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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강-1(3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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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품」궁자의 비유, 궁자의 비유를 쭈욱 이제 비유를 이제 이야기해오다가 36번 합비(合譬)라, 과목상 합비라 그렇게 합니다. 합비라는 말은 비유하고 법하고 합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합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앞에서 설명한 것은 비유고 또 그보다 더 앞에 사대성문이 오늘날까지 공부해온 과정을 잠깐 이야기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걸 법이라고 하고 그 다음에 비유고 여기서부터는 비유하고 법하고 합해서 이야기한다. 아주 경전은 논리정연하게 그렇게 정리가 돼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앞에서 장자이야기 그리고 궁자의 이야기, 못난 아들의 이야기. 못난 아들은 우리들 중생이고 아주 거부장자는 부처님이다. 그런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부장자인 그 아주 어마어마한 재산을 가진 그 부처님의 외동아들이다 하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돼요. 우리 한 사람 어디에서 어떤 대접을 받던 그건 아무 관계없이 부처님에게만은 부처님의 외동아들이다. 오직 하나뿐인 외동아들이다 이렇게 이해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와같이 우리 인간의 고유한 본성은 너무나도 고귀한 것이고 또 우리가 갖고 있는 본성은 그 가치로 따져서, 여기에서 거부장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그런 그 어마어마한 재산처럼 우리 마음속에 무량복덕(無量福德)을 다 갖추고 있고 한량없는 지혜도 갖추고 있는데 그것을 활용해서 쓸 줄 모르는 그 사실뿐입니다. 그건 이제 우리가 그 자신을 하찮게보고 우리 자신을 아주 왜소하게 못나고 아주 좁쌀같은 인간, 아주 소인배 이렇게 스스로 그렇게 취급하고 그만 거기에 익숙해져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여기 비유에서도 봤지만은, 그 못난 아들이 그 아버지 집에서 그야말로 품팔이를 하면서도 그 품팔이도 뭐 보통 무슨 뭐 장부정리하는 서기나 뭐 이런 정도가 아니고 정말 제일 아주 천한 일, 똥을 치고 거름을 치고 청소하고 하는 그런 일을 하고 일당을 얼마씩 받아서 생활했다고 하는 이런 정말 분통터진 일을 우리가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의 그 많은 재산이 전부 내 재산인데 우리가 속이 좁고 소인배근성을 버리지 못해서 그렇게 조그만한게 그냥 우리 자신을 활용하고 있다는 이 사실입니다.
그래서『법화경』은 자꾸 이제 그 깊이 읽고 사유를 많이 하고 또 사경을 함으로해서 그것이 자꾸 내 가슴에 무르녹고하면은 커지죠. 가슴이 커지고 마음이 커져서 부처님의 모든 재산을 내가 물려받아도 하나도 겁낼 것도 없고‘아 뭐 나는 부처님 하나뿐인 아들이니까 내가 다 물려받아야지. 아버지 돌아가시기전에 다 내놓으십시오.’할 정도로 마음이 그렇게 당당하고 커져야 하는 것이 바로『법화경』에서 해야 할 숙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이「신해품」아주 유명한 궁자의 비유에서 잘 이해해야 할 부분이죠.
3.비유에서 법을 밝히다
36 世尊 大富長者 則是如來 我等皆似佛子 如來常說我等爲子
세존 대부장자 즉시여래 아등개사불자 여래상설아등위자
世尊하 大富長者는 則是如來시고 我等皆似佛子니
세존이시여 大富長子(대부장자)는 바로 如來(여래)고, 비유해서 말했던 대부장자라고 하는 이는. 또 우리들은 모두가 다 皆似(개사) 다 부처님의 자식과 같은 입장입니다.
如來常說我等爲子니다
여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우리들을 자식을 삼았습니다.
그렇죠. 부처님은 항상 자식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도 물론 우리 제자들은 많지만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오직 하나뿐인 자식, 외동아들처럼 그렇게 생각을 했다고 하는 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모든 복덕과 지혜의 살림살이를 우리에게 몽땅 이『법화경』이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다 털어내놓는 그런 그 말씀이죠.
37 世尊 我等 以三苦故 於生死中 受諸熱惱 迷惑無知 樂著小法
세존 아등 이삼고고 어생사중 수제열뇌 미혹무지 낙착소법
世尊하 我等이 以三苦故로
세존이시여 我等(아등)이 三苦(삼고)로써, 세 가지 고통으로써
於生死中에 受諸熱惱하야 迷惑無知하야 樂著小法이니다
생사가운데 여러 가지 뜨거운 번뇌를 받아서 미혹해서 알지를 못한다. 그래서 小法 작은 법에 즐겨 집착했습니다.
이것이 참 정말 우리들의 근기를 딱 알고 하는 이야기입니다.‘아이고 나야 다른거 바라는 바 없습니다. 우리 아들 그저 몸 아픈데 건강만 좋아졌으면 좋겠습니다.’하는 그런 마음 또 재수생이 있으면은 그 집안에는 제일 큰 문제가 학교 진학하는, 자식이 학교 진학하는 문제입니다. 그것만 소원대로 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사실은 우리가 마음을 좀 열고보면은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디 아이가 학교만 가면 어디 다입니까? 다가 아니여 그건. 그 순간은 그게 급한 일이지만은 그게 다가 아니라고 첩첩히 문제가 쌓여있어. 끝도없이 문제가 쌓여있어. 내가 눈을 감던지 지가 눈을 감던지 둘중에 하나, 그거 밖에 달리 해결책이 없을 정도로 첩첩히 문제가 쌓여있어.
그래서 이 부처님 말씀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늘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부분적인 해결책보다도 전체적인 해결 그리고 근본적인 것 그래서 안목을 열어주는 것이고 그래도 내가 수용을 못하는데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수용을 할 때 자기복이지. 수용못하면은 그게 복이 아니에요.
그래 樂著小法(락착소법)이야. 작은 법에 樂著해가지고, 이 著자가 참 妙가 있습니다. 그냥 즐기는 정도가 아니고 거기에 착 붙었어 그냥. 작은 문제에 탁 그 즐겨 붙어 집착을 해가지고 살았습니다. 자기 고백이에요. 이 사대성문이 그동안 평범한 사람으로서 그렇게 살아온데 대한 이제 고백입니다.
여기 三苦라고 하는 낱말이 나왔는데 三苦는 이제 고고(苦苦), 괴고(壞苦), 행고(行苦) 이제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생존하고 있는 것에 세 가지 고통을 말하는데, 苦苦라고 하는 것은 괴로울 고(苦)자 두 개를 써서 苦苦하는데 이제 좋아하지 않는 대상으로부터 느끼는 고통.
그 다음에 行苦는 어떤 세상의 어떤 변화를 보고 느끼는 고통이라.‘아이고 망조가 들었다. 세상 망조가 들었다. 말세다.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는데’세상이 자꾸 변해가니까. 어떤 정치상황도 변하고 무슨 풍속도 변하고 젊은 애들 하는 짓도 변하고 그것 보면 어른들 괴롭거든요. 그것도 고통속에 들어가 있어. 근데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냥 우리 어른들의 습관이, 상식이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서 우리가 괴로울뿐이에요. 거기서도 깨달아야돼. 거기서 우리가 깨달아야지. 달리 뭐 다른 해결책이 없습니다. 뭐 신세대 나무라고 아들 나무랄 일이 아니라구요.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데
그래서 부처님이 行苦라 했어. 행할 행(行)자, 고통 고(苦)자 이 三苦가운데 두 번째. 그 세상이 변천해가는 그것을 보고 자기 마음에 안들어서 느끼는 고통을 두 번째 行苦라 그래요. 참 어쩌면 그렇게도 속속들이 알았을까?
그 다음에 이제 세 번째는 壞苦 그래요. 무너질 괴(壞)자, 괴로울 고(苦)자.『법화경』이쯤 공부했으면 집에 불교사전 큰 거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어야 돼. 집에 불교사전 척 한 권 꽂여있어봐요. 친구들이 집에 왔다가 그것만 보고 놀란다 그만.“아이고 불교사전까지 갖다놓고 공부하는구나.”한 번도 들쳐보지 아니해도 그렇게 위력이 있어. 그거는, 아이 실제로 그런 능력이 있다구요. 그럼 바로 야꾸 죽는 거야. 그래가지고 다른 것 좀 시시해보여도 함부로 못본다고, 친구가 어느새 괄목상대(刮目相對)라.‘아 그전에는 뭐 비리비리하더니 그새 그렇게 공부해가지고 저런 책을 꽂아놓고 공부하는가’해가지고 그만 그야말로 눈을 붉히고 친구를 보고 그 다음에 실실실 꼬리 빼는거야. 저그는 딴 데가서 실컷 재밌게 놀다보니까 아이 친구는 어느새 저렇게 성장해 있더라 이거여. 여기에 공부하러 다니는 분들은 전부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 돼요. 그렇게 성장해있더라.“와! 네 어느새 그렇게 됐나?”해가지고 그 다음 실실 꼬리빼고 전화도 안해. 그 다음부터 겁이 나가지고, 그쯤 돼야 돼.
아 부처님 제자가 돼서 그렇게 좀 성장을 해야지. 성장을 하셔야지. 부처님 인연을 만났는데 줄 잘 섰잖아요. 줄을 얼마나 잘 섰습니까? 우리는 부처님 거기다가 대승경전『법화경』을 만났지. 그 내~ 내가 사경해라 사경해라 사경하라고 조르지.
그 다음에 이제 壞苦라고 하는 무너질 괴(壞)자, 고(苦)자는 바람직한 것이 파괴되는 고통을, 파괴되는 것을 보고 느끼는 고통입니다. 변하는 것.‘아 그것 참 괜찮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게 벌써 달라져 있다 이거여.
예를 들어서 금방 비유를 들었던 친구가 자기 수준인 줄 알고 한 번 집에 왔다가 보니까 아이 뭐 불교사전을 꽂아놓고 불교사전을 보니까 벌써 손때가 묻어가지고 새까맣고 여기저기 사경한 흔적이 있고 이러면 그 다음에 그 사람에게는 이게 壞苦야.‘아 이 친구가 저렇게 나보다 빨리 성장해버렸어. 이제는 같이 놀 수준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그만 섭섭해가지고 돌아가는 거야. 자존심상하고 섭섭하고‘아 이 친구가 내 수준아 아니구나.’그와같이 다른 현상들도 말하자면은 내가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변해있더라 이거여. 어느새 변해있더라. 그것이 三苦입니다. 苦苦 行苦 壞苦
아뭏튼 우리들은 그러한 여러 가지 고통으로써 生死가운데서 여러 가지 熱惱(열뇌)를 받아가지고서 迷惑(미혹)해서 無知(무지)하여 樂著小法(락착소법)이니다. 작은 법에 그만 즐겨 집착했습니다.
38 今日世尊 令我等 思惟蠲除諸法戱論之糞 我等於中 勤加精進
금일세존 영아등 사유견제제법희론지분 아등어중 근가정진
得至涅槃一日之價 旣得此已 心大歡喜 自以爲足 便自謂言
득지열반일일지가 기득차이 심대환희 자이위족 편자위언
於佛法中 勤精進故 所得弘多
어불법중 근정진고 소득홍다
今日世尊이 令我等으로 思惟蠲除諸法戱論之糞케하시니
금일 세존이 우리들로 하여금 생각해서 蠲除 말하자면, 보내다. 제해서 내보내는 것을 蠲除라고 해요. 제할 견(蠲)자, 제할 제(除)자니까요. 여러 가지 법, 戱論(희론)의 똥, 장난감에 불과한 그런 아주 소승법 이걸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주 장난감이고 그저 어린아이들의 그 놀이하는 그저 장난감에 불과한 그런 그 우스개소리와 같은, 그게 戱論이라는 뜻입니다. 그거는 말하자면은 똥을 치고 하루 일당을 받아가는 그런 수준이라는 것이죠. 그렇게 하시니, 그것을 제하게 하시니
我等於中에 勤加精進하야
我等이 그 가운데서 부지런히 精進(정진)을 더해가지고서
得至涅槃一日之價니다
열반의 하루의 품삯 一日之價(일일지가) 하루의 품삯을 얻는데 이르렀다 이 말이요.
涅槃 열반하는 것은 결국은, 자기 한 몸 편하자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건 뭐 어떤 그 상태로써 편하든지, 저~ 삼매에 들어서 편하든지, 아니면은 무슨 목석이 돼서 편하든지, 아니면은 선정에 들어서 편하든지, 그런 어떤 그 번뇌가 사라져서 편하든지간에 자기 한 사람 정신적으로 편한 것 그것은 똥을 쳐주고 하루 품삯을 받는 그런 아주 시시한 어떤 그 수준에 불과하다 하는 것입니다.
그거는 아주 그 괴로움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소극적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부처님도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경전에 많이 있습니다. 왜냐? 당장에 괴로운 사람에게는 그 사람부터 편안하게 해줘야 하니까 그러나 부처님의 본의(本意)는 그게 아니죠. 부처님의 본의는 보살행이고 보다 더 부처의 삶으로 살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뜻이지. 뭐 지 혼자 편안하게 사는 거 아니에요. 그 사람이 하도 괴로워하니까 그 사람 한 사람만이라도 그저 우선 편안하게 하라고‘중간(中間) 기착지(寄着地)’비슷하게 그렇게 말한 것이 열반에 대한 법입니다.
旣得此已에 心大歡喜하야 自以爲足하고
이미 이러한 것을 얻고 남에 마음에 크게 환희해서, 그렇죠. 뭐 삼수한 애가 학교가면 이제 합격만 해도 성불한거다. 얼마나 기분좋았으면 그렇게 성불했다고 자랑하고 다니겠어요. 이것만 얻고도 心大歡喜(심대환희)라. 마음이 크게 환희해가지고서 스스로 만족함을 삼고
便自謂言하대 於佛法中에 勤精進故로 所得弘多로이다
곧 스스로 말하기를 불법가운데서, 불교가운데서 열심히 정진하고 기도하고 뭐 하고싶은거 다 그렇게 등도 켜보고 뭣도 해보고 좋다는 거 다~ 기도처 다니면서 빌어도 보고 한 까닭으로 그 인연으로 소득이 크다. 아주 크다. 弘多(홍다) 크고 많다. 이렇게 여기는 거요.
이 사대성문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을 했었다. 그런 말이요.
39 然世尊 先知我等 心著弊欲 樂於小法 便見縱捨 不爲分別汝等
연세존 선지아등 심착폐욕 낙어소법 편견종사 불위분별여등
當有如來之見寶藏之分
당유여래지견보장지분
然世尊이 先知我等의 心著弊欲하야 樂於小法하시고
그러나 세존께서 먼저 우리들의 마음이 弊欲에 집착한 것을 알아서, 弊欲(폐욕)에 집착해서 小法 작은 법을 즐겨하는 것을 아시고
마음이 弊欲에 집착했다고 하는 것은 작은 아주 소소한 , 비정상적인 자기의 어떤 바램 이런 것을 弊欲이라 합니다. 그래서 작은 법 즐기는 것을 아시고
便見縱捨하사 不爲分別汝等이
곧 縱捨(종사) 내버려 두었다 이 말입니다. 내버려 두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귀에 안들어가니까 아무리 이야기해봐야 귀에 안들어가니까 그냥 일단은 그대로 내버려 두시고 분별해서 그대들이
當有如來之見寶藏之分이라하시고
마땅히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지혜 寶藏(보장) 보배 창고의 分이 있다고 가르쳐주지 않았다 . 不爲分別(불위분별)하는 것이 너희들에게도 마땅히 여래 지견의 보배 창고의 분이, 능력이 된다고 분별해서 가르쳐주지 아니했다.
그러니까 이제 근기따라서 이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이『법화경』은 그런 그 방편을 전부 부정하고 방편은 아주 작은 법이라고 부정하고 정말 부처님의 큰 살림살이, 불교의 진면목, 정법불교, 바람직한 불교, 참된 불교는 바로『법화경』의 이러한 가르침이라고 하는 이러한 수준의, 그래도 여러분들이 재미를 느껴가지고 갈수록 사람들이 많이 불어나고 공부할려고 하는 것은 모두 이제 지혜가 낫고 어떻게 보면 그만치 이제 세상이 밝아져서 알것은 다 알았다고 하는 뜻도 돼겠지만은, 상당히 마음이 커졌고 대승법을 받아들일 그 수준에 이르렀다. 이렇게 볼 수가 있어요. 그게 한 시간 인연이 됐던지, 일 년 인연이 됐던지, 십 년 인연이 됐던지간에 이런 대승경전과 인연이 된것은 그야말로 참 근기가 그만치 이르렀다. 이렇게 이제 볼 수가 있습니다.
40 世尊以方便力 說如來智慧 我等從佛 得涅槃一日之價 以爲大得
세존이방편력 설여래지혜 아등종불 득열반일일지가 이위대득
於此大乘 無有志求
어차대승 무유지구
世尊以方便力으로 說如來智慧어늘
세존께서 방편력으로써 여래의 지혜를 설하시거늘
我等從佛하야 得涅槃一日之價하고
우리들은 부처님으로부터 열반이라고 하는 하루의 품삯 그것을 얻고
以爲大得이라하야
크~게 얻었다고 하루의 품값 그저 똥치고 그저 체 하천한 그런 일을 했는데, 그 품값이 그거 얼마겠어요? 그거 얻고는‘야~ 오늘 돈벌이 좋다 말이야. 크~게 벌었다고 大得(대득)이라고’큰 소득이 있다고 그렇게 여기거늘 이랬어. 그리고
於此大乘에 無有志求니다
이 대승에 있어서는 뜻으로 구함이 있지 아니했습니다. 뜻에, 마음에 구함이 없었습니다. 이 말이여. 정말 대승법, 바람직한 불교에는 마음으로부터 구할려는 그런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걸 이제 그 저 가섭존자, 가전연, 수보리, 목건련 이 사대성문이 자기가 그동안 걸어온 길을 쭈욱 이런식으로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게 그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겠습니까? 저도 해당되고, 여러분들도 해당되고 우리들 불자들이 대개가 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이 자리까지 오게된 것이죠.
사실 자녀들 진학문제 때문에 부처님하고 인연이 됐다가 정말 법화회상(法華會上)에까지 이렇게 당도하게 됐으니 얼마나 그 자식이 고맙고 선지식이고 소중한 인연입니까? 소중한 인연으로 우리는 이해를 해야됩니다. 그건 뭐 시시하다. 지금 다 지내놓고 보면은 별거 아니었다 하지만은 사실 그것은 하나의 씨앗이고 소중한 인연이기도 합니다.
41 我等 又因如來智慧 爲諸菩薩 開示演說 而自於此 無有志願
아등 우인여래지혜 위제보살 개시연설 이자어차 무유지원
所以者何 佛知我等 心樂小法 以方便力 隨我等說
소이자하 불지아등 심락소법 이방편력 수아등설
而我等不知眞是佛子
이아등부지진시불자
我等이 又因如來智慧로 爲諸菩薩하야 開示演說하대
我等(아등)이 또 여래의 지혜로써 諸菩薩(제보살)을 위하야 開示演說(개시연설)함을 因(인)하대
『법화경』에 있어서는 누구든지 다 보살입니다. 누구든지 성문이고 연각이고 처음 온 사람이든 십 년된 사람이든 할 것없이 곧 부처가 되기 직전에 있는‘그대도 부처님이다.’이런 소리를 당당히 들을 수 있는 그 보살 입장인거요.
그래서 여기도 여래지혜로써 여러 보살들을 위해서 開示演說하는 것을 因해서
而自於此에 無有志願호니
스스로 거기에서 그런데 이제 그런 설법을 듣기는 들어요. 그런데 뜻과 원이 없었어. 뜻과 원이 없었는데
所以者何오 佛知我等의 心樂小法하시고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은 부처님께서 우리들은 마음에 小法 작은 법 즐겨하는 것을 아시고
以方便力으로 隨我等說이언만은
방편력으로써 우리들에게 맞춰서 설해주건만
而我等不知眞是佛子로이다
우리들은
참다운 진짜 불자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똑같이 이야기를 해도‘공덕이 된다. 무슨 자기 조그만한 소망이 이루어지지나 않을까?’라고 이렇게 생각하고 이 자리에 앉아있을 수도 있는 거에요. 그 가섭존자같은 아주 상수제자(上首弟子) 이런 이들까지도 처음에는 그런 수준이었다 하는 것입니다.
사람으로써 한 생을 사는데 비슷비슷한것 같지만 사실은 그 정신적인 수준 속을 들여다보면 참 천차만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부처님 가르침중에서도 대승경전인 이『법화경』이것은 마치 부처님에게 가까이하게 된 것이고 대승법에 가까이 한 것인데, 예컨대 작은 벌레가 천리마 꼬리에 붙으면은 하루에 천 리를 갈 수 있거든요. 말덕택에 붙기만 하면 천 리를 그냥 가는거야. 부처님과『법화경』의 능력이라는 게 그런 거에요. 우린 천리마 꼬리에 붙은거요. 우리가 비록 작은 벌레일지 몰라도 천리마 꼬리에 붙었으니까 아 천 리를 달리는 거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이『법화경』안에 담겨있는 깊고 오묘한 뜻을 밝혀내서 마음에 아주 환하게 깨달음이 오도록 그렇게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42 今我等 方知世尊 於佛智慧 無所悋惜 所以者何 我等昔來 眞是佛子
금아등 방지세존 어불지혜 무소인석 소이자하 아등석래 진시불자
而但樂小法 若我等 有樂大之心 佛則爲我 說大乘法
이단락소법 약아등 유낙대지심 불즉위아 설대승법
今我等은 方知世尊이 於佛智慧에 無所悋惜이니다
지금에 우리들은 바야흐로 알았습니다. 뭘 알았는고 하니? 세존이 부처님 지혜에 하나도 아끼고 애석해하는 거. 아낄 린(悋), 아낄 석(惜)이니까
부처님은 당신이 터득한 그 지혜에 대해서 아끼는 바가 전혀 없어요. 지혜를 가지고 여러 사람에게 베풀어주는데 그게 당신것이 쪼개져서 나눠주는게 아니거든요. 그건 그대로 더 빛나지. 그래서 부처님 아낄 필요도 없어. 그대로 나눠주는 거요. 그대로, 뭐 지혜는 고사하고 지식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지식만 하더라도 자꾸 여러 사람에게 전해주면 전해질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불어나지 손해보는게 아니에요. 그 다른 사람도 알아지고 나는 내가 알고있는게 더 이제 빛나게 되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부처님 소원은 늘 부처님과 같이 되기를 제자들에게 바라듯이 저도 그래요. 여러분들이 여기서 이렇게 짧은 시간에 한 달에 기껏 한 두어번 한 이것가지고 집에 가서는 이제 공부를 하시고 또 인연닿는대로 한 마디라도 좀 일러주고, 일러주면 자기 공부가 되요. 첫째 자기가 공부가 되고 또 그것을 전해준 그 공덕이 또 지극히 큽니다. .
전에 내가 상주, 문경 김용사에 있을때 그 점촌에 있는 그 아가씨들이 그 청년회라고 해가지고 그때 청년회가 없을땐데, 어떻게 그 절에는 몇이 다니더라구요. 그래서 불교가지고 살살 꼬았더니 중이 셋이나 됐어. 그래서 나를 만날때 마다 고맙다고 그냥“스님 고맙습니다. 어떻게 스님 그때 우리를 유혹을 해가지고 그렇게 스님을 만들었냐고?”물론 자기 갈 인연이 됐겠지. 인연이 됐겠지만은 인연이 됐는데다 불을 질러주니까 퍼뜩 가는거야. 그래 가가지고 좋은데서 좋은 스님 만나서 이제 스님 돼가지고 공부도 많이 했더라구요. 공부도 많이 했는데, 만날때마다 찬사한거라. 어떻게 해 줄 줄을 모르는 거라. 그만 입이 닳도록, 정말 그 고맙다고 하는 인사가 그냥 소리가 아니라요. 백 번을 해도 그냥 소리가 아닌거야. 정말 마음이 담겨있더라구요. 그래서 나는 그것이 늘 생각날수록 흐뭇해요.
그렇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런 그 부처님 대승법은 혼자 듣고 혼자 공부할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그러면 친지들에게 알려주고 그래서 같이 공부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 가까운 사람이 이『법화경』공부 안하고 있는 것을 아주 마음 아파하고 말하자면 안타까워하고‘어떻게 하더라도 그 사람을『법화경』공부하도록 해야되겠다.’하는 그런 마음을 좀 가져야 되요. 그만치 보살은 좀 남을 위하는데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되고 좋은 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은 그런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됩니다. 이게 보살이에요.
그래 요 앞에서 이제 涅槃(열반) 자기 혼자만 편할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열반의 경지를 증득했다 하더라도 그거는 기껏해야 그 집에 가서 거름치고 똥치고 해가지고 하루 그저 먹고 살만한 품삯, 품삯받는 거 아주 그 중노동해가지고 품삯 겨우 받는 그런 정도밖에 안되는 거라. 그런 열반이라고 하는 자기만을 위하는 그런 그 어떤 소견 그런 것이고, 내가 손해보더라도 남을 이롭게하고 남에게 보탬이 되고 남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노력을 하는게 이게 이제 불교거든요. 이게, 결국은 그게 불교입니다. 그걸 이제 우리는 흔히 보살행(菩薩行) 이렇게 하는데, 크게 보살행이다 이름지을 필요없이 그저 안타까워가지고 어떻게 하더라도 기회봐서 그 마음을 이런 훌륭한 법에 돌이킬 수 있도록 그런 생각이 나야 되요. 자기가 공부하게 되면 그렇게 되겠죠. 부처님은 결코 아끼는 바가 없습니다.
所以者何오
까닭이 뭐냐? 왜 부처님은 당신의 그 정말 태자의 지위를 버리고 6년 고행 그 귀하신 몸이 6년간 피나는 고행을 해가지고 터득한 부처의 지혜를 왜 안 아끼느냐? 所以者何(소이자하)오. 까닭이 무엇이냐?
我等昔來로 眞是佛子어늘 而但樂小法이로다
우리는 진짜 부처님 아들이야. 그런데도 다만 小法만 좋아한다. 작은 법만 좋아했다 말이야.
부처님 아들이 돼가지고 부처님 재산을 몽땅 받아도 시원찮은데 그저 기껏해야 그 집에 품팔이나 할 정도로, 장자 아들이 돼가지고 그대로 물려받으면 좋을텐데 이 비유가 너무 아주 근사하잖아요. 근데 자기 집에서 자기 일하고 품값을, 최하품값을 겨우 받아서 먹고 살다니 참~ 기가막힌 일 아닙니까?
若我等이 有樂大之心이런들 佛則爲我하사 說大乘法일러이다
만약 우리들이 대승법『묘법연화경』같은 대승법을 즐겨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부처님이 곧 우리를 위하사 대승법을 설했을 것입니다.
부처님은 사실은 뭐 방편으로 이런저런 소승법을 설할때가 있지만은 사실 본마음은 그게 아니고 큰~ 이익으로써 중생들에게 베풀어주고자 하는게 이게 부처님 마음이에요. 불교입니다. 불교는 본래 그게 이제 참모습인데, 그렇게 열려있건만 우리 중생들의 마음이 작은 관계로 또 발등에 떨어진 불이 급한 관계로 그저 절에 와서 불교안에서 아주 자질구레한 그런거나 관심을 쓰는 그런 처지가 된거죠.
43 於此經中 唯說一乘 而昔於菩薩前 毁訾聲聞 樂小法者 然
어차경중 유설일승 이석어보살전 훼자성문 낙소법자 연
佛實以大乘敎化
불실이대승교화
於此經中에 唯說一乘이어늘
지금 이 경전가운데 오직 一乘(일승)만을 설하거늘, 一佛乘(일불승)이죠. 부처의 삶입니다. 一乘이라는 것은, 모두가 부처의 삶이라고 하는 그런 차원을 一乘이라 그렇게 합니다. 오직 一乘을 설하시거늘
而昔於菩薩前에 毁訾聲聞의 樂小法者나
옛날에 보살앞에서 성문들이 소법을 즐겨하는 것을 毁訾(훼자) 아주 비방하고 욕했다 이 말이여. 꾸지럼도 하고 그걸 毁訾입니다. 헐고 비방하시며, 했다 이 말이요.
然이나 佛實以大乘敎化니다
또 그래서 부처님은 實로 대승으로써 교화했습니다.
부처님의 본마음은 대승법이다. 모든 중생들을 오로지 하나뿐인 자기 외아들처럼 생각을 하고 당신이 깨달으신 그런 그 부처의 지혜를 똑같이 깨닫도록 하는게 부처님의 자나깨나 생각하는 마음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를 이『법화경』에서 다 들어내는 거죠.
44 是故我等 說本無心有所希求 今法王大寶 自然而至 如佛子
시고아등 설본무심유소희구 금법왕대보 자연이지 여 불자
所應得者 皆已得之
소응득자 개이득지
是故我等이 說本無心有所希求이나 今法王大寶가 自然而至로소니
是故(시고)로 우리들이 본래 희구하는 바 마음이 없었으나 지금에는 법왕의 大寶(대보) 부처님을 法王(법왕)이라 그래요. 法의 王이다 진리의 왕이다 이렇게 합니다. 大寶가, 큰~ 보배가 저절로 이르러 온거죠.
뭐 마음에는 크게 성불할 생각도 없고『법화경』공부할 생각도 없고 대승법이 뭔지, 일불승이 뭔지 별로 관심없었죠. 그런데 어떻게 또 좋은 인연이 전생부터 있었든지 있어가지고 이 자리에 와가지고 法王의 大寶가, 부처님의 큰 보배가 自然而至(자연이지)라. 저절로 이르러 왔다 이 말이요. 참 얼마나 홍복(洪福)입니까? 홍복중에 홍복입니다.
그 부처님하고 인연맺고 불교를 공부하고 불교를 믿고 이『법화경』공부를 못했다면은 그거는 불교 100분의 1밖에 모른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것입니다.
如佛子의 所應得者를 皆已得之니다
예컨대 불자의 응당히 얻어야 할 것을 다 이미 얻은 것입니다.
『법화경』우리가 잘 터득해서『법화경』의 이치를 깨달으면은 정말 불자로서 얻어야 할 것을, 꼭 얻어야 할 거, 불자로서 꼭 알아야 할 거, 꼭 얻어야 할 것을 다 얻는 것이 된다. 아 이렇게까지 해놨는데 이『법화경』공부 안하고 어디가서 무얼 할려고요? 열심히 쓰고 읽고 그 한글로 번역한거 봤다가 또 한문된거 봤다가 한 번 혼자서 이래저래 새겨 봤다가 한문번역 있으면 한문하고 이렇게 맞춰보면서‘아 이 구절은 이렇게 해석하는구나. 이렇게 해석하는구나.’그렇게 해서 하나씩 하나씩 이제 재미를 붙이면은 금방 터득하게
됩니다.
# 감상곡;베르디의 나부코 중에서 포로들의 합창
https://www.youtube.com/watch?v=vORBLyGEoz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