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한 해 동안에도 중증외상센터 건립과 관련된 보건복지부의 정책은 요동을 쳤다. 이국종은 수
없이 국害의원들의 방을 들락거리며 중증외상센터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다. 몇 시간 동안 의원회관 밖에서 기다려도 만나주지도 않는 자들도 있었다. 기획재정부의
예산심의 결과는 더욱 참담했다. 누가 어떤 기준에 따라 분석했는지 편익 대 비용 비율분석이 0.3으
로 나왔다. 담당자가 바뀌기 전 비율분석이 1.0으로 나와 정책 추진에 탄력을 받을 때와는 천양지차
의 결과였다. 바뀐 사무관은 정부 예산을 투입하여 공적인 편익을 거둘 수 있는 데 따르는 금전적 계
산만 했을 뿐 생명은 도외시한 것이다.
하루에도 몇 명씩 눈앞에서 죽어나가는 환자를 보는 이국종의 눈에 핏발이 섰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정은 외상센터를 구경조차 해본 적이 없는 관료들 몫이니까. 사정이 이러함
에도 외상 관련 학회들은 전문의 자격을 세부적으로 부여한다며 분야별로 외상외과 의사들을 모집했
다. 각급 학회 관련 원로 의사들 역시 관료화되고 장사꾼이 되어 그런 방식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돈
만 긁어모으면 되니까. 이런 자들이 주먹구구식으로 지정해놓은 전국의 13개 중증외상특성화센터들
은 예산 빨아먹는 하마가 되어 포만 상태인 채로 기능이 시들어갔다. 센터를 장악하고 있는 보직교수
들 또한 권위와 돈만 바랄 뿐이었다.
가을로 접어들자 감사원 감사가 시작되었다. 2009년 아주대학병원 외상센터에 배정되었던 예산이 규
정에 맞게 집행되었는지 따져보는 감사였다. 이번에도 예산을 수립‧집행했던 보직교수는 뒤로 빠지
고 이국종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 다른 대학은 행정직 직원들이 감사를 받았지만 그들 역시 미꾸
라지처럼 빠져나가고 어리숙한 이국종에게 총대를 메게 한 것이다. 이국종은 곧이곧대로 감사관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마도 그 감사관은 공직생활을 통틀어 가장 정직한 피감자로부터 앞으로 다시는
듣지 못할 가장 솔직한 답변을 들었을 것이다.
그 심란한 시기에 군의관 출신인 부산대병원 소속 정경원을 가르치는 일은 이국종에게 큰 위안이 되
었다. 그는 처자식이 있는 몸인데도 불구하고 1년 동안 겨우 네 번 집에 다녀왔을 뿐 중환자실 한쪽
꾸껑에 간이침대를 장만해놓고 창살 없는 감옥살이를 자청했다. 그는 이국종이 10년 동안 쌓아놓은
중증외상 환자 수술과 관련된 지식과 기술을 1년 사이에 모두 흡수할 자세로 불철주야 일과 공부에
만 매달렸다. 이국종도 수련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누구에게 못지않게 파고들었지만, 어느 모로 따져
봐도 정경원의 몰입도에는 못 미쳤다. 고난이도의 수술기법도 한 번 보면 그대로 따라했고, 거기에
자신만의 노하우를 더하여 한층 업그레이드시켰다. 수술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데다가 부지런하고
성실하기까지 했다. 그의 책상에는 늘 교과서나 논문이 펼쳐져 있어 수술이 없을 때는 쉬는 대신 공
부에 전념했다.
이국종은 성심성의를 다해 정경원을 도왔다. 틈이 날 때마다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기술을 남김없이
전수해주었다. 이국종은 앞으로 다시는 정경원 같은 의사를 만날 수 없으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
국종은 그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 가능한 한 연구실의 간이침대에서 잤고, 휴식
시간에도 그와 대화를 나누거나 가벼운 운동을 함께 했다. 1년 사이에 정경원은 국내 최고 수준의 중
증외상 분야 전문가가 되었다. 정경원에게 이국종이 최고의 스승이었다면, 이국종에게 정경원은 최
고의 동지이자 위안이었다. 정부의 지원이 끊겨 언제 병원 측에서 외상센터를 없앨지 앞날은 불투명
했지만, 이국종은 정경원 같은 의사가 있는 한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이나 영국 같은 중증외
상 환자 치료시스템이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정경원은 그만큼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이국종이 정경원에게 올인하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국종은 부산대병원이 세
울 외상센터를 국내 외상외과의 마지막 보루로 믿고 있었다. 아주대병원에서 외상외과가 폐쇄되더라
도, 국립대학인 부산대병원에 외상외과가 설치된다면 이 나라에도 희망이 있을 터였다.
정경원은 약속된 3년이 지나도 부산대병원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우도 훨씬 좋고 정년도 보장될
뿐만 아니라, 퇴직 후에도 죽을 때까지 연금이 나오는 국가공무원 자리지만 정경원은 그 좋은 직장을
마다하고 아주대병원에 뿌리를 내렸다. 누구에게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국종을 혼자 남겨두고 도
저히 돌아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국종과 정경원은 지금도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배우고 감동을
주고받으면서 함께 근무하고 있다. 이국종은 명저 「골든아워」 들머리에 간단하게 ‘정경원에게’라
는 헌사(獻辭)를 써놓았다. 피천득 선생의 수필집 「인연」의 들머리에 써놓은 ‘엄마께’ 이후 내게 가
장 큰 감동을 안겨준 헌사다.
연말이 되자 보건복지부에서 외상센터 관련 논의가 사라져버렸다. 기획재정부에서 예산에 제동을 걸
자 보건복지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귀찮은 업무에서 손을 뗐다. 보건복지부 공공의료과장으로서 의욕
적으로 외상센터 업무를 추진하던 군의관 출신의 손영래 서기관도 미련을 버리고 다른 자리를 찾아
갔다. 애당초 가장 소극적이던 국害의원들도 얼씨구나 하고 일제히 외상센터의 ‘외’ 자도 입에 담지
않았다. 국가 중점정책 하나가 신기루처럼 사라진 것이다. 의료계에서도 중증외상 환자 문제를 애써
외면했다. 당초 돈이 안 되는 환자들이었으니까.
2011년 새해가 밝아오자 이국종은 각중에 부서진 배가 보고싶어졌다. 평택의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
보관되어 있는 천안함과 참수리 357호 고속정이었다. 공중분해가 임박한 외상센터처럼, 난파된 두
전함에 연민의 정을 느껴서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제2함대 위병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병의 차를
타고 도착한 거치대에는 동강난 천안함이 시신처럼 처참하게 얹혀 있었다. 1200톤의 강철이 휴지처
럼 갈가리 찢긴 채 배관과 전선들이 마구 쏟아져 나와 녹슬어 있었다. 사고로 복부가 파열된 채 중증
외상센터에 실려온 환자와 다를 바 없었다.
분명 어뢰에 맞아 산산조각이 난 저 천안함을 보고, 좌파들은 틈만 나면 우파정권의 자작극이라고 몰
아붙인다. 그 말을 뒤집어보면, 자신들은 정파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해군장병 46명쯤은 언제든지 수
장시킬 수 있다는 잔인한 얘기가 된다. 문재인이 무슨 헛소리를 하든, 참으로 빨갱이 같은 인간백정
들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을 지껄이고도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냉혈한들
이다. 용사들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건 해군당국도 마찬가지여서, 천안함과 참수리 357호 고속정
은 상굿도 노천에 방치된 채 녹이 슬어가고 있다. 이게 나라냐?!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이국종과 정경원 의사님!
감사드리며,
영육간의 건강을 빕니다.
남성원님, 이준황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