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제가 얘기한 팍스 히스토리아입니다 1836년 빅토리아 시대로 했는데 난이도 보통으로 하니까 AI들이 달려들지를 않고 과학력도 너무 쳐지길래 그냥 1850년에서 끝냈습니다
일단 1만원만 투자해서 플레이를 하니 좀 오래 즐기긴 했는데 절반도 못 즐기고 그냥 끝내버렸어요 다음엔 한다면 어려움 난이도로 해야겠습니다 (그 다음 난이도는 '불가능 난이도'라 사실상 이길 수 없는 겜이라고 하더군요)
일단 연대기는 이렇습니다
1836년 1월 ~ 1837년 8월: 조선의 근대화와 동북아시아의 격변
1. 조미수호통상조약과 근대화의 서막 (1836년 1월 ~ 3월)
1836년 1월 1일, 조선은 고립주의를 철폐하고 미합중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며 항구를 개방했습니다. 미국은 군사 기술자와 학술 연구자를 파견하여 조선의 현대화를 지원하기 시작했으며, 한성에는 최초의 서구식 교육 기관과 군사 학교가 설립
2. 보빙사 파견과 국제 외교 (1836년 2월 ~ 1837년 7월)
조선은 근대 문물 시찰을 위해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지로 대규모 사절단(보빙사)을 파견했습니다. 사절단은 런던에서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식을 목격하고 영국의 산업 시설을 시찰했으며, 파리에서는 프랑스의 법제도와 의료 체계 도입을 논의
3. 입헌군주제 선포와 군사 혁신 (1836년 8월 ~ 1837년 2월)
1836년 8월 5일, 조선은 절대 왕정을 종식하고 동양 최초의 입헌군주제를 골자로 한 조선헌법을 선포했습니다. 행정권 분립을 위해 내각이 구성되었으며, 부산 영도 조선소에서는 미국 기술을 바탕으로 조선 최초의 철갑함 ‘광무호’ 건조가 시작
대외 갈등과 무력 시위 (1837년 6월 ~ 8월)
1. 청나라와의 갈등: 청나라는 조선의 독자적인 헌법 제정과 미·서구권과의 밀착을 사대 관계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강하게 질책하며 외교적 위기를 조성
2. 일본과의 충돌: 1837년 6월, 조선은 광무호를 일본 시모노세키로 보내 해안 탐사를 실시했습니다. 도쿠가와 막부군이 이를 주권 침해로 간주해 선제 공격을 가하자, 광무호는 압도적인 화력으로 응전했습니다. 이후 조선은 철갑함 3척을 동원하여 시모노세키 항로를 봉쇄하고 일본 상선의 통행을 제한하는 강력한 무력 시위를 전개하며 막부의 사과와 통상을 압박
3. 국방 자립과 세계 정세 (1837년 8월)
조선은 미국과 5개년 군사 원조 계획을 체결하고 신식 소총 및 대포를 생산하는 군수 제조창을 건립하여 국방 자립의 기틀을 마련
1837년 8월 20일 - 1839년 2월 15일 조선 제국 및 세계 정세
1. 조선의 근대화와 사회 개혁 (1837.08 - 1839.02) 조선은 영국에 제2차 사절단을 파견하여 선진 기술과 입헌 정치 체계를 시찰하며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한성-제물포 간 가도 정비와 영도 조선소의 철갑함(광무호, 강무호) 건조로 군사·물류 혁명을 이끌었습니다. 특히 1838년 10월, 과거제 및 신분제 철폐, 은 본위제 도입, 조세 금납제 시행을 골자로 한 대대적인 내부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보수 유림의 반발은 미국 유학 지원과 근대 교육(소학교), 의료(제중원, 종두법) 보급을 통해 회유하며 만민 평등의 근대 국가로 전환
2. 조일 전쟁과 조일수호조규 (1837.09 - 1838.07) 일본의 선제 공격에 대응해 조선은 철갑함 10척을 투입, 시모노세키 해협을 봉쇄하고 에도를 침공했습니다. 조선 신식 보병대는 에도 성을 함락하고 도쿠가와 이에요시 쇼군을 생포하는 전례 없는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1838년 7월, 양국은 쇼군 석방의 대가로 조일수호조규를 체결했습니다. 이를 통해 조선은 시모노세키·오사카 개항, 해안 측량권, 치외법권을 확보하며 일본에 대해 우월적 지위를 확립했습니다. 이후 일본 내부는 불평등 조약에 반발한 사쓰마 번 등 '존왕양이' 세력의 봉기로 내전 위기에 직면
3. 대청 관계와 압록강 대치 (1837.12 - 1839.01) 청나라는 조선의 독자적 군사 행동과 개혁을 종주권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압록강에 팔기군을 집결시켜 무력 시위를 벌였습니다. 조선은 미국의 지지를 바탕으로 강경하게 대응했으며, 미합중국은 아시아 함대를 제물포에 입항시키고 군사 고문단을 통해 조선의 주권을 보장했습니다. 청나라는 북양 함대까지 동원해 서해를 위협했으나, 조선의 신형 철갑함들이 대응 출격
1839년 2월 15일 ~ 6월 22일
1. 대한제국 선포와 대청 전쟁의 발발 (1839년 2월 15일 ~ 3월 15일) 조선은 청나라의 내정 간섭을 규탄하며 사대 관계를 청산하고 대한제국 수립을 선포했습니다. 고종은 광무제로 즉위하여 자주국임을 천명했습니다. 대한제국은 즉시 철갑함 광무호 15척을 다롄과 상하이로 급파해 무력 시위를 벌였으며, 미국의 군사 고문단 지원 아래 북부 방어선을 공고히 했습니다. 청나라 팔기군은 예상치 못한 해군력에 당혹하며 보급로 위협에 직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한제국은 청나라의 고압적인 중화사상과 위협을 강력히 비난하며 외교적 단절을 선언
2. 요동 진격과 베이징 함락 (1839년 3월 16일 ~ 4월 15일) 전면전에 돌입한 대한제국 신식 보병대는 압록강을 건너 요령(Liaoning) 지역의 팔기군을 궤멸시켰습니다. 해병대는 다롄을 점령해 만주 보급로를 차단했고, 육군은 산해관을 돌파하여 베이징 외곽을 포위했습니다. 상하이 파견함대는 조계지와 항만을 점령해 청의 세입에 타격을 주었습니다. 결국 4월 15일, 대한제국군이 베이징 시내와 자금성 정문을 장악하며 청 황실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3. 베이징 조약과 영토 확장 (1839년 4월 15일 ~ 5월 10일) 양국은 베이징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청은 대한제국을 대등한 자주국으로 인정하고, 요동(다롄 포함), 길림, 흑룡강, 연해주를 할양했습니다. 또한 상하이를 개항하고 대한제국 상인에게 치외법권을 부여했습니다. 대한제국은 청의 연호를 폐지하고 독자적 역법을 채택했으며, 내적으로는 우체사와 한성재판소를 설립해 근대적 사법·행정 체계를 구축
4. 북방 개척과 국제 정세의 변화 (1839년 5월 12일 ~ 6월 22일) 대한제국은 사할린(Sakhalin) 남단에 식민지 거점을 건설하고 제4신식보병대대를 창설해 국방을 강화했습니다. 또한 러시아에 사절단을 보내 니콜라이 1세와 친선을 도모했으며, 흑룡강 국경 안정과 통상 협력을 논의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대한제국 외국어학교와 제대학을 설립해 근대 인재 양성에 힘썼습니다. 한편, 조정에서는 일본의 '양이' 세력을 척결하기 위한 정일론이 논의되었고, 이에 일본 사쓰마 번은 결사항전을 준비하며 긴장이 고조되었습니다. 미국은 대한제국의 승리를 축하하며 강력한 동맹 관계를 확인
대한제국 열강 및 패권국 진입.
1. 내정 및 근대화: 제국의 혈맥과 자원 확보 대한제국은 미국 기술진의 자문을 받아 한성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제국 철도) 부설을 선포하고 기공식을 거행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한성-인천 전신선을 완공하여 실시간 행정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북방에서는 사할린, 만주, 연해주 일대에 대규모 자원 조사단을 파견하여 사할린 남부의 노천탄광을 발견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만주 종단 철도 계획이 수립되었고, 다롄(대련)을 근대식 항구이자 북방 함대 기지로 건설
2. 대일 외교 및 군사 행동: 사쓰마 번의 저항과 제물포 협약 사쓰마 번 낭인들이 대한제국 상인을 습격하고 인민에게 피해를 입히자, 대한제국은 철갑함 강무호를 발진시켜 무력 시위를 벌였습니다. 에도 막부는 대한제국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 굴복하며 제물포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협약으로 대한제국은 일본 내 군사 주둔권과 공식 사과를 받아냈으나, 사쓰마 번은 이를 거부하고 항전을 선언했습니다. 이에 대한제국 육전대는 가고시마에 상륙하여 주요 포대를 초토화하고 실질적 점령지에 들어갔으며, 이 과정에서 무능한 막부에 반대하는 일본 내 ‘막부 타도’ 움직임이 격화되어 열도는 내전 상태에 빠졌습니다.
3. 대륙 및 북방 정세: 청·러 견제와 포용 정책 대한제국은 러시아 제국과 두만강 통상 조약을 체결했으나, 러시아의 요새 건설에 대응해 연해주에 신식 보병대대를 증원하며 군비 경쟁을 이어갔습니다. 청나라는 대한제국의 경제적 침투와 군사적 위협에 대응해 내정 개혁을 시도 중입니다. 한편, 광무제는 만주족과 아이누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포용 정책을 시행하고 지린에 만주 통치 사령부를 설치하여 점령지를 행정적으로 완전히 통합했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길어져서 좀 나누면서 연대기를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