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남편의 건강은 중년에 이르자 급속도로 나빠졌다.
몸으로 부딪히는 농사에 평생 전념했으니 생각해보면 쇳덩이였더라도 녹슬고 탈 날 만하다.
그이가 고장난 무릎이며 허리 통증을 호소할 적마다 이제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우리가 농사짓는 여러 가지 작물 중에 큰 한 가지를 과감히 버리는 일이다.
빚이 살림 밑천이라는 타당치 않는 말을 위안 삼은 순간도 있었지만 실제로 우리는 큰 댁
빚까지 안고 있는 터여서 농사의 규모를 줄인다는 결단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머리로는 남편의 건강을 생각해 지금이 대폭 축소시킬 맞춤할 때라면서 봄이 되면 시기를
놓칠세라 파종하기에 급급했다. 김치나 절임으로 올리는 소득을 염두에 두면서 배추는 그만 둘 수 없는
작물이라거나 막 시작한 된장 사업에 콩 농사는 필수라며 이어지는 영농을 합리화하고 있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도 묵직한 건 사실 아니었을까?
힘들지만 가장 안정적인 수입원의 농사를 포기하고도 우리 집 살림은 제대로 굴러갈까?
그이나 나까지 점점 병원 출입 잦을 텐데 그에 따른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극빈자가 되어 초라한 중년으로 전락되지는 않을는지?
당장 중노동의 퍼센트 높은 한 가지 잘라내고자 하는 마음과 아직은 붙잡고 있어야한다는
두 마음으로 나는 여러 해 갈등했다.
삐걱거리는 몸을 살살 달래고 구슬리며 계속 농사에 매진한 수년의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는가하면
이미 불편해진 몸이 견디는 시간도 한계가 있을 것 같아 나의 불안도 극에 다다랐다.
게다가 매년 풍년만 들었으면 좋으련마는 그렇지 못한 해도 태반이어서 농사그래프는 들쭉날쭉
안정적이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농업 제반이 어렵기도 했거니와 과잉 생산은 당연히 가격 폭락으로
이어져서 우리의 경제 상황도 악순환의 연속이며 널을 뛰었다. 마음은 급하기가 한량없었지만 느림보가
되어서 느릿느릿 조금씩 부채를 갚다보니 어느덧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농사에서 나오는 소득으로
덩어리 빚을 해결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았는데 거북이의 인내는 그 모든 우려를 덮었다.
그동안 아들도 무사히 학업을 마쳐 취업했고 따스한 햇살 한 줄기 마침내 등에 내려앉는 느낌의 순간이 있었다.
단호히 그토록 소망하던 농사를 반으로 접을 절호의 기회!
알고도 포착하지 못했다면 이번에는 반드시 움켜잡아야겠다는 절실함이 있었다.
일을 마친 직장인들도 퇴직하듯 성실하게 일한 남편에게 충분한 휴식을 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이의 숫자가 단순히 차고 넘쳐나서라기보다 특별히 부지런해서 책임 양을 초과 달성한 사람이
누려야할 큰 혜택과 여유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이가 만족할 금액의 퇴직금도 가족의 이름으로
안겨주고 싶지만 차츰 시간차를 두고 수령케 하면 되지 않겠는가?
나도 있는 힘을 다했기에 한 점 아쉬움이 없었다.
농사에서의 퇴직은 우리 부부가 평소에도 자주 주제로 삼던 화제였다.
내년부터 파종을 뚝 멈춘다는 구체적 상의를 마친 후로는 훨훨 창공을 나는 기분이다.
오랫동안 소망했는데 마침내 실현될 수 있다니..... 선배 농부들처럼 우리 부부도 꽃과 채소를 가꾸는
소소한 일상으로 완벽하게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주렁주렁 내게 매달렸던 욕망의 덩어리도 저절로 내려졌다.
고생했지만 아들을 장성시키고 살림을 불린 남편의 보람 있는 평생과 농부로서 최선을 다한 삶을
어떤 형태로든 칭찬하고 싶었다. 가족의 이름으로 표창장이라도 수여하고 싶은 마음 간절해서 나는 아들에게
서명할 것을 전화로 알렸다.
그리고 저녁 내내 형식도 무시한 뒤죽박죽인 글귀를 눈물 그렁그렁한 체 얽었다.
표창장
김00
당신의 소중한 땀과 헌신으로 일군 풍요한 터전에서 가족들이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또한 농사를 퇴직하는 당신의 건강이 부디 회복되기를 염원합니다.
온전히 육체의 편안함을 당신께 선물로 드리며 이에 표창합니다.
아들:김종기
아내:이음전
(2016 10 7)
첫댓글 가슴 찡한 글이네요..
가족이 함께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이제 새로운 행복을 만끽 하셔요..^^
ㅎㅎ고맙습니다.
아
짠하고 ....
아내도 동시에 퇴직하는겨???
표창장은 선배님도 받아야죠잉
내조상 덤으로
엄마로서,아내로서, 며느리로서,농부로서, 문학인으로서,,,, 또 없나.
그나저나 형부 건강에도 불이 왔구나. 열심히 살아 온 훈장치고는 너무 아파요
눈물난다 미성씨.
큰댁의 빚까지 갚느라 고생많이하셨습니다 음전님의 무던함이 어렵고 힘든시간을 잘 견디게 하신거같네요 남은세월 아드님효도 받으시면서 건강하시고 행복 가득하시길 빌어드립니다
가슴 뭉클해져오는 글 잘 읽었습니다
네ㅡ감사합니다
저는 평생 큰댁 빚을 갚으며 바보처럼 살았네요
에고~~~
눈물 나요.
천사 선배님,
앞으로는 행복한 날만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요. 그 힘든 일 중에도 덕을 많이 쌓으셨으니.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천사 아닙니다요.