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히 달력을 쳐다보다가 오늘이 벌써 새달 6월의 첫토요일, 시간의 빠름에 하릴없이 빈둥이는 이 반백수
는 시간을 도둑맞은 듯 당황스러움마저 느낍니다
그래도 금테를 두른 듯한 초여름의 햇살은 찬란하기만 하고 창으로 드는 바람에는 깊어가는 신록의 상쾌함
과 정갈한 흙냄새가 듬뿍 묻어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살아있음이 새삼 감사한 마음입니다
별로 영양가 없는 양아치 두놈과 코로나에도 용감하게 신장개업한 바지락 칼국수 한다라이 말아먹고는 마치
해운대 암소갈비 뜯은 양 느긋하게 퍼져 이제는 오랜 습관이 되어버린 카페순례를 둘레길 걷듯 천천히 둘러
보는데 운좋게도 길동무동호회에 들러 발길이 멈춥니다, 흙의정원 - 두물머리 트레킹에..
버벅이님께서 귀하게 올려주신 좋은 사진으로 그 자리에 동참한 양 황홀한 계절의 감촉을 만끽하며 그 여운
으로 주제넘게 몇줄 보태봅니다
두개 물줄기가 만나는 두물머리, 한자로는 양수리 兩水里로 기억합니다
오늘처럼 찬란한 봄여름날이면 45년전 그날처럼 그 물가에 다시 앉아보고 싶습니다
스물하나 어린 날, 폭압적인 정권하의 시대와의 불화로 어쩌다 긴급조치 수배자의 신세가 되어 그 물가에서
숨어 고라니처럼 동그라니 혼자 앉아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햇살이 찬연했고 이름모를
풀들이 사방에서 부는 바람에 흥겨운 춤을 추었고요..
제가 사는 부산에서는 너무 멀어 쉬이 가볼 수는 없지만 언제부터인지 혼자 있을 때나 십원짜리 감상에 젖을
때면 종소리에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연스레 떠오르는 양수리 그곳은 저에게는 피안의 언덕으로
오래도록 남아있습니다
만만찮은 속세에서 66년째 삶을 이어가는 중에 더러 혼자 의아할 때도 있는데요, 장사익의 찔레꽃을 들으면
어째서 매번 양수리가 떠오르는지요
아마도 산골출신인 제 체질이 노래로는 우리네 토속에 맞닿아있는 게 아닐까 혼자 짐작을 합니다ㅎ
하기사 노래뿐은 아닙지요.. 비온 뒤 설악산의 비안개와 동해 구룡포의 비릿함, 소시적 고향의 안개 낀 구봉산,
호퍼의 여운과 시슬레의 단아함, 밥세끼를 위한 행상길 국도변에 꿈처럼 이어지는 나즈막한 조국의 구릉지들
도 제 가슴에 녹아든지 참 오래이고요
공지에 올라있는 곳들을 쭈욱 살펴보니 바로 길동무님들을 따라 나서고픈 마음이 하늘을 덥습니다
사람에게 걷는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축복일런지요, 내 두발로 내가 가고싶은 곳을 누구의 도움없이 내 마음
대로 걸어갈 수 있다는 것..
언젠가 노가다중 사고로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제일 큰 소원이 내 발로 화장실에 오줌누러 가는 것이었음을
기억하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두발로 걷는 도보의 그 소중함은 그 무엇보다 황홀한 것이지요
더구나 아름다운 5060의 길동무방처럼 마음맞는 좋은 분들이 차고도 넘친다면 또 일러 무엇하겠습니까^^
'나는 손만 가지고 사는 게 아니다, 내 발도 항상 한몫을 한다 ..' 라는 건 수많은 심오한 영감을 길위에 걸으며
얻었다는 건 니체의 말이라 하고요..
'나는 걸을 때면 명상에 잠길 수 있다, 나의 마음은 언제나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 는 건 루소의 말이라
지요
지금 이 잡설을 주절이며 봉다리 커피 한잔 새로 휘휘 젓자니, 언제일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지만 운좋게도
제가 길동무님들의 뒤를 따를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 들어 눈을 감고 마음 속으로 미리 걸어봅니다
스틱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무방할 능선의 모퉁이길을 타박타박 돌아섭니다, 6월 여름나무의 숲속은 온통
짙은 녹색일 것이고 발걸음을 땔 때마다 걸음걸음 맑은 바람이 이는 소리가 기분좋게 들려옵니다
그것은 그 어떤 음악도 능가하는 아름다운 소리이지요..
걷는다는 건 이 세상을 온몸으로 느끼라는 조물주의 융숭한 가르침에 틀림이 없는데 요즘은 유명한 장소들
을 일부러 우회한 멋진 둘레길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요
마음을 비우고 그 길들을 걷다보면 기쁨보다는 슬픔이 훨씬 더 많은 만만찮은 일상 속에서 잠시나마 우리가
소홀히 했던 것들을 다시 찾아내고 회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걷는다는 건 참 좋은 게 아닌가 저는 그리 생각
합니다
뺨에 떨어지는 햇살의 간지러움, 땀에 젖은 목덜미를 슬쩍 만지는 바람, 흙길이 주는 푹신한 감촉..
앞에서 수고하시는 분을 따라 걷는 어느 길의 그 푸른 숲에 마구 쏟아지는 햇살에는 산삼보다 더 좋은 땅의
기운이 담겨있을 것이고 그 덕분에 우리의 머리는 맑아지고 몸에서는 불끈 기운이 마구 솟을 터이지요ㅎ
비록 거리상 저는 참가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도 오래도록 이어질 길동무 길에 많은 분들이 동참하시어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고 또 그렇게 진정한 삶의 예술가들이 되시길 멀리서 응원드립니다
..칼국수 한대접에 괜히 제 기분으로 주절이다보니 되잖은 잡설이 쓸데없이 길어졌습니다
여러 선배님 후배님들의 눈을 어지럽히고 시간을 뺏은 죄, 깊이 허리숙여 사과올리오니 용서하시고 넓으신
이해를 바라옵니다..
첫댓글 구봉님 ~ 안녕하시지요.
이렇게 길동무방에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언젠가 제가 수필방에 글을
올렸을때 님께서 댓글을 달아
주신것을 기억합니다.
(* 겨울의 문턱에서 "당신"에게)란 제목이었지요.
길동무방에 두물머리 사진과
면면들을 보시고 옛날을 추억하신 님의 마음을 들여다 봅니다.
많이 아팠을..
지금은 장년(?)이 되셔서 담담하게 올려주신 님의 글을
읽으면서, 세월은 이렇게 아픈
기억까지도 추억할수 있는 좋은 점도 있구나 하고 위안을 받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입학 하자마자
6.25동란을 맞으면서
나라가 어려워지니, 가정도 따라서 궁핍했고 중.고등학교 다니던 내내 편한때가
없었는데도 지금은 이렇게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모두 아픈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지요.
들어내지 않을뿐...
구봉님 ~늘 건강하게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허락도 없이 무단히 길동무방에 잡글을 올려 걱정이
되었는데 크게 꾸중않으시고 댓글로 맞아주시니 이
소심한 인간이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추억은 이제는
너무 멀리 가서 마음편히 돌아볼 수 있는 게 아닐런지요
기쁨도 슬픔도 희석하는 게 세월인가 합니다
글 잘 읽엇습니다.님의 문장 실력에 감탄과 존경을 표 합니다.감사 합니다.
대선배님들 앞에서 어린 것이 되잖은 잡글을 늘어놓은
치기에 새삼 옷깃을 여미고 자세를 바로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은 두물머리 이야기이라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 몇줄 주절여보았는데 문장이 좋다시니
이름석자가 부끄러워지고 얼굴이 붉어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