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대혁명의 의미
면중초등학교
5-7 이서웅
6시 10분.
나는 눈을 딱 떴다. 오늘은 사가정 역사탐방대 가는 날.
그것도 동학농민대혁명이 일어난 곳으로간다.
준비를 하고 버스를 탔다.
7시 10분 쯤 됐을까.......
버스가 드디어 출발을 하였다.
내가 탄 3호차는 남궁일주 선생님이셨다.
성이 '남궁' 이여서 뭔가 색다른 느낌이 들어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일찍 깨어난 탓에 얼마 못 가 그만 잠이 들었다.
정안휴게소에 10분 간 들리고 다시 출발을 하였다.
먼저 우리는 우금티(치)전적지에 가기전에 설명을 들었다.
드디어 우금티에 도착을 하였다.
우금티는 우리 동학농민들과 일본군들이 싸운 곳이였다.
여기에서 엄청난 피해를 보았는데 비록 우리 농민군들이
용감하다할지라도 일본군들은 총을 갖고 있었으므로
바위에 계란치기 식이었다.
단체사진을 찍고 우린 고부관아 터와 고부향교를 탐방하였다.
지금은 고부관아 터는 고부초등학교가 세워져 있다.
이동 중 백산성을 설명하면서 백산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았다.
백산은 앉으면 농민군들의 죽창만 보여 죽산, 일어서면 백산이여서
백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다음은 조소마을에 들렸다.
조소마을은 전봉준고가가 있던곳이다.
다음은 황토현 전봉준 동상이 있는 곳으로 갔다.
황토현은 땅색깔이 붉어 황토현이라 불리웠다.
전봉준석상을 보니 왠지 석화에 새겨진 사람들이 튀어 나올것만 같았다.
그 다음은 마지막으로 동학혁명기념관을 관람하고 보물찾기도 하였다.
여기를 체험하면서 제일 안타까운 점은 우리 농민들이 얼마나 값진 노력을 했는데도
그만한 유적지가 얼마 없다는 것이다.
동학농민 대혁명은 현재도 일어나고 있다.
이게 왠 말이냐고?
농민들이 악질 지주를 찾아가듯
우리도 정부가 그릇된 짓을 하면 시위를 하기 때문이다.
비록 동학농민 대혁명은 실패했지만
그분들의 노력, 피와 땀으로 인해서
우리의 가슴 속은 민주주의와 평등이 새겨져 있다.
첫댓글 Gooooood!! 민주와 평등이 살아움직인다는 소감! 제대로입니다.
좋아좋아~ GOOD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