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토피아] 서울 첫 공연 갖는 오페라 황금 커플
테너 알라냐-소프라노 게오르규… 10년간 호흡 맞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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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최정상의 오페라 커플로 불리는 테너 알라냐(왼쪽)와
소프라노 게오르규 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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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런던 로열 오페라극장. 푸치니 오페라 ‘제비(La Rondine)’는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Roberto Alagna·38),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Angela Gheorghiu·36) 부부를 위한 무대였다. 주인공 루체로와 마그다로
출연한 알라냐와 게오르규는 “사랑은 봄날 피어나는 꽃같이…”라는 합창속에 긴 입맞춤을 했다. 실제 부부여서일까, 둘의 무대 호흡은 유연하고도
자연스러웠다.
알라냐와 게오르규는 지금 세계 오페라계 최정상이다. 음악적 성과와 대중적 인기 모두에서 그렇다. 92년 바로 이 극장에서 오페라 ‘라보엠’의 주역(로돌포·미미)으로 출연하며 사랑을 싹틔웠던 두사람이다. 그후 10년.
알라냐와 게오르규는 ‘로미오와 줄리엣’(구노) ‘라 트라비아타’ 등 수많은 오페라를 로열 오페라극장에서 함께 했다. 알라냐는 ‘제4의 테너’
‘제2의 파바로티’란 별칭을 얻었고, 게오르규 역시 ‘제2의 마리아 칼라스’라는 명성을 얻었다. 6월 12일 첫 내한공연(예술의전당 음악당)을 앞둔
‘오페라 황금 커플’ 알라냐와 게오르규 부부를 런던 로열 오페라극장에서 만났다.
―한국을 처음 찾는 소감을 말해 달라.
“조수미씨 등 한국 성악가들의 기량은 매우 훌륭하다. 특히 한국 성악가들의 이탈리아어 발성은 놀랍다. 서울에서 월드컵 경기를 꼭 관람하고 싶다.”
(알라냐)
이탈리아(시칠리) 부모 사이에 프랑스에서 태어난 알라냐가 프랑스팀 축구경기에 관심을 보이자 루마니아 태생 게오르규는 “한국팀을 응원하겠다”고 했다.
―오페라에서 소프라노와 테너는 십중팔구 연인 사이다. 부부가 한 오페라에 출연할 때 현실이 무대로 이어지므로 좋은 점이 많을 듯 하다. 혹시, 부부여서 성가시거나 불편한 점은 없나? 동료들의 시기어린 질투라든가….
“앙상블이 자연스럽다. 불편한 점은 없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우리는 각기
솔로로 활동하지만, 함께 한 무대에 설 때 ‘커플’로서의 알라냐·게오르규는 그 자체로 ‘또 다른 아티스트’라는 점이다.”
―(알라냐에게) 강렬하고 극적인 발성, 부드러운 레가토를 평가받는 리릭 테너다. 파바로티·도밍고·카레라스를 잇는 ‘제4의 테너’라는 세간의 평가에 동의하나. (게오르규에게) 음악을 만들어가는 화려한 색채감, 중음의
견고함과 윤기, 저음역의 풍부한 울림, 청중과 교감하는 비범한 능력으로 ‘최근 10년간 최고의 카리스마’라는 평가다. ‘제2의 마리아 칼라스’라는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나.
“그렇다면 누가 ‘스리’(테너)인가? (알라냐는 이내 농담이라고 하고는)
나는 왜 ‘퍼스트’가 아닌가.” 기자가 “귀하는 곧 ‘퍼스트’가 될 것”이라고 말하자 알라냐는 “맞다”면서 “나는 ‘퍼스트 알라냐’이며 게오르규도 ‘퍼스트 게오르규’일 뿐”이라고 했다. 알라냐는 ‘제4…’ ‘제2…’는 비평계와 흥행사들의 조어(造語)지만, 굳이 싫지는 않다고 했다. 게오르규는 “노 코멘트”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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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알라냐 ·게오르규
커플이 주인공을 맡은 오페라 영화
‘토스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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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규는 검고 긴 머리, 알라냐는 갈색 머리칼이다. 키는 둘 다 175센티
정도. 인터뷰 내내 활달하고, 유머와 위트가 넘쳤다. 신세대다운 솔직하고
직설적인 성격 때문에 더러 지휘자나 연출자와 부딪치기도 한다. 저명한 연출가 조나단 밀러는 이들 부부와 오페라 연출을 싸고 갈등을 빚자 이들을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갱 커플 ‘보니와 클라이드(Bonnie and Clyde)’라 불렀다. 바스티유 오페라극장은 까탈스런 게오르규에게 ‘여자 드라큐라’라는 별명을 안겼다. 부부의 인기에 대한 쑥덕거림과 일부 시비를 의식한 듯 알라냐는 뼈있는 한마디를 했다.
“오페라무대는 전쟁이다. ‘스타워즈’다. 결코 디즈니랜드가 아니다. 전쟁에서 나를 방어해야 한다. 커리어를 쌓기 위해 지켜야할 부분이 있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우리를 지키기란 쉽지 않다. ‘예스, 예스’ 하기는
쉽지만 ‘노’라고 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이 전쟁터의 ‘반항아’(rebel)다.”
―어떻게 기억되는 성악가로 남고 싶나..
“열정이라든지 재능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열정(passion) 건강(body) 의지(mind). 무대만이 아니라 음반까지, 열정을 실어서, 건강하게, 의지를 갖고 해 나가고 싶다.” (게오르규)
“성실함과 신의를 갖고 캐리어를 쌓는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싶다. 오페라를 노래할 때 매 순간, 매 역할, 거짓됨없이 진실한 성악가로 기억되고 싶다.” (알라냐)
―세계를 무대로 누비는데, 가족생활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나.
“달팽이처럼 집을 등에 지고 다니면 모르겠지만, 최대한 가족과 함께 지내려 애쓴다. 가능하면 공연 스케줄도 부부가 한 극장에서 함께 하는 쪽으로
짠다.” (알라냐)
이런 알라냐를 향해 게오르규는 “우리가 달팽이와 마찬가지야, 지금…”이라고 했다. 부부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산다. 알라냐가 세상을 떠난 전처와의 사이에 낳은 10살난 딸, 게오르규가 교통사고로 죽은 언니의 12살난 딸과 함께, 넷이 살고 있다. 특별한 취미를 묻자 알라냐는 “기타도 치고 작곡도 하며, 아무 것도 안하는 것도 물론 좋다”고 했다. 게오르규는 “영화와
연극, 모든 에술적인 것을 다 좋아한다”고 했다.
알라냐와 게오르규는 내한 무대서 그들이 입을 모아 “전설”이라고 부르는 거장 안톤 과다뇨가 지휘하는 코리안심포니 반주로 ‘어떤 개인 날’(나비부인) ‘밤의 정적 속으로 소란은 사라지고’(오텔로) 등 독창과 이중창을
부른다.
●알라냐·게오르규 커플은...
테너 알라냐와 소프라노 게오르규는 음악적 성공담, 러브 스토리, 모두 극적이다. 파바로티의 미성, 카레라스의 로맨틱한 외모, 도밍고의 연기력을 모두
갖추었다는 알라냐는 정작 음악학교라곤 문턱도 넘지 못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파리의 피자 가게서 아르바이트로 노래하던 그에게 행운이 찾아온 것은 86년. 가게를 찾은 한 음악인이 알라냐를 엑상 프로방스
음악제 창설자인 가브리엘 뒤쉬르제에게 소개, 그 문하로 들어가 성악 수업을 받았다. 88년 알라냐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파바로티콩쿠르에서 우승했다.
글라인드본 오페라축제 오디션에 합격해 플라이머스와 리버풀에서 알프레도(라 트라비아타) 역으로 오페라 무대를 노크한 것도 그해. 90년 라 스칼라극장에서 알프레도, 92년 런던 로열오페라극장에서 로돌포(라보엠)로 센세이셔널한 데뷔를 했다.
게오르규는 부카레스트 음악원을 나왔다. 게오르규는 로열오페라극장에서
만난 알라냐의 성악 코치를 자임했다. 결혼도 오페라처럼 극적이었다.
96년 4월 알라냐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 데뷔하던 ‘라보엠’
공연 때 둘은 막간을 이용해서 극장 백스테이지에서 줄리아니 뉴욕시장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게오르규는 소속 음반사를 ‘데카’에서 남편의 전속사인 EMI로 옮겼다.
남편과 더 많은 녹음활동을 하기 위해서다. EMI가 ‘부부 드림팀’을 캐스팅해 발매한 푸치니 ‘제비’, 도니제티 ‘사랑의 묘약’, 구노 ‘로미오와
줄리엣’, 마스네 ‘베르테르’ ‘마농’ 등은 대체로 고른 완성도를 평가받는다. 한 켠에선 ‘알라냐·게오르규 신드롬’은 음반자본과 흥행사들이
튀겨낸, 잘 계산된 신화라는 비판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