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적
모처럼 주말에 아이들과 어떤 음식을 만들어 먹을까 고민하다가 베란다에 감자가 있는 걸 기억하고는 자연스럽게 감자적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감자는 다양한 요리에 사용되며, 감자를 재료로 한 요리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감자는 녹말이 많고 수분 함량이 높아, 부침개를 하면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감자전의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영동 방언으로는 '감자적', 북한 문화어로는 '감자지짐'이라고도 한다. 특별히 강원도의 대표 음식으로 이름이 높다. 기후적 특성으로 인해 강원도에서 재배되는 감자가 영양과 맛이 매우 풍부하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 다닐 때 여름방학이 되면, 엄마는 거의 매일 감자적을 만들어주셨다. 어떤 날은 감자를 곱게 갈아 부추를 넣어 감자 부추전, 또 어떤 날은 감자를 곱게 갈아 호박을 얇게 채 썰어 감자 호박전, 또또 어떤 날은 감자를 곱게 갈아 매운 청양고추를 썰어 감자 고추전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런 날이면, 아빠는 꼭 소주 한잔을 곁들여 드시곤 하셨다. 또한 동생이랑 서로 많이 먹겠다고 싸우기도 했는데 아빠도 동생도 많이 보고 싶다. 그 뜨거운 여름날 함께 먹었던 시간이 무척 그립다.
감자적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어릴 때 먹던 것들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데, 정말 나는 해마다 여름이 오면 강원도 친정에 가서 감자 한 박스를 사서 2, 3일에 한 번씩 만들어 먹곤 한다. 이제는 누가 특별히 거론하지 않아도, 감자적이 내 인생 추억의 맛으로 깊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제 내 몸은 서서히 그 조리 방법을 기억해낸다. 먼저 감자는 껍질을 벗기고 물에 충분히 담갔다가 강판에 갈아 체에 걸러 건더기를 모은다. 체에 거른 물은 가만히 두어 앙금이 가라앉으면 윗물을 따라낸다. 앙금과 감자 건더기를 섞어 소금으로 간을 한다. 붉은 고추는 송송 썰어 씨를 털어내고, 가열한 팬에 식용유 3숟가락을 떠 넣고 고추를 얹어 앞뒤로 노릇노릇 하게 지지고 마지막으로 초간장을 곁들인다.
한 번에 너댓 장 정도 부쳐 양념한 간장에 먹으면 더욱 맛있다. 막걸리, 와인, 맥주를 함께 먹어도 좋다. 우리 집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함께 만들어 먹어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
일반적인 전은 밀가루와 계란으로 반죽을 해서 전을 부친다. 사람들은 보통 감자를 갈아서 부침가루나 밀가루를 섞어 부침개를 만드는 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감자로 반죽을 한다는 데 큰 묘미가 있다.
지금도 우울한 날 감자적을 먹으면 새로운 행복감이 밀려온다. 엄마는 그 더운 여름날 에어컨도 없는 부엌에서 일을 하셨다. 선풍기 하나만 의지 한 채, 감자를 깎고 갈고 부치기까지 무척이나 더웠을 텐데… 더운 내색도 하지 않으시고, 볼이 발그레하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 채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주셨다.
나는 누구라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감자적을 만들어주지 못할 것 같다. 강판에 감자를 갈 때면 어깨가 아플 정도인데, 그 마음이 어떤 정성으로 감싸여 있을지 분명하지 않은가. 맛있는 감자적을 먹기 위해서는 잠간의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엄마의 사랑이 가득 담긴 감자적, 올여름에도 매일 그 기억과 함께 행복한 여름을 보내야겠다.
엄마가 오래오래 살아계셔서, 강원도 주문진 친정에 갈 때마다 직접 만들어주시는 감자적을 오래도록 먹고 싶다.
박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