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집에서 키우는 도마뱀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부화한 지 석 달 된 어린놈이지만 길이가 50센티가 넘어요(사모아모니터라나 뭐라나. 성체가 되면 1미터가 훨씬 넘는 큰 종이래요).
둘째새깽이가 하도 사달라고 졸라대기에 사줬지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사육장에서 달그락거리더니 조용해서 보니까 없는 거에요. 식구들이 총동원해 집안을 이잡듯 뒤졌지만 없더만요. 침대밑, 소파 뒤, 온갖 곳을 다 쑤셔대도 안보이는 거에요.
하루 이틀이 지나도 안 나타나자 속이 탑디다. 언제 어디서 뱀대가리를 쳐들고 혀를 낼름거리며 불쑥 나올 꺼 같아 소름끼치고. 무서워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지요. 혹시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숨죽이며 낮과 밤을 보낼 수밖에.
엿새쯤 지나자 슬슬 포기가 됩디다. 베란다로 나갔다면 지난 며칠 동안 추웠으니 죽었을 것이고, 집안 어디로 숨어들었다 해도 며칠째 물 한 모금 못 먹었으니 돌아가신 게 분명하다 포기가 되더라구요. 근데 이놈 시체라도 찾아야하는 거 아닌가 싶대요. 죽었다면 썩는 냄새와 벌레를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사실 가출사건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랍니다. 주먹만한 왕거미, 1미터가 넘는 흰뱀, 햄스터, 거북이, 황금개구리 등 여러 차례 있었지만 대부분 찾았답니다. 물론 아직까지 못 찾은 놈도 있지만.
놈을 찾느라 혈안이 되다보니 제가 차츰 실성녀가 되더군요.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연신 중얼거리는 거에요.
“제발 좀 나오시지? 니가 나와야 산다. 이러다간 내가 말라 죽겄다. 이노마야”
어제도 거실에서 혼자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면서 놈에게 말을 걸었지요.
“제발 나타나시지. 나오기만 해봐라...확! ”
근데 제 말을 알아들은 걸까요. 순간 베란다에서 부시럭 소리가 나는 거에요. 가서 뒤져봐도 암 것도 없더만요. 화초에 물이나 주자 싶어 호스로 물을 뿌리는데 연못 옆에서 뭔가가 풀쩍 뛰어오르더니 고꾸라집디다. 놀래서 주저앉았지요. 자세히 보니 화분사이에 몸을 잔뜩 쭈그리고 있더만요. 빨갛고 긴 혀를 낼름거리면서.
반갑기도 하고 징그럽기도하고. 얼마나 놀랬는지 엉덩방아를 찧고, 나도 모르게 아악 비명을 질렀지요. 비명소리에 놈이 더 놀라는 거 같았어요. 근데 더 이상 비명을 지를 필요가 없더라구요. 내 비명을 듣고 달려와 줄 식구가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고 냅다 뒷걸음치며 식구들에게 돌아가며 전화를 했지요. 언놈이건 빨리 들어와서 저 놈을 잡으라고. 제일 먼저 달려온 건 큰 새깽이였슴다.
따뜻한 전기장판이 깔려있는 사육장에 넣어주자 사지를 쭉 뻗고 늘어지게 자는 거에요. 뱀이 입 벌리고 자는 거 처음 봤슴다. 8일 만에 잡아넣었습니다.
저녁에 학교에 돌아온 둘째새깽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제 어미에게 하는 말.
‘엄마, 목욕시켜줬어?’
미친눔. 보는 것만으로도 고욕인데, 더운 물로 깨끗하게 목욕시켜서 사육장에 넣었는가를 묻는 겁니다. 아고 내 팔자야.
근데 참 이상한 게 있어요. 일주일 넘게 굶었을 텐데 놈의 배가 빵빵해 졌어요. 뭘 먹은 걸까요. 육식동물이라 화초를 뜯어 먹었을 리 없고. 연못 속에 송사리를 쳐드셨나? 아니면 그새 언눔이랑 눈이 맞아 2세를 품으셨나? 그 어린 눔이? ㅋㅋㅋㅋ
첫댓글 ㅎㅎㅎ... 마음고생이 심하셨겠습니다. 아무튼 잘 돌아왔으니 다행 입니다. 이왕 키우시는것 잘 키우세요...^^
ㅋㅋ 선생님 댁이 산골이라 도마뱀 많이 다닐텐데유.. 한 마리 잡아서 키워보세요..
내 친구의 말이 키우던 남생이가 베란다에서 실종되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나타나질 않더니 1년 후 이사를 하려고 짐을 치우는데 그때서야 나타나더래요. 8일만에 나타난 눔이 배가 뽈록하니 신기한 일이네요.
지기눔, 아니 지기님.. 쌔빠지게 카페 들랑거리며 댓글 달고 있는디..이럼 성적 좀 올라갈랑가?? 아니 왜 있잖여.. 슬쩍 성적 좀 올려줘 봐..
그 집이 선생님댁이었구만요.. TV를 보면서 별 희한 야리꾸리한 동물들을 집에서 키우며 물고 빨고 하는 걸 보면,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난 내 새끼도 버거워 죽겠는데...했더니만 바로 그 댁이었어요..도마뱀을 찾는 상황이 TV화면을 보듯 생중계를 해 주셨어요. 글 속에 선생님의 쾌활하신 성격도 그대로 녹아 있어 정말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종종 올려주시와용~
ㅋㅋ 종종 올리겄슴다!!
죄송합니다.....좀 웃었습니다......하하하....그런데...좀 징그러운건 사실입니다....저도 제일 무서운게 뱀인데....도마뱀도 뱀은 뱀일텐데....그놈의 자식놈이 뭔지...이궁////무자식 상팔짜여..
무자식 상팔자인 거... 뼈저리게 느끼고 있슴다!!
에궁,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쯔쯔쯧
쌤.. 반가워요.. 건강하시죠?
자식을 고시원으로 내쫓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실종된 동물 한마리 찾느라 애쓰는 사람도 있고 참으로 이 세상은 요지경입니다.고놈 몸풀게 되면 산파 노릇도 잘 하실거죠?
쌤...제가 이렇게 살고 있어요..ㅋㅋ
알구, 몸도 약한 혜숙샘 고생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도 씩씩하게 잘 살고 있슴다..ㅋㅋ
작은아이 강아지 키우자고 달달 볶습니다...안된다고 하니 철갑상어 키우자고 합니다...저는 두아들도 충분히 벅찬데...
철갑상어 ...좋죠.. 키워서 몸 보신하면 어떨까요..?? ㅋㅋ
아~ 그렇게 깊은뜻이....생각해 보겠습니다..
혜숙샘~ 무척 조숙한 도마뱀 같아요!
내말이 그말이에요..ㅋㅋ
바람난 도마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