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30일(금)
■ 대구 지하철 참사가 있었던 대구의 중앙로역에 도착한 것은 해가 막 넘어가 어둠이 서서히 깔리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대구 지리를 정확히 모르는 나로서는 사고현장을 짐작으로 찾아가면서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중앙로역 부근 많은 차량들이 유턴하는 지점으로부터 30여 미터 가량 텅비어있는 공간. 종이컵에 담겨있는 촛불들만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그 공간 안에는 졸지에 운명을 달리한 많은 사람들의 말을 대변이라도 하듯이 머리에 검은 리본을 동여매고 혼신을 다하는 한 여성의 노래에 한동안 걸음을 옮길 수 없었습니다. 노래를 듣는 동안 참사를 불러온 사람들을 탓하기 보다는 어쩌면 남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하철 입구 계단을 내려서는 순간 그곳이 한사람의 어이없는 방화로 인하여 수많은 인명이 한줌의 재로 변할 수밖에 없었던 처참한 현장의 입구임을 증명하는 양쪽 벽면에 덮여있는 그을음이 그날의 사고가 얼마나 처참하였는가를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새카만 그을음 위로 깨알같이 쓰여 있는 수많은 글들. 그 글들은 한결같이 실종된 가족을 애타게 찾고 있는 부모, 형제, 자식들의 간절한 호소, 먼 저간 자식에게 전하는 어머니의 가슴 저미는 글, 홀로 남은 아내의 남편에게 보내는 메시지, 그리고 그곳을 찾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들로 촘촘히 채워져 있었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그곳에서 실의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뜻을 어떻게든 전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손에 들려있던 가족들을 위한 꾸러미를 그들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사람의 키가 닿을 수 있는 정도의 높이면 수많은 메모와 글들이 양옆의 벽들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지하 1 층 대합실은 마치 커다란 동굴 속을 방불하였습니다. 벽면을 따라 촘촘히 붙어있는 희생자들에 보내는 편지들, 사진,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국화송이, 그리고 사이사이 놓여 있는 차례상, 고인들의 수많은 영정.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그 광경은 너무 처참하였습니다. 화분이라기보다는 말라버린 가지에 그을음으로 인하여 모양만 유지하고 있었으며, 쇠를 제외한 모든 것은 녹아버리거나 형체를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고, 심지어 전화박스의 전화기마저 녹아내려 형체만 덩그러니 매달려 있었습니다. 한쪽 공간에는 유가족들이 피로에 지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들어 있거나 삼삼오오 모여앉아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듯 보였습니다.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하도록 막아놓은 지하 2 층 계단입구. 계단아래가 현장임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2003년 4월 대구지하철참사 현장을 다녀온 후)
◎ 그간의 대형사고를 보면 1971년 서울 대연각 호텔 화재, 1993년 부산 구포 열차 전복 사건,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99년 화성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 2003년 대구지하철 사고 등. 특히 금년의 경우 100일 남짓한 기간 동안 대형참사만 6건. 제2롯데월드 배관공사 사고,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상왕십리역 열차추돌사고, 고양종합시외버스터미널 화재, 시화공단 인근 폐기물처리업체 화재, 장성 요양병원 화재.
1993년 이후 대형 사고만 매년 7~8건씩 발생 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인재입니다. 대형사고 발생 후에는 늘 그러하듯이 정부는 대책을 마련해왔습니다. 그러나 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보면 문제가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어쩌면 금번 세월호 침몰사고가 무엇이 문제인지를 말해주고 있는것 같습니다. 윤정방 울산과학기술대 재난관리공학과 교수는 "안전은 기구를 만들고 인력을 배치한다고 지켜지는 게 아니라 시스템이 계속 작동하도록 끊임없이 확인하는 과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대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안전장치를 충분히 갖추었다 해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고는 사고 대처 능력이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사고는 결코 우연히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무사안일, 형식주의, 사고축소 은폐, 사고예방교육 미비, 안전 불감증 에 더하여 개인이기주의에 의한 부정과 부패가 사고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하고 근주자적(近朱自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먹에 가까우면 검어지게 마련이고 붉은 데 가까우면 붉어지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치 않아도 가까이 하면 그것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흉내내어서는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