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이 어딨지? [3]
하지만 자신의 소명을 찾는데 온 정신이 팔린 어린 10대 때는 직업이나 적어도 취미 같은 부수적인 열정 하나 없이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게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어째서 엄마는 관심사나 야심이 수면 위로 끓어오는 적이 한 번도 없어 보일까? 정말 평생을 고작 주부로 살아가는 걸로 만족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엄마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지 곰곰히 따져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제안을 했다. 대학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이나 폐션 쪽을 공부해보든지, 식당을 한번 차려보라든지 하면서.
식당은 너무 일이 많아! 너 게리 엄마가 타이식당 연 거 알지? 요즘 밤낮 뛰어다녀! 다른 건 아무것도 할시간이 없어."
"그럼 내가 학교에 있는 동안 온종일 뭐하게?" "이것저것 할일이 너무 많아!네가 너무 응석받이로 자라서 제대로 이해를 못한는것 뿐이지, 네가 나중에 집을 떠나게 되면 그제야 엄마가 엄마가 널 위해 한 게 뭔지 다 보일 거다."
엄마가 콜레크 아주머니를 질투하는 게 훤히 보이다. 아주머니의 색다른 야심이 아니라 아주머니의 종잡을 수 없는 목표를 마냥 우러러 보는 나의 태도를, 내가 점점 더 인정머리 없고 무자비한 10대가 되어갈수록 나와 콜레트 아주머니의 관계를 내 편리대로 엄마의 감정을 자극하는 도구로 이용했다. 엄마가 시도 때도 없이 내게 그러는 것에 대한 일종의 복수인 셈이었다.
〉
진공상태처럼 텅 빈 내 안에 음악이 훅 밀고 들어와 공허를 채웠다. 음악은 또 다른 균열을 만들어 엄마와 나 사이에 이미 위태위태하게 벌어져가던 틈을 완전히 헤집어놓았고, 그 틈은 곧 거대한 심연이되어 우리를 통채로 집어삼킬 태세였다. 음악보다 주요한 건 아무것도 없었고 음악은 나의 실존적 공포에 유일한 위안이 되어주었다. 라임와이어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때 토론토와 함께 많은 사용자를 거느렸던 음악 파일 공유사이트] 에서 음악을 하난씩 내려 받았고, 푸 파이더스의 어크어스틱 버전 '에버롱'이 원곡보다 나은지 여부를 두고 AIM [AOL에서 만든 실시간 채팅 프로그램으로 1990년대 말에서 200년 말까지 북미지역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에서 열띤 토론을 하는 데 하루를 몽땅 바쳤다.
나는 용돈과 점심값을 꼬불쳐뒀다가 하우스 오브 에코드에서 시디를 사는 데 고스란히 헌납했다. 그 안에 든 가사집을 보면서 한 줄 한 줄 분석했고, 미 서북부 인디 록 스타의 인터뷰만 보면 정신을 못 차렸으며,K 레코드나 킬 록 스타즈 같은 음반사 명단을 외웠고, 어느 콘서트에 갈지 계획을 짰다. 가끔 가다가 유진에 밴드가 올 때면 공연 장소는 두군데 중 하나였다. 그중 와우 홀은 내가 어렸을 때 대부분의 현지 출신의 예술 공연을 본 곳이다. 메노메나, 조애너 뉴섬, 빌 켈러핸, 마운티 이리, 로큰론 솔저스는 유진의 영웅이라고 자랑할 만한 밴드들이었다.
머리띠를 맨가슴에 술이 주렁주렁 달린 가죽 조끼를 입은 그 영웅들은 우리가 유일하게 아는, 고향을 떠나서 무언가를 이룬 ―모두가 탐내는 대형 음반사에서 음반을 내고 버라이존 광고에도 출연하는 ― 사람들이었기에 우리는 그들을 찬탄의 시선으로 우러러보았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성취한 게 정말 그렇게 대단하다면 어째서 그렇게 자주 고향을 찾는지 궁금했다.
인기 있는 밴드는 맥도널드 시어터에서 공연을 했다. 나는 거기서 모디스트 마우스 공연을 봤는데, 그때 난생처음으로 크라우드 서핑을 보았다. 아이작 브록은 점프했을 때 맨 앞줄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를 놓치지 않고 잡을 준비가 될 때까지 30초는 족히 무대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아이작 브록은 우리에게 신이나 다름 없었다. 그의 사촌이 옆 도시 트레일러하우스에 산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아이작이 부른 〈트레일러 거지〉에 등장하는 바로 그 트레일러하우스였다. 이런 근접성이 이 가수를 더 가까운 사람으로, 우리 일원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누군가로 느끼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