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처음으로 경상북도의 버스터미널을 올리게 되었다.
다른 지역의 경우 이미 오래 전에 버스터미널 사진을 찍고 글을 올렸지만 유독 경북만은 그러지 않았다.
아예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한창 다닐 때부터 계획을 잡아놓긴 했었지만,
가까운 곳부터 라인을 따라 돌아보는 습성상 산맥으로 막혀있고 집에서도 멀었던 영남 지역은 자연스레 밀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부산/경남 지역은 오래 전에 방문해 이미 글을 써 놓은 상황이었기에 유일하게 불모지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군대에 있으면서 오히려 점점 가까워진 것 같다.
2년 동안 있었고 배차 나왔을 때 보아둔 터미널도 상당히 많았기에 어느 정도 모습을 파악할 수 있었고,
훨씬 전부터 생각만 해 두었던 계획을 이제서야 실천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입대 전 계획으로는 증평->괴산->문경->상주를 넘어가는 코스로 계획했었지만,
지금은 아예 연풍을 제외하고는 전혀 다른 경로와 교통수단으로 오게 되었으니 정말 앞 일은 모르는 거다.
어쨌거나 지금은 경북에 넘어와 있고, 첫 타깃은 수도권에서 제일 가까운 경상도의 관문. 문경터미널이다.
신라 이래 천 년 넘게 경북 서북쪽 끝에 있던 고장, 문경.
지금은 사실상 이름만 남았을 뿐 모든 중심기능을 점촌에 빼앗긴 상황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상당히 비중있는 지역으로서 영남에서 서울로 넘어가는 모든 물자가 여기로 모였기 때문에,
항상 외지인들로 북적였고 문경새재의 상징성 덕분에 더욱 유명세를 탔던 지역이다.
경부선을 추풍령에 빼앗기고도 한동안 중심으로 남아있다가 해방이 된 후 경북선이 지나가는 점촌으로 군청을 옮겼다.
이유는 '교통이 불편해서'. 영남-수도권을 잇는, 영남대로의 정중앙이었던 '교통의 중심지'가 순식간에 오지가 되고 말았다.
군청을 넘겨준 후에도 탄광산업으로 마지막 불씨를 살렸지만 그마저 쇠락한 지금은 조용한 시골 읍내에 불과하다.
이미 넓게 개량된 읍내의 3번국도에 올라와 있지만 지나가는 차도 많지 않고 사람도 드문드문 보인다.
고속도로가 뚫리며 문경을 거칠 이유가 더더욱 사라졌기 때문에,
그나마 문경새재 옛길이 뜨지 않았더라면 기억 속에서 더더욱 잊혀져가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지금은 7만5천 문경시의 1/10 수준인 8천명이 채 안 되는 사람이 살고 있다.
어지간히 높은 건물도 찾기 힘들고 버스터미널이 읍내 한복판에 그것도 골목길에 있지만 크게 혼잡하지는 않다.
1차선 도로임에도 택시가 여기서 대기하고 있을 정도면 뭐 말 다했다.
반대편 시장쪽에서 3번국도와 새재 방향을 잠깐 바라본다.
갓길 정차로 몸살을 앓고 있던 2차선 골목길을 벽돌 타일의 1차선으로 정리하고, 동시에 건물도 새로 리모델링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완전 딴판이었는데 훨씬 깔끔하고 보기 좋아진 것 같다.
'문경버스터미널' 입구는 골목길 한복판에, 그것도 택시정류장에 딱 붙어있다.
이래도 엉키고 설킬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한산하지만 그래도 주의는 필요할 것이다.
터미널 이용객 대부분이 노인이나 학생, 또는 처음 방문한 관광객 정도일테니.
인도도 없고 1차선 뿐이라 차가 가끔씩 엉킬 때도 있는 골목이다.
어느 시골터미널이 다 그렇듯 실제 이용하는 공간은 1층뿐이다.
안에도 리모델링하여 연갈색 톤의 베이직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 훨씬 따스해 보인다.
이전에는 훨씬 좁고 너저분해 보였는데 건물을 새로 지었나 싶을 정도로 많이 달라졌다.
대합실 맞은편에는 표를 파는 매표소와 매점이 같은 자리에 있다.
리모델링을 정확히 언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 2010년 이후로 보이며,
그래서인지 버스 시간표도 마치 엊그제 뽑아온 것처럼 따끈따끈한 비주얼을 자랑한다.
대부분 노인 분들께서 표를 많이 사시는데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지 무려 티머니 충전까지 된다.
시간표는 간결하지만 의외로 행선지가 다양하다.
시외버스 주력 노선은 동서울, 충주, 안산-인천, 수원, 구미 등으로 대부분이 수도권으로 올라가는 노선.
동서울행의 경우 하루 13회, 약 1시간 간격으로 첫차 06:50, 막차 19:40 분이다.
허나 이들 모두 문경을 중간 경유하고 행선지도 제각각 다양해서 정확히 맞춰지지 않을 때도 있다.
문경→점촌, 문경→가은→농암→은척, 문경→함창→풍양→안계 노선이 모두 섞여있어 계통이 복잡하다.
수원행도 의외로 적지 않게 있는데, 대부분은 수원-문경-점촌으로 가는 직(통) 노선이지만
하루 3회 완행은 충주, 연풍 등을 거쳐가는 국도 투어노선이므로 확실히 알아보고 타셔야 한다.
안산-인천행은 하루 14회, 약 1시간 간격으로 동서울보다 운행 횟수가 더 많다.
상주-점촌-문경-안산-인천을 경유하는 노선으로 문경에서 출발하지 않아 정확하게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고,
일부(12:15, 14:15, 16:10)는 건국대와 한국교통대를 경유하므로 역시 확인하셔야 한다.
이외에 안양-부천행 7회, 성남행 5회, 장호원-이천 5회 등등 수도권으로 가는 노선이 상대적으로 발달한 반면,
영남권 시외버스는 거의 멸종에 가까울 정도로 횟수가 적다. 점촌까지 나가야 왠만한 경상도 지역을 갈 수가 있다.
충주행은 수도권으로 가는 왠만한 시외버스보다 훨씬 많다. 9시부터 19시까지는 약 20~50분 간격으로 수시로(?) 다니는데,
그나마도 횟수가 심하게 줄어든게 저 정도다. 주로 점촌-문경-연풍-수안보-세성을 경유해 충주가 종착지인 노선이다.
그래도 한 때 군의 중심지였다고 주변 마을로 가는 시내버스가 발달하였다.
등산길 코스에 관광지로서 각광받고 있는 문경새재(제1관문)까지 가는 버스가 불규칙하지만 꽤 자주 있고,
가은-농암을 제외하면 대부분 문경읍내 윗쪽으로 가는 버스들이다.
문경읍이 생각보다 꽤 커서(두 면을 합친 동네다) 하늘재 방향으로도 왠만한 면 하나 정도로 마을이 많기 때문.
나머지는 점촌으로 가는 100, 200번 버스. 그리고 상주시내 가는 시내버스도 하루 5회 있다.
약 5~6년 전쯤에 확인했을 때는 이것보다 훨씬 많았던 것 같은데, 그새 배차가 많이 늘어난 것 같다.
특히 여기서 상주까지 한 번에 유일하게 가는 노선이 시내버스 뿐인데 5회라는 건...
시간표 확인은 이쯤하고 승차장으로 가본다.
천막지붕에 울퉁불퉁한 낡은 홈은 어딜 가고 한옥 느낌의 고풍스런 승차장이 버티고 서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리 뜯어고쳐서 이전에 와보셨던 분이라면 깜짝 놀라고도 남을 터.
실제로 이전에 문경을 와 보았던 친구는 새로 옮긴 것 아니냐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할 정도였다.
대구에 본거지를 둔 진안고속 차량이 많이 보인다.
대구와 문경은 같은 경북권일 뿐 아예 남남이나 마찬가지인 동네인데 여기서도 세를 많이 불려놓았나 보다.
기사 분들께서도 많이들 친하신지 잠시 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신다.
시내버스가 서는 정류장엔 행선지도 참 섬세하게 붙여놓았다. 문경농협과 사과 홍보물은 덤.
시외버스 시내버스 구분 없이 모든 버스가 이 곳을 들어오고,
더욱이 시외버스는 거의 100% 중간경유 형식이어서 여기 주차장에서 버스를 구경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아마 옛날처럼 군청이 그대로 남아있었더라면 지금의 버스터미널도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일단 동네도 지금보단 훨씬 컸을 것이고 경상북도의 끄트머리이기에,
경북으로 내려가는 대다수의 버스가 여기를 종착으로 삼았을테니 말이다.
지금의 점촌과 비슷한 모습이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주변에 흩뿌려진 관광지를 상대로 더 활발한 생활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중부내륙고속도로의 개통으로 나름의 기대를 걸어보았지만, 결론적으로는 자가용만 신났을 뿐이다.
수도권으로 가는 버스들도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기는 했지만
이미 위축된 세력과 자가용의 편의가 더 돋보였기에 그다지 많은 혜택을 보진 못했다.
조령옛길, 석탄박물관, 레일바이크 등등 관광지로서 각광받기 시작한 것도 최근의 일이지만
이들을 이어주는 노선망이 (수도권 기준으로 봤을 땐)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점점 자가용으로 쏠리게 되고,
수요가 줄면서 버스 배차는 더 늘어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분명히 길은 있을 것이다. 리모델링을 한 것도 이런 문제와 분명히 관련이 있으리라.
여러 풍파를 겪고 쇠락한 문경읍내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문경버스터미널.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교통이 좋아지고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생겼다는 것이다.
새로 고친 발자국, 그 사이로 한 줄기 빛이 쏟아져 들어왔으면 하는 마음에 마지막 셔터를 누르고 숙연히 밖을 빠져나간다.
첫댓글 이화령을 넘는 문경과 점촌은 바람이 거센지역이죠.
겨울추위가 매서워 명절때 고생했던 기억과 눈오면
문경새재입구부터 통행금지를 내렸던 20여년전 기억이 납니다.
터미널시설이 리모델링되어 한결 깨끗해 보이네요...
이화령 고개밖에 없었던 시절, 폭우나 폭설로 통행금지 되었던 때는 어떻게 생활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교통이 정말 좋아졌다는걸 많이 느끼게 하는 동네인 것 같아요. ㅎㅎ
제가 20대에 한번 다녀온 곳인데...
새삼 남다릅니다.
어언 30년이 다 되어 가네요.
점촌시도 가보고 했는데..
아는 분 집이 그곳이여서.
늘 새로운 소식에 잘 보고 읽고 갑니다.
수고 하셧습니다.
감사합니다.
30년 전에도 리모델링 전 모습 그대로였나요? 문득 궁금해지는군요... 꾸준히 봐주시는 안티선진님께도 항상 감사드립니다. ^^
2008년 지나갔을땐 후줄근했었는데, 깔끔하게 리모델링 했네요. 문경시라하면 저기가 커져야 하는데 정작 점촌이 더 번성한것이 아이러니한 동네에요.
교통으로 유명했었지만 아이러니하게 교통 때문에 점촌에 중심지를 빼앗긴 곳이지요. 정작 점촌은 구한말까지만 해도 상주 땅이었다는군요.
@Maximum 어쩐지 상주에서 점촌까지 금방이더라구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오랫만에 보내요. 구미에 사는데 서울갈때 꼭 문경지나가곤합니다.. 구미에서 국도타고 충주까지 국도로 이용하는데.. 고속도로나 국도나 길은 잘 되어있으니..좋은거같네요.. 한번은 4대강길 간다고 구미에서 문경터미널까지 버스탔고..문경터미널부터 충주까지 갔던 기억이 나네요.. 음 멋있어요~
국도가 너무 잘 되어있어서 고속도로를 굳이 안 타도 소요시간에 큰 차이가 없더군요. 특히 중부내륙에서 김천분기점-선산까지 정체를 생각하면요.. 문경터미널부터 충주까지 4대강길로 가신거면 옛 국도로 가셨나 보군요... 굉장히 재밌으셨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