟갈에 콩잎 앞뒤를 혀로 핥고 두 숟갈에 반을 찢어 입에 넣고 세 숟갈에 나머지 반을 먹는다 네 숟가락에 엄지와 검지에 묻은 된장 핥아먹는다 콩잎장아찌 석 장이면 충분히 해결되는 여든 당숙모의 점심 한 끼, 숭늉 한 대접으로 입가심하시며 군대 간 막내 손자가 보내준 생일축하 카드를 꺼내 놓고 나에게 읽어달라고 하신다 한글은 읽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감동이다 당숙모 눈가 맺힌 땀을 엄지로 슬쩍 훔치신다 -시 「콩잎장아찌 석 장」 전문
시 「ㅍㅍㅍ으로 걷는 게걸음」에서는 자음 ㅍ의 상형 원리를 다루고 있다. 시 「나이테」에서는 자음 ㅇ의 상형 원리를 그리고 있는데 시인은 나무의 둥근 나이테를 동그라미에 비유하며 ‘시간의 육필’이라고 명명한다. 시 「입술가벼운소리(ㅸ) 발성법」은 지금은 쓰지 않는 순경음(脣輕音)을 다루고 있는데 거짓말을 쉽게 저지르는 인간의 엷은 입술과 연결해서 풍자한다. 시 「집게벌레가 피운 꽃」은 집게벌레가 어둠 속에서 알을 굴려 어린 것들을 모두 부화시키지만 먹이가 부족한 아기들에게 자신의 온몸을 통째로 내어주는 숭고한 과정을 그려낸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삶과 풍속도에 대한 시인의 시적 통찰이라 하겠다. 한글 자음 ㄹ을 다루면서 시인은 머리를 곧추 처든 코브라의 춤으로 비유한다. 공동격 조사 ‘과’를 다룬 시 「과」에서는 꽃과 잎이 영원히 서로 만나지 못하는 불행한 운명을 그리면서 여름과 겨울이라는 두 계절의 원리와 연결해서 비유한다.
나무도 한평생 한글을 익히며 산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글자 시간을 쌓아 육필로 쓴,
ㅇ -「나이테」 전문
시 「빗소리」는 비와 비 사이의 체온으로 통찰하고 있는데 이것은 한글의 사잇소리에 대한 상형을 그려낸 것이다. 시 「ㅡ자 경면黥面」은 본래의 얼굴을 뭉개어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얼굴로 탈바꿈시키는 현대판 성형수술의 만연 현상에 대한 신랄한 풍자이다. 인간 본연의 모습이 아니라 인기 대중 연예인인 아이유나 티아라의 얼굴로 바꿔 달라는 우매한 속중(俗衆)들에 대한 비판의식이 담겨져 있다. 시 「춘분」도 흥미롭다. 우연히 마주친 장의 버스의 창문, 그 창문에서 마주친 어느 여인이 차단막을 내려버린 네모난 차창을 자음 ㅁ에 비유한다.
파란불로 바뀐 횡단보도 앞에 영구차 하나 정지해 있다 버스가 신호를 잘 지키는 건 지금 말고 또 있을까, 죽음보다 느린 속도로 길을 건너는 것도 망자에 대한 예의다 평소 급하게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람들 파란불 앞에서도 느긋하다 깜박이는 신호등이 걸음을 재촉하는데도 서두를 생각이 없다 우리가 닿을 곳은 어딜까, 차창 밖을 내다보는 유족들의 어두운 표정이 안전유리에 부딪치는 아침 햇살을 외면하고 있다 며느리인 듯한 중년여인 맹숭맹숭한 표정이 나와 잠깐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차창 블라인드를 내린다 창 하나가 ㅁ이 된 장의 버스가 떠난 뒤에도 사람들은 한동안 횡단보도 앞에 서 있다 올봄 들어 가장 따뜻한 날이다 -「춘분」 전문
시 「집의 원형」도 재미있다. 우리나라 남부와 중부 북부는 집의 형태가 달라지는데, 더운 지방인 남부는 ㅡ 자(字)형이 주이지만 추운 지방인 북부로 갈수록 ㄱㄴㄷㅁ 자(字)형으로 변하는데 시인은 그것을 우리 한글로 잘 형상화하고 있다. 더하여 그 집 위의 밤마다 반짝이는 저 우주의 바탕도 모두 ㅇ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천지인이 하나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집의 원형은 한글이다 서정으로 쌓은 초가집 안채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ㅁ자이고 가족수나 살림살이에 따라 ㄱㄴㄷㅁ자로 집의 유형이 달라진다 ㄱㄴㄷㅁ자인 집채 어깨와 등줄기는 기둥이나 대들보인 ㅣ, ㅡ와 어울려 가정의 원형인 ㅇ이 된다 집과 건물 그 뼈대와 지붕은 모두 한글이다 밤마다 반짝이는 저 우주의 바탕도 모두 ㅇ이다 -「집의 원형」 전문
과와 와, 기능은 같지만 그 쓰임과 느낌마저 같은 건 아니다 과가 들어갈 자리와 와가 끼일 자리는 사뭇 다르다 늘 편안하게 발음하던 와, 거기에 비해 혀뿌리가 다소 긴장해 있어야 하는 과 글자에도 근육이 있다 간혹 근육질의 과와 지방질의 와를 바꿔 쓰면 글의 몸매가 일그러져 남에게 무시당하기 십상이다 한때는 똑 부러지는 소리를 내는 과가 좋았지만 입안의 다른 부위와 부딪히지 않고 무난히 제 소리를 내는 와가 지금은 더 편하다 기분이 좋으면 와!하거나 더 기쁠 땐 우와!하고 외친다 남과 부딪히기 꺼리면서 과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밥, 돈, 사랑 한때 간절했던 것들 뒤에는 고약하게도 모두 과가 따라붙는다 때론 과가 앞세우는 것들이 부러워 와 몰래 과에게 넌지시 추파를 던진 적도 있다 내 타고난 바람기다 -<나의 바람기> 전문-
그늘의 이동은 늘 광속이다
잎과 잎 사이 은밀히 내리꽂히는 햇살 피해 옮기는 저 광속 눈 깜짝할 사이 지구 한 바퀴를 돌아 제 자리로 와서는 넉살 좋게도 거꾸로 돌아가는 지구를 바로잡기라도 하려는 듯 지구를 등진 채 거꾸로 매달려 이동하는 저 그늘,
갈색목세발가락나무늘보
눈가엔 그늘의 얼룩이 그린 해 하나 환하게 떠 있다
빛의 속도를 이긴 자만이 눈에 걸 수 있는 메달이다
발가락을 한번 봐, ㄱ을 꽉 움켜쥔 채 지구를 돌리는 저 정지된 시간 -<세발가락나무늘보> 전문-
내 가슴 밑바닥까지 뜯기면 누군가의 가슴이 저토록 따뜻해질까,
솜털이 뽑힐 때마다 내지른 오리의 발악이 체온이 될 줄은 몰랐다 괘액괘액 속삭이는 소리가 아닌 꽤액꽤액 고음이라야 고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일생 동안 여남은 번도 더 가슴을 뜯겨야 했던 아내가 이태 전에 산 오리털 패딩 유행이 지났다며 새로 사 입은 하얀 롱 패딩 자락 뒤로 서른 마리가 넘는 오리들이 핏발 선 가슴을 흔들며 오리걸음으로 뒤따른다 날카롭게 겨울 추위를 쪼며 걷는 아내의 하이힐이 오늘따라 유달리 당당하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검지와 엄지 가득 힘을 주고 보란 듯이 내린 지퍼가 패딩 안감을 깨물고 놓질 않는다 꽤액꽤액 발악을 해대던 아내 패딩에 가린 납작한 가슴을 쥐어뜯고 있다
내 가슴 밑바닥까지 시원해진다 -<꽤액꽤액 롱 패딩> 전문-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