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 가방엔 '3초 백'이라는 별명이 있다.
거리에 나가면 3초마다 한 번 씩 볼 수 있대서 붙은 비아냥이다.
이삼백만원씩 하는 가방을 그리 자주 볼 수 있는 도시는 세계에서 서울이 유일할 거다.
밀라노,몬테나,폴레오네, 파리 샹젤리제에서도 보기 힘든 풍경이다.
3초 백은 커녕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백팩하나 메고 다니는 눈치 주는 사람이 생겼다.
백발 희끗한 40대 중반 여자가 언제고 바지에 단화, 배낭 차림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한 친구는 매우 진지하게 충고했다.
나이 들면 좋은 가방 하나 들고 다녀야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명품 가방 살 능력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까짓거 눈 감고 카드 한 번 긁으면 못 살 것도 없다.
명품에 마음이 잘 안 가는 이유는 셋이다.
명품 가방 사면 어울리는 옷을 사야 하니 귀찮고,
그렇게 차려입고 갈데가 별로 없다.
손님을 줄세워 놓고 기다리게 하며 주눅 들게 만드는 매장 풍경도 싫다.
눈요기나 하려고 집 앞 백화점에 슬리퍼 신고 갔다 아래위로 훒는 직원 눈총에 빈정 상한
뒤로는 더 그렇다.
마지막으로 가격이다.
가방 하나에 한 달 고생해 받은 봉급을 몽땅 갖다 바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게다가 세계에서 한국의 명품 값이 가장 비싼단다.
요즘 '핫'하다는 샤넬11,12백만 해도 유럽은 370만원, 미국은 490만원인데 한국에선 600만원
넘게 줘야 산다.
샤넬 2.55 빈티지 미디엄 한국 가격은 2007년 300만원대에서 2012년 680만원대로 폭등했다.
터무니없이 비싼 줄 알면서도 명품을 집어드는 건 고도의 마케팅 전략 탓이기도 하다.
일명 '안달의 법칙', 인기 있는 제품을 매대에 꺼내놓지 않는다.
흔해 보여선 안 되기 때문이다.
물건이 창고에 있는데도 "다 팔렸으니 2주 기다려야 한다"며 튕기기도 하고.
"값이 곧 오르니 지금 사는 게 좋다"고 귀뜀한다.
안달 난 고객에게 '지름신'이 내리는 순간이다.
'노 세일(no sale)'을 고수하며 높은 콧대를 뽐내 온 명품 브랜드들이 한국과 중국에서 값을
내린단다.
샤넬부터 많게는 20%나 내렸다.
말로는 '국가별 가격 정책'을 버리고 '글로벌 가격 일치화 전략'으로 돌아섰다지만 내놓고
말 못할 고민이 있다.
똑똑해진 소비자들이 맹목적 명품 추종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감지한 것이다.
가브리엘 코코 샤넬이 체인 달린 핸드백을 만든 건 여성의 두 손을 해방시켜주기 위해서였다.
한데 현대 여성즐은 기꺼이 그 명품의 노예가 되어갔다.
아무리 값을 내려도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는 날이 오긴 하겠나 싶다.
김윤덕 논설위원.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