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숨 막히게 만든 블록버스터 첩보액션. 거대한 미션이 시작된다.’ 2009년 KBS2에서 방영했던 ‘아이리스’의 광고 카피다. ‘아이리스’가 인기를 끌었던 것은 남한과 북한, 그리고 비밀조직 아이리스 소속의 첩보요원들 간의 속고 속이는 치열한 두뇌싸움과 박진감 넘치는 액션이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정보기관이 어떤 일을 하는지 짐작한다. 그런데 최근 세계를 주도하는 정보기관들이 놀랍게도 새로운 영역으로 뛰어들고 있다. 바로 날씨다. ‘기후 안보가 뜨고 있다. 미중앙정보국(CIA), 기후변화센터 오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정보기관이 미국의 중앙정보국이다. 2009년 9월 말 CIA가 ‘기후변화와 국가안보에 관한 센터’를 열었다. 정보기관에 기후변화라니 도대체 안보와 기후변화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CIA는 9·11테러와 같은 것만 안보에 위협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기후변화도 국가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은 ‘펜타곤 보고서’를 만들었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주도해 만든 이 보고서는 향후 20년 안에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와 전쟁 등으로 수백만 명이 사망하는 등 전 지구적 재앙이 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특히 전쟁이라는 것이 지금까지처럼 종교나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다툼이라기보다는 급변하는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일 것이라고 본다. ‘자연재해가 핵 위기나 테러보다 국가안보에 더 큰 위협이 된다’는 결론을 내면서 이 보고서는 미국 정부로 하여금 군사전략 개념은 물론 국가안보 개념을 기후변화에 맞춰 바꾸도록 촉구하고 있다. 이 보고서를 기반으로 기후안보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특히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기후안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속칭 뜨는 단어가 됐다. 미국만이 아니다. 영국 정부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영국 정부는 정보기관에 기후와 에너지안보담당이라는 새로운 고위직을 만들어 해군 제독 출신인 닐 모리세티를 임명했다. 그는 10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8개국 군사전문가들의 모임에 참석했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기후변화와 지정학적 불안정 간의 관계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군사전문가들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점진적이고 급작스러운 기후변화가 인류에 전례가 없는 비극을 불러오고 있다.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므로 시급하게 이에 대처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기후 안보와 관련한 군사전문가들이 가장 염려하는 지역은 히말라야 산맥이다. 히말라야 산맥에 쌓인 빙하가 심각할 정도로 빠르게 녹고 있다. 히말라야의 빙하와 눈은 우리나라 장마에도 영향을 줄만큼 아시아 국가의 기후에 큰 영향을 준다. 빙하가 사라진다는 건 아시아 기후가 교란된다는 것 외에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안전한 물 공급원이 사라진다는 의미도 된다. 게다가 빠르게 녹으면서 홍수가 일어날 수 있다. 네팔, 부탄, 인도를 비롯해 파키스탄과 같은 국가는 혼란에 빠질 확률이 높다. ‘펜타곤 보고서’에서는 2010년에서 2020년 시기에 해수 열염 순환(바닷물의 밀도 차이로 발생하는 심해해저 대순환)이 붕괴될 것으로 본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고 강수량이 증가하면서 극지방의 해수 염도가 낮아지므로 지구의 해류를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가 멈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멕시코 난류가 북상하지 못하면서 영화 ‘투모로우’에 나오는 빙하기가 닥치게 된다. 유럽은 기후변화에 따른 최악의 피해를 보게 될 것이며, 영국은 더 추워지고 건조해지면서 시베리아와 비슷한 기후로 변한다고 예상한다. 2010년 1월 유럽과 북미동부지역, 동아시아 지역을 휩쓴 혹한과 폭설현상을 두고 일부 기후학자들은 소빙하기가 오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을 만큼 열염순환이 붕괴될 확률이 꽤 높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사람들은 기후변화를 이야기하면서 현대문명은 그것에 적응할 것이며 사회의 적응능력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세계적인 기후전문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기후변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 적절히 대응하지 않으면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가 국가의 역사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역사까지도 바꾸는 심각한 요소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덴마크에서 2009년 12월 열렸던 기후변화회의는 실질적인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면서 많은 사람을 실망시켰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기후문제는 정말 심각합니다. 하루빨리 힘을 모아 대책을 세우고 하나하나 앙보하면서 해결해 나가야만 합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말을 깊이 새기면서, 우리나라도 적극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처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필자는 갖고 있다. [TIP] 기후변화와 국가안보-아마존·나일 강 `물 분쟁' 위험수위 ▲ 지구가 먹여 살릴 수 있는 수준으로 인구가 줄 때까지 전쟁과 기아가 수없이 많은 지구인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다. 폭동과 국내 갈등이 인도와 남아프리카, 인도네시아를 붕괴시킬 것이다. ▲ 물 확보를 위한 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이미 북아프리카의 나일 강과 유럽의 도나우 강, 남미의 아마존 강에서 물 분쟁이 위험 수위에 올라와 있다. ▲ 해수면 상승으로 물에 잠긴 땅에 살던 사람들과,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황폐해진 곳에 살던 사람들 때문에 대규모 난민, 보트피플이 발생할 것이다. ▲ 미국이나 유럽 같은 부자 나라는 이들 난민의 입국을 막기 위해 사실상 쇄국정책을 펴게 될 것이다. ▲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혹한으로 변해버린 날씨를 피해 대거 남쪽으로 내려오고, 폭염과 가뭄에 시달린 아프리카 사람들은 반대로 살길을 찾아 남부 유럽으로 몰려들 것이다. ▲ 핵무기 확산도 불가피해진다. 한국과 일본·독일은 핵무기 개발에 나설 것이며 이스라엘·중국·인도·파키스탄이 핵무기를 실제 사용할 가능성 역시 높아질 것이다. 펜타곤 보고서에서는 기후변화가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다음과 같이 예측한다.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