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베이그의 노래(Solveig Song) -
그리그(Edvard Haqerup Grieg)
이곡은 그리그가 노르웨이의 문호 입센이 전설에 바탕을 두고 쓴
환상적인 시극<페르귄트>의 공연을 위한 무대음악으로 위탁을 받아 작곡한 것이다.
31세 때에 쓰기 시작하여 다음해 1875년 여름에 완성된 이곡은 5막 5개의 전주곡을
비롯하여 행진곡. 무곡. 독창곡. 합창곡. 등 23개 곡으로 구성되었다.
그 중 여덟 곡을 골라 4곡식 제1모음곡과 제2모음곡을 꾸몄는데
이 “솔베이그의 노래”는 <제2모음곡>의 마지막 곡으로 연극에서는 제4막 페르귄트가
방랑생활을 하고 있을 때 솔베이그가 세월은 흘러도 언젠가는 당신이 돌아올 것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기다리는 장면이다.
주인공 페르퀸트는 가난한 과부 오제의 외아들인데 미래를 몽상하는 난폭한 사람이었다.
그는 세계 각국을 여행하면서 남의 부인을 겁탈하기도 하고 때로는 험준한 산에서
마왕의 딸과 함께 지내기도 하는 여러 가지 모험과 방탕을 즐기는 방랑자였다.
아프리카에서는 추장의 딸과 청춘을 즐기기도 했으나 나중에는 그만 몰락하여 결국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세상을 지배하려는 헛된 야망에 사로잡혀 이곳저곳을 헤매어 다니던 페르귄트는 옛 애인
솔베이그가 기다리고 있는 숲 속의 통나무집을 찾아가 평생을 외롭게 수절해온 솔베이그의
따뜻한 품에 안긴다.
솔베이그의 무릎을 베개 삼아 누워 노래를 들으며 페르귄트는 죽음을 맞이한다.
“당신은 너무 피곤해 보이는군요.
이제는 푹 쉬세요”
지금껏 그래 왔듯이 물레를 돌리며 솔베이그는 애절하게 솔베이그의 노래를 부른다.
이 솔베이그의 노래는 너무나 유명한 그리그의 대표적인 노래다.
긴 세월 동안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늙고 병든 초라한 모습으로 고향을 찾아와 생의 최후를
맞는 페르귄트를 백발의 연인 솔베이그가 부르는 이 노래는 전율이 올 정도로 애절하면서도
인상적이라 할 것이다.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은 1960년 8월 14일 영국에서 태어나 가장 유명한
팝페라 가수중의 한 사람이다.
오페라 “유령”의 주연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하여 올림픽 주제가를 2번이나 불러서
올림픽 주제가 전문가수라고 한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때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폐막식에서 공식 올림픽
주제가 "Amigos para siempre"를 불렀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올림픽 공식 주제가 "You and Me"라는 노래를
중국 가수 류환(劉歡)과 함께 불렀다.
1996년 “안드레아 보첼리”와 듀엣으로 불렀던 "Time to Say Goodbye"가 유명하다.
우리말 Solveigs song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세월이 간다
아! 그러나 그대는 내 님일세 내 님일세
내 정성을 다하여 늘 고대하노라 늘 고대하노라.
아! 그 풍성한 복을 참 많이 받고 참 많이 받고
오! 우리 하느님 늘 보호 하소서 늘 보호 하소서
쓸쓸하게 홀로 늘 고대함 그 몇 해인가
아! 나는 그리워라 널 찾아 가노라 널 찾아 가노라
원어(NORWEGIAN) Solveigs song
Kanske vil der ga bade Vinter og Var,
og næste Sommer med, og det hele Ar,
men engang vil du komme, det ved jeg vist,
og jeg skal nok vente, for det lovte jeg sidst.
Gud styrke dig, hvor du i Verden gar,
Gud glæde dig, hvis du for hans Fodskammel star.
Her skal jeg vente til du kommer igjen;
og venter du hist oppe, vi træffes der, min Ven!
영어 Solveigs song
The winter may pass and the spring disappear,
and the spring disappear
the summer too will vanish and then the year,
and then the year
but this I know for certain,
that you’ll come vack again,
that you’ll come back again
and even as I promised,
you’ll find me waiting then
yes, even as I promised,
you’ll find me waiting then,
you’ll find me waiting then
그리그(Edvard Haqerup Grieg 1843~1907)
그리그 (Edvard Grieg)는 1843년 노르웨이의 항구도시 베르겐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피아노를 배웠으며 1858년(15세)에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올레 볼(Ole Bull)의 인정을 받아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유학하면서
피아노 수업을 받았다.
1860년에 그의 평생을 위협했던 질병인 페렴을 얻게 되었으며 이듬해인 1861년에는
피아니스트로 첫 데뷔무대를 스웨덴의 칼스함에서 가졌다.
1862년 음악원 졸업과 함께 고향 베르겐으로 돌아온 그리그는 베토벤 “비창(Pathetique)"을
포함한 여러 레퍼토리의 연주회를 통해 보다 발전된 피아노 기량을 선보였다.
1863년부터 3년동안 덴마크 코펜하겐에 머물면서 그리그는 덴마크 작곡계의 대가인
닐스 가데(Niels Gade)와 J.P.E 하트만을 만나 음악적 교류를 나눴으며 특히 그와 절친한
우정을 나누었던 리하르트 노르드라크(Rikard Nordraak)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오이테르페 (Euterpe) 협회를 발족하여 노르웨이 음악의 확립과 보급을 위하여
노르웨이 작곡가들의 작품을 찾아 연주활동 하면서 그리그는1867년에 오슬로의
필하모니아 협회 지휘자로 일한다.
이때 4촌 누이동생인 여류 성악가 니나 하게루프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안데르센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 “나그네를 사랑해”를 그녀를 위해 작곡하기도 했다.
1870년 리스트의 초대로 로마를 방문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처음 "입센"을 처음 맞나게 되고
리스트는그의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인 “장송행진곡”(노르트라크의 사망소식을 듣고 작곡한
곡)에 열광적인 찬사를 보내며 극찬을 아끼지 안했다.
1874년 노르웨이로 돌아온 그리그는 정부로부터 국가의 종신연금을 수령하면서
베르겐이나 오슬로에서 주로 생활을 하며 작품 창작에만 몰두하였다.
1885년부터는 베르겐 근방에 “트롤드하우겐”이라는 집을 짓고 쇠약해진
몸을 요양하면서 전원생활을 즐겼다고 하는데 가끔 유럽 여행을 하면서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협주곡을 스스로 연주했다고 한다.
1907년에 영국 연주여행을 앞두고 그리그는 64세의 나이로 베르겐의 한 병원에서
9월 4일 세상을 마감했다.
그의 작품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였고 독일 낭만파의 작품 경향에
가까웠지만 가락은 향토색을 강하게 띠고 있다.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노르웨이가 독립국이 아니던 시대
즉 스웨덴과 연합 체제에 있던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스스로 민족의식이 높았고
노르웨이인의 감정과 어법을 특별히 소중히 여겼다.
음악적인 면에서 볼 때 독일의 음악 양식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던
그리그는 독일식이나 쇼팽 양식과의 절충적인 측면이 다소 있기는 하지만 국제적으로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수준과 방법으로 노르웨이의 국민악파를 확립하는데
성공하였다 할 것이다.
그의 작품으로는 모음곡 "페르귄트(Peer Gynt)"를 비롯하여 피아노 협주곡 가단조,
현악 4중주곡 사 단조, 수많은 가곡과 합창곡, 피아노곡, 현악 합주곡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