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宋) 회장측-기부금 용도 어기고도 대학·총장이 계속 거짓말
끝까지 사과 안 한다면 195억 반환소(訴) 내고 싶다
부산대측-송(宋) 회장측 요구대로 캠퍼스 부지 매입에 사용
대학 내 불만세력 말 듣고 총장 흠집내려는 의도
지난 7일 부산지방법원이 "기부금을 내기로 약속한 것은 일종의 채무"라는 취지의 눈에 띄는 판결을 내놓았다.
지난 2003년 당시 국내 개인 기부 사상 최고액인 305억원을 부산대에 내기로 한 송금조(87) ㈜태양 회장이 "부산대가 (자신이 희망한) 기부 목적에 맞게 기부금을 사용하지 않고 있어 더 이상 기부금을 낼 수 없다"며 낸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에 대한 판결이었다.
"기부 약속은 일종의 빚이나 마찬가지"라는 취지였던 까닭에 여론은 들끓었다. "누가 기부를 하겠다고 나서 스스로 빚쟁이가 되려 하겠는가" "기부 문화에 찬물을 끼얹는 판결"이라는 등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왔다.
법원은 왜 이런 판결을 내렸고, '선의(善意)'로 이어진 기부자와 대학이 무슨 사연으로 법정다툼까지 가게 됐을까?
◆법원의 판단 내용
송 회장 측이 제기한 소송을 쉽게 정리하면 "내가 내기로 한 305억원은 양산캠퍼스 부지대금으로 써야 하는데 그 사용 목적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으니 110억원을 더 낼 의무가 없다는 걸 확인해 달라"는 것이다. 송 회장 측은 부산대와의 305억원 기부약속은 '부담부증여(負擔附贈與)'라고 주장했다. '부담부증여'란 기부를 받는 쪽이 기부자가 제시하는 조건을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는 증여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아들에게 집을 물려주면서 매달 생활비로 50만원씩을 달라고 약속을 하고 증여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부담부증여는 상대방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집을 받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50만원씩을 매달 지급하지 않으면 계약자체를 무효로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법원은 송 회장의 기부약속이 부담부증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단순하게 사용목적만 지정한 것으로는 기부를 받는 쪽에 '의무'를 지웠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이 상급심에서도 유지될지 주목된다.
- ▲ 기부금이 목적에 맞게 사용되지 않았다며 부산대에 소송을 제기한 ㈜태양 송금조 회 장과 부인 진애언씨. 송 회장은 2003년 10월 당시로선 최고액인 305억원을 부산대에 기부하기로 약정했다.
사건을 보는 제3자는 의문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사회 통념상 기부금을 약속했더라도 마음에 안 든다거나 불가피한 사정이 있으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될 텐데 왜 소송까지 했는가 하는 점이다.
송 회장 측은 "소송은 기부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해 놓고 기부목적대로 사용했다는 거짓 주장을 계속하는 부산대와 김인세 총장의 잘못을 밝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기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고뇌하다 내린 결단이었다"고 말했다.
부산대 측은 이에 대해 "뭔가 다른 이유로 학교에 섭섭함을 느낀 송 회장 측이 학교 운영에 불만이 있는 일부 인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흠집내기에 나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송 회장이 부산대에 기부하게 된 사연
부산대와 송 회장의 '기부와 소송' 사연은 2003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산의 사회환원을 고민하고 있던 송 회장을 당시 부산대 총장이었던 박재윤 전 총장이 찾아와 "경남 양산 캠퍼스 부지 대금(305억원)이 부족하니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건강이 악화된 송 회장은 그해 6월부터 8월까지 서울 삼성병원에 입원해 있어 부산대 측과 접촉할 수 없었다. 그 사이 부산대에서는 총장 선거가 진행돼 현재의 김인세 총장으로 바뀌었다.
송 회장 측은 2003년 9월 중순 김 총장을 처음 만났고, 한달 뒤 305억원의 기부 약정을 하고 100억원을 먼저 냈다.
하지만 이때 최초 기부약정서와 관련한 문제부터 양측의 주장은 엇갈리고 있다.
송 회장과 부인 진애언(64) 여사가 서명한 약정서에는 '부산대학교 캠퍼스 건설 및 연구지원기금'이라고 기부 목적이 적혀 있다. 하지만 송 회장 측은 "당시에 '이왕 (총장인 내가) 써 왔으니 우선 서명하고 기부 목적 기재는 나중에 바꾸면 된다'는 김 총장의 말을 믿고 서명했던 것"이라며 "이후 수차례 다시 써달라는 요청을 김 총장이 묵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인세 총장 측은 "송 회장 측이 이번 재판에서 '부산대학교 열림캠퍼스(제2캠퍼스) 부지대금 잔금'으로 목적이 적힌 위조된 기부약정서까지 들고 나왔다"며 "이는 뒤늦게 흠집을 내기 위한 불순한 의도"라고 반박했다.
- ▲ 의학전문대학원과 병원이 들어서는 부산대 양산캠퍼스 전경.
진 여사는 "그때까지 195억원을 기부했는데 기부한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아무 이야기도 못 듣다가 75억원이 교수들의 학술연구비 조성에 쓰였다는 얘길 들었다"고 말했다.
부산대는 2007년 5월 부산대발전기금 이사회를 열고 "9월까지 연구비로 사용한 75억원을 부지매입기금으로 충당되도록 최대한 노력한다"는 내용을 결의했다. 이 자리엔 진 여사도 참석했다.
이에 대해 부산대는 "학교에 도움을 주신 기부자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라며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감정 싸움으로 번진 배경
송 회장 측은 이후 "기부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소송을 계속하겠다"고 밝혀왔다. 2007년 이후 송 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인세 총장이 재임하는 동안에는 기부를 중단하겠다"거나 "김 총장의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못 믿겠다"고 말했다. 불신의 골이 그만큼 깊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부산대 A교수는 "예우 부분에서 송회장 내외가 섭섭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다른 부산대 관계자는 "2006년까지 별 말 없이 기부금을 내던 송 회장 측이 2007년 갑자기 문제를 삼으며 기부를 중단했다"며 "김 총장과 학교 운영 문제로 대립각을 세우는 일부 인사들이 송 회장 내외를 통해 총장 흔들기를 하는 느낌도 든다"고 밝혔다.
2007년 5~6월과 8월 기부금 전용 의혹이 수면 위로 불거지면서 김 총장은 검찰과 감사원의 조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검찰과 감사원은 모두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송 회장 측은 결국 2008년 7월 부산지방법원에 기부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지난 2월 재판을 중단하고 "현재 상태로 기부금 납부 약속이 완료된 것으로 보고 앞으로 양측이 어떤 법적 청구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강제 조정안을 내놓았다. 이 사건이 판결 선고까지 가면 인재 양성과 지역사회 발전이라는 기부자의 선행 취지가 왜곡될 수 있고, 대학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양측은 이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송 회장 측은 "조정안 가운데 195억원의 용도를 묻지 말라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그냥 받아들일 경우 마치 남은 돈을 내기 싫어서 소송을 냈던 것처럼 비칠 우려가 있다"고 거부 이유를 밝혔다. 부산대 측도 "조정안 중에 '사과하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를 인정할 경우 학교가 잘못을 시인하는 것처럼 오해될 소지가 있다"며 역시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후 다시 재판이 진행됐고, 지난 7일 판결이 나온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
송 회장 측은 법원 판결이 나온 뒤 곧바로 새 변호인단을 꾸리고 항소 준비에 들어갔다. 여의치 않으면 이미 낸 기부금에 대한 반환 소송까지 나설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진 여사는 "지금이라도 부산대가 부지 대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명백히 밝히고 사과한다면 남은 기부금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대 진시원 홍보실장은 "학교 입장에선 기부자와 소송을 하는 모습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이미지에 심한 타격을 입고 있다"며 "소송이 계속된다면 학교 입장에선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송금조 회장은 누구
송 회장은 한때 부산에서 소득세 납부 1위를 했던 향토기업인이다. 1924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난 송 회장은 가난한 어린시절을 딛고 자수성가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53년에 양조장을 시작으로 사업에 뛰어들어 약품 도매 및 정미소 사업 등을 통해 재산을 모은 뒤 스테인리스 수저 제조업체인 태양사를 비롯해 ㈜태양과 ㈜태양화성 등을 잇달아 창업했다.
검소한 생활로 유명한 그는 2003년 당시 개인 기부로는 최고액인 305억원을 부산대에 내겠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2004년에는 1000억원을 출연해 경암교육문화재단을 설립했다. 2005년부터 해마다 학문적 성과가 뛰어난 학자와 예술가 등을 대상으로 상금 1억원의 경암학술상을 수여하고 있다. 송 회장은 1993년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한 뒤 1995년 서울 모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진애언(64) 여사와 재혼했다. 슬하에 자녀는 없다. 고령의 송 회장을 대신해 진 여사가 재단이나 소송 관련 일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