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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2일(목)
* 시작 기도
주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넌 것을 자녀 세대들에게 표징으로 삼기 위하여 돌 12개를 가져다 세웠습니다(수 4:5-8).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언약의 표징으로 산 돌이신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세우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언약의 자녀로 삼으시는 영원한 표징이요 산 증거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나도 지고 주를 따라가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원하오니 나를 받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육신으로 행하려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나의 불의함을 하감하옵시고 불쌍히 여기사 긍휼을 베풀어주소서.
이 하루도 주의 은혜로 살기 원합니다.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시 107:23-43
제목 :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23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
24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
25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26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27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
28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29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30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31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32 백성의 모임에서 그를 높이며 장로들의 자리에서 그를 찬송할지로다.
33 여호와께서는 강이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샘이 변하여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34 그 주민의 악으로 말미암아 옥토가 변하여 염전이 되게 하시며
35 또 광야가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이 변하여 샘물이 되게 하시고
36 주린 자들로 말미암아 거기에 살게 하사 그들이 거주할 성읍을 준비하게 하시고
37 밭에 파종하며 포도원을 재배하여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시며
38 또 복을 주사 그들이 크게 번성하게 하시고 그의 가축이 감소하지 아니하게 하실지라도
39 다시 압박과 재난과 우환을 통하여 그들의 수를 줄이시며 낮추시는도다.
40 여호와께서 고관들에게는 능욕을 쏟아 부으시고 길 없는 황야에서 유리하게 하시나
41 궁핍한 자는 그의 고통으로부터 건져 주시고 그의 가족을 양 떼 같이 지켜 주시나니
42 정직한 자는 보고 기뻐하며 모든 사악한 자는 자기 입을 봉하리로다.
43 지혜 있는 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지켜 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 나의 묵상
인생은 바다에 떠 있는 배와 같다.
잔잔한 바다에서는 아무리 작은 조각배라도 아무런 요동 없이 편안하게 운항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거대한 배일지라도 풍랑이 일어 집채 만 한 파도가 치면 그것은 추풍낙엽에 지나지 않는다.
본 시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는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의는 하나도 없고 오직 반역만 일삼았던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구원하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찬양하는 시이다.
다른 본문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오늘 본문은 고통의 바다에 빠져 있는 우리 인생을 비유한다.
어느 날 아침 날이 아주 좋아서 뱃일을 하는 사람이 바다에 일을 나갔다.
바다 멀리 얼마쯤 갔을까, 갑자기 풍랑이 일기 시작하는데 광풍이 불어 닥치는 것이다.
이 광풍 앞에서 이 배는 파도에 의해 솟구쳤다가 깊은 바다 속으로 빠지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이 배에 타고 있는 이들의 영혼이 녹아들어 간다.
이들은 이리저리 구르고 흔들리는 것이 마치 술에 취한 자가 비틀거리면서 토를 하는 것처럼 정신이 혼미하여 마치 죽을 지경이다.
바로 이 때 이들이 잠시나마 정신을 차리고 이 고통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광풍을 잠재우시며 파도도 잔잔하게 하신다.
그리하여 이들은 안정을 찾고 평안을 누리며 기뻐한다.
급기야 하나님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신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과 인생에게 행하시는 기적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백성의 모임 곧 주를 믿는 영적 이스라엘인 모든 주의 자녀들은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인생의 광풍을 명하신다.
이는 그들의 죄로 인함일 수도 있고 때로는 그들의 신앙을 연단하시기 위함일 수도 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 내어줌이 되셨고 또한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셨다.
(롬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죄로 인하여 인생의 광풍을 맞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또한 믿는 자녀들의 신앙의 연단을 위해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인생의 광풍을 주기도 하신다.
(롬 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하지만 고난의 광풍이 있는 그 시간에는 잘 알지 못한다.
그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하나님께서 나에게 행하신 그 놀라우신 일을 깨닫게 되고 결국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이다.
시편 73편은 아삽의 시로써 하나님의 행동하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다가 결국 나중에 깨닫게 되는 것을 잘 묘사하고 있다.
(시 73:1-3)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주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한다.
그런데 오히려 그들이 더 형통하고 그들의 부요함이 마음의 소원보다 더 많이 쌓인다.
그러다가 죽을 때 고통도 없이 죽는 것을 보면서 시인은 그렇게 놔두시는 하나님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가히 실족할 뻔하였노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시 73:16-17)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다윗도 그 유명한 시편 23편에서 이와 동일한 고백을 한다.
주님은 나의 목자이시다.
목자 되신 주님은 푸른 풀이 있는 초장으로 그리고 마실 물이 있는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그런데 갑자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나타난다.
이 때 주님은 그런 고난의 길을 걷는 자에게 가까이 다가오셔서 그와 함께 하신다.
그러나 여전히 본인은 잘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주님은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뒤에서 따라오시기 때문이다.
(시 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나를 안위하시며 보호하시는 주님이 뒤에서 따라오시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지만 아버지 집에 들어가는 그 날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게 된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비록 환난과 고통의 시간 안에 있을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죄로 인한 고난이든지 신앙의 연단을 위한 고통이든지 우리가 이를 깨닫고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끝까지 이 고통과 고난을 면해보고자 몸부림치며 하나님께 이 고난의 상황을 해결해 달라고 부르짖어 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주권을 믿는 것이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께서 그 고난의 상황이 나에게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진리로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시편의 기자들이나 구약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이전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알지 못하고 멀리서 희미하게 보면서도 세상의 정욕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세상에서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살았다.
(히 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리고 이들은 이 세상을 본향 삼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본향 삼았던 자들이다.
그런 그들의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른다.
(히 11: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이 비록 희미하지만 오실 그리스도를 믿었던 그 믿음으로 땅의 본향이 아니라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본향을 사모하였다.
그런 것처럼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고통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을 때 주님께서 그들을 평안의 길로 인도하시며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30절)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여기서 고난 가운데 있는 자들이 부르짖는 것은 단순히 나의 상황을 해결해 달라고 부르짖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 없이 그저 부르짖기만 하면 이는 상황해결을 위한 기도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신앙의 초보는 이런 상황해결의 기도를 통해서 주님의 존재와 살아계심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신앙의 연수가 더하면 더할수록 이제 우리의 기도가 바뀌어야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그 상황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믿음,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따라서 구약 시대에 부르짖어 기도했다는 것은 단순히 기도만을 뜻하는 차원을 넘어 주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를 의미한다.
무엇보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완전한 계시로 주셨다면 그 계시의 말씀을 기초로 주님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뜻대로 기도하는 것, 이것은 기도의 지경도 넓히고 나의 소원만을 비는 기도가 아닌 하나님의 뜻인 영원한 생명을 위한 기도로 나아가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셨다는 말씀이 나온다.
이를 오해하지 말 것은 그들이 바라는 항구는 그들의 정욕대로 구하는 항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정욕대로 원하던 항구에 가려던 것은 고난 이전의 모습이다.
그러다가 인생의 광풍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이제 이 고난을 통하여 그들이 더 겸손해지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어 그들이 원하는 항구가 바뀌게 된 것이다.
땅의 소원이 아니라 하늘의 소원으로, 한시적인 세상적인 소원의 항구가 아니라 영원한 하늘에 대한 소원의 항구로 바뀌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소원의 항구로 인도해 주셨다는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요모조모로 많은 환난과 고난을 겪었다.
물론 나의 죄로 인한 것도 있으려니와 신앙의 연단을 위한 고난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주님이 나에게 필요해서 주신 고난이라는 사실을 진리로 알지 못하였다.
그저 그 고난의 상황은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을 뿐이다.
하여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얼마나 하나님께 목이 터져라 부르짖으며 기도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시면 그것이 나의 믿음이 좋아서 그런 것인 양 간증을 하기도 하고 내 의를 드러내는 기회로 삼았었다.
이런 나는 정말 믿음이 없는 자였다.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얼마나 믿음 없이 행동하였는지 하나님은 아신다.
나도 나의 믿음 없음을 잘 몰랐었고 물론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나를 보면서 믿음이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것을 보면 그들 역시 나를 잘 몰랐던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이런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양식으로 먹고 살아왔던 자이다.
이런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나만 아니라 나의 가르침을 받거나 나의 영향력 안에 있던 많은 사람들을 수렁으로 빠지게 하거나 넘어지게 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고난의 긴 터널 속으로 몰아넣으시고 복음을 알게 하시면서 더 겸손의 자리로 내려가게 하셨다.
복음을 통하여 나의 존재가 어떠한지 철저하게 보게 하셨고 오직 주님의 말씀 외에 다른 양식이 없음도 알게 하셨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 앞에서 이 말씀 곧 생명의 양식을 홀로 얻어먹는다.
양식이 존재를 결정하듯 나의 양식은 오직 주님의 말씀이며 이 말씀을 먹으면서 주님 앞에서 존재로 서는 것이다.
세상적인 소원의 항구를 염원하면서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말씀과 하나님까지 이용했던 이 추악했던 내가 이제는 복음을 통하여 소원의 항구를 바꾼다.
세상의 정욕적인 소원의 항구가 아니라 영원한 하늘을 소원하는 항구로 말이다.
오늘도 그 항구를 향하여 한 걸음 더 내딛는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고난과 환난의 광풍이 오면 이것을 피하게 해달라고 얼마나 많이 부르짖었는지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내 맘과 내 뜻대로 행했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흔히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오나’ 하면서 자기의 뜻이 마치 하나님의 뜻인 양 착각하며 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영생임을 분명하게 계시하여 주셨사오니 오늘도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맛보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이제 세상적인 소원의 항구를 내려놓게 하시고 오직 영원한 하늘에 속한 소원의 항구를 향하여 항해하는 항해자가 되게 하옵소서.
나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께서 죄에서 건져 주셨사오나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이 종을 긍휼히 여기시어 주의 보혈로 씻어 정하게 하시고 주님 뜻을 이루는 주의 종 되게 하소서.
주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임하도록 주여 역사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