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한국과 중국의 수요로 인하여 아주 비싸졌지만 80년대 까지만 해도 미국, 호주등 외국에 가면 돼지
족발과 우족, 소꼬리 같은 것은 도축장에서 축산 폐기물로 내버리던 것이라 약간의 운송비만 주면 싸게 살
수가 있어 우리에겐 귀한 식재료들이라 많이들 구입하기도 했었다.
싼 만큼 너무 선상 식탁에 자주 오르면 조리장이 부식비를 떼 먹는다는 오해를 받기도 해서 어짜든 이들 싼
재료로 불평을 잠재울 정도로 맛있게 요리하기 위해 조리사들은 휴가 중에 중국집에 가서 오향장육 비법을
배우거나 유명 족발집에 가서 요리법을 전수해 와서 이들이 요리해 내던 돼지 통족발은 정말 일품이어서
그에 맛들은 나는 지금도 시중에서 파는 어떤 족발도 별로라서 잘 사먹지 않는다.
대리점이랑 외국인을 초대해 자주 식사도 했는데, 언젠가는 메뉴가 족발이라 손님에겐 스테이크를 주라
했는데 우리가 먹는 족발을 보더니 자기도 한번 맛보자 해서 족발 하나를 건넸더니 맛 있다고 스테이크는
내팽게치고 서너개를 먹는 바람에 돼지 족발을 맛보는 최초의 미국인 일거라며 웃어대기도 했다.
미국 사람들이 먹지 않는 소꼬리와 우족과 도가니도 싸게 구입해서 푹 끓여 소꼬리 곰탕과 우족 도가니 탕을
즐겨 자주 먹었는데 이 또한 우리들이 누릴 수 있었던 호사 였다는 생각이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선 소고기가 귀하던 시절이라 한국에 입항하게 되면 부식창고에 남아 있던 소고기
등을 골고루 선원들에게 나눠 주어 집에 갖고가 가족들에게 주도록 하고 대신 선상에서는 그만큼 식재료를
아끼자 했더니 모두들 아주 좋아 했던 것 같다.
70년대 말이었던 것 같다, 호주 서부 퍼스항에서 일본 와까다 항에 싣고 갈 유리원료 실리카 모래 2만톤을
싣고 있었는데, 한 아름 되는 소머리 하나가 5불, 돼지 머리 하나가 1불이라, 마침 일본 하역후 울산 도크에
갈 예정이라 선원들이 너도 나도 집에 갖고 간다고 많게는 소머리를 3개도 사는 바람에 냉동고가 40여개의
소머리로 가득 차고 말았었다,
그런데 다음 미국에서의 적재화물 스케쥴이 급해져서 울산에 가지 않고 바로 미국으로 가야할 상황이 되어
부식 구입을 위해 보름 동안에 냉동고를 비워야만 해 40여개 소머리를 버릴 수도 없고 선원들에게서 구입해
주고 하루에 소머리 2개씩을 삶아 먹는데 하루이틀도 아니고 보름동안 지긋지긋하게 소혓바닥, 소골 잔치로
생고생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한우가 수입 소고기보다 맛있다는 소리 들으면 한심한 생각이 든다, 요새 한우는 사료 먹여 키우는데 미국
소는 목장에서 뛰어다니며 풀 먹고 자라는데, 진짜 미국 A등급 소고기를 먹어 보지 못해서 하는 소리다.
돼지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풀뿌리를 파먹고 도토리 등을 줏어 먹고 자라는 돼지고기를 최상급으로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