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도 여행기 3 "고아, 빤짐 1"
<고아로 가는 기차에서 바라본 풍경>
2014년 1월 4일 아침, 날이 밝았다. 달가닥 거리는 기차 소리에 잠을 깼다. 기차 안에서 꾸부리고 잠을 잘 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하루하루의 생활이 피곤하기에 누우면 그곳이 바로 침대요, 일어나면 그곳이 바로 삶의 터전이었다.
여기 기차의 특징은 한 칸에 8명이 잠을 자게 되어 있다. 보통은 양쪽에 3층이 되어 있어서 6명이 같은 방에서 잠을 자게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통로쪽에 2층 침대를 만들어 8명이 자게 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기차의 폭이 보통 기차보다 넓게 되어 있고, 기차 선로 또한 보통의 선로보다 간격이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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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어느 기차역에서 잠깐 쉰다.>
복만씨는 우리의 목적지가 깔랑굿 해변이므로 까르말리 역에 내릴 것이라고 말하고는 모두 준비하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우리와 함께 탄 인도 젊은이 네명도 깔랑굿 해변으로 가는데, 그들은 티빔역에서 내린다는 것이었다. 지도상으로 보면 까르말리 역에서 내려 깔랑굿으로 가는 것이 더 가까워 보였으나 현지인이 그 전(前)역인 티빔에서 내린다니 조금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지도가 더 정확하냐,
아니면 현지인이 상황을 더 잘 아냐,의 문제였다. 우리가 묵을 아반티카 리조트에 전화를 걸어본 복만씨는 티빔에서 내리는 것이 낫다는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그렇다! "논리상, 지도상, 이치상 무엇이 옳다"라는 것은, "실제, 현지, 눈앞에 보이는 것, 현지인이 알고 있는 것"을 이길 수가 없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패한 것도 현지 상황을, 현지인보다 몰랐기 때문이고, 6.25 전쟁 중에도 현지 상황을 몰라 떼 죽음을 당하거나 개죽음을 당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비게이션을 믿고 시골을 가다보면 산 중턱과 맞닥뜨려 꼼짝
못할 때가 있고, 분명히 강이 나와야 할 자리에 논이 있는 곳도 있다. 언제나 내 눈앞에 펼쳐진 현 상황이 가장 중요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고, 현 상황을 알 수 없다면, 현지인에게 묻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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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빔역에서 내려 걸어간다.>
나와 같은 칸에 있는 인도 젊은이 네 명은 모두 뭄바이 대학을 나온 동기 동창생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한 사람은 미국으로 건너가 취직을 했고, 두 명은 인도에서 취직을 해서 돈을 벌고, 한 명은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그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하다가 이제 3년만에 연락이 되어 휴양지인 고아에 가서 며칠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해서 기차에 몸을 실었던 것이다. 그들이 지금 얼마나
마음이 설렐까, 그 동안 얼마나 서로 보고 싶었을까? 오늘 밤 날을 새워가며 한잔 술에 이야기를 나눌 그들의 모습이 머리 속에 그림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매일 같이 나와 함께 지내는 나의 가족은 서로 부대낄 수 있고 지겨울 수 있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는 서로 거리낄 이유도 없고, 다시 헤어져야하므로 아쉬움과 그리움 그리고 좋은 추억만 남기는 것이 아닐까? 가족의 소중함에 대한 글도 많지만, 좋은 친구와 함깨 하는 한 평생의 글 또한 이에 못지 않게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어찌보면 가족은 짐이요, 친구는 짐을 덜어주는 수레다.
티빔역에서 내려 우리가 묵을 깔랑굿에 있는 아반티카 리조트까지는 약 30분이 걸렸고, 도착하니 점심 때가 되었다. 호텔에서 밥을 시키고, 가지고 간 장아찌 반찬으로 점심을 때웠다. 우리가 묵는 리조트는 풀장과 식당, 그리고 풀장 옆에는 스탠드 바가 있어서 수영을 하면서 술도 마실 수 있는 그런 리조트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호텔의 음식을 사먹는 사람은 본 적이 드물고, 더구나 수영을
하다가 술을 마시는 사람은 더더욱 본 적이 없다. 주인은, 엄청난 손님이 올 것이라고 기대를 하고 판을 벌려 놓았지만, 잠만 자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손님들이 야속하기만 하였을 것이다.
우리 일행은 모두 14명으로 항상 7개의 방이 필요했다. 7 개의 방중에는 좋은 방도 있고, 나쁜 방도 있기 마련이다. 그날 L형에게 배당된 방은 넓고 시원한 2층 방이었으나, 나에게 배당된 방은 건물 뒷편에 있는 음침한 방이었다. 잠깐 나갔다 오면, 음식물 밑에 바퀴벌레가 새끼를 데리고 소풍나와 있었고, 문만 열면 모기가 들어와 나를 손좀 보겠다고 덤벼드는 그런 방이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밖에서 어정거리기도 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다른 사람들이 뭐하면서 시간을 보내나 힐끔힐끔 쳐다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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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묵은 아반티카 리조트 풀장>
<풀장 안에 풍경이 녹아 있다.>
<깔랑굿 해수욕장 입구에 세워진 모래 조각>
우리 호텔에서 걸어서 약 15분 정도 가면 깔랑굿 해변이 나온다. 와, 이렇게 큰 해변도 있는가? 어디를 보아도 끝이 없는 해변이 바로 이 깔랑굿 해변이다. 아니, 깔랑굿 해변과 다른 해변이 이어져 있어서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옆에 있던 K님의 첫 소리가 바로, "야, 이거 대천 해수욕장의 수십배도 넘겠는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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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에서 수영하는 사람은 드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도와 장난을 치거나, 하염없이 바닷가를 걷고 있었다. 해수욕도 하지 않으면서 소는 왜 모래 밭에 나와 앉아 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그냥 모래 밭에 앉아 되새김질만 하고 있는 것이 소였다. 사람이 소를 건드릴 이유가 없으니, 소도 사람에게 신경쓸 필요가 없고, 먼 이국 땅 깔랑굿에서 "소는 누가
키워?"라고 개그 코서트를 벌일 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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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인도 옷을 입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또 이들 대부분은 전혀 옷을 벗지 않고 발만 물에 담그며 잔잔한 하루를 보내는 바로 이곳에, 세 명의 늘씬한 몸매의 젊은 여자들이 비키니 바람으로 나타난 것은 분명 센세이션이었다. 안 보는 척 하면서 그들을 바라보는 것은 뭇 남자들만이 아니라, 옷을 겹겹이 껴 입은 인도여성도 마찬가지였다. 날씬한 몸매에 쭉뻗은 두 다리, 삼각 팬티에 삼각 브라를
걸치고, 지는 해를 한 동안 바라보던 이 여인들은 대화를 나누면서 지는 태양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었다. 어떻든 이들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고, 이들과 같은 모래 사장 위에 있다는 것은 큰 영광이었으며, 이들에 대한 잔상이 한 동안 내 머리 속에 남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 아직도 젊음이 남아 있다는 일말의 위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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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수평선 너머로 지기 시작하자, 소들은 어디론가 떼를 지어 발걸음을 떼어 놓기 시작했다. 목적지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아무 말 없이 소들은 줄을지어 어디론가를 향해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때 한 사람이 어망을 들고 나타났다. 던져봐야 빈 어망뿐이라는 것을 잘 아는지, 당기는 어망에 시선을 두지 않고 그냥 습관적으로 어망을 거뒀다. 던지고 당기고 허탕치고, 던지고 당기고 허탕치기를 몇 번 하더니, 빙긋이 웃고 그도 소들이 사라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시야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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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해는 붉은 붉은 공처럼 공중에 떠 있고, 서서히 자신을 끓는 물에 담그기 시작했다. 소의 걸음걸이가 더욱 빨라지고, 썰물처럼 사람들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 서늘한 바람이 내몸을 훑고 지나간다.
그때 두 여인이 다가와 발마사지를 해주겠다고 한다. 두 여인은 우리를 의자에 앉히더니 음료수를 시켜 주었다. 그들은 내 발에 이상한 기름을 잔뜩 발라 끈적끈적하게 하더니,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꾹꾹 눌러댄다.
내가 듣겠다고 하지 않았는데도, 두 여인은 자신의 남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햔다. 두 여인은 자매였고, 그들의 남편은 매일 술만 먹고, 돈 벌어 오지 않으면 자신을 때린다고 한다. 자신이 매일 이 해변에 나와 마사지하여 버는 돈으로 아들 딸 먹여살리고, 학교에 보내고 남편 술값까지 댄다고 한다.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 동정심을 유발하여 더 많은 팁을 받으려고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손에 박힌 굳은 살은 그녀의 삶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웅변으로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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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랑굿 해수욕장에 어두움이 몰려오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아까 해수욕장 입구에서 구걸을 하던 어머니와 딸 그리고 아들이 내 앞을 지나 간다. 아까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머니에게 꾸중을 듣고 울던 꼬마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물통을 머리에 이고 걷고 있었고, 그 옆에 있는 꼬마의 누나는 그 아이에게 장난을 걸고 있었다. 어머니는 보따리 하나를 머리에 이고
주워 모은 빈 병을 손에 들고 가고 있었다. 하루의 일과가 만족스러운지 큰 딸은 한발짝 앞서서 몸을 휘청거리며 흥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이들의 모습에서, 어렸을 때 보았던 동네 유랑극단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고, 서편제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기도 했다. 나는 이들에게서 가난한 자의 고달픔을 보기도 했고, 고달프지만 그래도 내일의 삶에 대한 희망을 보기도 했다. 내 자신의 지난 삶이 저들의 삶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가 앞으로 살아야 할 것이 바로 저런, 고달프지만 자유로운 삶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늘 '고아' 해변에서의 하루가 그 이름처럼 '곱고, 고으니, 고아서,------- '곱게' 지나가고 있다. 내 추억이라는 노트에 아련한 추억을 남기며 잔잔하게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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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3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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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아해변은 옛날 포르투칼 식민시절이 있었다 합디다...그래서 해변가 백사장엔 서양처자들 토플리스 차림으로 일광욕 한다는 소문이 한국 관광객 사이에 좌악~ 퍼져 있었는데...저도 그소문 믿고 가서 두리번 거려봤었지만 신통한 구경은 못했는데....
혹시 선생님께선 가셔서 구경 못하셨는지요? ㅎㅎㅎ (어케 소떼만 우글우글 하네요? ㅎㅎㅎ )
토플리스는 고사하고 비키니도 구경하기 힘들었습니다.
좋으셨겠어요~~
간혹 남자가 되면 좋겠다는 상상과 딱 맞는 상황...ㅋ
인도 여인들의 옷 섶에 투영되는 빛...
그 빛을 피사체에 담아 오신 알바트로스님...
볼 수 있어 행복 해요...
좋은 빛을 기다려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저는 그런 인내심이 좀 부족하죠.
사진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흉내내기도 힘듭니다.
재미있는 여행기 를 항상 즐겁게 보고잇읍니다~~~^^
감사합니다.
잘 계시죠.
건강하세요.
ㅋㅋㅋㅋㅋ해변의 소들과 비키니 차림의 여자들을 같이 볼수 있다는게 신기하네요 이 후기를 읽으면 인도가 참 매력적인거 같아요 ㅋㅋ물론 기대와 다르겠지만요 ㅋㅋ
하여튼 인도는 이상한 나라입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길을 걸으면서, "인도에 인도가 없구나" 하시더군요.
나중에 보내주마.....백문이 불여일견이니라...ㅎㅎㅎ
깔랑굿해변.....우리 네사람은 그곳에서 현지인들과 많은 사진을 찍었답니다. 그들은 우리가 신기했었나봅니다. 가족들과 함께 사진찍고 그곳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는 여유를 가졌답니다. 정말 재미있게 생동감있게....다시 여행을 하고있는듯 착각이 듭니다.
우리는 그렇게 많이 찍지 못했어요.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