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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3일(금)
* 시작 기도
(수 5:2-3)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주님...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 초입에 들어섰습니다.
그곳은 전쟁을 치르러 들어간 곳으로 아직 전쟁의 경험이 하나도 없는 이들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라 하심은 전투의 전법을 몰라도 너무나 모르는 처사입니다.
할례를 행하면 그 장정들의 전투력은 0(제로)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멀리 있어서 총으로 싸우는 것도 아니고 막대기나 쇠창으로 싸워야 하는데 할례를 행하면 이도저도 되지 않을 것은 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들의 전투에 있지 않고 할례에 있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들은 출애굽한 이후에 광야에서 태어난 자들로서 출애굽 2세대라고도 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이들의 전투력으로 싸우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여 그들의 전투력을 0으로 만들어놓고 하나님이 하심을 그들에게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초입에서 칼을 든 여호와의 군대대장을 보여주신 이유는, 여호수아 네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것이니까 나만 따라오라는 싸인(sign)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표징입니다.
아무리 인간적으로 전투력을 높인다 한들 그것은 인간적인 힘일 뿐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너는 내 것이라’는 의미의 할례를 먼저 명하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그런 뜻을 알지 못하는 문외한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전법도 알지 못하는 바보라고 치부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나는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니라 완전한 불신자였습니다.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입니다.
그럼에도 나를 진멸하지 않으시고 주의 심판을 통하여 복음을 주시고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오늘도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사는 이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시 108:1-13
제목 :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다윗의 찬송시)
1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
2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3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
4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보다 높으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까지 이르나이다.
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6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
7 하나님이 그의 성소에서 말씀하시되 내가 기뻐하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8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투구요 유다는 나의 규이며
9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내 신발을 벗어 던지며 블레셋 위에서 내가 외치리라 하셨도다.
10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읍으로 인도해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으로 인도할꼬
11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의 군대들과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2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13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들을 밟으실 자이심이로다.
* 나의 묵상
내 마음을 주님께만 향하기로 정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주를 노래하며 온 맘을 다해 주를 찬양합니다.
비파야 수금아 이제 일어나라.
내가 새벽을 깨우며 일어나 주를 찬양할 것인데 너희도 나와 함께 찬양하자.
내가 모든 나라 가운데서 주께 감사하며 모든 백성들 가운데서 주를 찬양하겠습니다.
주의 사랑은 하늘보다 높으시고 주의 진리는 하늘에까지 이르기 때문입니다.
하여 하나님은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고, 그 영광은 온 땅에 가득하길 원합니다.
주님의 오른손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주께서 사랑하는 자들을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주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성소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펄쩍 뛸 정도로 기뻐하고 기뻐할 것이다.
그리하여 세겜 땅을 분배하고 숙곳 골짜기를 나누어 줄 것이다.
길르앗은 나의 것이며 므낫세도 내 것이다.
에브라임은 나의 투구이며 유다는 나의 다스리는 지팡이다.
모압은 나의 목욕통이요 에돔 위에 나의 신발을 던질 것이며 블레셋에게 내가 승리를 외칠 것이다.
누가 과연 우리를 견고한 성읍으로 인도하며 에돔으로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를 내치신 분이 주님이 아니십니까?
주님은 이제 더 이상 우리의 군대와 함께 하지 않으십니다.
제발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칠 수 있게 하소서.
사람의 도움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우리의 적들을 물리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는 표제어에 ‘다윗의 찬송시’로 기록된 것처럼 다윗의 시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시는 다윗이 쓴 두 시의 일부를 뽑아서 하나로 편집한 것이다.
다윗의 시편 57:7-11절까지와 60:5-12절까지를 하나로 묶었다.
이 두 개의 시는 다윗의 당대에 다윗이 쓴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오늘 본문 시편 108편은 아마도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이후에 이스라엘이 이방의 압제를 받는 와중에 다윗의 시를 발췌하여 구원과 승리의 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노래하기 위해서 편집한 것 같다.
먼저 1-5절은 시편 57편의 일부로서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아둘람 굴에 피했을 때 쓴 시이다.
다윗을 죽이려는 자를 피하여 그는 다른 곳으로 피하지 않고 주께로 피하였다고 노래한다.
다윗이 피한 그곳이 다윗에게는 주의 날개 그늘 아래였으며 그에게 닥친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할 것이라고 하였다.
(시 57: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본문 1절에서는 내 마음을 주님께로 정하였기 때문에 주를 노래하고 찬송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로 마음을 정한 것은 곧 시편 57:6절에 그 이유가 나온다.
(시 57:6)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
다윗을 죽이려는 대적이 다윗을 잡으려고 그물을 치고 웅덩이를 팠을 때 다윗은 그로 인하여 억울하였고 화도 났다.
하지만 결국 웅덩이를 판 자가 그 웅덩이에 빠지게 되고 만 것이다.
그것을 보고 다윗은 결국 하나님의 의가 승리한다는 진리 안에서 그는 오직 하나님께만 그 마음을 향하기로 정하고 주를 노래하고 찬송하는 것이다.
아둘람 굴에 피해 있는 그 상황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동일하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그 은혜는 그의 영혼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해 있는 것처럼 너무나 평온하고 자유하다.
그래서 다윗은 주의 사랑과 진리가 너무 크고 높아서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실 주님의 영광을 노래한다.
(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여기서 영광은 내가 잘 되고 높아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높임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다윗이 고통의 상황 속에서도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여 그 안에서 참 평강을 누리므로 임하는 주의 영광이다.
다시 말하면 다윗이 다른 곳으로 피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품에 거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로 임하는 본질의 계시이다.
영광이란 곧 하나님의 본질이 계시되는 것이며 ‘본질의 드러남’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당신의 본질을 계시하시는 경우는 예수 믿는 우리가 이 땅에서 잘 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갈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창세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알 수 있다.
창세전 영원의 세계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복종과 사랑의 관계로 존재하셨다.
아버지는 사랑의 행위로 아들에게 생명을 주셨다(요 5:26).
아버지로부터 생명을 받고 태어난 아들은 하위 권위로서 상위 권위인 아버지께 복종한다(요 15:10).
상위 권위인 아버지는 아들의 복종을 받기만 하고 착취하는 분이 아니시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되 당신의 생명을 주시는 사랑을 하신다.
생명을 주는 것이란 자기 자신을 다 내어주는 사랑을 말한다.
아들은 상위 권위인 아버지께 복종하는 사랑으로, 상위 권위인 아버지는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으로 서로 존재하신다.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하여 복종함으로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복종하는 아들을 사랑함으로써 아들 안에 거하신다.
그래서 결국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가 된다.
(요 17:21-22)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여기서도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내게 주신 영광’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영광은 곧 아들이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아들 안에 거하실 때 주신 영광이다.
이 영광을 또한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는 우리가 아들 안에, 아들이 우리 안에 거하므로 나타나는 영광이다.
그래서 ‘영광’이란 근본적으로 아버지의 사랑의 본질이 계시되는 것이다.
이 사랑의 본질이 또한 우리와 주님 사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주님께서는 아버지가 주신 그 영광을 또한 우리로 하여금 보기를 원하셨다.
(요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제 아버지께서 당신의 본질을 계시하여 주신 그 영광이 나의 영광 곧 아들의 영광이 되어 오늘 우리 또한 아들 안에 거하면 그 영광이 계시된다.
아들은 창세전부터 아버지 품속에 거하심으로 아버지와 늘 사랑으로 존재하셨다(요 1:18).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동안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셨다.
그런데 이런 일을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고침을 받은 장본인이나 옆에서 이를 목격한 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눅 18:42-43)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영광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상황에서도 그 영광을 자신이 받지 않고 오직 아버지를 드러내셨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신 것이다.
그렇게 아들은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사셨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다.
사울에게 쫓기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그의 영혼을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며 그곳이 자신의 가장 안전한 곳임을 인정하고 참 평안을 누린다.
이는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늘 아버지의 품속에 거하며 아버지께 복종하신 것처럼 다윗 역시 하나님과 늘 교제와 사귐을 가지면서 하나님의 품속에 거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오해하던 자였다.
예수 믿고 세상에서 잘 되어 안 믿는 자들의 부러움을 사고 이런 모습을 본 불신자들이 나도 예수 믿어야지 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어떻게든 예수 믿는 자로서 이 땅에서 잘 되고자 노력하였고 모든 면에서 모범적인 사람이 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나를 얽어매는 하나의 율법이 되었고 점점 내가 만든 법의 노예가 되어 갔다.
이런 나는 예수 믿는 자로서의 자유를 알지 못하였고 예수 믿는 재미도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원하는 대로 잘 되는 것도 없었다.
오히려 나의 원대로 되지 않아서 더 고통스럽고 힘만 들었다.
그런데 그것이 나에게는 은혜였던 것이다.
영광을 오해했던 나를 내가 만든 율법에서 자유케 하고 해방시킨 것이 곧 복음이었기 때문이다.
복음을 통해서 고난이 은혜임을 알았고 또한 영광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몸에서 힘을 뺀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오직 아들 안에 거하여 아들과 함께 아버지의 품에 거하는 것이 진짜 아버지의 소원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여 내 몸에서 힘을 빼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손길에 늘 민감하게 깨어 있기 위하여 오늘도 말씀 앞에 선다.
오늘 하루, 나를 이끄시는 주님의 손길이 바로 이 말씀이요 또한 나를 살리는 생명의 양식임을 믿는다.
주님께서 아버지께 모든 영광을 돌리신 것처럼 아버지 품속에 거하는 나를 통하여 영광 받으시기를 구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 마음을 주께로 향하나이다.
나의 마음을 확정하고 또 확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주님 안에 거하는 존재로, 말씀 앞에 서는 존재로 거하오니 주의 영광을 나타내소서.
주님의 영광이 또한 나의 영광이 되게 하소서.
사람들의 환호와 인정 곧 세상적인 영광에서 이제는 돌아서게 하시고 오직 주님이 인정하시는 그 영광 안에 존재로 거하게 하소서.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요 失存(실존)이지만, 이런 나를 위하여 십자가 지신 주님으로 인하여 아담의 생명에서 아들의 생명으로 거듭났사오니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의 품으로 담대히 나아가나이다.
이런 파레시아의 은혜가 내게 임하였으니 어찌 주님을 노래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주님 영광 내 안에 있으니 이 영광의 빛이 세상에 비쳐 그들로 주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하옵소서(요 17:23).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이제는 몸에서 힘을 뺀다.
이 부분이 눈에 확 들어 옵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과 영생으로 행복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