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사각(四角)이 아니야. 사각에 몰리면 죽어! 그래서 사(死)각의 링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상대편 주먹을 피해라. 맞아 죽고 싶지 않으면!"
전북 군산시 나운동 제일복싱체육관. 전진철 관장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체육관을 잡아 삼킨다. 링 위에는 땀방울이 송알송알 맺힌 오연지(21·호원대)씨의 주먹과 발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연지씨가 복싱 글러브를 처음 낀 건 중학교 2학년 때. 평소 운동을 무척 좋아하다 보니 삼촌이 있는 복싱 체육관으로 자연스럽게 출입하게 된 것. 남자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복싱의 매력에 매료되면서 연지씨는 단순한 취미활동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부모의 반대는 심했다. 하지만 복싱에 대한 연지씨의 열정은 막지 못했다. 좋아서 시작했던 복싱이지만 어려움도 있었다. 처음엔 날아오는 상대의 주먹을 막기 힘들었고, 남을 때린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사실 맞는 건 아직도 무섭단다.
이겼을 때 심판이 제 손 드는 그 순간의 감동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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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올림픽 금메달을 향해... 연지씨는 2년여 남은 런던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올림픽 여자복싱 금메달을 꿈꾼다. |
ⓒ 장희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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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 높은 훈련은 계속됐다. 알게 모르게 복싱기술이 몸에 배면서 실력을 늘었다. 지난 6월에 열린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회장배 전국복싱대회에서는 57kg급에 출전, 우승도 했다.
"링 위에서 심판이 이겼다는 의미로 제 손을 치켜드는 순간, 제 인생이 가장 빛나고 있다는 기분에 사로잡혔어요. 이게 복싱을 하는 매력이 아닐까요."
연지씨의 주특기는 아웃복싱이다. 상대편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유효한 타격을 노리는 기술이 뛰어나다. 167cm의 다부진 체구에 스피드도 일품이라고 전 관장은 말한다.
전 관장은 "연지는 복싱 운동 신경이 타고났다"며 "올림픽까지 남은 기간 동안 미흡한 점을 보완하고 실력을 보강한다면 한국 여자 복싱의 간판스타가 될 수 있는 재목"이라고 말했다.
연지씨는 국내 첫 여자복싱 올림픽 출전을 꿈꾼다. 그간 올림픽에서 복싱은 금녀(禁女)의 종목. 하지만 지난해 국제올림픽위원회는 2012년 런던올림픽부터 여자복싱을 정식종목으로 채택했다. 그래서 오늘도 연지씨는 오전, 오후, 저녁까지 이어지는 지옥훈련에 구슬땀을 흘리지만 지칠 줄 모른다.
무서운 투혼을 발휘하는 링 위에서와는 달리 링 밖에서는 밝고 명랑하다. 쇼핑도 즐기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또래 여성의 모습이지만 꿈을 향해 잠시 모든 것을 뒤로 미뤘다. 연지씨는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 꼭 금메달을 따는 게 소원"이라며 "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꼭 이겨내 반드시 꿈을 이뤄나가겠다"며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런던올림픽을 향한 연지씨의 도전. 올림픽까지 남은 기간은 2년여.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고 운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흘린 땀방울이 헛되지 않도록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연지씨.
태극마크를 달고 금메달을 향한 강력한 펀치를 날리는 그 날이 오기를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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