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과 주의 제사
상나라를 정복한 주나라가 낙양으로 도읍을 옮기기(BC770년) 전까지를 서주라고 한다. 서주 시대의 문헌자료도 많이 남아 있다. 자료에 의하면 제사를 지내는 방식에서 주나라와 상나라가 크게 다르지 않다. 주나라 자료라서인지 상나라는 나쁘고 지기 방식은 좋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강조하지는 않았다. 이유로 든 것을 보면 상나라는 사람을 죽이고(인신공회) 귀신을 섬기지만(帝) 자신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天) 사람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귀신과 하늘의 차이점을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제사가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주나라는 상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었다. 상나라 문화를 벗어나지 않고, 오래 동안 지속해 왔다. 정치적으로 상나라를 지배한다고 하여 문화까지 벗어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周의 禮記에 의하면 하늘과 땅에 제사지내고, 사방에 제사 지내고, 오사(五祀-토지신사)에 제사 지내고, 해마다 골고루 제사 지낸다고 하였다. 이것은 상나라의 제사를 그대로 이은 것이다.(중국 여행 때 들려보면 토지신에게 제사지내는 토지신사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주나라가 되었다고 하여 帝에 대한 제사를 폐기한 것이 아니고, 天과 帝에 대한 제사를 동등하게 지냈다.
상나라 말에는 조상에 대한 제사의 비중을 높였다. 주나라가 그대로 이었다. 굳이 바뀐 것이라면 조상 제사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다.(조상의 제사를 강조하는 것은 혈연 질서를 강화하려는 목적이었다.)
이런 자료들을 보면 상나라와 주나라의 제사 체계가 비슷하다. 조상 제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도 비슷하다.
그러나 개선은 있었다.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등의 비인도적인 행위는 줄어들고, 상징적인 의례와 의식으로 대신하였다. 인간에게 무게를 둠으로, 신 중심 세계에서(帝 사상) 인간을 중심에 두는 사고방식(天 사상)으로 바뀐 것이다. 이러한 사상체계를 정리하여 유가사상으로 발전한다.
(조상을 제사지내는데서 유가 사상이 예법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다.)
첫댓글 제사법에 대해 잘 배워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