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5.26.금요일 성 필립보 네리 사제(1515-1595) 기념일
사도25,13ㄴ-21 요한21,15-19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성인예찬(聖人禮讚)-
일기쓰듯 하는 강론입니다. 밤에 일어나 자비의 집 숙소를 나서니 반가운 봄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가뭄으로 메말랐던 대지가 봄비에 촉촉이 젖고 있었습니다. 저절로 참 많이 나눴던 “봄비”라는 짧은 자작 애송시가 생각났습니다.
“마음을 촉촉이 적시는
봄비!
하늘 은총
내 딸 아이 하나 있다면
이름은 무조건
봄비로 하겠다”-2005.5
2005년도 이맘때쯤 그러니까 18년전 쓴 시입니다. 세월은 그렇게 빠르게 지납니다. 앵두꽃 하얗던게 엊그제 같은데 한 수도형제는 어제 빨갛게 익은 앵두를 다 땄습니다. 빨간 앵두하니 27년전 써놨던 “고백’이란 시도 생각납니다.
“믿음의 뿌리 있어
희망의 나뭇잎
사랑의 열매다
사랑합니다.
마침내 빨간 열매로 사랑을 고백하는
앵두나무
초록빛 나뭇잎
희망 사이로 수줍게 살며시
얼굴 내밀고
사랑을 고백하는
빨간 앵두열매들
부끄러워 빨갛게 물들었네”-1997.5.30.
봄비가, 빨간 앵두나무가 상징하는 바 성인입니다. 비상한 성인이 아니라 일상에서 반갑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성인들입니다. 두분의 익명의 성인을 소개합니다. 어느 성인처럼 살아가는 의사가 전하는, 퇴근후 방문하여 치료해준 자매님의 아들인 교구사제가 성인입니다.
“알츠하이머와 파킨스 병으로 투병중인 어머님을 평생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고 계시는 신부님을 뵐 때마다 ‘사랑’을 정말 제대로 실천하고 계심에 감탄과 존경심이 저절로 생겨나네요.”
또 저보다 1년 후배로 초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한후 요양원에 있는 남편을 간병하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후 그 요양원에서 일하는 성녀같은 70대 초반의 자매님이 보내준 사연도 생각납니다.
“요양보호사 6개월째 제가 돌봐드리던 어르신들중 3분이 선종하셨습니다. 가슴 아픈 일은 임종을 알림에도 가족 누구도 오지 않고 화장장으로 온다며 그리로 어르신 시체를 보내라 합니다.
제가 세수부터 대소변에 전신목욕도 해드리고 죽드시는 식사도 떠드리고 말벗하면서 침대에서 내려오려 발버둥치는 순간 포착해 안아서 올려드리며 정성을 쏟으신 분입니다. 그분이 입으시던 옷, 안경, 성경책등 유품 챙겨 박스에 보내려 하니 가족은 그저 다 버려달라고.
80세로 허망하게 가신 제 어르신 가여워 한참동안 울었습니다. 가족이 어떤 의미인지, 죽음은 무얼 말하는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런 분들이 평범한 듯 하나 일상의 비상한 성인들입니다. 제게는 70대 후반에도 주방장 소임의 책임을 다하는, 또 70대 초반에도 젊은이 못지 않게 일하는 영원한 현역의 농장장 수도형제가 성인입니다. 각자의 일터에서 묵묵히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는 수도형제가 성인입니다. 부단히 자신을 겸손하게 합니다.
유난히 성인이 많은 한국 가톨릭 교회입니다. 절의 자산이 노승과 노목이라했지만 교회의 최고의 보물이자 자산은 성인입니다. 주님을 그대로 드러내는 주님을 닮아 참나를 살았던 성인입니다. 지난 수요일 베드로 광장에서 일반 청중을 위한 교황님의 훈화가 참 각별했으니 바로 박해시대 한국 교회에 대한 소개와 온통 성 김대건 안드레아에 대한 찬탄과 격찬의 강론이었습니다. 다섯부분에 대한 강조였습니다.
1.복음을 위한 위대한 시련.
2.항구히 그리스도를 따름.
3.복음을 완전히 살았던 분.
4.위대한 한국인의 증거.
5.모든 추락으로부터의 부활.
교황님께서 얼마나 한국교회 대해 애정과 관심을 쏟고 있는지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성인들의 나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가톨릭 신자들의 자부심입니다. 기념, 기억하라고 있는 성인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 살라고 선물로 주신 성인들입니다.
어제 베다 성인에 이어 오늘은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입니다. 다양한 꽃들처럼 크기, 모양, 색깔, 향기가 다 각기 고유한 꽃들처럼 성인이 그렇습니다. 똑같은 성인은 없고 주님을 닮을수록 고유의 참나의 성인입니다. 필립보 네리 성인에 대한 감동적인 생애를 일부 소개합니다.
-착하고 명랑한 성격에 유머 감각까지 겸비한 소년 필립보는 ‘착한 필립보Filippo bono’로 불렸습니다. 필립보가 활동하던 당시의 유럽은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 속해있었습니다.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이러 교회의 분열이 뒤따릅니다.
1517년 마르틴 루터에 의해 시작된 교회의 분열은 가톨릭 교회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고, 그리스도 교회는 가톨릭, 루터교, 개혁교회, 영국 성공회 넷으로 갈라집니다. 바로 로마의 사도라 부르던 필립보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던 때가 이 무렵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을 하느님께 이끌고자 준 많은 충고중 일부만 나눕니다.
“젊은이들이여, 선을 행할 시간이 아직 있으니 그대들은 복되다.”
“육신을 돌보는 데 지나치게 마음을 쓰지 말라. 교만을 미워하라. 자주 기도하라.”
“유혹을 받게 되면 그 즉시 주님께 매달려라.”
“하느님을 등지는 사람은 쉽사리 유혹에 빠진다.”
“악습의 온상인 게으름을 경계하라.”
동료사제들과 오라토리오 수도회를 설립한 성인에 대한 평가와 임종시 모습도 감동적입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유머 감각 풍부한 성인”이라고 칭했고, 동시대 사람들에게 “매력넘치는 인품을 지닌, 사람을 저절로 끌어들이는 능력을 지닌 성인 사제”, 또 “교회 역사상 가장 명랑한 성인”으로 평가받은 성인의 생애 마지막 5년 동안 심한 병고에 시달릴 때, 성인은 벽에 걸린 십자가를 가리키며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고통을 참으시며 십자가에 못박혀 계시는데, 이 비천한 몸은 이런 호사스런 자리에서 친절한 사람들의 간호를 받으며 쉬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염치없는 노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것을 원하는 자는 참으로 해야 할 일을 모르는 자입니다.”
1595년 5월26일, 성인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축복하고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다가 숨을 거두었고, 모든 이들은 “성인께서 돌아가셨다. 위대한 성인께서 돌아가셨다” 소리쳤다 합니다.-
오늘 복음과 독서도 인상적입니다. 복음의 주인공은 베드로이고 사도행전 독서의 주인공은 바오로입니다. 두 성인 사도는 교회의 양대 기둥입니다. 오늘 말씀의 분위기에 어른 거리는 두 사도의 머지 않아 맞이할 순교의 죽음입니다. 베드로에 대한 주님의 세물음과 답은 동일합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은 자기에게 세 번 배반했던 베드로에게 세 번 사랑을 확인하십니다. 그리고 사랑을 확인받자,
“내 양들을 돌보아라.”
말씀하신후, “나를 따라라” 명하십니다. 아마 얼마 안남은 동안 베드로는 자나깨나 “너는 나를 사랑 하느냐?” 이 말씀을 좌우명 삼아 주님 사랑에 온힘을 쏟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대로 오늘 우리가 좌우명으로 삼고 싶은 말씀입니다.
그동안 계속됐던 사도행전 제1독서도 내일이면 끝납니다. 오늘 바오로는 카이사리아에서 심문을 받고 이어 로마로 압송될 것이며 로마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담대히 선포하다 마침내 순교의 월계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바오로의 좌우명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다음 둘임에 분명할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필립1,21ㄱ)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4,7)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을 닮은 고유의 참나의 성인이 되도록 이끌어 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