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김용 학생의 담임을 바꿔 달라는 전화였습니다.
전화를 거신 분은 시내에 있는
담배가게 할아버지 였습니다.
학생 이름을 대면서
틀림없이 그 중학교 학생이냐 재차 물으시더니
학생이 담배가게에서 돈을 훔치다 잡혀 있으니
데려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부랴부랴 자전거를 타고 담배가게로 갔습니다.
그런데 용이는 그 담배가게에 없었습니다.
전화를 걸러 할아버지가 뒤뜰로 가시는 사이에
도망을 쳐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담배가게는
자식도 없이 외로이 사시는 할아버지 내외가
어렵게 꾸려가시는 가게였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말씀으로는
용이에게 다그쳐 물으니 이번 한번이 아니라,
그동안 여러번 돈을 훔쳤다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몇 차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용이를 찾아나섰습니다.
물론 용이네 집에도 가보았습니다.
용이네 집은 옹기가마 옆의
다 찌그러져가는 방 한칸짜리 집이었습니다.
용이 아버지는 옹기 굽는 데서 일을 하는 분이셨습니다.
용이 아버지는 옹기를 빚던 흙 묻은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몹시 놀라워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시내의 만화가게나 오락실 골목,
심지어는 들과 산에까지 용이를 찾아보았지만
용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후에는 아이들을 여기저기 내보내
찾게 해보았습니다.
역시 모두들 찾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그날 저녁 용이는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글쓰기 시간에 용이가
'강릉에 계신 어머니께' 라는 긴 편지를 쓴 적이 있습니다.
용이를 낳아주신 어머니는
아버지와 헤어져 강릉에 살고 계시는데
어머니 사진을 보며 어머니와 만날 수 있다면
이까짓 사진은 필요치 않을 것이 아니냐며..
어머니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용이의 편지는
많은 친구들의 코 끝을 찡하게 만들었습니다.
용이의 별명은 너구리 입니다.
가난하다는 것 외에는 아주 명랑하고 활발한 아이였습니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 놀았고 우스갯 소리도 잘했습니다.
그런 용이가 돈을 훔치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습니다.
하루가 또 지났습니다.
이러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은 아닌가
아주 딴 길로 가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오후, 수업이 끝난 뒤 도서실 앞에서 내려다보니
한 떼의 아이들이 왁자지껄하게 교문을 들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이었습니다.
그 아이들 가운데 용이가, 아이들에게 둘러 싸인 채
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마음을 다져 누르며
계단 쪽으로 조금씩 걸음을 옮겼습니다.
용이의 손을 잡고 앞서 오는 아이가 보였습니다.
아이들을 돌아가게 한 다음
저는 용이를 데리고 도서실로 갔습니다.
도서실에서 용이가 자꾸 옷소매 속에다
손을 감추는 것을 보고 이상해서
손을 바로 꺼내보라고 하다가 흠칫 놀랐습니다.
손목은 핏물이 엉켜 있었고 온통 칼자국 투성이였습니다.
처음엔 물어봐도 대답을 하지 않더니
나중에서야 겨우 몇 마디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당에서 신부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 손이 도둑질을 하거든 그 손을 잘라버려라.
성한 몸을 다 가지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보다는
손 하나를 잘라버리고라도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낫느리라"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
손을 잘라버리려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용이는
남의 돈을 몰래 훔치고 난 뒤 들키지는 않았지만
양심에 거리낌이 남아 있을 때면
고해성사를 보아 죄사함을 받았었고,
그러다가 또 유혹에 이끌리면 또 훔치고
다시 고해성사를 보고
이렇게 되풀이 했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고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것들을 갖고 싶었고
하교길에 친구들이 사먹는 맛좋은 것들도 먹고 싶었지만
한번도 마음놓고 그런 것을 먹어보거나 사보지는 못했었는데
담배가게에서 몰래 훔친 몇 백원, 몇 천원의 돈으로
용이는 전자 오락도 실컷 해보고
핫도그도 사먹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용이의 이야기를 듣다가
용이의 피 흘리는 손에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제 손을 포개어 맞잡고
더듬더듬 기도를 올렸습니다.
지금 당신 앞에 돌아와
무릎 꿇고 올리는 이 아이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달도 없는 밤
가을 숲속에서 몇 밤을 지새우고
다섯 번째 도둑질을 하다가 들킨 왼손을
오른손의 칼로 내리긋고
피 흘리며 돌아온 이 아이의 한 손에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제 한 손을 포개어
당신께 올리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자신을 속이며 쉽게 사는 일보다
흙을 디디고 흙을 만지며 정당하게 노동하는 일이
보람찬 삶임을 뜨겁게 깨닫는 아이가 되도록
바른 삶의 지혜를 주시고
제게 맡기신 가난한 이 땅의 많은 아들 딸들도
어떻게 우리가 바르게 살아야 하며
무엇이 우리를 바르게 살지 못하도록 하는지
우리가 진정 미워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아이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제게 힘을 주시고 도와주소서.
아흔 아홉번 용서하시고
마지막 한번을 더 용서하시는 당신 앞에
돌아온 아이와 함께 무릎꿇고 올리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피 흘리며 돌아온 이 아이의 한 손에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제 한 손을 포개어
당신께 올리는 기도를 들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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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슴이 짠해 옵니다...
쉬이 알수 없는 게 사람의 마음
이해하려 들지말고 그냥 이해해 버려야 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어릴적 한번쯤 도적질 해 보지 않은 아이 몇 될까하며, 여적 숨기는 마음 조차 들키지 않으려는 지금도 매한가지인듯 합니다. 죽기까지 정말 인생은 이런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