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10월 18일 아침 6시경 스플리트 공항에서 독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우리가 타고 왔던 Discover 항공이다.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에 가서 부스는 따로 없지만 업무도 보고 출판협회 사람들과도 만나 협업도 할 예정인 모양이다. 아들이 내일 돌아올 때까지는 외출은 하지 않고 내일모레 글피부터 시작될 여정을 위해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9월 30일 인천 공항을 출발하여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한 이후 17일 동안 빡빡한 일정으로 피로가 쌓였는데 이틀 간 푹 쉬면 11월 7일까지 후반기 여행은 별 문제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집사람 다리가 아직까지는 잘 견디고 있어 다행이다. 오른손엔 지팡이를 짚고 왼손으론 내 오른손을 잡고 걸으니 지팡이가 둘이나 마찬가지다. 내 오른손은 늘어뜨리는 게 편하다고 하는데 왼발을 디딜 때마다 집사람 체중이 내 오른손에 실리는 것으로 보아 집사람 왼손은 내 엉치뼈 높이의 난간을 짚으며 걷는 것과 같아 체중이 분산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도움이 된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오전에는 스튜를 끓이고 남은 양배추로 자우어크라우트를 만든 후 아들이 심심하면 보라며 신청해 준 Netflix로 영화 몇 편을, 한글 자막이 없어 영어 자막으로 보았는데 줄거리는 대충 알 수 있었다.
연두색 장정의 Ping이란 책을 읽고 기억에 남아 있는 구절이 있다. 진정한 여행이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의 공간적 이동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의 이동이라는 내용이었다. 마음 하면 생각과 느낌이 아닌가. 추상적인 생각이나 느낌을 어느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옮긴다는 것이 어떻게 쉬울 수가 있겠는가. 일단 테두리가 정해지면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사고思考와 감정感情의 관성慣性인가.
오랜 시간을 만성적인 특정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남과 비교하는 습성 때문이다. 내 감정과 생각의 폭이 좁다면 자유가 없는 감옥살이와 무엇이 다를까. 다양한 감정과 폭넓고 깊은 생각에 이르지 못하고 무슨 일을 시도할 때마다 그 결과는 울타리를 강화할 뿐이었다. 악순환이다. 그 감정과 생각이 평생 나를 구속하게 할 수는 없다. 이제는 남을 너무 의식하지 않고 살다 가고 싶다. 이번 여행의 새롭고 강한 자극으로 나를 구속해 오던 벽을 깨뜨리기고 자유롭게 살기를 희망한다. 집사람 친구의 해외여행 소감이 생각난다. '이 세상 어디로 가든 또 다른 나는 없었다. 나는 나 혼자라는 걸 깨달았다'는 말이. 좋았든 싫었든 아무리 멀리 갔든 '나'로 돌아오기 마련이 아닌가. 말년에는 새로운 세상에서 나를 찾으며 살고 싶다, 관심사인 문학과 음악을 즐기고 작은 결실을 기대하며.
우선 엄연한 현실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책임을 진다는 말은 남의 탓으로 돌리며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게 마음이 편하다.
'소유냐 존재냐'에서 에리히 프롬은, 진정한 소유는 자기의 감정과 생각이라는 뜻으로 이야기한 것을 기억한다. 내 마음속에 그 존재하는 내용, 감정과 생각을 건강하게 관리해야 하는데 남은 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은 자기 책임이니 남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독서와 습작으로 자기만의 감정과 생각을 키워 나가야 하리.
10월 19일 아들이 16:30 비행기로 돌아오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빈 자리가 쓸쓸하다. 세탁 후에 산책을 했는데 해가 좋아 빨래 너는 길에 동네 산책을 하기로 했다. 길 잃을 염려 없게 집을 나서자, 왼쪽 방향으로 좀 내려가서 좌회전하고 죽 내려가다가 첫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서 돌아올 때는 좌회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다지고 건물의 특색을 세심하게 봐 두었다. 죽 내려가다가 더 이상 길을 건너거나 돌지 않고 돌아왔다. 그런데 평소에 길눈이 밝은 집사람이 좌회전할 자리에서 자신 있게 직진을 고집하며 자기 갈 길을 가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이번엔 일단 나를 믿으라며 끌다시피 해서 숙소로 무사히 돌아왔다.
비행기가 연착하여 18:30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한다고 연락이 왔다. 밤늦게 도착함
10.20 일요일 09:00 출발.
슬로베니아-5시간여 걸림-로 갔다가 그다음 날은 반도에서 뚝 떨어져 있는 이탈리아 한 도시에 잠깐 들른단다. 유럽연합이라 통행이 자유로워 별도의 수속이 없어 편리하기도 하고.
가지고 갈 짐을 정리하고 출발 전에 새천년간강체조를 했다. 매일 해야 하는데 건너뛰는 날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천천히 쿵후하듯이 매일 해야 하는데... 체조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내가 존재한다는 것과 내 몸은 이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15:30 셔틀버스를 타고 Motovum성곽 마을에 올라 식사 후 한 바퀴 돌았는데 멀리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르게 규모가 컸다. 내려오니 17:50
슬로베니아 Piran의 Hotel Histrion에 도착하니 20:00임.
슬로베니아는 고속도로 통행료를 미리 내면 해당 기간 어느 도로이든 마음대로 이용 가능하고 별도의 톨게이트가 없어 겉으로 보기에는 구분이 없어 연계가 부드럽고 편리하다.
07:00 식사 시간에 맞춰 미리 일어나 머리 감고 새천년건강체조를했다. 아드리아해를 보면서 식사한 후 해변을 산책했는데 역시 물이 맑았다. 호텔 정원을 거닐었다. 종탑만 남은 교회의 폐허가 예술품로 정원을 장식하고 있었다. saint .. 로 보니 성인 누군가를 기념하는 교회인데 폐허미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해변 산책 후 10:18, 체크아웃.
10.21 월요일10시쯤 Piran시내 성곽마을과 광장 방문 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를 향했다. 옛날 성 지하에 만든 큰 주차장, Garage Arze에 차를 대고 광장 산책했다. 주변이 거의 석조 건물인데 고택이든지 고전적 양식으로 지은 신축 건물이었다. Illy 커피집의 원조를 찾아가 초코 커피 한 잔씩 마시고
트리에스테의 바다에 접한 성, 미라마레 성 및 공원을 방문했다. 건물 자체가 예술품으로 단순한 주거의 목적만이 아니라 건물 요소요소에 문양과 조각을 배치하여 건축미가 돋보이도록 했는데 신분을 과시하는 듯했다. 귀족은 예술-음악과 미술 등-을 가까이하며 살아감을 알 수 있었다. 올라오는 길의 소나무 가로숫길과 성으로 들어가는 해변 길의 소나무가 한국과는 다른 느낌으로 인상적이었다. 줄기 잎 전체적 느낌이 달라 멀리서 볼 때는 향나무나 버드나무 같아서 길게 높이 자라지 않고 다박솔처럼 모양이었다. 날씨가 온화하여 성장 과정에 어려움이 없었디는 느낌이 들었다. 잎은 좀 짧은데 밝은 초록으로, 사람으로 말하면 표정이 밝고 편안했는데 통통하게 살진 모습이었다. 한국인에게 친숙한 소나무의 다른 면을 볼 수 있어서 새로웠다.
다시 이탈리아를 떠나 18:25, 슬로베니아 Bled라는 곳에 있는 일종의 민박집인
빌라 알피나 Vila Alpina에 도착했다. 주변에 식당이 없고 어두워 가져온 쿠키 세개, 쵸코 케익 하나, 사과 한 쪽, 귤 하나씩으로 저녁을 대충 때웠는데 저혈당으로 병원 간 적이 있는 집사람은 눈치가 쿠키 몇 개만 먹는 것 같아 내 케익을 옷장에 숨겼다가 한참 있다 주었더니 다 먹지 않고 삼분의 일을 다시 주어 함께 먹었다. 물을 충분히 가져와 다행이고 내일 아침은 별도의 식당이 없어 빵 등을 박스에 담아 갖다 준단다.
온풍기 난방이라 새벽에 일어났는데 목이 무척 아파 물을 마시니 좀 나아짐.
08:00 조식이 문 앞에 배달되었다. 큼직한 빵을 비롯해 우유, 요구르트, 잼, 쥬스, 하몽, 반숙 달걀 등 푸짐했는데 물은 안 주었다. 조식을 담은 나무 박스의 구조가 특이했다. 일종의 네모난 나무 바구니였는데 가는 널빤지를 하나 건너 비워 가볍고 실용적이었다. 한 귀퉁이에는 두 칸 삼각 선반으로 계란을 두 개씩 놓는 구멍이 있었다.
샤워실 유리문이 회전문으로 특수 경첩이 문틀의 위아래-벽쪽에서 한 뼘 정도 거리에 위치함-에 달려 있어 물이 거의 새지 않았다. 10:30 호숫가 산책, 호수 가운데 섬에 있는 교회가 그림 같았다.
10:48
Bled 호숫가를 산책하며 호수 가운데 작은 섬에 있는 성당과 멀리 있는 성을 관람했다. 성에 가 보니 멀리 보는 것과 달리 규모가 컸다. 커피 한 잔 하며 호수 전망한 후 11:58 Luibljana로 출발했는데 13:17에 도착했다. 주차 후 좀 걸어 강삭철도-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갔는데 중세의 성, Ljubljana Castle과 현대 건축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기존의 성에 덧붙여 푸니 쿨라 도착점에 관광객을 위한 시설을 지었는데 암반 위에 강철 빔도 그대로 노출시키고 그 위에 콘크리트 기둥들을 세우는 등 파격적이었다. 벽체는 경사진 암반을 그대로 놓아두어 자연미가 흘렀고 화장실과 엘리베이터, 매점 등을 지었는데 전혀 어색하지가 않았다. 14:38 스플리트로 출발해서 20:00 좀 지나 숙소에 도착했다.
10.23 수요일, 13:00 스플리트 시내 로마 유적지를 보러 갔다.
14:00경인데 거리엔 하교하는 고등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좀 변두리 같은데 일방통행 표시도 없는 좁은 길로 들어서 한참 가니 로마시대 수도교-물 다리가 있었다. 오늘날의 상수도인데 지상에 세운 것은 자연적인 물의 흐름을 이용하기 위한 것이다.
Trogir른 향했다. 가는 길 내내 아랫쪽만 관목이 덮혀 있고 윗쪽은 듬성듬성 관목이 보이는 돌 산맥이 따라왔다. 12:50에 도착, 성곽 도시를 돌아봤다.
16:21 출발, 일몰 시간에 맞춰 View point Marjan 도착. 아래는 항구가 보였는데 큰 크루즈선이 기적을 몇 번 울리더니 출발했다. 낙조를 보며 저녁 식사하려고 했는데 검은 구름 속에 숨은 해는 머리카락 하나도 볼 수 없어 항구의 야경에 만족해야 했다.
첫댓글 자유여행을 하셔도 될 것 같아요. 대단하십니다. 가이드도 없이 여행도 잘하시고 젊으신 것 같습니다. 여행 잘하고 돌아오세요,
Evergreen님, 방문 감사!
카페에 기행문을 올리니 메모도 하게 되고 나중에 퇴고하며 여행을 다시 음미하게 됩니다. 카페가 있어 가능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